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풋이 아닌 과정을 혁신하다
아웃풋이 아닌 프로세스를 혁신하는 새로운 가치 전략을 세탁업에 들여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세탁 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혁신이 잘 일어나지 않는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세탁 산업에서의 혁신은 주로 세탁기의 기능적 향상을 통해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일본의 IT 비평가인 오바라 가즈히로(尾原 和啓)는 저서 《프로세스 이코노미(Process Economy)》 에서 이를 ‘아웃풋 이코노미(output economy)’라 칭한다.
[1] 아웃풋인 ‘세탁기’라는 프로덕트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세탁기 산업은 일정 규모의 성장에 도달해 제품 차별화만으로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 있어 한계에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세탁 서비스 분야는 디지털 전환이 더뎠다.
기존의 세탁 서비스에서 혁신이 일어나기 어려웠던 이유는 세탁이 지닌 본질적인 속성 때문이다. 세탁물은 고객의 소유이기 때문에 서비스의 시작과 끝이 고객의 주거 공간과 연결된다는 특징이 있다. 그렇기에 고객 주거지 근방의 세탁 서비스 업체로 서비스 담당 업체가 제한됐다. 이 때문에 세탁 서비스에서는 그간 규모의 경제가 일어나기 힘들었고, 디지털 전환 시스템의 도입 역시 어려웠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런드리고(LaundryGo)는 발상의 전환을 꾀한다. 세탁기가 아닌 세탁 ‘과정’의 혁신을 통해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한 것이다. 물론 런드리고 이전에도 세탁 서비스라는 분야에 플레이어들은 있었다. 대표적인 게 동네 세탁소다. 세탁을 서비스화해 고객의 가사를 서비스의 영역으로 가져간 최초 플레이어이다. 집과 세탁소의 물리적인 거리 이동에서 오는 불편함을 최소화해 세탁 서비스의 편의를 높이고자 도모했던 세탁물 배달 업체들도 생활 세탁 서비스 분야의 혁신을 추구한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세탁 ‘경험’의 프로세스에서 가치를 창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런드리고는 모바일 기반의 생활 빨래 서비스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임으로써 기존 산업의 문제를 풀고 세탁 서비스의 수준을 한 단계 향상하고자 했다. 여기에 더해 모바일을 통해 24시간 이내에 빨래 수거 신청과 배달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세탁 서비스의 단축은 굳이 집에서 세탁을 하지 않아도 되는 ‘빨래의 외주화’ 시대를 열었다. 즉, 생활 빨래가 집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집 밖의 공간에서 이루어져도 무관한 프로세스를 제공한 것이다. 이는 고객들의 가치 사슬 측면에서, 이전에는 불편함이 느껴지던 가치 저감 부분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런드리고는 세탁 과정에서 고객이 세탁 결과물에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을 추가해 고객이 빨래를 맡기고 받았을 때 기존 세탁 서비스와 차별화된 효용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세탁 서비스는 혁신과 차별화 포인트를 프로세스에 두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
이게 가즈히로가 말한 ‘프로세스 이코노미’다. 프로덕트로는 더 이상 혁신이 일어나기 어려울 때 프로세스에 집중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논의와 런드리고의 행보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프로세스 이코노미의 핵심은 고객이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고객 경험이 향상되는 경험을 할수록 더 많은 가치가 발생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정에서 가치를 만들려는 접근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사실 런드리고를 운영하는 의식주컴퍼니의 조성우 대표가 이 사업을 떠올리게 된 것에는 특별한 비화가 있다. 이미 한 번 성공적인 창업을 경험하고 번아웃을 회복하려던 그를 다시 창업으로 이끈 건 다름 아닌 여행지에서 만난 한 도둑이었다. 조 대표에게 의식주컴퍼니의 탄생 비화를 물었다.
의식주컴퍼니의 탄생 비화
회사 이름이 의식주컴퍼니인 이유가 궁금하다. 왜 의식주를 강조했나?
특별히 강조한 건 아니다. 많이들 물어보시기도 한다. 세탁하는 회사가 왜 의식주컴퍼니인지, 결국 의식주를 다 하려는 건 아닌지 하고 말이다.
우리는 세탁이 혁신되면 주거 공간의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자취하는 1인 가구면 더 크게 공감할 텐데 아무리 좁은 공용 면적, 전용 면적이라고 하더라도 세탁기나 세탁 설비, 세탁 공간은 우리가 역사적으로 반드시 갖출 수밖에 없던 공간들이다. 런드리고는 우리가 당연히 여겨 왔던 공간이나 행위를 비가역적인 방식으로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한다.
실제로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며 세탁기를 안 쓰시는 분들, 세탁 공간을 없애시는 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니 결국 ‘의(衣)’가 ‘주(住)’를 혁신한 것 아니겠나. 그래서 의식주컴퍼니라고 이름 지었다. 사실 옛날부터 ‘식(食)’을 좀 오래 전문 분야로 해서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의주컴퍼니’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의식주는 결국 우리의 삶과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에 상징적인 단어로 이해해 주시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