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보틀은 왜 스타트업인가
스타트업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보통 설립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혁신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폭발적인 성장 잠재력을 갖춘 회사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용어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나왔고, 이런 특성을 가진 다수가 IT를 기반으로 하는 기업들이었기 때문에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핀테크 등의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사업하는 곳들만 스타트업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 스타트업이라는 말은 폭넓은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가장 넓은 의미로 보자면 성장에 초점을 맞춘 기업 전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작은 식당을 창업한다면 자영업일 뿐이지만 1만 개의 매장 개설을 목표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시스템을 구축해서 외식 시장에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면 스타트업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스타트업계를 대표하는 성공 사례로 꼽히는 ‘배달의 민족’은 초기에 고객이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 주문을 하면 직원들이 전화로 매장에 주문을 넣는 아날로그 시스템이었는데도 투자를 받았다. 국내 배달 시장의 규모가 큰 데다 하나의 어플리케이션으로 모든 종류의 배달업소 정보를 제공한다는 문제 해결 방법에 폭발적인 성장 잠재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 줄 자본이 필요하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투자 기업들을 만나게 된다. 투자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 역시 성장 잠재력이다. 페이스북, 알리바바 등 IT를 기반으로 기존 산업에 혁신을 일으키는 기업에 주로 투자하던 이들은 2010년 이후 기존의 산업 영역에서도 시장의 변화를 주도하고 재편하여 점유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기업들을 찾아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때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은 시장이 커피 시장이다. 2015년 기준 2조 3000억 달러 규모의 거대한 시장인 커피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제3의 물결로 불리는 스페셜티 커피의 점유율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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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시장에서 폭발적인 성장 가능성을 갖고 있는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들이 스타트업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이유다.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들은 커피 시장을 넘어 커피를 재료로 하는 다양한 분야로의 확장성까지 갖추고 있다. 예컨대 커피 찌꺼기를 활용한 제품, 동물의 사료 및 빵에 들어가는 향료 등 창의적인 제품들이 시장에 나올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블루보틀은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가운데 가장 높은 가치 평가를 받고 있다. 블루보틀은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이면서도 커피 음료만 판매하는 회사가 아니다. 탁월한 브랜딩을 통해 형성된 팬덤을 바탕으로 다양한 수익 모델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에 확장성이 크다. 게다가 IT를 활용한 원두 구독(일정 비용을 내면 엄선한 커피를 정기적으로 배달받을 수 있는 서비스) 사업 모델을 갖추고 있다. 체계적인 매장 운영 시스템 역시 다른 브랜드들이 모방하기 어려운 자산이다.
자영업 커피 매장이었던 블루보틀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브랜드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벤처캐피털의 투자는 큰 역할을 했다. 블루보틀은 2002년 창업 후 15년 만에 7000억 원의 가치 평가를 받은 브랜드로 알려져 있지만, 2008년 첫 투자를 받기 전까지는 그저 커피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브랜드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나 투자 이후에는 벤처캐피털이 투자한 비기술 분야 기업의 대표적인 사례로 언론에서 다뤄지면서 급속도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블루보틀 투자자의 다수는 테크 기업들과 셀러브리티들이다. 트위터 공동 창업자로 현재 미디엄 CEO인 에반 윌리엄스(Evan Williams), 워드프레스 공동 창업자 맷 멀런웨그(Matt Mullenweg), 벤처캐피털리스트 크리스 사카(Chris Sacca) 등으로부터 2500만 달러를, 세계적인 록 밴드 U2의 보노(Bono), 배우 자레드 레토(Jared Leto)와 토니 호크(Tony Hawk), 인스타그램 공동 창업자 케빈 시스트롬(Kevin Systrom), 테트라곤 금융그룹, 모건 스탠리, 트루 벤처스 등으로부터 7000만 달러를 투자받았다. 칼럼니스트 케빈 루스(Kevin Roose)는 “블루보틀은 테크 회사들 바로 옆에 들어서 있으면서 썩 괜찮은 커피를 팔기 때문에 투자를 받았다”는 트윗을 남기며 비아냥거리기도 했지만, 핵심 고객으로부터 투자를 유지했다는 사실은 블루보틀이 제공하는 상품과 경험의 만족도가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특히 2012년 구글 벤처스의 2000만 달러 투자는 블루보틀이 한 단계 도약하는 기회가 되었다. 당시 프리먼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블루보틀을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하게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블루보틀은 구글 벤처스와 함께 프로젝트 팀을 꾸려 최적의 온라인 스토어를 만들기로 한다. 마침 이 시기에 구글 수석 디자이너 제이크 냅(Jake Nnapp)은 5일 동안 집중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스프린트(Sprint) 방법론을 설계하고 실험하고 있었다. 블루보틀은 아이디어 교환에 그치는 수준인 브레인스토밍의 약점을 보완하고 좀 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세스인 스프린트의 초기 테스터가 되었다. 2012년 12월, 오프라인 경험만 갖고 있던 블루보틀과 온라인 소프트웨어 문제를 주로 연구했던 구글 벤처스는 스프린트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고객 경험을 확장하는 실험을 시작한다.
블루보틀, 구글 벤처스 연합팀은 스프린트 주가 시작되는 첫날에 샌프란시스코의 구글 벤처스 회의실에 모였다. 주제는 커피 구매자들이 무엇을 질문하는지 파악하는 것이었다. 깔때기 모양의 다이어그램을 사용하여 우선순위를 결정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들은 중요한 문제에 부딪혔다. ‘커피를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거의 모든 사이트가 원산지에 따라 커피를 분류하고 있었다. 그런데 커피 마니아인 한 직원이 원산지 분류의 의미를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고객이 인식할 수 없는, 공급자 중심의 분류 방법이었던 것이다. 연합팀은 프리먼에게 매장에서는 어떻게 고객에게 원두를 추천하고 있는지 물었다. 프리먼은 “집에서 커피를 어떻게 내려서 드세요?”라는 질문을 한다고 답했다. 추출 도구와 취향에 따라 추천 원두가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도구에 따라 커피를 제안하는 분류 방식이 정해졌다. 여기에 프리먼이 강조하는 ‘고객을 환대하는 경험’이 더해지면서 온라인 사이트의 방향이 결정됐다.
다음 과제는 사이트 디자인을 결정하는 일이었다. 15개 제안 가운데 프리먼이 선택한 세 가지는 다음과 같았다. 매장과 동일한 디자인으로 만든 버전, 추출 도구에 따른 분류와 함께 ‘집에서 커피를 어떻게 드세요?’라는 질문을 담은 버전, 매장에서 고객과 바리스타가 나누는 대화를 기록한 글이 들어가 있는 버전이었다. 블루보틀, 구글 벤처스 팀은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고객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예상과는 다른 반응을 접했다. 매장 인테리어와 동일한 디자인은 혹평을 받았고, 글이 많이 들어간 버전의 반응이 좋았다. 고객들은 글이 블루보틀의 전문성을 부각시켜 준다고 생각했다. 웹 페이지에 텍스트가 많이 들어가는 것을 죄악에 가깝게 여기는 일반적인 온라인 비즈니스 사고와는 상당히 다른 결과였다.
고객의 반응까지 더해진 사이트를 론칭하면서 블루보틀의 온라인 판매는 두 배로 증가했다. 2013년에는 커피 정기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브랜드 통스(Tonx)를 인수했다. 2014년 9월부터는 그동안의 고객 데이터를 종합한 블루보틀의 커피 구독 사업 ‘블루보틀 앳 홈(Blue Bottle at Home)’을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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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으로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구축한 것 역시 구글 벤처스의 투자를 받은 2012년이었다. 이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 SNS가 급성장하던 때였다. 블루보틀이 10년간 지켜 온 진정성과 철학, 디자인의 미학은 SNS의 성장과 맞물리면서 급속히 전파되었다. 온라인 비즈니스를 이해하는 투자자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매장은 경험의 공간이다
블루보틀은 소수의 커피 마니아를 주 고객으로 삼고 있다. 좋은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제품 원가도 높고, 커피를 제조하는 시간도 오래 걸려서 인건비도 많이 들어가는 구조다. 외식업에서는 고객 회전율이라는 지표로 매출을 예측하는데 제품 제공 시간이 길어지면 고객을 적게 받을 수밖에 없어 매출이 줄어든다. 판매가에 비해 원가도 높으니 더더욱 수익을 높이기 어렵다. 이렇게 비효율적인 블루보틀이 어떻게 단 40개의 매장만 가지고 7000억 원이라는 가치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까? 매장이 10여 개일 때 이미 수백 억 원을 투자받은 것부터가 국내에서는 사례를 찾아볼 수도 없는 이례적인 일이다. 블루보틀이 투자를 받은 이유는 뭘까. 그 비결의 한 가지는 바로 차별화된 수익 모델이다.
블루보틀 커피의 2016년 매출은 약 9400만 달러(약 1064억 원)다. 매장당 24억 원, 월평균 2억 원인 셈이다. 대부분의 매장이 규모가 작고, 커피를 제조하는 바리스타가 3~4명 필요하다는 점, 한 잔을 내리는 데 10분 정도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장에서 커피만 팔아서는 불가능한 매출액이다.
어떻게 이런 매출이 가능할까. 블루보틀 커피의 매장은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브랜드를 경험하는 쇼룸에 가깝다. 블루보틀은 바리스타를 커피 전문가이자 엔터테이너로 정의하면서 쇼룸으로서의 매장 역할을 강화하는 색다른 수익 모델을 창출했다. 애플 스토어가 제품 판매보다는 제품을 경험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알리는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까지의 스토어 비즈니스, 즉 매장을 가지고 있는 사업자는 ‘고객 회전율 × 객단가 = 매출’이라는 공식을 바탕으로 이익을 산출해 왔다. 블루보틀은 그 공식을 깼다. 블루보틀 매장은 최고의 제품만을 취급하겠다는 철학, 10년 넘게 그 철학을 지켜 가고 있는 진정성을 인테리어, 메뉴, MD, 직원 등의 모든 요소를 통해 보여 주는 곳이다. 실제로 블루보틀의 직원들은 모두 고객 앞에 서기 전에 창업자 프리먼 앞에서 커피를 내리는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커피 마니아이자 완벽주의자인 프리먼의 인정을 받아야 고객 앞에 설 수 있다. 프리먼이 오클랜드의 장터 카트에서 커피를 팔았을 때처럼, 고객과 커피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커피의 가치를 전파할 수 있을 정도의 맛있는 커피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매우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야 고객 앞에 설 수 있다는 원칙이다.
블루보틀 매장에서 직접 만나 본 바리스타들은 커피에 대한 지식, 자신감과 여유, 그리고 수없이 터지는 카메라 셔터 앞에서도 이를 의식하지 않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 주었다. 자신의 모습이 SNS를 타고 전 세계에 퍼질 것을 알면서도 개의치 않고 커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바리스타가 아니라 엔터테이너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블루보틀 커피는 이렇게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곳’이라는 브랜드를 키워 나간다. 당장 매장에서 발생하는 매출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매장은 철학과 브랜드 관리를 철저히 보여 주는 곳이자 스페셜티 커피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의 선두 브랜드임을 입증하는 장소로 운영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브랜드 신뢰를 바탕으로 다른 카페와 레스토랑에 원두를 납품하는 B2B(business to business) 서비스를 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확보했다. 이런 방식은 인텔리젠시아 같은 스페셜티 커피 체인 역시 활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착한 커피로 유명한 서필훈 대표의 커피 리브레와 로스터리 카페 붐을 일으킨 테라로사 등이 원두 도매 수익 모델의 예다. 특히 스페셜티 커피를 수입, 로스팅, 유통하는 테라로사는 전체 매출의 40퍼센트가 테라로사 브랜드를 붙인 원두 납품 매출이라고 한다.
그러나 블루보틀은 현재 다른 매장에 원두를 납품하는 사업을 중단했다. 품질 유지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아무리 같은 원두라 할지라도 관리 상태, 추출 도구, 바리스타에 따라서 고객이 받아 드는 커피의 품질은 크게 차이가 난다. 편집광이라고 불릴 정도의 완벽주의자인 프리먼이 다른 매장으로 판매한 커피의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단점을 그냥 넘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블루보틀은 2012년 구글 벤처스의 투자를 받으면서 구축한 온라인 서비스 모델로, 개인 소비자에게 원두를 정기 배송하는 B2C(business to customer) 구독 모델을 확산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매장에서의 경험을 통해 고객은 블루보틀의 철학에 공감하게 되고 브랜드를 사랑하는 팬이 된다. 유명세에 비해 매장이 얼마 없다는 희소성은 고객의 열광적인 지지를 강화하는 효과를 낸다. 블루보틀은 매장을 찾을 수 없는 고객을 위해서 디자인 철학을 잘 녹여 낸 MD를 충분히 준비해 놓고 있다. 세계 최고라 자부하는 블루보틀의 원두를 집에 가져가서 마실 수 있도록 신선한 원두를 판매하고, 블루보틀에서만 볼 수 있는 디자인의 머그잔과 커피 용품들이 즐비하다. 기간 한정으로 텀블러나 에코백 등도 판매한다. 어쩌다 블루보틀 매장을 발견해 들어간 고객들은 쉽게 구할 수 없는 제품이기 때문에 살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블루보틀은 다른 카페 매장에 원두를 납품하거나 MD 제품을 통한 추가 매출을 일으키는 등의 다양한 수익 모델을 통해 매장의 한계를 넘어선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나아가 SNS를 통해 전 세계에 스페셜티 커피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알려지게 되었다.
자영업자는 물론 프랜차이즈 본사들도 블루보틀과 같은 수익 모델 다각화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국내에서 프랜차이즈는 ‘갑질’ 논란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업의 도덕성에 대한 비판이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사실 개별 사업장들이 연결되어 있는 프랜차이즈 모델 자체의 한계도 있다. 프랜차이즈는 기본적으로 본사와 가맹점 간의 동업이다. 고객이 지불하는 돈을 나눠서 갖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분쟁은 필연적이다. 직접 고객에게 제품과 노동을 제공하고 돈을 받는 가맹점주는 후방 지원 역할을 하는 본사의 역할이 작아 보이기 때문에 지불하는 비용이 아깝게 느껴지는 것이고, 지식과 교육, 브랜드 등 무형의 가치에 많은 투자를 하는 본사는 투자 수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면서 양측의 다툼이 생기는 것이다. 고객이 1000원을 지불하면 제품 원가를 제외하고 남는 300원을 본사와 가맹점주가 나눠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수익 모델 다각화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매장에서 점주가 노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은 점주가 온전히 가져가고 프랜차이즈 본사는 확산된 점포를 플랫폼으로 활용해 수익을 올리는 방법이 있다. 블루보틀처럼 매력적인 MD를 만들어서 판매 수익을 본사의 주 수입으로 삼는 것이다. 온라인 판매도 병행할 수 있다. 매장에 TV를 설치하고 광고를 유치해서 수익을 올리는 방법도 있다. 이전에 내가 관리했던 레스토랑 브랜드는 하루 방문자가 10만 명 정도였다. 매일 10만 명의 사람들이 평균 한 시간씩 식사를 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광고할 수 있는 기회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은 적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시루(知る) 카페는 명문대 인근에 매장을 개설하고 학생증을 가진 대학생, 대학원생 고객들에게 커피를 무료로 제공한다. 대신 글로벌 기업들에게 연간 스폰서 광고비를 받아 수익을 창출한다. 기업은 명문대생들에게 정기적으로 회사 홍보, 채용 설명회 또는 구인 광고 등을 할 수 있으므로 아낌없이 비용을 지불한다. 시루카페는 일본을 넘어 인도 공과대학에 분점을 내며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스타 바리스타가 필요하다
스페셜티 커피가 엄격히 관리된 원두를 일컫는 표현인 만큼, 고객들은 바리스타가 장인이 되어 주기를 기대한다.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에서는 원두를 취급하는 사람도 굉장히 중요하다. 클라리넷 연주자 출신이 창업자라는 점은 브랜드 스토리로서는 아주 흥미롭지만 스페셜티 커피 시장에서 블루보틀을 최고의 브랜드로 인식하게 만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커피 전문가가 참여하는 브랜드가 아니라는 오해를 살 수도 있는 요소다.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블루보틀은 인수 합병을 시도한다. 대상은 다름 아닌 당대 최고의 바리스타였다.
스페셜티 커피업계의 선두 주자라고 할 수 있는 인텔리젠시아는 트레이닝 랩의 교육 수준이 높은 것으로 특히 유명하다. 교육 이사인 마이클 필립스(Michael Phillips)는 2010년 미국인 최초로 영국 런던에서 열린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단숨에 미국을 대표하는 스타 바리스타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한국에서는 커피 브랜드명으로 익숙한 호주 출신의 폴 바셋(Paul Bassett)이 2003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자다. 국제적인 인지도 면에서는 스페셜티 커피 바리스타를 대표하는 필립스가 바셋을 능가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인텔리젠시아에 패키지 디자이너로 입사했을 만큼 뛰어난 디자인 감각에 잘생긴 외모,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까지 갖춘 그는 2011년 5월 인텔리젠시아의 수석 교육팀장이었던 크리스 오웬(Chris Owens), 직영 매장 매니저였던 타일러 웰스(Tyler Wells)와 함께 핸섬커피 로스터스(Handsome coffee roasters)를 설립하며 독립했다. 핸섬커피는 그해 미국에서 가장 ‘핫’한 커피 브랜드로 떠올랐다.
핸섬커피는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2013년에 합작 회사 형태로 한국 시장 진출을 타진한 적이 있다. 강호동 백정, 치킨678 등을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기업 육칠팔이 핸섬커피에 협업을 제안했다. 코미디언 강호동이 지분 투자를 한 기업으로 알려진 육칠팔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많은 매장을 내며 성장하던 기업이었다. 2013년 가장 유행하던 아이템인 빙수와 커피를 취급하는 프랜차이즈를 준비하다가 어려움을 느끼고 미국에서 떠오르는 신생 브랜드였던 핸섬커피를 한국에 들여오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커피 마니아들은 프랜차이즈를 주력으로 하는 신생 기업인 육칠팔과 합작 회사를 만들 경우 핸섬커피가 프랜차이즈 형태로 확산될 것이고, 사업 모델 특성상 최고의 커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로 반대하기도 했다. 육칠팔과 미국 핸섬커피의 5개월간의 협상은 지분과 경영권 문제에 대한 의견 차를 겪다 결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론칭 2년 만에 멀리 아시아에서까지 합작 요청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핸섬커피는 2015년 전격적으로 블루보틀에 인수됐다. 블루보틀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빈 조각을 완성하고자 세계 최고의 수준의 바리스타를 보유한 핸섬커피를 인수한 것이다. 필립스는 블루보틀의 바리스타 교육을 총괄하는 이사로 낙점됐다. 필립스는 이후 일본에 블루보틀 커피가 진출했을 때에도 현지에서 몇 달간 거주하며 일본 직원들을 교육시켰다. 일본 1호점인 도쿄 기요스미 시라카와점에서는 한동안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블루보틀은 최고의 바리스타들이 모인 브랜드를 인수함으로써 스페셜티 커피업계에서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었다.
블루보틀의 핸섬커피 인수는 이후 미국 커피업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인재 육성에 공을 들이던 인텔리젠시아는 2012년 갑작스럽게 바리스타 교육과 관련한 모든 지원을 중단한다. 일각에서는 스타 바리스타였던 필립스의 독립이 이유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이때 인텔리젠시아의 지원을 받으며 바리스타 챔피언십을 준비하던 두 명의 청년은 쫓기듯 회사를 나와 로스앤젤레스 재래시장에 작은 매장을 열었다. 이 작은 카페의 이름은 지앤비(G&B). 《뉴욕타임스》가 2014년 미국에서 가장 맛있는 라떼(아몬드 마카다미아 라떼)를 만드는 카페로 선정한 곳이다. 카페 이름은 두 창업자 이름의 이니셜을 따서 만들었는데, 창업자는 카일 그랜빌(Kyle Glanville)과 찰스 바빈스키(Charles Babinski)다. 찰스 바빈스키는 2012년의 아픔을 딛고 2015년 미국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준우승을 차지해 이름을 널리 알린다. 2015년에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바리스타〉에도 출연했다. G&B 역시 급성장해 핸섬커피 이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한국야쿠르트와 협업해 출시한 ‘콜드 브루 by 바빈스키’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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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실현하는 협업
블루보틀은 유사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기업과의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강화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최고의 제품을 추구하는 장인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기업과 협업하면서 품질에 대한 철학을 부각하거나, 기부로 잘 알려진 기업과 손잡고 사회 환원과 공정 거래에 대한 이미지를 강화하는 식이다.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할 때 단순히 기업의 인지도만이 아니라 기업의 철학과 전문성을 염두에 두고 구매하는 시대인 만큼 알려진 기업들의 협업은 유효한 전략이다. 블루보틀은 철학만 통한다면 기업의 규모와 상관없이, 개인과도 협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