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갈등의 원인은 서로 다른 국가 정체성이다.
‘우리’를 고민하는 한국, ‘세계가 보는 나’에 골몰하는 일본.
2018년 10월 대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 이후 한일 관계는 악화돼 왔다. 일본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을 규제한 데 이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했다. 한국은 불매 운동과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GSOMIA) 종료로 대응했다. 이런 갈등의 양상은 잘 알려져 있지만,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한일 관계를 연구하는 저자는 계속되는 한일 갈등의 뿌리에 두 나라의 국가 정체성이 있다고 본다. 한국과 일본은 2차 세계 대전 종료 후 국가를 재정비하면서 서로 다른 정체성을 형성해 왔다. 한국은 전쟁과 분단, 냉전을 겪으며 누구와 함께 국가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논의했다. 일본은 국제 사회에 복귀하기 위해서는 어떤 국가가 되어야 하는지에 골몰했다. 서로 다른 국가 정체성을 수립한 한국과 일본은 같은 문제에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
*25분이면 끝까지 읽을 수 있습니다(A4 13장 분량).
이 글은 《아세아연구》 제174호에 실린 저자의 글 〈국가 정체성을 통해 본 한일갈등의 인식차이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저자 소개
최은미는 현재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다. 일본 정치 외교, 한일 관계, 동북아 다자 협력 등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한일 관계의 긴장과 화해》(공저), 〈협력과 갈등의 한일관계, 20년의 변화와 성찰(1998-2017)〉, 《아베 시대 일본의 국가 전략》(공저) 등을 집필했다.
키노트
이렇게 구성했습니다
1. 국가 정체성과 갈등
반복되는 협력과 갈등
진정한 화해는 가능할까
국가 특성의 기반, 정체성
2. 일본의 국가 정체성; 세계가 보는 나
일본의 정체성 탐구
국제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미일 관계와 일본의 국가 정체성
3. 한국의 국가 정체성; 내가 보는 우리
민족 정체성과 국가 정체성
어디까지가 ‘우리’일까
북한과 일본 사이
과거사 문제를 보는 시각
4. 자부심과 애착 사이
국민이 생각하는 국가의 정체성
자국에 대한 인식과 태도
상대국에 대한 인식과 태도
상대국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과 자국의 역할
5. 어떤 국가를 만들 것인가 vs. 누구와 함께 국가를 만들 것인가
‘우리’라는 정체성과 동질감
전후 질서에서 일본의 우선순위
함께하기 위한 필수 조건, 사죄와 반성
6. 위안부 문제; 우리의 고통, 우리의 문제
외교 문제로 부상한 위안부 문제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 그리고 위안부 합의
우리의 문제, 국제 사회 속 문제
위안부 합의 타결의 배경
7. 강제 동원 문제; 매듭짓지 못한 갈등
한국 대법원 판결과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
국가적 위기 상황에 대응하다
한일 청구권 협정과 식민 지배의 불법성
1965년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
8. 친근감과 적대감 사이
한일 교류와 대립
서로를 이해하는 법
먼저 읽어 보세요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전원 합의체는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2005년 한국 법원에 소송이 제기된 후 1·2심에서는 신일본제철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지만, 2012년 5월 대법원은 피해자들의 청구권을 인정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2013년 서울고등법원 파기 환송심 판결 후 신일본제철의 상고를 거쳐 2018년에 대법원이 원고 승소를 확정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해결되었다고 주장하며 반발했다. 일본은 외교적 협의와 중재 위원회 개최 등을 요구했으나 한국이 거부했고, 한일 기업이 출연한 재원으로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자는 한국의 제안을 일본이 거부하면서 갈등이 이어졌다. 양국 갈등은 7월 일본이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의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 금지를 발표하면서 경제 분야로도 번졌다.
에디터의 밑줄
“국가의 특성과 본질을 규정짓는 국가 정체성은 국가 간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개별 국가가 인식하는 세계 질서, 자국의 위상과 역할, 대외 정책 구상과 국가 간 관계 형성에 주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냉전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미국은 일본을 동아시아 지역 방공(防共) 지대의 전략적 요충지로 삼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전범국이자 가해국인 일본의 전후 처리 및 사죄와 배상 문제는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일본은 안보 문제는 미국에 의존하는 한편, 경제 발전에 국가 역량을 집중한다는 요시다 독트린(Yoshida Doctrine)을 중심으로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했다.”
“패전 후 일본이 국제 사회로 다시 복귀하는 데 있어 아시아 식민 국가들에 대한 사죄와 반성은 전제가 아니었다. 일본은 전후 미국에 의해 수립된 질서에 순응했고, 냉전이라는 특수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과거의 잘못에 대한 충분한 반성과 성찰 없이도 미국의 보호와 지원 아래 경제 성장을 이루며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한국은 식민 지배와 민주화를 겪으면서 우리의 범위에 누구를 포함시킬 것인지를 두고 갈등해 왔다. 식민지 시대 일본에 협력했던 세력과 저항했던 세력, 권위주의 군사 정부를 추종했던 세력과 그렇지 않았던 세력이 나뉘면서 대립이 커졌다. 이는 국가 형성과 국가 관계에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분쟁의 전장(戰場)이었던 한반도에서 한국은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에서 북한을 같은 민족인 ‘우리’로 볼 것인지, 다른 가치와 정치 체제를 가진 타자로 볼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한국인들은 일본인에 비해 자국에 대한 자긍심과 자부심이 강하다. 그만큼 자신과 동일한 집단으로 생각하는 기준은 더 까다롭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고민해 온 국가 정체성 논의와 이어져 있다. 우리라는 틀은 자신이 속한 국가, 사회, 집단에 대한 애착과 동일시로 이어진다. 국가에 대한 희생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자국민의 아픔에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어떤 국가를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했던 일본과 달리, 누구와 함께 국가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고민한 것이다. 이는 한일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에게 한국 및 아시아와의 관계는 정치권에서 국가 전략의 일환으로서 고려되어 왔지만, 한국은 일본이 함께해야 할 우리인지, 함께할 수 없는 그들인지를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은 같은 진영의 우리로서 함께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도덕적·법적 차원의 당위 사항으로 여겨졌다.”
“기존의 잘못된 합의 혹은 당시에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던 부분을 바로잡고 새로운 한일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한국의 입장과 전후 질서의 근간이 되는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서 비롯된 한일 협정과 1965년 체제를 부정할 수 없고, 유지해야 한다는 일본의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일본에게 있어 1965년 체제를 부정하거나 수정하는 것은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해야 하는 문제이며, 이 경우 수반될 많은 문제들을 감당하고 처리하는 것이 버거워진다.”
코멘트
저자는 국가 정체성을 통해 한국과 일본 사이의 간극을 분석한다. 한국은 우리와 상대방 사이의 관계를, 일본은 국제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먼저 바라본다. 한일 갈등의 본질을 읽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하는 콘텐츠다. 북저널리즘 에디터 소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