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그림과 같이 자동차 중심의 모빌리티 산업은 원재료, 소재, 부품, 제조, 유통, 이용, 중고차, 폐차 등의 과정으로 이뤄졌다. 간단히 말해 자동차를 만드는 전방 산업과, 자동차를 이용하는 후방 산업으로 구분됐다. 반면 이동 중심의 모빌리티 산업은 제조, 서비스, 플랫폼 세 단계로 나뉜다. 제조 산업에선 모빌리티 이동 수단 및 유관 제품을 제조·생산한다. 여기서 만든 제품의 이용 및 부가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 서비스 산업이다. 서비스 산업은 유·무형 모빌리티 자산으로 가치를 창출하는데, 최근 언급되는 모빌리티 산업의 대부분이 바로 이 서비스 산업에 속한다. 카카오택시의 차량 호출, 쏘카의 카셰어링, 티맵 지도의 내비게이션 등이 대표적이다. 마지막으로 플랫폼 산업은 고객 중심적 사고를 바탕으로 고객 편의와 연결을 중심에 둔다. 서비스와 고객 간 접점을 만들어 모빌리티 이용의 편리성을 극대화하는데, 카카오 T를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가 대표적 플랫폼사업자다.
만들고 제공하고 수집하기
모빌리티 산업은 점차 커지고 있다. 이동 디바이스 산업에선 자동차, 비행기, 자전거, 오토바이 등 디바이스 자체를 다루는가 하면, 에너지 등을 관리하는 인프라 산업, 솔루션과 플랫폼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산업 모두 포함된다. 이외에도 차량 금융, 정비, 카셰어링 등 이동과 관련된 모든 산업이 모빌리티 산업에 해당한다. 이 산업들은 크게 제조, 서비스, 플랫폼 산업 세 가지로 나뉜다.
제조 산업
2022년 7월, 현대엘리베이터는 2030 미래 비전 선포를 통해 “Mobility To Possibility”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엘리베이터 제조사가 왜 모빌리티라는 단어를 택했을까? ‘이동’이라는 가치에 집중한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1층에서 10층까지 이동하기 위해 우리는 엘리베이터란 디바이스를 이용한다. 짧게는 수십 초, 길게는 몇 분의 시간을 엘리베이터 공간에서 소비한다.
엘리베이터를 비롯해 이동에 관한 제품을 제조하는 모든 산업은 모빌리티 제조 산업에 해당한다. 모빌리티 제조 산업은 과거 전통적인 산업의 근간을 이뤘다. 대부분의 수익 모델은 일회성 판매 기반으로, 상품을 한 번 고객에게 제공한 뒤 그 대가를 지불받는 가장 오래된 수익 모델 중 하나다. 주요 상품은 자동차나 킥보드, 이륜차와 같은 이동 디바이스이며 자동차 관련 부품이나 충전기, 배터리 등도 판매한다.
제조업은 전통적인 산업의 특징을 띄는 만큼, 원가를 절감하고 노동 생산력을 향상하는 것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 현대차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Electric-Global Modular Platform)은 전기차 제작 시 필요한 부품을 표준화해 원가 절감을 유도했다. 플랫폼의 모양이 스케이트보드를 닮았다고 하여 ‘스케이트보드 플랫폼’으로도 불리는 이것은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와 모터 등을 모듈 형태로 얹고 그 위에 용도에 따라 상부 차체를 올려, 다양한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생산 과정을 표준화하거나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방식도 시도한다. 르노자동차는 1926년 이래 벨기에 공장에서 자동차를 생산해 유럽 시장에 판매하고 있다. 한 공장-두 제품, 한 제품-두 공장 생산 원칙을 통해 공장 내 분규로 발생하는 전체 생산 마비를 막고자 했다. 다만 공장이 자동화, 현대화됨에 따라 기존 원칙에서 중복 투자, 물류의 복잡함 등이 문제로 대두됐고 그 결과 생산 비용이 늘었다. 결국 비용 대비 효율의 논리에 따라 1997년 벨기에 공장은 폐쇄됐다. 대신 인건비가 30퍼센트 저렴하고 자동차 조립 시간이 15퍼센트 짧은 프랑스 두에(Douai)와, 인건비가 70퍼센트가량 저렴한 스페인 팔렌시아(Palencia) 공장에 생산을 집중시켰다.
무엇보다 제조 산업의 가장 중요한 미래 동력은 기술 혁신이다. 대표적으로 테슬라의 영업 이익률이 2020년 6.3퍼센트에서 2021년 12.1퍼센트로 오른 것에는 기가 프레스(Giga Press) 기술이 크게 공헌했다. 기가 프레스는 차량 제작 시 기존 완성차처럼 수십 개의 금속 패널들을 용접해 연결하는 게 아니라, 거대한 하나의 금속판을 틀에 넣고 높은 온도와 압력으로 캐스팅해 온전한 하나의 바디를 만드는 공법이다. 쉽게 말해 커다란 차체를 한 번에 찍어 내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차체 생산과 용접 공정의 과정을 간소화하고 인력이 적게 들어 비용을 줄일 뿐 아니라 공정 자체가 줄어들어 불량률을 낮출 수 있다.
서비스 산업
한번은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홈플러스에 방문했을 때 지하 4층 주차장에 BMW AS센터가 있는 것을 보고 놀란 기억이 있다.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BMW 차량 수리 및 소모품 교환, 경정비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었다. 마트에서 물건을 사거나 영화를 관람하는 시간 동안 자동차 정비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자, 주차장은 단순히 자동차가 머무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다양한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는 서비스 센터로 생각됐다.
이처럼 모빌리티 서비스 산업은 제조 단계에서 생산한 제품으로 유·무형의 부가 가치를 만들어 고객에게 제공하는 산업이다. 여기서 부가 가치는 종류와 방식에 따라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한데, 그만큼 서비스 산업을 하는 기업은 종류도 다양하고 성장 가능성도 크다.
대표적으로 자동차 구입, 렌트, 주차 부문 등이 해당된다. 소비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차량을 구입할 수 있다. 일시불로 차량을 구입하기도 하고, 할부로 차량을 사기도 한다. 혹은 리스(lease) 방식으로 차량을 소유할 수 있다. 대표적인 회사로 현대캐피탈, KB캐피탈이 있다.
렌트를 원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렌트 업체는 소비자가 차량을 원하는 시간, 장소, 기간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한다. 장기 차량 렌트를 원하는 고객은 장기 렌터카 상품을 이용하고, 30분 단위로 차량을 빌리고 싶은 경우 카셰어링 서비스를 선택한다. 롯데렌탈, SK렌터카, 쏘카가 직접 차량 렌탈을 제공하는 반면 카모아, 카카오 T 렌터카, 뽕카, 렌카 등은 렌트 서비스와 고객을 중개해 준다.
위에서 언급한 주차장 서비스 역시 중요하다. 2014년 한국교통안전공단 통계에 따르면 비사업용 차량의 하루 평균 이동 거리는 35킬로미터로, 많은 자동차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주차장에서 보낸다. 즉, 소비자가 자동차를 주차해 둔 시간 동안 제공할 수 있는 부가 서비스는 무궁무진하다. 대표적인 서비스사로는 하이파킹과 카카오 T 파킹이 있다.
서비스 사업의 관건은 고객이 무형적으로 느끼는 가치를 차별화하는 것이다. 모빌리티 서비스 산업에 속한 기업 대부분이 동일한 혹은 유사한 유형 상품과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2018년 롯데렌탈에서 장기 렌터카의 영업 업무를 맡았을 때 고객에게 어필한 것은 타사에 없는 카드 결제 서비스였다. 현금으로만 장기 렌터카 요금 결제가 가능하던 것이 당시 장기 렌터카 고객들의 페인 포인트였고, 이 점에 착안해 자사가 카드 결제를 제공하는 업계 유일 서비스라는 점을 강조하는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
서비스 산업은 제조 산업과 달리 수익 모델이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제조 산업처럼 서비스 1회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모델도 있는 반면, 서비스를 중개하고 중개 건당 혹은 중개 금액의 일정 비율을 수익으로 받는 모델도 있다. 또 최근 렌트에서도 구독 개념이 등장하며 새로운 형태의 장기 렌터카 서비스가 생기고 있다.
플랫폼 산업
모빌리티 플랫폼 산업은 고객 편의와 연결을 중심에 둔다. 흔히 ‘연결’의 속성으로 대표되는 이 산업의 자산은 고객이다. 고객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위치하며 서비스의 부가 가치뿐 아니라 다양한 참여자가 상호 작용하는 기회를 제공해 가치를 창출한다.
간혹 서비스 산업과 플랫폼 산업이 중첩되는 영역이 생기는데, 이때 핵심은 어디에 중심을 두는가다. 택시 호출을 중개하고 차량을 제공하는 진모빌리티의 아이엠(I.M.)은 서비스 산업과 플랫폼 산업의 속성을 동시에 지니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주목할 것은 아이엠의 핵심 서비스, 이동이다. 앱을 통해 ‘중개’ 형태로 택시 호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이동 서비스를 고객에게 편리하게 제공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자 채널이다. 따라서 아이엠은 모빌리티 서비스 산업에 속한다. 다만 진모빌리티가 향후 아이엠 앱을 기반으로 택시 호출 외 다른 서비스를 출시해 고객과의 접점을 키우고, 고객을 서비스 이용자를 넘어 자사의 자산으로 간주한다면 플랫폼 산업으로 전환했다고 할 수 있다.
즉, 모빌리티 플랫폼은 고객과의 연결성이 중요하다. 고객으로 하여금 플랫폼이 익숙하도록, 지속적으로 플랫폼에 접속하도록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용자 수를 늘리고 고객의 행동 패턴을 파악해 앱 내 체류 시간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플랫폼 산업은 타 모빌리티 산업보다도 훨씬 고객 중심의 사고로 이뤄진다. 카카오모빌리티, 타다, 티맵모빌리티, 네이버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