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학교
1화.

프롤로그; 미래를 말할 때 반드시 떠오르는 질문

학교는 사라질까


최근 몇 년간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단어는 ‘미래’일 것이다. 인공지능 같은 새로운 기술은 상상 이상의 빠른 속도로 우리의 삶을 바꾸고 있다. 급변하는 세상에 대한 기대와 우려, 상상이 일상 대화와 미디어의 시간을 점유하면서 미래는 현재를 사는 우리가 반드시 논해야 하는 화두가 되었다.

가벼운 대화에서든 진지한 칼럼에서든 미래에 대한 고찰이 어느 정도 이어지고 나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반드시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교육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교육이 사회의 현재를 지탱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질문이다. 우리가 익숙한 오늘의 사회는 어제의 교육을 받은 어른들이 만들어 굴려 나가고 있다. 지금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미래의 사회는 오늘 교육받고 있는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 만들어 갈 것이다. 미래는 다음 세대의 몫이지만, 그다음 세대가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교육의 운동장을 마련하는 것은 지금을 사는 어른의 몫이다.

미래를 만들기 위한 오늘부터의 교육은 어떻게 상상해야 할까? 미래 교육의 목표와 지향에 대해서는 이미 다양한 논의가 진전되어 있다. OECD 같은 국제기구부터 세계 각국의 교육자와 교육 전문가는 물론 기업의 인재 전략 전문가, 경영 구루, 벤처 투자자들도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미래의 일과 사회를 상상하며 교육에 대한 의견을 내왔다.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한 논의라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울 만큼 일치되는 의견들이 많다. 우선 문제 해결, 협업, 커뮤니케이션, 창의성 관련 역량을 키우는 것이 단순한 지식의 전달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사회에 계속해서 적응하며 자신의 일을 찾거나 만들어 가야 하는 미래에는 ‘배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주장도 공통적이다. 인간 고유의 능력인 공감 능력, 연결된 세계에서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가치관도 강조된다. 무엇을, 왜 배워야 하는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은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용하는 표현이나 의미의 위계는 달라도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역량과 가치는 분명하다.

반면 ‘어떻게’를 묻는 논의는 상대적으로 기초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OECD의 미래 교육 보고서 〈학습나침반(Learning Compass) 2030〉도 새로운 교육의 목적과 방향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적용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교육 주체들이 각자의 현실과 맥락 속에서 적절한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구체적인 교육 혁신 사례를 발굴해 방법론을 찾는 OECD 교육 역량국의 후속 프로젝트 〈교수법(Teaching) 2030〉 또한 좌표는 찾았으나 실행 전략은 불투명한 현 상황을 보여 주고 있다. 문제에 대한 인식, 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는 합의했지만 어떻게 가야 할지를 놓고는 다양한 의견이 오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를 논하는 스펙트럼의 끝단에는 학교가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전통적인 형태의 학교가 사라질 것이라는 이런 주장은 지속적인 기술의 발전을 근거로 삼고 있다. 온라인 강의로 개인의 속도에 맞춘 학습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칸 아카데미(Khan Academy)에 이어 미국 유수 대학의 강의를 영상으로 담아 모두에게 공개한 코세라(Coursera), 유데미(Udemy) 등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가 포문을 열었다. 온라인 강의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일방향성을 뛰어넘어, 활발한 실시간 상호 작용이 가능한 가상의 수업 공간을 온라인에 구현한 것이다.

혁신적인 대학 미네르바 스쿨(Minerva School)에서 대부분의 수업은 바로 이러한 가상의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미네르바는 학교의 건물에 투자하는 대신 상호 작용이 가능한 온라인 강의 프로그램과 혁신적인 커리큘럼을 개발했다. 학교를 떠나 홈스쿨링을 하는 초중등학생들이 필요한 수업을 찾아 수강하는 아웃스쿨(Outschool)은 강사 1000여 명이 진행하는 8000여 개의 다양한 강의를 운영한다. 예를 들면, 해리포터를 읽으며 영어를 공부하고, 함께 수강하는 학생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만나 글쓰기를 함께 연습할 수 있다. 2015년 설립된 아웃스쿨은 2019년 850만 달러(99억 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서로가 서로를 가르치는 스킬셰어(skillshare)는 성인들을 위한 평생 학습 플랫폼을 제공한다. DSLR 사진 찍기부터 커리어 관리까지 2만 5000여 개 강의 프로그램이 올라와 있다. 짤막한 영상 강의에 직접 만들거나 실행해 보는(hands-on) 프로젝트가 결합된 구조다.

사람들을 연결하고 배움을 제공하는 열린 플랫폼들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개인의 관심사와 필요에 맞춘 교육이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학교라는 닫힌 공간에서 일정한 연령대, 정해진 시간표 안에 배움을 가두어 둘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가까운 미래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당분간 대다수 국가 공교육의 기본 유닛(unit)은 학교일 것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플랫폼과의 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해도 학생들이 배움을 목적으로 모여 교사를 만나는 곳은 여전히 학교일 것이다. 여행을 하며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온라인 강의를 수강하는 것도, 프로젝트에 몰두하면서 틈틈이 온라인으로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가능한 세상이지만 이는 아직 모두에게 주어진 기회는 아니다. 평범한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공교육이 제공하는 배움의 기회가 최선의, 또는 유일한 선택지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학교는 여전히 미래의 교육을 그리는 유효한 단위다.

학교를 ‘배움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로 정의한다면, 학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네모난 건물, 칸칸이 나뉜 교실, 칠판을 바라보고 줄지어 앉는 책상 같은 물리적인 공간,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하고 학생들이 한 방향으로 앉아 수업을 ‘듣는’ 것처럼 학교라는 말을 들었을 때 흔히 떠올리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학교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획일적인 교육이 아니라 개인의 관심사와 속도, 배우는 방식에 맞춘 개인화, 맞춤화 교육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미래는 기대할 만하다. 하지만 개인화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 혼자 배운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술의 발달로 연결되고 확장되는 사회에서는 조율과 협업 역량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따라서 협업의 경험은 사회로 나오기 전 반드시 배워야 한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디지털 디바이스 화면을 보며 지식을 익힌다 해도, 동료와 함께 지식을 적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이 배움을 완성시킬 수 있다.

새롭게 정의되는 학교의 목표는 무엇이 될 것인가? 그 안에서 어떤 사람들이 상호 작용할 것인가? 학생들의 배움과 성장은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 학교는 어떤 원칙으로 운영될 것인가? 학교의 담장은 얼마나 유연하게 낮춰질 수 있을 것인가? 이 모든 질문이 미래 학교를 상상하기 위한 재료다.

 

더 많은 선택지를 만드는 일


필자들이 일하고 있는 씨프로그램(C-Program)은 다음 세대의 성장을 위한 변화에 투자하고 지원하는 벤처 기부(venture philanthropy) 펀드다. 어린이들을 위한 제3의 공간을 지원하는 플레이 펀드(Play Fund), 교육 분야의 새로운 실험을 지원하는 러닝 펀드(Learning Fund)를 운영하고 있다. 러닝 펀드는 2015년 이후 5년 동안 20여 건의 프로젝트에 투자해 왔다. 고등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연구하는 ‘고등학자 프로젝트’, 과학과 생태에 관심이 깊은 청소년들이 젊은 탐험가들과 함께 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탐험 대학’, 관찰을 통해 취향과 디자인의 기본 근육을 키워 가는 ‘딱 하나만 디자인 학교’ 등 새로운 의미의 폭넓은 배움을 시도하는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짧게는 1년부터 길게는 4년에 걸쳐 지원하고 있다.

개별 프로젝트뿐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도 지원해 왔다. ‘거꾸로 교실’을 실천하는 전국 교사들의 비영리 사단법인 미래 교실 네트워크를 창립 초기부터 지원했다.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탐험가들에게 지원금과 네트워크, 미디어 연계를 통한 스토리텔링의 기회를 제공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아시아 재단에도 5년간 후원금을 지원하고 있다. Z세대 청소년을 위해 실험적인 예술, 창작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하는 젊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업실을 청소년들에게 열어 주는 캠프 씨(Camp C)는 학교 밖 젊은 예술 교육자들과 그 커뮤니티를 위한 투자였다.

모든 프로젝트가 각각의 실험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지만, 러닝 펀드가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는 프로젝트는 거꾸로캠퍼스다. 미래 교실 네트워크의 교사들이 학교를 뛰쳐나와 설립한 이 학교는 학년, 과목 간 경계를 없앤 프로젝트를 통해 배움이 일어나도록 하는 실험 학교다.

14~19세 사이의 학생들은 거꾸로 캠프에 입학해 나이의 구분 없이 모두 함께 배운다. 고교 과정의 교과서와 학습 과정을 받아들이되, 과목별 시수(時數)[1]나 진도, 목차에 따라 진행하는 수업은 없다. 교과서에 담긴 지식을 해체해 각자의 관심사를 그린 지식 맵으로 재구성하고,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지식을 연결하여 습득하는 방식이다. 학생들은 각자의 질문과 관심사에 따라 문제를 찾고, 분석하고, 해결해 보는 ‘사상 최대 수업 프로젝트’를 친구들과 팀을 이루어 진행한다. 학기 대신 2개월 단위 모듈로 구성되는데, 모듈이 끝나는 시점에는 시험 대신 ‘배움 장터’를 연다. 한 모듈 동안 배운 내용, 고민한 내용, 진행한 프로젝트를 e북, 영상, 전시, 공연 등 다양한 형식으로 갈무리하고 부모님과 교사뿐만 아니라 거꾸로캠퍼스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초대해 발표하는 자리다.

메이커 스카우트, 고등학자, 유스 벤처, 딱 하나만 디자인 학교 등의 실험적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이끌어 가는 교육자들은 다양한 전문성을 발휘하면서 세심하게 참여한 학생들을 살핀다는 공통점이 있다. 학생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정해진 결과물을 시간 내에 만드는 대신 시간을 들여 자유롭게 탐색하고 깊이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배움이란 이래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의미 있는 프로그램들이었다.

그러나 즐겁게 몰입하며 참여한 학생들은 매주 한 차례의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면 학교로, 입시 학원으로 돌아가야 했다. “너무 좋지만 제가 여기 매일 올 수는 없잖아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방학이 끝난 이후의 일상을 생각하며 눈물을 보이는 학생들의 얼굴을 볼 때 가장 미안했다. 학생들은 다가올 미래에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도 지금 현재로서는 가장 구체적인, 그래서 역설적으로 가장 선택하기 쉬운 선택지를 일상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미래 교육의 방향에 동의하는 학생과 학부모라고 해도, 선택은 쉽지 않다. 새로운 교육을 선택하는 일은 당위성이나 가능성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미래를 위한 교육이 지금 당장 필요하다고, 아니 사실은 이미 어제부터 필요했다고 외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다른 한쪽에선 다시 입시 제도에 대한 날 선 논의가 들린다. 이런 현실 속에서 개인과 가정의 의지에 모든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 교육의 범주 안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사회가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런 질문에 동의한다면 지금 무엇을,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 고민은 더 커진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학교에 주목해야 한다. 거대한 교육 제도와 하나의 개별 수업 사이 잠깐의 경험이 아닌 지속적인 배움의 커뮤니티로서 선택지가 될 수 있는 곳이자 세밀한 관찰과 실험이 가능한 규모를 갖추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학생들이 ‘나의 학교’로 여길 수 있고,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면서도 너무 큰 불안을 떠안지는 않아도 되는 선택지가 더 많아져야 한다. 거꾸로캠퍼스가 의미 있는 실험이 되려면, 하나의 특수한 예외적 사례가 아니라 많은 미래 학교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미래의 배움을 만날 수 있는 학교가 내 주위의 가까운 곳에서도 보인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구체적인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거꾸로캠퍼스와 같은 새로운 학교일 수도 있고, 남다른 철학을 가지고 변화해 온 학교일 수도 있다. 공교육 테두리 안에 있는 평범한 일반 학교가 새롭게 정의되어도 좋겠다. 중요한 것은 학교의 목적을, 핵심을 무엇으로 정의하느냐, 어떤 요소로 새로운 학교를 구성하느냐일 것이다.

 

미래 학교를 상상하기 위한 재료


우리는 이 책에서 변화의 요소(Learning Formula)와 촉매(Catalyst)라는 두 개의 틀로 미래 학교에 필요한 재료를 설명하고자 한다. 변화의 요소가 배움과 성장이 일어나는 구체적인 원칙이라면, 촉매는 그 배움의 방식이 지속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학교) 운영의 방식이다. 미래 교육의 방향성에 부합하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 국내외 학교의 사례들에서 발견한 공통분모이기도 하다.

학교는 담장 안에 외따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은 앉아서 듣는 사람이 아닌, 적극적으로 결정하고 찾고 해결하고 만드는 존재가 될 것이다. 교사는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에서 배움을 돕는 사람, 학생들의 성장을 돕는 사람으로 변화할 것이다. 사회의 다양한 전문가들은 배움의 과정 곳곳에, 적시에 연결되어 학생들의 배움을 도울 것이다. 이러한 배움을 통해, 학생은 정해진 트랙을 따라 달리는 대신 길을 만드는 법을 배우도록 격려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학교의 담장 안팎에서 일어날 것이다. 학교는 물리적 담장이 아닌 커뮤니티의 존재로 규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1]
일반적으로 교과 과정의 일주일에 특정 교과목이 들어 있는 시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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