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하는 인공지능
인공지능에 대한 보수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인공지능을 예술의 장으로 들여오려는 적극적인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오스트리아 린츠(Linz)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인 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의 2017년 주제는 ‘인공지능, 또 다른 나’였다. 주최 측은 에이아이 프로젝트(AI Projects)와 에이아이 룸(AI Room)이라는 공간을 별도로 마련해 인공지능의 가능성에 몰두한 프로젝트 스무 개를 소개했다. 인공지능 기술을 소개하는 워크숍과 강의, 인공지능의 창의성에 관한 콘퍼런스도 함께 진행되는 등 인공지능 예술을 깊이 있게 다뤘다. 일본 오키나와 과학 기술 대학에서도 2018년 ‘인공지능 예술과 미학’이라는 전시를 개최하며 인공지능을 보조 도구로 사용하는 것 이상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이 전시를 기획한 인공지능 예술 미학 연구회는 인공지능의 자체적인 예술을 예견하는 〈인공지능 미학 예술 선언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전시가 열렸다. 2016년 아트센터 나비에서 개최하고 국내외 아티스트, 개발자, 프로그래머 등이 참여한 ‘아직도 인간이 필요한 이유: AI와 휴머니티’는 딥드림, IBM 왓슨(Watson), 마젠타(Magenta) 프로젝트의 인공지능이 제작한 창작물을 볼 수 있는 자리였다. 2017년 한국 과학 창의 재단에서 주관한 전시 ‘GAS 2017: 인공지능과 인공적 창의성’은 자연성과 인공성의 구분에 의문을 제기하며, 인공성을 기반으로 한 생명과 지능, 예술을 다룬 작품 아홉 점을 소개했다. ‘서울 미디어시티 비엔날레 2018’에서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국내외 작가를 초대했다. 좋은 삶을 주제로 한 전시에서는 모두를 위한 인공지능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며 우리에게 익숙해지고 있는 인공지능에 대한 불완전함과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 서울대학교 도시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는 ‘A.I.MAGINE’이라는 이름으로 인공지능을 활용, 주제로 삼은 예술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인공지능 기술은 그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2010년대 이후 최신 인공지능 창작 사례 가운데서도 이미 과거가 된 작품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과거의 예술 작품으로부터 현대적 인공지능 예술을 읽어 내기 위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연성, 상호 매개성, 자기 생산성이 바로 그 단서다. 이 개념들은 현대적 인공지능이 등장하기에 앞서 이미 예술의 장에서 논의되었지만, 기술적 한계에 부딪혀 본질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이제 인공지능 기술로 그 한계를 확장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과거의 예술을 새롭게 다시 보고, 미래의 예술을 상상해 볼 차례다.
기계의 우연성
인공지능은 창의적일 수 있는가? 인공지능 창작의 예술적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질문이다. 일반적으로 창의성은 “새롭고 독창적인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 “전통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서 비일상적인 생각을 산출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우리는 종종 예술 작품 속에서 번득이는 창의성을 마주하고 미적 자극을 받는다. 고대에는 예술적 영감이 예술을 담당하는 아홉 여신 뮤즈(muse)에게서 온다고 묘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정의로는 창의성이 어디서, 어떻게 발생하는지 실체를 알기 어렵다.
계산주의 심리학 분야를 개척한 학자 마거릿 보든(Margaret Boden)은 창의성을 심리적 창의성과 역사적 창의성으로 구별했다. 심리적 창의성은 개인의 마음속에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른 경우를 의미한다. 스스로 이전에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조합하거나 떠올린다면, 그 인물은 창의적이다. 과거에 다른 사람이 같은 아이디어를 내놓은 적이 있다고 해도 상관없다. 반면 역사적 창의성은 인류 역사의 관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은 경우를 말한다.[1] 역사적 창의성은 지금까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다. 창의성의 가치를 판단할 때는 일반적으로 역사적 창의성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창의성의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어떤 아이디어를 먼저 떠올렸다는 것보다 어떻게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었는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적 창의성이 아닌, 한 개체 내부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창의성에 기반을 두고 접근할 것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창의성과 뜻밖에 일어나는 현상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무작위성은 종종 창조의 조건이 된다. 여기서 창의적인 행위의 필수 성분으로 여겨지는 개념들이 제기된다. 보든은 창의적인 행위를 불러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로 우연성(chance)을 들었다. 플레밍(Alexander Fleming)의 페니실린 발견처럼 사건과 결과에 인과 관계가 전혀 없는 경우를 우연이라고 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우연은 무작위와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데 주사위 놀이를 우연한 확률 게임이라고 부르거나, 원숭이들이 우연히 《햄릿》을 쓰는 일은 없다고 말하는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창의성을 논할 때의 우연성은 무작위나 특별한 노력 없이 얻어지는 우연(세렌디피티, serendipity), 혹은 독립적인 인과 관계가 있는 사건들이 동시에 발생하는 우연(coincidence)을 의미하지 않는다.[2] 진화론자들은 원숭이 여러 마리를 데려다가 타자를 치게 하면 언젠가 《햄릿》을 쓸 수 있을 거란 주장을 펼쳤지만,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원숭이들은 단어 하나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우연한 발견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도 세균학에 대해 지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하다. 이 두 사례는 우연성만 가지고는 창의성이 발현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창의성이 발휘되려면 사물을 알아보고, 기억하고, 인지하는 등 일상에서 필요한 수많은 심리적 행위를 능숙히 수행하는 능력, 즉 복잡한 지적 구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창의성이란 마법 같은 일이 아니라 원료가 되는 아이디어를 결합해 재생산한 결과다. 우연성은 그 과정에서 발생한다.
이제 '인공지능은 창의적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근거를 얻었다. 컴퓨터에게 주입된 지적 구조를 바탕으로 데이터를 선택하고 연결하는 것보다 간단한 일은 없다. 게다가 현대적 인공지능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에서 무궁무진한 조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이러한 조합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초기 인공지능은 수학적 논리를 이용해 답을 추론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러한 시도는 머지않아 한계에 부딪혔다. 인공지능의 논리 구조는 문제의 답을 찾는 활동은 할 수 있었지만, 불확실성을 다루는 데는 취약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학자들은 논리적 토대에 통계학과 확률론을 결합했다. 이것이 바로 확률적 프로그래밍(Probabilistic Programming)이다. 정해진 변수 안에서만 계산할 수 있었던 이전의 컴퓨터와 달리 확률적 프로그래밍을 활용한 인공지능은 매우 빠르고 효율적으로 결괏값을 구한다. 잡음과 혼란이 가득한 세계에서 인간처럼 추론하는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해, 논리적 프로그래밍과 확률론적 프로그래밍을 통합하는 연구는 현재 학계 최전선에서 진행 중이다.
모차르트의 음악 주사위 놀이는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 확률론적 프로그래밍을 활용한 창작 활동이다.[3] 표로 되어 있는 악보가 있고, 각 마디를 연주하기 전에 주사위를 던져서 나온 숫자에 해당하는 악보를 선택한다. 이 음악 체계를 이용하면 16마디의 미뉴에트(minuet)와 16마디의 트리오trio를 작곡할 수 있다. 미뉴에트와 트리오에는 각각 열한 가지, 여섯 가지의 음형이 있으므로 16마디짜리 미뉴에트와 트리오를 만들 수 있는 경우의 수는 1116x616이 된다. 어마어마한 경우의 수이지만, 그 결과물은 꽤 훌륭하다. 이 음악이 평균적으로 아름답게 들릴 수 있는 이유는 재료가 되는 기본 악보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만약 모차르트가 모든 음표를 무작위로 선택하는 주사위 놀이를 만들었다면 원숭이가 타자기를 두드린 것 만큼 형편없는 결과물이 나왔을 것이다.
음악 주사위 놀이는 전위적이고 새로운 음악을 찾던 20세기 컴퓨터 음악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연성을 탐구한 많은 작곡가 중 가장 대표적인 작가는 존 케이지다. 케이지는 우연성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옴으로써 현대 미술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여 우연적으로 선택하는 방법(process)이 그의 작품 속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바로 이 점에 인공지능 창작의 가능성이 내포돼 있다.
케이지는 기존의 논리성과 합리성에서 벗어나는 음악을 작곡하고자 우연성을 이용했다. 그는 우연성을 위해 체계적으로 다음 세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첫 번째는 주사위, 동전 던지기, 난수표, 중국의 주역 등을 이용해 악보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이용해 아예 작곡이라는 활동을 지우고자 했다. 두 번째는 악보를 실연하는 과정에서 우연성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소위 케이지의 도형 악보라고 불리는 이 악보에는 세모, 네모, 선 등의 기호만 그려져 있다. 그 기호를 해석하는 자유를 연주자에게 주어 우연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다. 심지어 〈폰타나 믹스(Fontana Mix)〉라는 작업에서는 도형 악보 연주자들의 목에 마이크를 부착하여 기침하는 소리, 물 마시는 소리까지 연주에 포함시켰다. 마지막 방법은 작곡가가 각기 분리된 단편의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 순서는 연주자의 기분이나 선택에 맡기는 것이다.[4] 이 방법은 음악 주사위 놀이와 유사한데, 주사위의 숫자가 아니라 연주자의 일시적인 기분에 맡겨진다는 차이가 있다. 케이지는 한 인터뷰에서 작품을 쓸 때는 음악을 듣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아직 들어 본 적이 없는 어떤 것을 듣기 위해 곡을 쓴다”고 말했다. 그에게 우연성은 창의적인 작곡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케이지의 많은 우연성 음악 중 〈상상 풍경 4(Imaginary Landscape No. 4)〉는 작가가 통제할 수 없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작품이다. 여기에는 총 12대의 라디오가 사용된다. 우연성을 획득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던 케이지가 라디오를 선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케이지의 스승인 헨리 코웰(Henry Cowell)이 케이지가 도표를 이용해 작곡한 피아노 곡 〈변화의 음악(Music of Changes)〉을 듣고 “아직도 케이지 자신의 취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라고 평가한 것이다. 케이지는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라디오를 사용해서 작곡하면 아무도 자신의 취향을 식별할 수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5]
연주를 위해서는 12대의 라디오에 각각 2명씩, 총 24명의 연주자가 필요하다. 연주자는 악보에 따라 라디오 주파수, 볼륨, 톤을 조절하는데, 이들이 보는 악보는 케이지가 동전을 던져 작곡한 12개의 각기 다른 악보다. 또한, 연주 장소마다 청취할 수 있는 라디오 주파수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소리가 들릴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상상 풍경 4〉에서 우연성은 케이지가 작곡하기 위해 동전을 던질 때, 연주가가 악보를 보고 연주할 때 그리고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라디오에 의해 발생한다. 그리고 이 작품의 데이터베이스가 되는 라디오의 소리에는 케이지뿐만 아니라 연주자, 관람객도 개입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