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서울에는 유사 죽음이 넘쳐난다. 드라마 속 인물이 갑작스레 죽는가 하면 게임 캐릭터는 ‘리셋’을 반복한다. 도시인들은 끊임없이 죽음을 감상하지만, 정작 실제로 마주한 죽음 앞에서는 입을 다문다. 프랑스 파리가 실제 죽음을 대하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과거 비슷한 생사관을 가졌던 두 도시가 근대화를 거치며 달라진 이유를 저자는 묘지에서 찾는다. 서울은 묘지를 내쫓았고, 파리는 묘지를 끌어안았다는 것이다. 당대 사회 분위기와 사람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소설과 영화를 인용해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삶의 연장선에서 죽음의 의미를 고찰한다.
저자 소개
기세호는 건축과 도시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 감추려고 하는 부분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근대화로 인한 묘지와 도시 사이의 거리 변화에 관해 파리와 서울을 중심으로 연구했다. 현재 서울대 건축학과 박사 과정에서 관련 연구를 이어 가고 있다.
키노트
이렇게 구성했습니다
1화. 유사 죽음의 시대
도시 묘지의 행방불명
불가분적 관계에 관하여
2화. 죽은 자와 산 자를 잇다
두 번째 집
망자의 도시, 네크로폴리스
파리, 이노상, 향수
내 죽으니 그리 좋나!
3화. 도시와 묘지의 적정 거리
공간은 살해당했다
조각난 도시
도시와 묘지의 적정 거리
죽음의 풍경이 사라진 도시
4화. 파리의 묘지에는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서울, 추방당한 죽음
다시, 죽음에게 말 걸기
5화. 북저널리즘 인사이드; 죽음을 기억하는 삶
먼저 읽어 보세요
서울에서 묘지가 사라진 것은 언제부터일까? 서울과 묘지의 거리는 일제강점기 때 급격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일본은 공장과 군사 시설, 광산 개발 시설을 세우기 위해 도시에 산재해 있던 묘지를 서울 외곽으로 밀어냈다. 해방 이후에는 학교와 주택, 공장을 짓는 데 걸림돌로 인식되면서 유배를 떠나듯 멀리 도시 밖으로 옮겨졌다. 국가 전체가 산업화를 향해 내달리던 1960~1970년대 서울에서 묘지는 개발의 장애물에 불과했다. <매장 등 및 묘지 등에 관한 법률>이 몇 차례 개정되면서 국가는 묘지를 인가 없는 외진 곳, 도시 외곽에 설치하도록 유도하는 규정을 만들어 묘지를 삶의 공간과 분리시켰다. 이로써 묘지는 일상의 풍경으로부터 완전히 유리되었다.
에디터의 밑줄
“문제는 이러한 가벼운 죽음, 쉽게 소비되는 가짜 죽음들이 범람하면서 가려지게 되는 진짜 죽음의 의미이다. 다양한 유사 죽음이 넘쳐나는 현상은 정작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실제 죽음을 몹시 기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당시 이노상 묘지는 수백만의 유골이 묻혀 있는 초고밀도의 묘지인 동시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도시적 행위들이 벌어지던 삶의 터전 자체였다. 죽음의 밀도에 뒤지지 않는 삶의 밀도를 갖고 있었다.”
“묘지는 더 이상 삶의 터전 곁에 머물지 못한다. 필요할 때에만 가끔 들르는 네트워크 위 하나의 결절점으로 전락한다. 파리와 서울뿐 아니라 근대화 시기 세계 여러 도시의 묘지 개혁은 기존의 묘지를 통폐합하여 외곽으로 밀어내는 작업이었다.”
“해방 이후 급격한 묘지 폐지와 이전 정책은 일제 치하에서도 가까스로 유지되어 온 도시와 묘지의 연결 고리를 끊어 버렸다. 이때부터 서울은 죽음의 풍경이 사라진 도시가 된다.”
“산책을 하다가 조용히 담소를 나누는 곳, 오랜 친구를 만나 간식을 나눠 먹거나 벤치에 앉아 가벼운 탭댄스를 출 수도 있는 곳, 그리고 그 곁에서 죽은 이들을 기리는 추모객들이 헌화를 하는 곳. 파리의 묘지에는 삶과 죽음이 조용히 공존한다.”
코멘트
근대화 시기의 파리는 시민들의 뜻을 받아들여 묘지를 도심에서 밀어내는 묘지 개혁을 포기했지만, 급격한 도시화를 겪은 서울은 그럴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묘지일 뿐만 아니라 삶을 돌아볼 기회다. 이 책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상기시킨다. 북저널리즘 에디터 김세리
서울에 사는 나에게 묘지를 찾는 것은 낯선 일이다. 삶의 공간만으로 가득 채워진 도시는 죽음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죽음을 반추하며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북저널리즘 에디터 소희준
프랑스 여행을 하면서 공포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묘지가 관광지이자 공원으로 기능하는 것을 보고 놀랐던 경험이 있다. 이 글을 읽고 프랑스 사람들의 여유로운 태도가 죽음의 공간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환경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북저널리즘 CCO 김하나
한번쯤은 곁에 머물렀던 수많은 죽음을 되새겨 보길 권한다. 그들의 사랑과 의지가 나의 삶에 어떤 감동을 주는지 고민할 때 우리는 죽음과 적당한 거리를 가질 수 있다. 채널예스 MD 리뷰 대전 선정작
이 책은 우리가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을 지적한다. 죽음이 왜 떨쳐버릴 기억이자 침묵해야 할 주제인지 묻는다. 릴케의 말처럼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또 다른 측면이라는 점, 삶과 죽음은 결국 하나로 이어지며 공존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