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움.’
미국의 야구 기자 레너드 코페트(Leonard Koppett)가 쓴 야구 입문서 《야구란 무엇인가(The New Thinking Fan’s Guide To Baseball)》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야구를 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강속구에 맞으면 아프다’는 데서 오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이겨 내야 한다는 얘기다. 체력도 기술도 아닌, 무서움을 극복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야구를 시작하는 첫 번째 단계다.
야구가 정신력의 스포츠라는 것은 실제로 경기를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투수는 아무도 없는 텅 빈 다이아몬드 한가운데 홀로 서서 공을 던진다. 타자들은 미사일처럼 날아오는 공에 정면으로 맞선다. 선수들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체력 싸움 이전에 정신력으로 상대를 제압해야 하는 야구라는 스포츠에서 슬럼프는 가장 큰 난관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경기력과 의욕이 떨어지는 슬럼프 상황에서 코페트가 말한 ‘마음의 준비’를 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 야구의 역사를 쓴 전설적인 선수들, ‘레전드’들은 ‘슬럼프를 피하지 말고 마주하라’는 처방을 내린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길은 역설적으로 슬럼프를 받아들이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슬럼프에 빠졌다는 것을 자각하되, 평소에 하던 대로 연습하고 노력해야 한다. 고민할 시간에 무엇이든 시작해야 길이 보이고, 답답했던 마음도 편해진다.
타고난 실력으로 경쟁자들을 압도했을 것만 같았던 레전드들은 오히려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슬럼프를 직면하고 있었다.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더 고생스럽게 연습하고 노력했다. 그들은 꾸준한 연습과 노력에는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다. “타격왕이 아니라 노력과 연습이 목표”라는 박정태, “태어날 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는 김종모, “결과를 의식하지 않고 던지는 과정 자체에 최선을 다했다”는 송진우, “야구하는 인생 자체가 슬럼프”라는 김용수는 잘할 때나 못할 때나 매 순간 연습하면서 스스로를 발전시켜 나갔다. 오늘이 모여 1년이 되고 10년이 된다는 진부하기까지 한 명제는 레전드의 삶을 구성하는 생생한 실체였다.
한국 야구의 명장 김인식 감독은 뛰어난 야구 선수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3할 타자, 10승 투수가 되는 길을 이렇게 설명한다. ‘타자는 한 타석 한 타석을, 투수는 공 한 개 한 개를 소중히 여기고 온 힘을 다하면 된다.’ 흔히 야구를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예술, 드라마라고 표현하지만 야구의 전설들에게 야구는 일상이고, 삶 그 자체였다.
레전드의 이야기는 야구가 아닌 사람과 인생에 관한 이야기다. 노력할 것, 자신을 돌아볼 것, 스스로의 선택을 믿을 것. 그들의 조언을 되새기며 정성껏 오늘을 살기로 다짐한다.
김하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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