분명 넥스트 렘브란트의 그림은 렘브란트 그림의 모사품이 아니다. 그러나 눈을 그리는 방법, 선호하는 색상, 물감 두께 등 렘브란트의 모든 스타일을 담고 있다. 이렇게 한 미디어(렘브란트)가 다른 미디어(인공지능)에서 나타나는 것을 재매개라고 한다.
[7] 재매개는 철학자 제이 데이비드 볼터(Jay David Bolter)와 리처드 그루신(Richard Grusin)이 제시한 개념으로 뉴미디어를 이전 미디어와의 상호 관계 속에서 분석한 것이다.
볼터와 그루신은 매체의 변화도 재매개로 보았다. 자료에 접근하는 수단이 변하면 그로 인한 경험 또한 달라진다. 예를 들면 렘브란트를 구글에 검색해서 나오는 고화질 jpg 파일이 실제 그림과 똑같다고 해도 그 그림을 보는 우리의 경험은 미술관에서 실제 그림을 관람하는 것과 다르다. 해당 파일이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에 있는 실제 렘브란트의 그림의 재매개인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 창작에서 발견되는 재매개는 과거의 예술 작품과 형태적 유사성만 가지는 것은 아니다. 넥스트 렘브란트의 작품은 실제 렘브란트의 작품과 차이를 느끼기 힘들 정도로 비슷해 보이지만, 명백히 새로운 창작물이다. 인공지능의 재매개와 기존의 재매개 간 차이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인공지능은 작품 자체가 아닌, 창작 과정 그리고 창작 주체인 인간을 재매개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작 과정을 재매개할 수 있는 이유는 창작 알고리즘 때문이다. 예컨대 원근법은 시각을 자동화하기 위한 알고리즘이었다. 원근법을 이용하여 2차원의 회화 안에 3차원의 대상을 담을 수 있었다.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원근법은 컴퓨터 그래픽과 컴퓨터 비전의 토대가 되었다. 컴퓨터 비전은 인간의 시각을 알고리즘이라는 형태로 분석함으로써 인간의 시각을 재매개한다.
창작 과정에서 인간은 감각 기관으로 데이터를 받아들인 후, 뇌에서 분석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손이라는 출력 시스템을 거쳐 작품을 완성한다. 창작을 위해서는 반드시 인풋(input) 데이터가 있어야 하고, 뇌 속의 창작 알고리즘을 거쳐 아웃풋(output), 작품이 탄생한다. 이것이 일반적인 창작 과정이긴 하지만 우리는 뇌 속의 분석 시스템과 생성 시스템 속에 어떤 알고리즘이 있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최근의 인공지능 연구는 인간의 창작 알고리즘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임의의 이미지 속에서 양식(style)과 내용(contents)을 분리해 예술적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다룬 연구가 있다. 인공지능은 알고리즘을 이용해 터너, 반 고흐, 뭉크, 피카소, 칸딘스키의 그림에서 패턴을 분석해 새로운 사진에 적용한다. 처음 패턴을 분석하고 분리하는 단계에 해당하는 것을 분석 시스템, 그렇게 분리된 양식을 결합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생성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원리다. 본래 한 작가의 양식은 다른 사람이 모방할 수 없는 고유한 것이었다. 그리고 작가 역시 자신의 양식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작가의 그림을 픽셀 단위로 분석해 예술 작품이 어떤 방식으로 완성되는지 그 과정을 밝히고 재매개한다. 이 연구에서 중요한 점은 인공지능이 다양한 명화를 따라 그렸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예술적 이미지를 생성하고 인식하는지 알고리즘으로 이해하는 길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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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재매개는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작가, 예술가, 개발자가 모여 만든 보트닉 스튜디오(Botnik Studio)는 50개 팀이 넘는 가수의 노래 가사, 텔레비전 쇼, 비디오 게임의 텍스트에 기반을 두는 인공지능 어플리케이션 프리딕티브 라이터(Predictive Writer)를 제공하고 있다.
[9] 글 속에서 패턴을 찾아 그다음 단어를 제시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도 있다. 세계 최초로 단편 영화를 만든 인공지능 벤자민(Benjamin)은 1980~1990년대 공상 과학 영화를 학습해 이를 토대로 각본을 작성했다. 그러나 개발진은 벤자민의 각본이 독창적일 게 없으며, 인간 각본의 평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벤자민은 영화의 패턴을 드러낸다. 우리가 어떤 장면에서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는지, 다시 말해 우리가 어떻게 그런 감정을 학습했는지 말이다. 벤자민은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고 반영해 인간의 특성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재매개의 어원은 치료하고 회복시켜 건강하게 하는 것이라는 뜻의 라틴어 remederi다. 재매개는 현재의 미디어가 과거의 미디어를 개혁하거나 개선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인공지능도 인간의 창작을 보완한다. 인공지능의 창작은 많은 양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간이 평생에 걸쳐 연습했던 고유한 양식을 단기간에 학습하여 구현해 낸다. 또 양식을 알고리즘으로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전에 없던 새로운 창작물을 만든다. 인공지능의 창작은 기존 예술 작품에서 느낄 수 없었던 지각 경험을 이끌어 내며 인간의 창작물을 개선한다. “재매개는 예술 작품의 아우라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그 대신 다른 미디어 형식 속에서 그 아우라를 개조해 낸다”는 볼터와 그루신의 말처럼
[10], 인공지능은 인간의 창작을 재매개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고 있다.
인공지능의 의지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자유 의지가 선행된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데이터를 선택하고 조합하기 위해서는 먼저 프로그래밍이 필요하다. 무엇을 하려는 의지나 욕망을 기계에 주입하는 일은 아직 불가능하다. 인공지능의 창작 행위는 예술 의지가 아니라 설계자의 결정을 따른 것이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결코 같아질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의 예술이 인공지능 창작물보다 우위에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창작에는 공통점도 있다. 미지의 영역, 불투명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인지 과학자이자 컴퓨터학자인 더글러스 호프스태터(Douglas Hofstadter)는 “인간 역시 자신의 심상이 어디서 오는지 정확히 알 수 없고, 선택과 조합의 무한한 가능성 앞에서 무력할 뿐”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그가 자신의 저서 《괴델, 에셔, 바흐: 영원한 황금 노끈》에서 설명한 것이다. 어떤 작가가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미지와 관념을 전하기 위해 붓을 들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나 작가는 그 이미지와 관념이 마음속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명확히 알지는 못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런 방식으로, 다음에는 저런 방식으로 바꾸기도 하면서 다양한 표현 방식을 실험해 본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어떤 방법을 정해 그림을 완성한다. 작가는 이 모든 것이 마음속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 여러 방식을 실험해 보며 그 이미지를 가장 잘 표현하는 법을 어렴풋이 알게 된 것뿐이다.
컴퓨터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프로그램에 주입되어 있는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 사이에서 결과물이 나온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 유지된다면 우리는 프로그램을 인간과 동등한 의미에서 작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11] 호프스태터는 자유 의지를 “자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일종의 직관적인 감각”으로 정의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의 균형으로부터 자유 의지가 발생한다고 본 것이다.
창작하는 인공지능으로 주목받았던 구글 딥드림은 합성곱 신경망을 이용해 이미지의 패턴을 분석하고, 분석한 이미지에 다른 이미지를 합성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사용자는 입력 데이터가 되는 사진을 딥드림에 넣지만, 결과로 나올 그림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정을 할 수 없으며 결과물이 왜 그렇게 나왔는지도 모른다. 인간과 인공지능 모두 창작을 위해 일련의 알고리즘을 따른다. 이는 알고리즘 안에는 스스로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자유 의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행위의 범주를 창작으로 좁힌다면, 자유 의지는 곧 예술 의지(kunstwollen)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술 의지를 관통하는 작동 기제는 자율성이다. 자율성은 철학자 움베르토 마투라나(Humberto Maturana)와 프란시스코 바렐라(Franisco J. Varela)가 정의한 생물의 특징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들이 언급한 자율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율성이 발생하는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마투라나와 바렐라는 자율성의 구조를 보여 줄 수 있는 대표적인 개체로 세포를 꼽았다. 세포는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 작용한다. 여기서 말하는 환경은 세포 발생이 일어날 수 있는 상태, 매질(medium)을 의미한다. 환경은 세포의 구조에 변화를 일으킬 뿐 결정짓거나 명령하지 않는다. 세포 역시 환경의 일부로서 환경 변화에 기여하고 있지만 결정하거나 명령한 결과는 아니다. 세포와 환경은 반복적 상호 작용으로 변화하고, 발전한다.
[12] 결국 자율성은 환경과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 변화하고 생산할 때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자율성은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는 행위로, 인간만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바렐라와 마투라나를 거치며 자율성이 인간에게만 주어진 의지 같은 것이 아니라 생물 그리고 비 생물도 갖고 있는 작동 기제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제 자율성은 환경과 접속되어 있는 개체 내부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주장은 사이버네틱스에 큰 영향을 줬다. 이후 사이버네틱스를 이야기할 때는 생명체와 인공물이 함께 다뤄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순환성, 즉 반복이다.
[13] 마투라나와 바렐라는 개체 발생을 “반복적인 질서에 끊임없이 변화하며 수행되는 창조적 진화”라고 말하며 반복을 생명의 본질로 파악했다. 반복은 인공지능 창작의 중요한 특징이자 다른 기술 매체와의 차이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과거 창작의 반복은 노동의 반복을 뜻했다. 같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똑같은 행위가 반복돼야 했다. 반복이 완벽히 똑같은 창작물을 보장하지도 않았다. 19세기 초에 등장한 석판은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계나 마찬가지였다. 석판은 신문의 삽화 같은 일상의 모습을 빠르게, 그리고 많이 그림으로 담아내며 이미지를 대중화했다. 사진의 발명은 동일성을 보장하는 무한한 반복 창작을 가능케 했다. 1950년대 컴퓨터가 창작의 과정에 들어오면서 반복적인 이미지는 더 쉽고 빠르게 제작될 수 있었다. 초기 컴퓨터 예술은 컴퓨터의 기술적 능력을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반복적인 선이나 도형을 주로 사용했다. 그동안의 반복에는 어떠한 차이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바람직한 현상이었다. 사진을 인화할 때마다 결과물이 매번 달라진다면 필름이 수명을 다한 것이고, 컴퓨터에서 복사한 것과 붙여 넣은 내용이 다르면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반복은 다르다. 반복을 통해 학습하고 최상의 결과를 찾아낸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는 딥러닝과 강화 학습을 결합한 방법으로 인공지능의 게임 플레이가 어떻게 발전하는지 보여 주는 연구를 발표했다.
[14] 인공지능은 아무런 규칙 없이 벽돌 깨기 게임을 시작한다. 처음 몇 번은 계속 공을 놓친다. 100회 반복했을 때는 단순히 공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학습을 반복할수록 공이 오는 지점을 예상해 공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600회를 반복하면, 가장 빠르게 점수를 얻는 방법을 깨우친다. 바로 한쪽 벽에 구멍을 만들고 그 사이로 공을 넣어 벽돌을 단번에 없애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