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육아
6화

에필로그 ; 요즘 부모를 읽어야 아이가 보인다

현재 정부의 요구는 일방적인 외침에 가깝다. 출산율이 국가적 위기 수준이며 출산 관련 인센티브, 현금성 지원을 더 많이 해줄 테니 아이를 낳으라는 식의 접근은 2030 세대에게서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16년 동안 280조 원 규모의 저출산 대응 정책을 내놨다. 결과는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는 출산율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접근 방법이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직시하고 다른 대안을 모색해 봐야 한다.

우리나라의 출산 관련 정책은 출산 이후 1년간 현금성 지원이 집중되는 구조다. 그러나 육아의 경제적 부담은 영유아기 이후 본격적으로 늘어난다. 물론 현금성 지원은 일시적으로 육아에서 비롯되는 경제적 부담을 줄이지만, 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변화 역시 필수적이다. 육아 현장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돌봄 서비스를 확대하고, 육아 및 가사의 공평한 분담과 같은, 사회·문화적 변화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대세는 꺾이기 어려울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 한국 사회가 겪는 저출산 현상은 개인이 내린 합리적 선택의 결과라는 점이다. 많은 정책은 사회 통계적 숫자에 따라 설계되고 있다. 그러나 국가적, 집단주의적 공동체 의식이 희미해지고 개인주의적 문화가 확산한 지금은 오히려 개인의 관점과 인식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젊은이가 처한 객관적인 환경, 조건을 이전과 비교하며 따지는 문화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요즘 밀레니얼 부모들이 느끼는 행복감과 심리적 상황은 어떤지를 따지는 것으로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는 뜻이다. 숫자로 표현되는 저출산 뒤에는 더 많은 것들이 있다. 아이를 낳는 것은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저출산은 그런 본능을 거스르고, 포기해야 하는 지금의 시대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일지 모른다.

저출산 상황을 극복한 선진국의 사례도 참고하면 좋겠지만, 결국 해결을 위한 열쇠는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에게 있다. 무조건 외국의 성공 사례를 가져오기보다는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 세대의 생각에 맞는 해결 방안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육아와 관련한 정책, 서비스를 설계할 때 밀레니얼 세대, 특히 밀레니얼 부모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직접 설계할 기회를 주는 것도 방법이다.

실제로 요즘 부모가 겪는 출산과 육아의 어려움이 무엇이고, 해결책은 무엇일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밀레니얼 부모뿐만 아니라, 부모 되기를 포기하거나 주저하고 있는 결혼하지 않은 청년, 결혼했지만 자녀를 낳지 않기로 선택한 밀레니얼 세대의 의견도 들어 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저출산 상황을 특정 세대, 성별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 갈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해야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행복도가 높은 국가는 출산율도 높다. 행복한 사회에서는 개인도 행복하다. 개인이 느끼는 심리적 만족감, 안정감이 높다면 출산과 육아 역시 자연스럽게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멘카리니(Mencarini)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삶의 만족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아이를 낳을 확률이 높았다. 개인 삶의 만족도와 출산율과의 긍정적인 관계는 특히 한국에서 더 강하게 나타났다.[1] 삶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아이를 더 낳는다는 것이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 요즘 부모들은 과연 행복한가, 더 나아가 현재 우리 한국의 청년들은 행복한가. 숫자에 불과한 ‘출산율’을 높이는 데 집착하기보다는 요즘 청년들에게도 ‘부모됨’이 긍정적이고 행복하게 인식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독박 육아, 육아 지옥이 육아와 가장 가까운 단어가 돼선 안 된다.

인구 위기(demographic crisis)의 시대다. 저출산을 인구 위기, 국가적 문제라고 정의하는 것은 그 속에 숨겨진 청년들의 개인적 위기를 덮어 버릴 수 있다. 청년들은 높은 수준의 경제적 불안감과 미래에 대한 부정적 전망 속에서 위기와 좌절을 느낀다.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것은 청년들이 나름대로 자신만의 생존 공식, 행복 공식을 마련해 나가려 선택한 것에 가깝다. 이 지점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아이를 행복으로 생각하는 세대는 점차 줄어들지 모른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밀레니얼 세대뿐만 아니라 Z세대, 알파 세대를 바라볼 필요도 있다. 밀레니얼 다음 세대인 Z세대, 알파 세대는 결혼과 가족에 대해 확연히 다른 개념을 갖고 있다. 2023년 청소년 가치관 조사 연구에 따르면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응답한 청소년이 2012년 73.2퍼센트에서 2023년 29.5퍼센트로 급감했다. 응답자의 과반인 60.6퍼센트는 결혼하지 않아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81.3퍼센트는 동거도 가능하다고 답했다.[2] 이미 청소년 사이에서는 결혼과 출산, 동거와 가족 제도를 향한 가치관이 변하고 있으며 이들이 다양한 가족 형태를 수용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미래 흐름에 맞추어 기존 프레임이 정의한 ‘정상 가족’의 범주에서 벗어나 가족에 대한 개념을 확장하는 것도 중요할 테다.

한편으로, 지금의 저출산을 ‘국가적 위기’로만 정의하지 않고 요즘 청년 세대들의 현실을 살펴보는 도구로 사용하는 건 어떨까? 새로운 시각으로 저출산을 바라본다면 기존 사회 제도의 관점을 전환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사회적, 국가적 차원에서 청년들의 삶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를 고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기존 출산 육아 관련 제도는 기성세대 관점에서 설계됐다. 취업, 결혼, 출산, 육아라는 정해진 프레임을 전제로 제도가 설계된 셈이다. 그러나 청년들에게는 취업과 결혼, 출산, 육아 어느 하나도 당연하지 않다.

청년들의 사회적 시계는 계속해서 지연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무력감과 번아웃을 느끼거나, 사회적 기준에 초연해진 청년들도 나타나고 있다. 비혼과 비출산을 외치며 자신만의 삶의 궤적을 만들어가는 청년들도 있다. 저출산 현상 뒤에 가려진 청년들의 삶, 가치관을 보고 그에 맞게 기존 제도들을 변화시켜야 한다. 청년들에게 출산과 육아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닌 ‘선택지 중 하나’다. 육아와 출산이 미래 부모에게, 그리고 요즘 부모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된다면, 미래도 충분히 바뀔 수 있다.
[1]
Mencarini et al., 〈Life satisfaction favors reproduction. The universal positive effect of life satisfaction on childbearing in contemporary low fertility countries〉, 《PLoS One》, 2018, 13(12).
[2]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23 청소년 가치관 조사 연구〉, 2023.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