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육아
4화

날로 커지는 경제적 부담

아이를 키울 여력이 없다


“결혼하면서 신혼집을 매수할까 생각 중이에요. 집을 사고도 과연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요? 아이를 낳는 것을 포기해야 할지, 집을 포기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딩크족은 아니지만 집을 선택한다면 아이를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A씨)

“지금도 사는 게 버거운데, 아이를 낳으면 얼마나 들지 가늠이 안 되니 엄두도 안 나요. 주변에서 아이를 기르면 돈이 많이 들고 힘들다고 하는데. 2~3년 후에나 다시 생각해 보려고요.”(B씨)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는 최근 몇 년간 치솟은 집값, 고용 불안정으로 인해 경제적 불안감이 높게 나타난다. 올해 결혼을 앞둔 1994년생 A씨는 신혼집을 구하는 중이다. 나날이 오르는 전세금을 보면서 차라리 무리해서라도 집을 마련해야 하나 고민이 깊다. 집을 마련할 경우 거의 맞벌이 부부 한 명의 월급에 해당하는 대출 원리금을 매달 감당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아이를 키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결혼 1년 차, 1993년생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는 맞벌이 부부 B씨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2023년 한국은행이 낸 보고서에 따르면, 출산을 늦추거나 포기하는 이유는 아이 양육 및 교육 비용이 부담(44퍼센트)되거나, 주거가 불안정(15퍼센트)하고, 고용이 불안정(7퍼센트)하기 때문이라는 ‘경제적 이유’가 가장 컸다.[1] 경제적 부담 중에서도 주거비를 떠올렸을 때 희망 자녀 수가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하게 낮아졌다. 교육비, 의료비보다도 주거비가 희망 자녀 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030 세대가 5년 내 이루고 싶은 인생 목표 1위가 ‘내 집 마련’인 만큼[2], 내 집 마련이 목표인 사람도, 혹은 소위 ‘영끌’로 대출을 받아 내 집을 마련한 경우 주거비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끼게 된다. 최근 급격히 오른 집값으로 인해 내 집 마련이라는 목표 달성에 투입되는 비용이 점점 증가함에 따라 더욱 출산 이후 예상되는 양육 비용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출산 자체를 기피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의 경우 내 집 마련은 더욱 현실성 없이 다가온다. 상황은 더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대출 없이 집을 마련하려면 월급을 하나도 쓰지 않은 채로 2018년에는 9.6년 정도 모으면 됐지만, 2022년에는 15.2년을 모아야 한다.[3] 국제 주택 가격 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세계에서 주택 구입 부담이 가장 큰 홍콩은 소득 대비 주택 가격(Price Income Ratio·PIR)이 18.8이었다. 호주 시드니가 13.3, 캐나다 밴쿠버는 12였다. 서울은 주택 구매 부담이 15.2로 세계 2위 수준이다.

실제 소득, 집값, 대출 금리까지 고려해 주택 구매의 부담을 계산해 본 결과, 2023년 4분기 기준 중간 소득 가구가 서울의 중간 가격의 집을 구매한다고 했을 때, 소득의 39퍼센트를 주택 담보 대출 원리금으로 상환해야 한다. 이는 최저점이었던 2015년 1분기 21퍼센트 대비 약 두 배 높은 수준이다. 서울의 집을 구매한다고 했을 때, 연 소득의 거의 절반을 투자해야 하는 셈이다.[4] 가계 소비 중 주택 관련 지출 비중이 1퍼센트 증가할수록 여성 1인당 출생아 수가 0.014명 줄어든다는 OECD 연구 결과도 있다.[5] 이미 오른 집값으로 안정적인 내 집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개인에겐 큰 리스크다.

실제 OECD 19개국의 집값과 출산율 간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집값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낮아졌다. 국내 연구에 따르면, 집값 상승은 자가가 아닌 전세로 사는 가구의 출산율 하락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6] 아파트 매매가가 10퍼센트 상승할 때 전세 가구가 자가 가구보다 약 1.06퍼센트 출산율이 감소한 반면, 자가 가구의 경우 출산율이 상승했다. 미국과 영국에서 진행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7] 자가 가구의 경우에는 집값 상승이 출산율을 상승시켰으나, 임차 가구에서는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세상살이 설움 중에 집 없는 설움이 가장 크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집은 필수적인 삶의 공간이자, 안전한 장소인 피난처, 심리적 안정감의 근원이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2년 주거 실태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9.6퍼센트는 ‘내 집을 꼭 마련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집 없이 임차하는 경우 주거 안정성을 느끼기 어렵고 이는 출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요즘 부모들은 치솟은 집값으로 인해 내 집 마련과 자녀 출산이라는 삶의 목표 중 하나는 선택하고, 나머지는 포기하고 있다.

2021년 미국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는 〈무엇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사람들에게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8] 17개국 중 14개 국가는 삶을 가장 의미 있게 하는 것으로 ‘가족’을 꼽았다. 반면 한국은 ‘물질적 풍요(Material Well-being)’를 1위로 꼽았다. 2위가 ‘건강’, 3위가 ‘가족’이었다. 한국 응답자들이 생각하는 물질적 풍요란 식사 수준, 주거 수준,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적절한 소득, 빚이 없는 상태 등으로 나타났다. 가족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물질적 풍요를 달성해야 한다는 의무감, 부담감이 반영된 결과다.
왜 유독 한국에서는 물질적 풍요를 중시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것일까? 한국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는 얼마나 많은 돈이 들까.

 

출산 준비 리스트부터 시작하는 육아템


“아이는 다 자기 먹을 것을 갖고 태어난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아이를 기를 방법은 있다는 것이다. 요즘 부모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이 느끼는 출산과 양육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은 점점 더 커져 가고 있다. 실제, 출산까지 드는 비용만 보면 필수 산전 검진 비용 및 영양제 구입 비용, 산후조리원, 산후 마사지 비용, 태교 여행 등을 포함해 최소 500만 원에서 최대 2000만 원까지도 소요된다.[9]

보통 임신을 하게 되면 임산부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는 ‘출산 준비 리스트’를 접하게 된다. 출처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필수 출산 준비 아이템 개수만 50개 이상이다. 이 물품들을 다 새로 구매할 것인지, 어떤 브랜드를 어느 채널에서 구매할 것인지는 모두 부모의 선택에 따라 달려 있다. 요즘 부모는 ‘육아는 장비빨’, ‘국민 육아템’, ‘필수 육아템’이라는 단어들을 들으며, 마치 리스트에 있는 물품들이 다 필요한 것처럼 느끼게 된다. 만약 출산 준비 아이템을 모두 새로 장만하거나, 고가의 프리미엄 브랜드로만 구매하게 된다면 그 비용만 수백만 원에 달한다. 게다가 아기용 세탁기, 공기청정기, 가습기, 카시트, 유모차 등 내구재 및 전자 용품까지 마련한다면 수백만 원이 더 든다. 2024년 기준 국민템으로 불리는 출산 준비 리스트를 모두 새로 구매한다고 했을 때 비용을 더해보면 대략 7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국민템’이라는 이유로 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구매하는 물품들도 많다. 짠테크, 무지출 챌린지를 하며 살림살이를 아끼던 요즘 부모들도 아이를 위한 물품을 사는 데까지 돈을 아끼기는 쉽지 않다. 실제 2인 가구 대비 3인 가구는 출산 후 17퍼센트가량 지출이 늘어나게 된다.[10] 요즘 부모들과 가족들은 한 아이에게 아낌없이 소비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특히, 아기의 안전이나, 건강에 관계될 경우 더욱 프리미엄 제품을 사용하려 한다. 유아 관련 용품들은 사용 주기가 짧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이에게는 최고의 것을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때문이다.
물론 최근에는 임신 출산 지원금 증액, 부모 급여 도입으로 정부 지원금이 늘면서 출산 전후 발생하는 비용에 도움을 주고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1인당 0세~7세까지 현금성 정부 지원금으로 총 2960만 원을 지원받는다. 0세 1520만 원, 1세 720만 원, 2세부터 7세까지 매년 120만 원을 지원받는다. 현금성 정부 지원이 대부분 0~1세에 집중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지원금은 초반에 필요한 출산, 육아 용품을 구매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단, 출산과 동시에 아기를 위한 카시트, 유모차, 자동차와 같이 금액이 큰 내구재를 구매하거나, 300만 원 이상의 산후조리원 비용을 낼 경우, 정부 지원금으로는 부족해 모아둔 돈을 소진하거나, 빚을 내는 부모들도 있다.

육아는 장기전이다. 이르면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때부터 본격화돼 자녀가 성인이 되기까지 점점 늘어나는 교육비를 감안한다면 영유아 시기 이후 현금성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실제 통계에 따르면 연 소득 3600만 원 미만 저소득 가구의 경우엔 자녀를 낳음으로써 미래를 위한 저축 여력이 없어지거나 적자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11]

높아지는 객단가, 프리미엄화된 영유아 산업


저출산이라고 하지만, 영유아 산업 규모는 2002년 8조 원에서 2007년 19조 원, 2012년 27조 원, 2020년 40조 원을 넘어 꾸준히 성장 중이다.[12] 저출산으로 인해 수요는 줄었지만 오히려 객단가는 높아지면서 육아 용품들은 프리미엄화되고 있다. 온라인 판매업체 옥션에 따르면, 2022년 1분기 기준 육아 용품의 객단가는 대부분 상승했다. 특히 육아 필수 품목인 분유, 기저귀의 객단가는 각각 전년 대비 16퍼센트, 19퍼센트 증가했다. 이외에도 유아 침대와 가구의 객단가도 47퍼센트, 수유 용품 35퍼센트, 유아의자 26퍼센트, 유모차와 카시트도 8퍼센트 증가했다.[13] 영유아 산업 규모의 증가와 객단가 증가는, 저출산 시대에 한 아이에게 투자하는 비용이 증가하면서 오히려 인당 양육비가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아이 수가 한 명으로 줄었다고 해서 돈이 덜 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모가 한 아이에게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아이에게 드는 비용이 이전보다 더 증가한 것이다.
부모, 조부모 이외에 아이 주변 가족, 친척, 지인까지도 지갑을 연다는 텐포켓(10 pocket), 왕자, 공주 대접을 받고 자라는 아이들을 의미하는 골드 키즈Gold Kids, VIB(Very Important Baby)라는 단어가 보여 주듯, 요즘 부모들은 한 명의 자녀에게 집중적으로 투자(all-in)한다. 요즘 부모들의 이런 프리미엄 육아 용품 선호에 따라, 국내 주요 백화점에서는 아동 관련 프리미엄 명품 매장이 늘었으며, 2022년 아동 카테고리 매출 또한 20퍼센트 수준으로 성장하고 있다.[14]

저출산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돌잔치 장소 예약도 쉽지 않다. 수개월 전부터 예약하지 않으면 원하는 시간에 돌잔치를 할 수 없다. 수백만 원에 달하는 호텔 돌잔치도 예약이 꽉 차있다. 하나뿐인 아이에게 한 번뿐인 첫 생일잔치를 성대하게 치르고 싶은 부모 마음이 반영된 것이다. 돌잔치는 ‘제2의 결혼식’이라고 불리는데, 결혼식 때는 부부의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만을 신경 썼다면, 돌잔치 때는 아이의 드레스와 사진까지도 신경 써야 한다. 아이와 부모의 예복, 가족 스냅 사진, 메이크업에 돌상, 식대까지 합하면 직계 가족 위주로 소규모로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보통 100만 원에서 1000만 원까지도 소요된다.

비슷한 기능을 가진 육아 제품이더라도 브랜드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가제 손수건만 해도 50장에 10만 원 하는 브랜드가 있는가 하면, 3만 원이면 구매할 수도 있는 브랜드도 있다. 유모차만 해도 200만 원이 넘는 고가 유모차가 ‘국민 유모차’, 70만 원 상당의 유아 의자가 ‘국민 유아 의자’로 회자하기도 한다. 국민 유아 의자로 불리는 스토케 트립트랩은 품절로 인해 6개월 전에 예약 구매해야 겨우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출산에 필요한 육아 아이템의 종류와 평균적인 가격도 높아지면서, 점차 출산과 양육에 필요한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

물론, 주변에서 물품을 물려받거나, 선물을 받는다면 그 비용은 절감될 수 있다. 부모의 선택에 따라 육아 용품 및 장난감 대여점을 이용하거나, 중고 거래를 잘 활용한다면 육아 관련 물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준비할 수 있다. 아이를 기르는 것 자체에는 많은 돈이 들지 않을 수 있다. ‘육아는 장비빨’이라고 하면서 ‘국민템’을 구매하지만 그런 육아 용품이 없는 시절에도 아이는 잘 자랐다. 아이의 월령에 맞는 장난감을 매번 사들이지 않더라도, 충분히 놀이를 즐길 수 있고 가족과의 상호 작용만으로도 아이에게 충분한 즐거움을 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요즘 부모들은 비싼 호텔 돌잔치를 예약하고, 값비싼 유모차를 사고, 불필요하게 많은 장난감을 구매할까? 이들의 허영심 때문일까? 이 이면에는 세대의 특성이 있다. 요즘 부모, 즉 밀레니얼 세대는 20대부터 치열한 취업 경쟁을 뚫어 내기 위해 스펙을 쌓았고, 남들에게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 관념을 가진 채 ‘갓생’과 ‘루틴 만들기’로 자신을 계발하며 살아왔다. 완벽주의적 성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 이러한 세대적 특성이 육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밀레니얼 세대 부모는 육아 영역에서도 높은 기준을 갖고 완벽을 좇는다.

게다가 육아와 관련한 SNS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수많은 육아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다. 전 세계 상위 1퍼센트의 육아 생활도 언제든 접할 수 있으며 유명인과 연예인의 활발한 육아 라이프는 그 자체로 콘텐츠가 됐다. 화려한 육아 일상과 자신의 육아를 비교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뜻이다. 육아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신이 빠트린 것은 없는지, 남들과 비교해 아이가 뒤처지지 않을지 등을 걱정하게 된다. 육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유치원부터 시작되는 사교육비 부담


10~20년 전과는 차원이 다른 사교육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저출산으로 아이가 적어졌으니 경쟁이 덜해졌을까 싶지만, 사교육으로 인한 경쟁은 더 이상 과열될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유치원 시절부터 시작하는 영어 공부부터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하는 고등학교 선행 학습까지 경쟁의 기간은 늘어나고 그 경쟁의 정도 또한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영어 유치원은 저희 형편에는 엄두도 못 내지만, 무리해서라도 보내야 하나 고민이에요. 요즘에는 영어 유치원 안 가면 뒤처진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기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돈을 많이 모을 수 있다고들 말하지만, 요즘의 상황은 또 다르다. 사교육 시작 시점이 초등학교에서 유치원으로 내려오면서 생긴 변화다. 3~4세 아이를 둔 요즘 부모들의 고민은 바로 ‘영어 유치원’에 보낼 것인지 말 것인지다. 2023년 교육부가 조사한 결과, 영어 유치원의 월평균 교습 비용은 175만 원이다. 1년 치로 환산하면 약 2100만 원 정도다. 게다가 교재비, 재료비, 통학 차량비, 급식비까지 포함하면 한 사람의 최저 임금 연봉 수준인 2400만 원에 달한다.

돈이 충분하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레벨 테스트를 통과해야 하거나, 선착순으로 입금되는 순서로 등록을 시켜 주는 영어 유치원도 있다. 보통 입금 순으로 등록하는 인기 영어 유치원의 경우 빠르게 마감되기 때문에,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해 빠르게 입금을 해주는 업체가 등장하기도 했다.

‘4세 고시’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경쟁도 치열하다. 유명 영어 유치원에 입학하기 위해 입학 테스트를 보고, 그 테스트를 잘 보기 위해 과외를 받고, 시험 족보까지 거래하는 사람도 생기는 상황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요즘 부모들 사이에서 영어 유치원은 포기하기 어려운 존재다.[15] 3세, 한글이 서툴고 글자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영어를 배울 수 있고 동시에 돌봄 서비스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어 유치원의 인기가 많아지면서, 교습비도 매년 증가하고 그 수도 증가하는 추세다. 영어 유치원은 2017년 474개에서 2023년 842개로 5년 만에 1.8배 급증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정부 지원으로 거의 무료임에도 불구하고 폐원 위기에 처한 것과는 상반된다. 어린이집은 2013년 정점 이후 지속 감소하고 있으며, 특히 민간, 가정 어린이집의 경우 2017년 대비 2022년 각각 약 30퍼센트, 40퍼센트 감소했다. 사립 유치원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전국 사립 유치원은 2017년 대비 2022년 20퍼센트 줄었다.[16]

‘초등 의대반’은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사회 현상이 됐다. 초등 의대반에서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이미 고등학교 과정인 수학의 정석을 푼다. 이제는 유치원에도 의대 준비반이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유명한 수학 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한글 과외를 받는다. 초등학교 입학 전 수학 사교육을 받는 경우(70.6퍼센트)가 영어(61.3퍼센트)보다도 더 많았다.[17]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사교육에 노출되는 것이다. 실제 0~6세 영유아 사이에서도 학원에 다니는 경우가 22퍼센트를 차지했다. 아이들은 사교육에 주당 3.9시간을 썼다. 요즘 부모들은 사교육비가 부담됨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다른 아이들에 뒤처질까 걱정돼서(36퍼센트), 자녀의 재능이나 소질을 개발하기 위해서(30.5퍼센트) 학원을 보내고 있었다.[18]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초등학생들은 방과 후 학원 셔틀버스를 타고 매일 1~2개의 학원을 순회하며 ‘학원 뺑뺑이’를 돈다. 초등학교 때 사교육 참여율은 85.2퍼센트로 가장 높고[19], 초등학생들의 방과 후 공부 시간은 중, 고등학생보다 더 많다. 초등학생은 평균 오후 3시 15분부터 8시 20분까지 약 다섯 시간 넘게 공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0]

초등학생 사교육은 돌봄 공백을 해소하려는 목적이 크다는 특징을 보인다. 실제 초등학생 학부모들은 중고등학교와 달리 사교육을 활용하는 이유를 ‘진학 준비’보다는 ‘보육, 불안 심리, 친구 사귀기’와 같은 돌봄을 18퍼센트로 꼽았다.[21] 부모가 맞벌이인 경우, 사교육은 돌봄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맞벌이가 아니더라도 초등학생 아이들 10명 중 8~9명이 학원에 다니다 보니, 마음처럼 학원을 안 보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아이가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라도 학원에 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저는 이전부터 우리 아이만큼은 절대 과하게 사교육을 시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니 이 학원, 저 학원을 보내 달라고 하니 막상 보내주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학원에서 친구들과 만나고 놀 수 있는 상황이다 보니 우리 아이만 혼자 내버려 둘 수도 없고요. 매달 순수 학원비만 110만 원인데 부담되는 건 사실이에요. 학원비 말고도 매달 식비, 생활비도 나가는데……. 만약 둘째를 낳는다면 여기에 두 배라는 건데 정말 부담이 클 것 같아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부모들에게 사교육의 의미는 남다르다. 식비나 의류비를 줄이더라도 교육비는 줄이지 않는 경향도 나타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미혼 자녀를 둔 가구의 경우 2023년 3분기 기준 월평균 지출의 약 15퍼센트를 교육비로 사용하고 있었다. 심지어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은 가구에서도 식비와 주거비보다 더 많은 수준의 교육비를 쓰고 있었다. 부모들 사이에서 사교육 경쟁이 심화하면서 사교육비 총액도 2023년 역대 최대 수준인 27조 1000억 원을 기록했다. 저출산으로 학령인구가 줄었음에도 총 규모는 늘어난 것이다. 사교육비 지출 비용은 GDP 1.1배 수준으로, OECD 평균 0.8배 대비 높은 수준이다.[22] 2019년 《동아일보》가 만든 양육비 계산기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아이가 태어나서 대학 졸업하기까지 약 3억 8200만 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위 소득 가구의 약 10년 치 연봉이 한 아이를 기르는 데 쓰인다는 의미다.[23]

사교육비는 결혼을 막는 주요 요인은 아니지만, 둘째 이상의 자녀를 낳는 데는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24] 사교육비 지출이 매년 커짐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자녀의 미래를 포기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부모의 자산 상황도 위태로워진다. 저축 여력이 사라지고 은퇴를 대비하지 못해 노인 빈곤층의 양산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사교육은 가구 소득에 따른 교육 양극화를 부른다. 월 가구 소득이 높을수록 사교육 참여율도 높고 지출 비용도 크다. 가구 소득이 높을수록 교육비 투자가 늘어나고, 실제 학업 성취도도 높게 나타나면서 교육이 오히려 계층을 고착화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도구가 되고 있다.[25]

 

황금 티켓 증후군 위의 사교육


요즘 부모들이 초등학교 입학도 하지 않은 어린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종적으로 영어 유치원부터 시작해 사립 초등학교, 명문대, 대기업까지 연결되는 경쟁에서 아이가 남들에 뒤처지지 않게 하려고 사교육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 학교 성적, 학벌이 성공을 담보하는 시대는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부모로서는 다른 모든 아이가 하는 것을 우리 아이에게만 시키지 않는 것 자체가 큰 불안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OECD 보고서에서는 한국 저출산의 원인을 ‘황금 티켓 증후군(Golden Ticket Syndrome)’이라 꼬집기도 했다. 명문대 입학,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온 국민이 혈안이 돼있다는 것이다.[26] 한국 사회는 겉으로는 다양한 삶과 라이프스타일을 인정하는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획일적인 성공 기준이 있다. 명문대에 진학해 대기업, 전문직으로 취직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성공한 인생이라는 도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아이들의 적성과 흥미와는 무관한 획일화된 사회적 성공 경로를 강요함으로써 아이와 부모 모두 불행한 소모적인 경쟁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이제는 짚어볼 시점이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을 획일화된 기준으로 평가함으로써 너무 많은 아이에게 실패자, 부적응자라는 낙인을 찍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의 저자 김현수 전문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세상은 수만 가지 직업이 있고, 각기 다른 중요성을 갖고 서로 맡은 역할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국영수 과목 잘하는, 시험 잘 치는, 죽도록 문제집 잡고 있는 아이들만 뽑아 줄 세우는 불행한 제도는 이제 그만 하세요. 너무 많은 아이를 포기하게 하지 말아 주세요.”[27]

그럼에도 아이에게 사교육을 시키는 부모를 무조건 탓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 사교육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부모는 거의 없다. 학벌과 직장 간의 연결 고리는 이전보다 약해졌을 수 있으나 아직도 존재한다. 노동의 경직성으로 인해 사회 초년생 시절의 경력이 인생 후반의 경력까지도 결정하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과 정규직이라는 이원화된 노동 시장으로 인해 계급 역시 새로운 방식으로 굳어지고 있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사교육일지도 모른다. 사교육 심화 현상의 근원은 여기에 있다.

현재 한국 사회는 표준화되고 획일화된 성공 방정식 아래에서 작동하고 있다. 시험에서 ‘신’ 수준의 고득점을 맞는 극소수의 합격자 외에는 불행한 실패자와 불합격자를 양산하는 것이다. 이러한 황금 티켓 증후군의 시대에서 부모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절대적인 수가 줄어든다고 해도, 부모가 한 아이에게 투자하는 노력과 비용이 증가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 경쟁의 압력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방식의 성공 경로와 기회를 제시해야만 우리 사회가 겪는 황금 티켓 증후군을 완화할 수 있다. 단 한 번의 수능으로, 첫 취업 이후로 이후의 삶이 결정돼서는 안 된다. 그 과정 중에 실패하더라도 여러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에서도 아이를 기르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물론 아이가 행복해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1]
한국은행,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 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 영향, 대책〉, 2023.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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