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보틀에 다녀왔습니다
5화

커피업계 제3의 물결

네슬레와 블루보틀

 
커피 산업 제3의 물결이라는 표현은 퓰리처상 수상자인 음식 평론가 조너선 골드(Jonathan Gold)가 사용하며 유명해졌다. 골드는 커피 산업의 변천을 세 단계로 나누어 분석한다. 제1의 물결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일명 ‘다방 커피’, 믹스 커피를 말한다. 뜨거운 물에 커피 가루를 타서 마시는 인스턴트커피의 시대로, 우리나라의 맥심, 네슬레의 네스카페 같은 브랜드가 대표적이다. 제2의 물결은 강하게 로스팅한 원두를 높은 압력의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빠르게 추출하는 커피를 즐기는 시대다. 이를 대표하는 브랜드는 스타벅스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제3의 물결은 커피 생두 산지의 특성, 무역 거래 방식, 품질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소비의 시대다. 한 품종이 가진 고유한 맛과 특성을 즐길 수 있는 싱글 오리진 커피가 인기를 누린다. 제3의 물결의 대표 주자로 불리는 것이 블루보틀, 스텀프타운 등이다.

재미있는 것은 제1의 물결인 커피 믹스로 돈을 번 네슬레가 최신 트렌드인 제3의 물결 선두 주자, 블루보틀을 인수했다는 것이다. 네슬레는 2017년 9월 블루보틀의 지분 68퍼센트를 4억 2500만 달러에 사들여 대주주가 되었다. 일본의 깃사텐을 연상시키는 장인 정신의 커피, 블루보틀을 믹스 커피 브랜드로 돈을 벌고 있는 네슬레가 인수했다는 소식은 커피 마니아들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커피업계의 가장 트렌디한 카페를 1866년에 설립된 낡고 오래된 공룡이 차지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인수 발표 이후 블루보틀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더 이상 블루보틀을 마시지 않겠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던 독립 로스터가 자본에 무너졌다’는 내용의 글들이 쏟아졌다. 네슬레를 악마의 기업에 비유한 이까지 있었다.

네슬레가 대체 어떤 회사이기에 이렇게까지 반발하는 것일까. 네슬레는 1866년 약사였던 앙리 네슬레(Henri Nestlé)가 창업한 회사이다. 앙리 네슬레는 1866년 소젖과 곡식 가루, 설탕을 혼합한 세계 최초의 파우더형 인공 모유인 페린 락테를 만들어 출시하면서 급성장했다. 이 시기 유럽에서는 영양 결핍으로 죽는 신생아가 많았다. 페린 락테는 휴대가 용이하고 영양이 풍부해 신생아 사망률을 낮추는 데 크게 기여했다. 네슬레는 이미 1872년에 미국, 멕시코, 호주, 인도네시아 등 17개국에 제품을 수출한 글로벌 대기업이었다.

네슬레는 특히 1, 2차 세계 대전을 통해 크게 성장했다. 1차 세계 대전 때는 유럽 정부와 계약을 맺고 시민들에게 우유를 공급했고, 2차 세계 대전 때는 미군에 네스카페를 팔았다. 이후 다수의 인수 합병과 연구 개발을 통해 거버, 네스퀵, 세레락, 킷캣 등을 출시하며 14종의 사업 분야에서 1만 종 이상의 제품을 출시하는 시가 총액 250조 원의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대표 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 인스턴트커피 네스카페는 1929년 월가의 주가 하락과 커피 값의 폭락으로 엄청난 양의 원두 재고를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은행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제품이다. 네슬레 회장이었던 루이스 다플(Louis Dapples)은 은행의 제안을 받아 남아도는 원두를 물에 녹는 커피 알갱이 형태의 제품으로 개발했다. 네스카페를 기반으로 한 네슬레는 캡슐 커피 시장도 개척했다. 중저가 라인의 원두를 사용하는 보급형 모델인 네스카페 돌체구스토와 상위 1~2퍼센트의 프리미엄 원두를 사용하는 네스프레소를 통해 홈카페 시장의 압도적인 1위를 점유하고 있다.[1]

여기까지만 봐도 커피 마니아들이 네슬레는 좋아하지 않을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오래된 재고 원두를 활용해 만든 인스턴트커피, 커피를 로스팅하고 내리는 과정이 극도로 압축된 캡슐 커피는 커피 마니아 입장에선 제대로 된 커피가 아니다.

커피의 제3의 물결에서 핵심 요소로 꼽혔던 공정 무역의 측면에서도 네슬레는 합격점을 받기 어렵다. 2000년대 중반 출간된 책 《나쁜 기업》은 다수의 다국적 기업들이 제3 세계 커피 산지에서 폭리를 취하면서 미성년 아동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물을 사유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2] 결국 커피 마니아들에게 네슬레의 블루보틀 인수는 상업적이고 부도덕한 기업이 최고급 생두를 사용해 일본의 장인과 같은 정성으로 핸드 드립 커피를 만드는 예술적인 기업을 먹어 치운 것으로 인식되고 말았다.

그러나 인수 전후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블루보틀로서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블루보틀은 인수 이전에 이미 1400억 원에 달하는 투자를 받았기 때문에 상장 또는 인수 중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블루보틀을 사랑하는 고객의 마음에서는 블루보틀이 현재의 가치를 유지하며 상장하는 것을 기대했겠지만, 투자를 받은 이상 투자자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커피 마니아의 입장에서는 아쉬운 결과이지만 벤처캐피털의 입장에서는 성공적인 엑시트(exit)였다고 할 수 있다.

블루보틀 CEO인 브라이언 미한(Brian Meehan)이 밝힌 인수 과정을 들어 보자. 미한은 네슬레 CEO인 울프 마크 슈나이더(Ulf Mark Schneider)의 전화를 한 통 받았다. 통화 직후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국 뉴욕으로 날아와 브루클린의 블루보틀과 로스팅 공장 등을 둘러본 슈나이더는 미한을 네슬레 본사가 있는 제네바의 호수로 초대했다. 당시 미한은 블루보틀을 팔 생각이 없었고 그저 초대에 응한 것뿐이었지만, 슈나이더의 블루보틀에 대한 애정을 느끼고 생각을 바꿨다. 미한은 “밥 로스의 풍경화 같은 제네바 호수 앞에서 매각을 결정했다”며 “네슬레가 우리의 정체성을 온전히 지켜 준다는 약속을 했고, 슈나이더의 노력에 매료당했다”고 말했다.[3]

네슬레 정도로 큰 회사라면 블루보틀 같은 작은 회사 정도는 직접 만들 수 있을 텐데 왜 500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지불하고 인수를 했을까. 이에 대해 카미요 그레코(Camillo Greco) JP모건 글로벌 컨슈머 부문 대표는 “블루보틀에 가는 것은 단순한 카페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스튜디오에 가는 것과 같다”며 “네슬레는 모든 것을 갖고 있지만 마니아들을 유혹할 만한 프리미엄 틈새 브랜드가 없다”고 분석했다.

사실 블루보틀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 자산과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5000억 원이라는 금액도 작아 보인다. 네슬레는 전 세계에 산지 소싱(sourcing), 물류, 유통, 판매망은 물론 한국의 롯데와 같은 국가별 로컬 대기업과의 제휴망을 갖추고 있다. 이들에게 유일하게 부족한 것이 바로 브랜드다.

나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고객 친화적인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는 브랜드만 갖춘다면 규모의 확장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개인적으로 네슬레의 블루보틀은 캔이나 병에 든 완성품 음료 형태 RTD(Ready to Drink) 시장을 확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미 블루보틀은 캔에 담긴 콜드 브루 커피와 종이 팩에 담긴 시그니처 메뉴 뉴올리언즈 등 RTD 음료를 판매하고 있다. 이러한 완제품 형태가 제품의 퀄리티를 유지하면서 확산하기 용이하다. 한국 블루보틀이 대표 이사 내정자의 선정 이유를 “한국 네슬레에서 영업부터 물류까지 두루 거친 전문가”로 설명한 것 또한 핵심 사업을 스토어 기반이 아닌 제품 유통으로 볼 수 있다는 근거다.[4]

블루보틀에 있어 매장은 브랜드 거점이다. 매출을 높이는 것보다 플래그숍으로서 브랜드를 알리는 마케팅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네슬레 인수 이전과 같은 느린 속도로 출점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블루보틀은 2017년 9월에 인수가 발표된 이후 3개월간 미국 내에서만 6개의 매장을 추가로 개설했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만큼 마케팅 용도의 거점을 늘리면서 동시에 RTD, 머그, 드리퍼 등 제품 판매를 더욱 빠르게 확장할 것으로 보인다.

네슬레의 히트 상품인 캡슐 커피 브랜드 네스프레소와 같은 블루보틀 캡슐 커피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블루보틀 스페셜 에디션 네스프레소 머신이나 블루보틀 시그니처 원두를 활용한 캡슐 커피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2018년 2월 네슬레는 국내에 센트리퓨전(Centrifusion) 회전 추출이라는 혁신적인 추출 방식의 캡슐 커피 머신 네스프레소 버츄오를 출시했다. 1분에 최대 7000번 회전하며 커피를 추출한다는 이 기술은 커피 캡슐의 바코드를 읽어 최적의 방식으로 추출된다고 한다. 이러한 신기술과 블루보틀의 결합은 기대 이상의 시너지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창업자 프리먼이 캡슐 커피를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는 것이다. 프리먼은 2016년 저술한 책 《블루보틀 크래프트 오브 커피(The Blue Bottle Craft of Coffee)》에서 캡슐 커피를 “지옥에서도 특별석으로 배정해야 할 커피”라 표현하면서 캡슐 쓰레기가 많이 나오고 맛은 정말 형편없다고 혹평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해에 그 캡슐 커피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네스프레소의 모기업에 인수되었으니 아이로니컬하다. 어쩌면 블루보틀 캡슐 커피 출시 여부가 블루보틀의 장인 정신이 유지되는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지도 모르겠다.

 

전문성의 시대

 
커피 산업의 세 번째 물결이 일면서, 커피는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울 수 있게 되었다. 스타벅스로 대표되는 두 번째 물결은 여러 원두를 섞어서 강하게 로스팅하는 방식으로, 균일한 맛을 내면서 유통 기한이 길다는 장점이 있지만 원두 본연의 맛을 내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로스팅하기 전의 커피 열매는 각각의 산지, 품종, 로스팅 방식 등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내는 살아 있는 과일이다. 그 자체의 개성을 살린 맛을 추구하는 제3의 물결은 커피 본연의 맛, 커피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본격화했다. 가공 방식에 따른 맛과 품질의 변화, 커피 농가와 공정 무역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각 원두가 가진 맛의 특성을 어떻게 로스팅하고 추출해 한 잔의 커피로 만들지를 연구하고 그 결과물을 고객에게 선보여야 하는 시대다. 이러한 움직임의 선두에 서 있던 곳이 스페셜티 커피의 3대 브랜드로 불리는 인텔리젠시아, 스텀프타운, 블루보틀이다. 장인과 같은 자세로 커피를 대하는 이들이 보여 준 커피의 맛과 문화적 경험은 이전과 전혀 다른 것이었고, 고객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예외 없이 모두 작은 로스터 또는 카페로 시작한, 자영업자였던 이들은 규모는 작지만 원두 생산지, 스페셜티 생두 수입, 로스팅 등의 모든 과정에 직접 참여하여 품질을 관리했다. 또한 에스프레소뿐 아니라 핸드 드립, 콜드 브루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추출한 다양한 커피를 실험하듯 연구하고 그렇게 찾아낸 색다른 커피를 제공했다. 스타벅스가 커피의 범주를 벗어나 스무디 음료 프라푸치노, 차 음료 티바나, 탄산음료 피지오 등 다양한 종류의 음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확장했다면, 제3의 물결을 대표하는 브랜드들은 어디까지나 커피라는 범주 안에서 다양한 도구와 방법을 사용하여 커피의 경험을 확장하려 한다.

커피 산업의 제3의 물결의 본질은 ‘전문가가 좋은 재료를 가지고 개성을 살려서 제조한 것’이다. 이는 커피에만 해당하는 흐름은 아니다. 좋은 품질로 전문가가 만드는 제품에 대한 선호는 식음료 시장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이다. 개인 셰프들의 레스토랑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유기농 식자재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으며 제품 본연의 맛을 살리는 음식이 주목받고 있다. 소비자들은 개성을 가진 스페셜티 커피처럼 각기 다른 맛을 가진 크래프트 맥주, 블렌딩하지 않은 싱글 몰트 위스키, 전문성을 가진 셰프 개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열광하고 있다.

 

강력한 경쟁자들

 
스페셜티 커피의 선구자 인텔리젠시아

스페셜티 커피 3대 브랜드 중 가장 먼저 창업한 인텔리젠시아는 1995년 더그 젤(Doug Zell)이 시카고 레이크뷰(Lake View)의 한적한 거리에 설립한 작은 로스터리 카페로 시작했다. 창업 이유는 단순했다. “신선한 원두를 직접 로스팅해서 제대로 된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맛있는 커피를 위한 집착에 가까운 열정은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생산자와의 유대를 통한 커피 산업 구조의 혁신까지 이어진 것이다.

인텔리젠시아라는 이름은 인텔리겐차라는 러시아어에서 따온 것으로 지식인, 지식 계급을 뜻하는 말이다. 인텔리젠시아는 이름 그대로 커피와 관련된 모든 영역에서 진보적인 행보를 보여 왔다. 대부분의 로스터가 강배전으로 강한 맛을 내는 다크 로스팅 방식을 고수해 왔는데 이 경우 생두가 가진 개성이 사라지게 된다. 이에 싫증을 느낀 사람들은 보다 가볍게 로스팅해 생두가 가진 고유의 맛을 살리는 방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젤은 원두를 다른 카페로 납품하는 도매 서비스를 시작했다. 오직 원두의 품질에만 집중할 수 있는 이러한 방식으로 인텔리젠시아의 원두는 점점 많은 카페로 팔려 나갔다.

인텔리젠시아는 중간 무역상 없이 직접 산지와 거래하는 다이렉트 트레이드(direct trade)로 원두의 재배 단계부터 모든 과정을 관리한다. 이는 기존 산업의 구조를 파괴하는 일이었다. 처음 산지와 계약을 맺고 실제 수입을 하기까지 5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석유에 이어 전 세계 무역 거래량의 두 번째를 차지하는 품목이자 가격 결정 과정에서 투기 세력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는 커피 시장에서 산업의 유통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이로써 인텔리젠시아는 생산자들이 높은 가격에 커피를 팔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스텀프타운 커피

스텀프타운(Stumptown Coffee Roasters)은 ‘힙스터의 성지’로 불리는 오리건주 포틀랜드(Portland)에서 시작했다. 규모는 작지만 한적하고 여유로운 작은 시골 마을 느낌을 간직한 포틀랜드는 개성이 강하고 존재감 있는 매력적인 도시다. 이 곳 사람들은 타인의 삶에 신경 쓰기보다는 자신의 삶과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경쟁보다는 협력을 먼저 생각하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다. 이런 도시 분위기 때문인지 킨포크, 에이스 호텔, 그리고 스텀프타운처럼 강한 개성을 가진 브랜드들이 탄생했다.

1999년 설립된 스텀프타운은 스페셜티 커피 원두를 차가운 물로 추출한 콜드 브루 커피로 특히 유명하다. 콜드 브루 커피는 에스프레소나 드립 커피에 비해 맛이 유지되는 상미(賞味) 기한이 길어 유통하기에 좋다. 스텀프타운은 2012년부터는 병에 담은 제품을 출시하여 대형 마트와 레스토랑에 납품하고 있다. 매장에서도 캔, 병, 팩 등 다양한 종류의 용기에 담긴 콜드 브루 커피를 구매할 수 있다. 커피가 담긴 병은 짙은 갈색에 크기도 큰 편인데 블루보틀의 깔끔하고 밝은 이미지와 대비된다. 스텀프타운의 콜드 브루 병 음료는 남성을 타깃으로 하는데, 흑맥주와 같은 이미지를 주기 위해 빈티지풍의 짙은 갈색 병에 담았다고 한다. 마치 불에 그을린 듯한 느낌의 진한 커피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스텀프타운은 단순함의 정점을 보여 주는 블루보틀과는 매장의 분위기, 디자인, 직원들의 자유로운 응대 등 많은 부분이 다르다. 블루보틀 커피의 직원들이 동선을 최소화하여 절제된 동작으로 예술품을 만드는 장인의 느낌을 제공한다면 스텀프타운은 조금은 거칠고 자유로운 느낌이다. 물론 그렇다고 스텀프타운이 커피에 대해서도 그러한 태도를 갖는 것은 아니다. 스텀프타운의 창업자 듀안 소렌슨(Duane Sorenson)은 다른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의 창업자들처럼 맨손으로 시작해서 로스팅, 도매, 점포 등 모든 일을 직접 하면서 브랜드를 일궈 왔다. 지금도 원두 납품을 요청받으면 그 가게가 스페셜티 커피를 제대로 다루는지 직접 확인한 후에야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텀프타운의 시그니처 로고는 말편자이고, 공식 로고는 말편자 사이에 산이 있는 모양이다. 포틀랜드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스텀프타운이라는 말은 나무 그루터기라는 뜻이며 포틀랜드의 마을 대부분이 숲과 나무에 둘러싸여 있어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세계 커피 전쟁

 
2015년 10월, 독립적인 개성을 유지하며 힙스터들의 사랑을 받았던 스텀프타운과 인텔리젠시아가 거의 동시에 미국의 전통 있는 커피 브랜드 피츠 커피(Peet’s Coffee)에 인수된다. 그런데 그 뒤에는 JAB홀딩스(Joh. A. Benckiser Holdings)라는 거대한 투자 회사가 있다. 독일계 거부 라이만(Reimann) 가문의 투자 회사인 JAB홀딩스는 2013년 세계 커피 2위 업체인 제이컵 다우에 에그버츠(Jacob Douwe Egberts)와 3위 큐릭 그린 마운틴(Keurig Green Mountain)을 인수 합병해 1위와의 격차를 2퍼센트 수준으로 좁히며 커피 시장 장악에 나서고 있다. 1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기업이 바로 네슬레다. JAB홀딩스는 커피와 커피를 취급하는 레스토랑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2015년 큐릭 그린 마운틴을 139억 달러에, 2016년에는 크리스피 크림 도넛을 13억 5000달러에 인수했다. 2017년 5월에는 미국에서 200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베이커리 카페 파네라 브레드(Panera Bread)를 72억 달러에 인수했다. 2017년 11월에는 글로벌 베이커리 브랜드 오봉뺑(Au Bon Pain)을 인수하는 등 최근 몇 년간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외에도 카리브 커피, 피츠 커피, 아인슈타인 베이글 등의 식음료 브랜드들을 인수하여 보유하고 있다. 반면 패션 브랜드인 지미 추(Jimmy Choo), 발리(Bally) 같은 명품 패션 브랜드 자산은 매각하고 있다. JAB홀딩스는 한때 스타벅스에도 인수 의향을 제시했다고 한다. 업계에서는 인수 제안을 거절한 스타벅스가 커피 시장의 치열한 경쟁 속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을 정도로 JAB홀딩스의 영향력은 크다.

커피를 중심으로 수백 조 원의 가치를 보유한 거대 기업들이 경쟁하고 있다. 세계 2위 식품 기업이자 맥심, 맥스웰 같은 브랜드를 앞세워 오랜 기간 커피 사업을 해왔던 크래프트 푸드(Kraft Foods) 역시 경쟁에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2018년 한국에서는 이들 글로벌 브랜드의 각축전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가장 먼저 크래프트 푸드가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국내 브랜드 동서식품을 통해 카페를 열었다. 서울 이태원에 오픈한 맥심 플랜트는 5층짜리 단독 건물 플래그숍으로 스페셜티 커피를 취급한다. 바로 옆에는 역시 3층 단독 건물인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이 있다. 네슬레의 블루보틀 커피도 성수동에 문을 연다. JAB홀딩스의 스텀프타운 국내 진출 전망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한국 시장은 규모는 작지만 트렌드에 민감하고 반응이 빠른 곳으로 꼽힌다. 많은 브랜드들이 한국을 아시아 진출의 테스트 마켓으로 삼는 이유다. 최근 한류 열풍으로 SNS에서 한국 인플루언서들의 영향력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글로벌 마케팅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한국 시장에 진출하여 반응을 살핀 후 중국 같은 큰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이 하나의 전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네슬레, JAB홀딩스, 크래프트 푸드 같은 글로벌 식품 기업들과 연 매출 1조 원을 돌파하며 한국 커피 시장 맹주의 자리에 오른 스타벅스, 훌륭한 토종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들인 뎀셀브즈, 프릳츠, 테라로사 등이 벌일 스페셜티 커피 전쟁의 막이 오르고 있다.
[2]
클라우스 베르너·한스 바이스(손주희 譯), 《나쁜 기업》, 프로메테우스, 2008.
[4]
김보라·김태호, 〈블루보틀, 내년 3월 한국 진출…삼청동에 1호점〉, 《한국경제》, 2017. 12. 4.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