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차별적인 표현이 많았는지 분석해 봅니다. 살펴볼 자료는 2016년에 발표된 논문
[2]인데, 디즈니 프린세스 시리즈를 대상으로 성별에 따라 영화 대사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분석했습니다. 1937년 〈백설공주〉부터 2013년 〈겨울왕국〉까지 총 열두 편입니다.
먼저 남성과 여성의 대사 비중을 살펴봅니다. 총 열두 편의 공주 애니메이션 중 여성의 대사가 전체 대사의 50퍼센트 이상인 작품은 다섯 편에 불과합니다. 클래식 작품 세 편은 모두 50퍼센트 이상이었고, 80~90년대 작품에서 여성 대사의 비중은 상당히 낮습니다. 2000년대 이후 〈라푼젤〉, 〈메리다와 마법의 숲〉 작품만이 50퍼센트를 넘겼습니다. 공주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인데도 불구하고 대사를 양적으로 비교해 봤을 때 꽤 많은 차이가 보이는 겁니다.
물론 대사만으로 성별 격차를 정확히 파악하긴 어렵습니다. 기존의 수동적인 공주 캐릭터를 벗어나 처음으로 능동적인 캐릭터라는 평가를 받은 〈인어공주〉도 대사의 양만 봤을 땐 50퍼센트 미만으로 나오니까요. 참고로 디즈니 르네상스 시절의 애니메이션은 뮤지컬 스타일이 대세였던지라 등장인물이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1990년대 이후부터 점차 여성 캐릭터의 대사 비중이 늘어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겁니다.
대사의 내용을 분석해도 의미 있는 변화가 보입니다. 여성 캐릭터에 대한 칭찬 대사를 분석해 보면, 과거 디즈니 클래식 시절엔 외모에 대한 칭찬이 절반이 넘는 55퍼센트였습니다. 능력에 대한 칭찬은 11퍼센트에 불과했고요. 하지만 디즈니 르네상스 시절에 걸쳐서 외적인 묘사보다 능력에 대한 묘사로 옮겨 가기 시작했고, 2000년대 이후부터는 여성 캐릭터의 능력에 대한 대사가 더 많아졌습니다. 뉴에이지 시절에는 능력에 대한 칭찬이 전체 칭찬의 40퍼센트, 외모에 대한 표현은 22퍼센트에 불과합니다.
과거 작품을 기억하는 법: 수정과 유지 사이
과거에 만들어진 작품 속에는 현재의 시선으로 봤을 때 갸웃할 만한 지점들이 많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로알드 달, 닥터 수스의 동화책에도 있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곳곳에도 있죠. 찾으면 더 많을 겁니다. 우리나라 문학 작품과 영화에도 당연히 들어 있을 겁니다. 작품엔 당시 시대상이 담기고, 또 시대상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녹아 들어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작품을 우리는 어떻게 소비해야 하는 걸까요? 시대에 맞게 수정해야 할까요? 아니면 원작 그대로 유지해야 할까요?
우선 첫 번째 입장은 ‘작품의 수정은 정치적 올바름의 일환’이라는 겁니다. 정치적 올바름은 성별, 인종, 종교 등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죠. 과거 작품에 그런 표현이 있다면 시대에 맞게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bowdlerize’라는 표현을 들어 봤나요? 연극이나 영화에서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부분을 고치거나 삭제하는 식의 검열을 뜻하는 단어인데, 토마스 보들러Thomas Bowdler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단어입니다.
저 단어가 나오게 된 계기는 바로 셰익스피어의 희곡입니다. 사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반유대주의, 인종 차별, 성차별, 성 학대, 폭력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1800년 대 보들러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 원색적인 장면을 삭제하고 가족들에게도 들려줄 수 있는 ‘패밀리 셰익스피어’를 만들었습니다. 그걸 따서 bowdlerize라는 단어가 생겼죠. 이런 편집과 수정은 계속 이뤄지고 있습니다. 만일 셰익스피어의 작품 그대로를 접한다면, 인종 차별적인 내용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두 번째는 ‘작품의 수정은 예술에 대한 검열’이라는 입장입니다. 원작에 대한 고유 가치를 인정해서 원작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당장 셰익스피어의 사례를 두고도 위의 입장과 다르게 생각하는 단체가 있습니다. 이름하여 NCAC(National Coalition Against Censorship)라는 곳인데, 이곳에서는 잘못된 과거 작품이라도 검열과 편집 과정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차별적 표현이 사라진다면 이 지점에 대해 생각하고 배울 기회가 아예 날아가 버릴 테니까 편집은 없어야 한다는 거죠.
정치적 올바름을 이유로 원작을 수정하는 것은 오히려 교육적으로 역효과를 가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고전 동화나 옛 작품에는 차별과 편견이 담겨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2021년 아동청소년문학연구 저널에 실린 〈언어적 유토피아의 불편함: 정치적으로 올바른 고전동화의 역설〉
[3]에서 저자는 우리가 고전동화에서 주목할 지점은 차별과 편견의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보는 비판 의식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의식이 길러지고 발동되기 위해선 편견이 담겨 있는 원본 작품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만약 작품 수정이 이뤄지면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겁니다.
앞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에 반유대주의적 표현과 분위기가 많이 담겨 있다고 했습니다. 나치 정권은 이를 이용해 유대인 학살의 정당성을 확보할 목적으로 〈베니스의 상인〉을 정기적으로 공연했다고 합니다. 샤일록과 같이 돈만 밝히는 유대인들을 죽여 마땅하다는 분위기를 만들기에 〈베니스의 상인〉만한 게 없다는 판단을 한 겁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반유대주의적인 사회 분위기는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인류 최악의 참사, 홀로코스트까지 이어졌습니다.
디즈니는 재가공으로 성장한 기업
디즈니는 시대에 맞게 원작을 재가공하면서 성장해 온 기업입니다. 1950~1960년대엔 원작 동화의 폭력성과 잔혹성을 벗겨 낸 〈신데렐라〉로 성공을 거두었고, 1980~1990년대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담아낸 〈인어공주〉와 〈미녀와 야수〉로 성장해 왔습니다.
안데르센의 원작에서 인어공주는 왕자를 위해 희생해 결국 물거품이 돼버립니다. 물론 이후 공기의 정령으로 승천하지만요. 1989년의 디즈니는 적극적인 여성성을 담아 새드엔딩이 아닌 해피엔딩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붉은 머리의 에리얼이 만들어졌어요. 안데르센의 인어공주가 아닌 디즈니의 인어공주로 디즈니 르네상스를 연 겁니다.
그리고 2023년의 인어공주는 1989년 애니메이션과는 너무나 다른 파격적인 캐스팅으로 이슈가 됐습니다. CG로 표현된 캐릭터도 기존의 만화 스타일이 아닌 사실적 생명체로 만들어지면서 부정적 반응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거기에 〈인어공주〉 이전부터 이어 온 디즈니의 정치적 올바름에 권태를 느끼는 관객들도 늘어난 상황이죠. 디즈니의 이런 선택이 사람들과 발맞춰서 가는 모습보다 먼저 이끄는 모양인지라 권태를 느낀 사람들 입장에선 충분히 강요로 느껴지는 상황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나요?
야생 동물과 인간, 같이 살 수 있을까
“당신이 도시를 집어 들고서 거꾸로 뒤집은 다음 흔들면, 거기서 떨어지는 동물들에 경탄할 것이다. 고양이와 개만 떨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장담한다.”
이번 장을 연 글은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4]에 나오는문장입니다. 미처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수많은 동물과 도심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파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보아뱀, 도마뱀, 오랑우탄, 악어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시를 뒤집어 흔들면 토끼, 쥐, 비둘기, 너구리를 포함해 수많은 동물이 빗방울처럼 떨어질 겁니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의 모습을 들여다봅니다. 도시 속 야생 동물의 동거인으로서 우리 인간들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여러 사례와 데이터를 정리했습니다. 질문을 던집니다. 야생 동물과 인간, 공존은 가능할까요?
도시화로 파괴되는 자연
우리나라 인구는 감소하고 있지만 지구 전체로 봤을 때 인간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UN이 추정한 세계 인구 자료
[5]를 보면 전 세계 인구가 10억 명을 돌파한 건 1804년경입니다. 20억 명을 돌파한 건 1927년이고요. 10억 명에서 20억 명으로 늘어나기까지 무려 123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12년 사이 10억 명이 증가했습니다. 2022년 세계 인구는 어느새 80억 명을 돌파하고 있죠.
늘어난 인구를 수용하려면 더 넓은 장소가 필요할 겁니다. 그들이 먹을 음식도 더 많이 필요하겠죠. 그러기 위해서 도시는 커져야 했고, 더 많은 농작물을 생산해야 했습니다. 그과정에서 자연은 파괴됐죠. 농업을 위해 숲은 개간됐고, 도시를 넓히기 위해 습지는 땅으로 메워졌습니다. 도시와 도시를 잇는 도로 인프라 개발은 숲과 숲을 끊어 놓았고요. 자연에 인간의 손이 닿자, 수많은 생물종의 서식지가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