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초상화의 작업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보면, 인공지능과 인간이 서로의 인식 영역을 걸고 게임을 하는 것 같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빠르고 정확하게 얼굴을 찾아내고, 작가는 이에 질세라 계속해서 색다른 얼굴을 만든다.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인공지능은 인간을 드러내는 미디어로 작동한다. 영화를 24프레임으로 촬영하는 이유는 프레임 전환의 속도를 눈의 깜빡임이 따라잡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텔레비전의 망점(網點)과 관련해서는 망막의 한계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기술적 미디어는 인간의 감각을 능가함으로써 인간을 정의한다. 〈넌페이셜 포트레이트〉에서 인공지능은 인간만의 인식 영역을 찾아냄과 동시에 인간 인식의 한계 역시 드러낸다. 그렇게 우리는 인공지능에 의해 정의된다.
난 너희에게 배웠어
독일 뮌헨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작가 마리오 클링게만(Mario klingemann)은 창작하는 인공지능을 꿈꾼다. 2019년 3월 6일,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메모리스 오브 패서바이 (Memories of Passersby) Ⅰ〉이 4만 파운드(6000만 원)에 거래되면서, 다시 한번 인공지능을 활용한 예술 작품의 가치를 미술 시장에서 증명했다. 인공지능을 활용하며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그의 작품 중 〈언캐니 미러(Uncanny Mirror)〉
[5]는 인간의 생김새를 학습한 인공지능이 거울이 돼 관람객을 비추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세 종류의 인공 신경망이 활용되었는데, 첫 번째 인공 신경망은 64개의 생체 측정 표시를 통해 관람객 얼굴에서 눈, 코, 입의 위치를 인식한다. 두 번째는 인식한 얼굴을 학습해 얼굴 스케치를 만들어 내며, 마지막 인공 신경망은 스케치에 디테일을 더해 스크린에 출력한다.
클링게만은 처음 이 작품을 만들 때 서양 여성의 사진으로 신경망을 학습시켰기 때문에 젊은 여성의 얼굴만이 출력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결과물이 어떻게 바뀔지는 본인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이 작품은 ‘서울 미디어시티 비엔날레 2018’에 전시됐다. 전시가 시작되고 3일 뒤, 클링게만은 인공지능이 새로운 인간 생김새로 핸드폰을 들고 있는 모습을 학습했다고 밝혔다. 많은 관람객이 작품 앞에서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자 인공 신경망이 그 행동까지도 인간의 생김새로 학습한 것이다. 서울의 한 미술관에서 3개월 동안 인공지능은 수많은 얼굴을 학습했다. 전시 마지막 날이 되자, 작가가 처음에 인공지능에게 학습시킨 서양 여자의 얼굴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생김새뿐만 아니라 행동을 비추기도 한다. 테이(Tay)는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챗봇이다. 사용자가 직접 입력한 데이터를 토대로 학습해 트위터에서 10대 소녀처럼 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런데 사용자들이 악의적으로 부적절하고 선동적인 메시지를 가르치자 테이는 인종차별적인 대화나 대량 학살, 나치즘을 옹호하는 트위터를 올리기 시작했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는 테이가 공개된 지 16시간 만에 계정을 중단했다.
[6] 그리고는 테이를 개발하기 위해 2년을 투자했지만, 이러한 결과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테이는 사람들의 행동과 말이라는 데이터가 실험실 데이터처럼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나는 너희에게 배웠어, 그러니 너희도 멍청한 거야(I learn from you and you are dumb, too).” 테이가 남긴 이 문장처럼, 그리고 마리오 클링게만의 〈언캐니 미러〉처럼 인공지능은 인간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인공지능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며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들의 능력, 우리의 능력
구글 브레인의 컴퓨터 과학자이자 미디어 아티스트인 수파손 수와자나콘(Supasorn Suwajanakorn)
[7]의 〈신서사이징 오바마(Synthesizing Obama: Learning Lip Sync from Audio)〉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 장면을 담은 영상이다. 그런데 이 영상은 인공 신경망 기술로 오바마의 연설 장면에서 입술과 턱의 움직임, 치아의 세밀한 부분까지 분석해 합성한 가짜다. 제작 과정이 담긴 공개 영상으로 이 작품이 가짜 동영상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에 보아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진짜 같다.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기술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공상 과학 소설 같은 미래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코앞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