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두 나라의 정책 입안자들이 독려하지 않았다면 이런 변화가 가능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일본 도쿄에 있는 국제연합대학교 고등연구소(United Nations University Institute for the Advanced Study)의 연구원인 라쿠엘 모레노-페냐란다(Raquel Moreno-Peñaranda)는 말한다. “양국에서 이 업계에 대한 수많은 지원책들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산업이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었거든요.” 그는 농업 체계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각국 정부에 조언을 해주고 있다. 말레이시아 1차 산업부(primary industries) 장관인 테레사 코크(Teresa Kok)는 2018년 10월 마드리드에서 열린 EU 팜오일 콘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팜오일은 빈곤 퇴치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단어입니다.” 말레이시아는 1961년부터 빈곤 완화를 위한 수단으로 야자 수출을 장려하는 정책을 펼쳐 왔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4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 전까지는 핵심 작물이 고무였지만, 고무 가격이 하락하면서 정부는 고무 농업 대신 야자나무 재배 장려 운동을 시작했다. 1968년 말레이시아는 팜오일 생산자에게 적용되는 세제 우대 혜택을 연이어 발표했다. 이어서 업계에서도 야자에서 오일을 추출하기 위한 도정 공법 개발에 거액을 투자했다. 1970년대 초에 오일 분류 기법이 개발되었고, 이제 팜오일은 식품 제조에서부터 다른 분야에 이르기까지 활용법이 확대되었다.
최근에는 농장 소유주들이 농장에서 버려지던 비어 있는 과일 송이라든가, 야자수 이파리, 야자열매 껍질, 야자씨 껍질 같은 부산물들을 활용해 수익을 내는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 도정 작업에 쓰인 폐수는 인근 강줄기에 버려지곤 했지만, 이제는 전기를 생산하는 데 쓰인다. 생산자들은 팜오일 가격이 떨어질 때도 이러한 새로운 수익원을 통해 리스크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지금과 같은 시기처럼 말이다. 인건비와 비료 가격의 상승에도 견딜 수 있다.
팜오일 생산 증대를 이끌었던 정책이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 인도네시아 정부는 세계은행(World Bank)의 여러 정책에 힘입어, 소규모 농장이 야자수를 재배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1998년 아시아 경제 위기로 이 지역의 공산품 수출은 타격을 입었지만, 달러화에 팔리고 있던 원자재의 수출은, 벡-닐슨의 회상에 따르면, “거칠게 일렁이는 바다 위에서 마치 구명조끼처럼 여겨졌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에 대한 IMF의 구제 금융안은 천연자원을 육성해서 수익을 창출하고, 정부가 부과하던 수출세를 없애 국내 가격을 낮게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런 조치들은 야자수 재배가 더욱 확대되는 결과를 낳았다. IMF와 함께 민간 금융권도 생산을 독려해 왔다. 네덜란드의 은행권에서 1995년부터 1999년 사이에 인도네시아의 야자 생산자들에게 대출해 준 금액만 120억 달러(13조 5850억 원)가 넘는다.
지속 가능한 상품이라는 건 지역에서 생산되고 지역에서 소비되는 것이다. 만약 소비자들이 팜오일의 생산 과정을 직접 보게 된다면, 현재의 가격은 그 대가에 대한 비용으로는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농장 소유주와 노동자, 생산국 정부와 금융업체들은 단기적인 이익을 봤지만, 지구는 기후 변화라는 막대하고 장기적인 대가를 치르게 됐다. 야자수 재배 목적으로 파괴되는 숲은 세계에서 탄소가 가장 풍부한 곳들 중 하나다. 그런 숲이 불에 타면서 탄소들이 방출된다.
팜오일은 현재 말레이시아 국민 총소득(GNI)의 13.7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의 최대 수출품이다. 2018년 10월, 마드리드에서 열렸던 EU 팜오일 협회 회의에서 두 나라 대표단들은 그들이 성공적으로 빈곤을 퇴치할 수 있었던 것은 팜오일 덕분이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하지만 적어도 인도네시아의 경작자들에게는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들은 거대 농장과는 무관한 농부들을 위해 정부와 업계가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삼림 파괴는 중단된 상태이며, 지속 가능성은 확보되었다고 말했다. 지난 10년 동안에 삼림 파괴가 증가한 지역들이 있다는 다른 참석자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말이다.(2018년 9월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새로운 야자수 농장 개발을 3년간 중지시키는 시행령에 서명했다.)
그러나 원료 생산국들은 원료 수입업체들만 상대하면 되지만, 수입업체들은 소비자들을 상대해야 한다. 2004년 환경 NGO인 ‘지구의 벗(Friends of the Earth)’ 영국 지부는 팜오일 생산이 일으키는 삼림 파괴를 조사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로 인해 대중적인 비판 여론이 확산되었고, 삼림 파괴가 지속될 경우 생산자들의 평판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러자 그해에 세계 야생 동물 기금(WWF)은 야자수 재배업자들과 제조업체들, 유통업체들이 모인 ‘지속 가능한 팜오일 원탁회의(RSPO·Roundtable on Sustainable Palm Oil)’를 설립할 것을 제안했다. 10년 후, 팜오일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메이저 업체들이 참여한 가운데 RSPO가 설립되었다. 이 단체는 ‘지속 가능성’을 목표로 삼았다. 전 세계에서 팜오일을 사용하는 제품들의 19퍼센트가 이곳에서 ‘지속 가능성’ 인증을 받았다. 하지만 그린피스에서 갈라져 나온 단체인 환경 조사 기구(EIA·Environmental Investigation Agency)는 3년 전, RSPO가 “형편없이 수준 미달”이며 “위반 행위를 감추기 위해 결탁하는 사례”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RSPO는 이에 대해 “우리는 EIA의 보고서에 담긴 주장들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보다 심도 있는 대화와 향후의 인증 시스템 개선을 위한 좋은 기회로서 환영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팜오일이 지속 가능하게 생산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 작업이다. 도정기 한 대만 있는 팜오일 공장이 말레이시아에만 수백 곳이 있는데, 우선은 이곳에서 추출에 사용하는 야자수 열매들은 다른 여러 곳의 농장에서 가져온 것일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그 배합물과 파생물들이 엄청나게 다양하기 때문에, 하나의 팜오일 안에는 아주 여러 복잡한 출신지를 가진 성분들이 섞여 있는 것이다. 지속 가능성 인증 시스템이 원래 계획대로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환경주의자들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예를 들자면, 아주 최근에 파괴된 삼림 지역에서 재배된 팜오일을 99퍼센트 포함한 상품이라고 하더라도 ‘지속 가능성 인증’ 마크를 받을 수 있다. RSPO는 규제가 엄격하지 않기 때문에 업체들의 솔선수범이 필요한 부분이며, 인증된 팜오일의 소매가격이 더 높다는 것을 일단 알게 되면, 소매 상품 제조업체들에서도 규제 수준을 더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EU 팜오일 협회의 회의가 있기 전, RSPO의 유럽 사업부 수장인 인케 반 데어 슬루이즈스(Inke van der Sluijs)는 이렇게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지속 가능성 인증 항목을 아주 엄격하게 지키고 있는 업체들은 거의 없는데, 유통 구조가 길고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환경주의자들은 대체로 RSPO의 인증 시스템이 다른 여러 인증 절차들에 비해 강도가 아주 높다고 인정을 하는 편이며, RSPO에서도 제조업체들로 하여금 인증받은 오일을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 가능 인증을 받은 팜오일의 절반가량은 인증 표시도 없이 판매되고 있다. 소비자들 다수가 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인증받은 팜오일을 구매하겠다고 나서지 않는 이상, 바뀌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또 한 가지 문제가 되는 것은, 팜오일 생산지로 표시되는 곳의 거의 대부분이 야자나무 재배지가 아니라 추출 공장라는 점이다. 삼림 감시(Eyes on the Forest)라는 단체가 있는데, WWF와 인도네시아의 환경 NGO들이 함께 모여서 만든 곳이다. WWF는 팜오일의 지속 가능성 인증 시스템을 만드는 데 일조를 했던 바로 그 단체다. 삼림 감시는 2016년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오일 추출 공장을 생산지로 표시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 낭비이며, 불법적인 상품들이 유통되는 문제에 대한 어떠한 해결책도 되지 못한다”고 밝혔다. 현재 개별 야자수들의 재배지와 생산지를 추적하기 위한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팜오일 생산을 위해 새로운 삼림 파괴가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야자수 재배로 인한 삼림 파괴를 중단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희망 사항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산출량 증대다. 기존의 재배지에서 더 많은 오일을 얻을 수 있다면, 보다 많은 경작지를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는 수풀을 굳이 파괴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정부 기구인 말레이시안 팜오일 위원회의 유전학 부문을 이끌고 있는 라진더 싱(Rajinder Singh)은, 산출량과 관련된 어떠한 유전적 특질들을 잘 선택한다면 산출량이 많지 않은 나무를 더 심기 위해서 대지를 파괴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현재의 최대 산출량은 1헥타르당 대략 6~7톤이지만, 싱은 기존 야자들과 비교해서 오일 생산량이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야자들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생산 주기가 25년에서 30년에 달하는 현재 나무들의 수명이 다하게 되면, 이제는 보다 생산성이 뛰어난 종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루당 생산량이 두 배에 달한다고 하더라도, 거의 네 배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2050년의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부족하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쉽지 않다. 야자를 다른 오일로 대체하게 되면 오히려 삼림 파괴만 가속될 뿐이다. 단위 면적당 산출량에 있어서 야자를 따라올 만한 경쟁자가 없기 때문이다. EU 팜오일 동맹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오일이나 지방 작물 경작지 전체 면적에서 야자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6.6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생산량은 38.7퍼센트를 차지한다. 콜롬비아는 과거에 코카와 같은 불법 작물들을 기르던 지역들에서 팜오일을 생산하기 위해 분발하고 있지만, 아시아의 생산량을 따라잡기에는 한참 멀었다.
팜오일은 많은 산업들을 견인할 수 있었던 완벽한 성분이었고,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완벽한 수출품이었으며, 긴밀하게 연결된 세계 경제를 위한 완벽한 원재료였기 때문에, 오늘날 이렇게 광범위하게 쓰이는 물질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부유한 국가의 소비자들은 개발 도상국들에 넘쳐나는 저렴한 노동력과 소중한 열대 우림들을 이용하고 있고, 이 나라들은 경제 성장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소중한 자원들을 헐값에 기꺼이 넘기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모델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런 현상이 계속된다면, 삼림과 함께 그 안에 살고 있는 생명체들은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 일부가 계층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게 되면 야자를 따는 일보다 더 좋은 일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테고, 결국 노동 비용은 증가하게 될 것이다. 결국 팜오일 생산자들과 소비자들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지속 가능한 상품이라는 건 지역에서 생산되고 지역에서 소비되는 것이다. 만약 소비자들이 팜오일의 생산 과정을 직접 보게 된다면, 현재의 가격은 그 비용으로는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는 관심을 두기가 쉽지 않다. 이런 현실을 바꾸려면 아마도 조금은 마법과도 같은 일이 일어나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