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깊이 읽어야 하는 이유
초강대국 미국이 전쟁에 지쳤다.
그래서 택한 것이 ‘피 흘리지 않는 전쟁’, 바로 제재다.
트럼프가 돌아왔다. 더 강력하게. 트럼프 2기 내각은 MAGA 신봉자들로 채워지고 있다. 당선된 사람은 트럼프인데, 세계 각국 정상이 더 바빠졌다. 주요국들은 정상 회담은 물론이고 경제, 외교, 안보 수장이 회동하며 ‘트럼프 2기 공동 대응’에 나서고 있다. 트럼프 2기의 정책 방향을 분석하는 책과 기사, 논평도 쏟아진다. 그러나 트럼프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은 드물다.
조의준은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으로 2016년 12월부터 2021년 2월까지 트럼프 1기의 처음과 끝을 워싱턴에서 지켜봤다. “트럼프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라”는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조언을 듣고 트럼프의 말폭탄 뒤에 숨겨진 미국의 새로운 패권 전략을 들여다봤다. 그 속에는 제재와 수출 통제를 통해 ‘피 흘리지 않는 전쟁’을 치르는 미국이 있었다.
미국이 국제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이 제재와 수출 통제로 바뀐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과도 관련이 있다. 초강대국 미국이 ‘전쟁에 지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택한 것이 ‘피 흘리지 않는 전쟁’, 바로 제재다. 실제로 트럼프는 집권 1기 내내 “미국은 세계 경찰이 아니다”라고 했다. 대신 미국은 외교와 전쟁 사이의 새로운 수단으로 제재를 택했다.
미국의 제재 대상이 있는 국가는 전 세계의 3분의 1에 달한다. 유럽 연합도 제재 전쟁에 뛰어들었다. 중국과 러시아도 반격에 나섰다. 저자는 《제재 전쟁》을 통해 트럼프 시대에 더 치열해질 글로벌 제재 전쟁의 다양한 전선을 분석하고 기업의 대응 방안을 제시한다. 이 책에 소개된 많은 사례는 국내 주요 언론에 소개되지 않은 것들이다. 저자가 워싱턴 특파원 시절부터 최근까지 7년간 모은 자료를 책 한 권에 담았다.
현재 우리나라는 반도체 패권 전쟁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반도체는 글로벌 제재 전쟁의 일부일 뿐이다. 자동차부터 AI, 바이오, 암호화폐, 핀테크, 패션, 심지어 수산물까지 거의 모든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규제의 물결이 오고 있다. 저자는 트럼프 2기에서 한층 강력해질 제재 전쟁이 전개되는 방식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들려준다.
벌써부터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주저할 시간이 없다.
키노트
이렇게 구성했습니다.
1화. 프롤로그: 제재 전쟁이 온다
2화. 퍼펙트 스톰
네 가지 전략
미국 여권 없는 미국인
금융 제재의 시작
외교와 전쟁 사이
전쟁의 피로
글로벌 제재 폭풍
“제재의 피는 미국이 흘리지 않는다”
3화. 집요한 미국
“10년간 지켜본다”
공급망 데이터베이스
혁신기술기동타격대
카리브해의 골든 비자
수출 통제의 작동 방식
4화. 제재인가, 응징인가
“숨기다 걸리면 죽는다”
“노트북을 열지 마세요”
초파리 유출 사건
징역에 경영권 박탈까지
아주 정치적인 카드
처벌 감경의 원칙
5화. 제재의 창끝, 중국
반도체, 기술 전쟁의 서막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다”
드론부터 바이오까지
홍콩의 추락
6화. 유럽의 참전
우크라이나 전쟁 전과 후
엔드 게임 작전
러시아의 뒷배, 중국
“냉전 체제로 돌아가자”
동결에서 몰수까지
7화. 중국과 러시아의 도전
달러 대신 피스타치오
제재에는 제재로
송금 대신 현금과 코인
중·러의 합종연횡
8화. 자금 세탁 전쟁
돈보다 중요한 돈의 출처
“현금 결제 한도는 1만 유로입니다”
캐나다 TD은행의 재앙
“증거가 없어도 기소한다”
두바이와 모나코의 범죄 금융
전통의 자금 세탁소, 영국
중국의 돈세탁 굴기
9화. 제재의 도피처, 암호화폐
검은돈의 집결지
“돈도 몰리고 제재도 몰린다”
폭증하는 로비 비용
유럽은 지금 코인 전쟁터
핀테크의 새 성장 동력은 ‘돈세탁 방지력’
10화. 인권, 전선의 확장
어메이징 그레이스
패션업계의 리스크, 강제 노동
“중국산 토마토케첩도 안 된다”
“대북 제재는 남북이 풀 수 없다”
인터넷의 자유
11화. 한국, 줄타기의 끝이 온다
“동맹이라고 계속 봐주지 않는다”
준비되지 않은 기업과 정부
경고장 날린 미국
제재 규정 준수 프로그램
12화. 에필로그: 폭풍 속을 안전하게 항해하기
에디터의 밑줄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도대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를 묻기 위한 자리였다. 인터뷰 말미 매케인 의원은 손을 따뜻하게 두드리며 “트럼프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라”며 “트럼프의 진심은 행동에 있다”고 했다. 트럼프의 말이나 쇼에 휘둘리지 말고 미국 정부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란 말이었다. 보좌진이 “다음 일정이 있어요. 빨리 끝내야 해요”라고 했지만, 그는 손에 꼼꼼하게 적은 메모를 들고 기자에게 계속 말을 했다. 노회한 정치인이 한국 정부에 하는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미국이 글로벌 제재를 시행할 수 있는 근거는 ‘미국인’의 개념이 전 세계로 확장된다는 것이다. 제재 규정에서 말하는 ‘미국인’은 단순히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미국 여권을 가진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국인으로 취급되는 사람이나 기업에는 미국과의 법적 또는 경제적 연결 고리를 가진 다양한 주체들이 포함된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역시 이런 배경에서 이뤄졌다. 트럼프는 미국의 군사 개입을 줄이고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을 통해 자원과 인력을 국내에 집중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실제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8년간 약 2350건의 제재를 시행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4년간 3900여 건을 기록했고, 바이든 행정부에선 3년 남짓한 기간에 이미 6000건을 넘어섰다. 정권을 떠나 제재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흐름이 형성된 것이다. 공화당 정권인 트럼프 행정부 1기에서 추진한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바이든 행정부가 완성한 이유기도 하다.
미국이 무서운 점은 제재 회피를 도운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일 때는 조용히 보복한다는 것이다. 법적 처벌이 힘들면 비공식 제재를 한다. 중국이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에 한한령(限韓令) 등 경제적, 문화적 보복을 했듯, 미국도 비슷한 방식으로 대응한다. 실제로 워싱턴의 로펌이나 로비 회사에서 중국 기업과 관련된 일을 한 외국인 직원들은 비자 연장이 이유 없이 취소되거나, 관련 기업의 미국 진출이 불허되는 사례가 다수 발생했다. 미·중 패권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중국 업체를 대리했던 로펌의 외국인 변호사들은 이유 없이 비자 연장이 거부돼 본국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이들은 관광 비자마저 아무 설명 없이 거부당했다고 한다. 사실상 미국이 이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입국을 막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와 벨라루스를 거치면 심지어 소방차까지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국가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아도 러시아와 관련이 있으면 무조건 제재하는 것이다. 리투아니아는 2023년 3월 말쿠만(Malku Bay) 항구에서 소방차 17대를 압류했다. 이 소방차는 벨라루스에서 짐바브웨로 배송 중이었는데, 소방차의 일부 부품이 벨라루스의 기업에서 제조됐다는 이유였다. 짐바브웨는 소방차를 받기 위해 법무부 장관까지 리투아니아로 보냈다. 짐바브웨 측은 “소방차는 살상 무기가 아닌데다 우리는 제재 위반 사실을 모르고 소방차를 구매한 무고한 제3자”라고 주장했지만, 리투아니아는 소방차를 돌려주지 않고 있다.
중국은 물물 교환의 노하우도 갖고 있다. 2019년 중국은 말레이시아 팜유와 중국의 건설, 국방 장비를 교환하는 물물 교환 무역을 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의 퍼사다 시야바스와 중국 국영 국방 기업인 폴리테크놀로지스가 계약을 체결했는데, 양측은 이 거래를 통해 말레이시아의 친환경 팜유 인증서가 중국에서도 통용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기도 했다. 필요할 때는 언제든 물물 교환을 확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한 남성은 TD은행 지점을 이용해 4억 7000만 달러 이상의 마약 자금과 기타 불법 자금을 이동시키면서 직원들에게 5만 7000달러 상당의 선물을 뇌물로 제공했다. 이 남성은 TD은행이 “가장 느슨한 정책”을 갖고 있어서 이 은행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하루에 100만 달러 이상의 현금을 입금하고, 이후 수표나 전신 송금으로 자금을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도 제지가 없었다. 미국 검찰에 따르면 은행 카운터에는 현금이 쌓여 있었고, ATM 인출액이 1일 한도보다 40~50배에 달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은행 직원 누구도 막지 않았다.
하브 알-무하지르는 2020년 6월 ISIL의 지도부에 의해 ISIL-K의 지도자로 임명된 IT 전문가다. 조직의 암호화폐 활용과 소셜 미디어 정보전을 주도했다. 또한, 복잡한 이슬람권의 비공식 자금 이전 시스템인 ‘하왈라 네트워크’를 통한 자금 세탁도 그의 주요 업무로 알려졌다. 이제 테러 조직의 수장도 무력이 아닌 자금 세탁과 IT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서방의 인권 문제 제기를 단순히 전략과 전술적 차원에서만 해석한다면 실수할 가능성이 크다.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그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제재를 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인권 문제 제기는 쉽게 변동 가능한 대통령의 행정 명령이 아니라 의회의 법률로 이뤄진다. 이렇게 되면 단순히 상대국의 지도부가 바뀐다고 인권 제재가 풀리지 않는다. 미국 등 서방의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고, 인권 문제가 해결됐다는 사회적 인식이 수반돼야만 제재가 해제될 수 있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미국과 유럽이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쏟아 낼 때 이를 이용해 중·러 사이에서 이득을 취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외교관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제재를 받을 뻔한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동맹을 고려해 미국이 넘어가 준 사례도 많다. 특히 국내 은행들의 경우 국가가 제재 무마에 나선 적도 있을 정도다. 대기업들도 문제가 생기면 정부를 붙잡고 애걸했고, 결국엔 미국이 넘어가 줬다는 후일담도 들린다. 문제는 이 같은 ‘아닌 척’, ‘모르는 척’, ‘순진한 척’이 언제까지 작동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