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가짜를 찾아내는 진짜 완벽한 방법
완결

완벽한 가짜를 찾아내는 방법

미술품 위조의 수준이 높아지고 이로 인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소더비는 세계 최고의 위조품 감식 전문가를 고용했다.

제임스 마틴 ⓒJoshua Bright/The Guardian
2015년 겨울, 프랑스 경찰이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의 한 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그림 한 점을 압수했다. 그 이후 널리 알려진 거장의 작품들이 위조품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이 연이어 들려왔다. 압수된 그림은 독일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the Elder)가 그린 〈비너스(Venus)〉였다. 떡갈나무 위에 그린 가로 38센티미터, 세로 25센티미터 크기의 이 유화의 제작 연도는 153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에 리히텐슈타인의 왕자가 약 600만 파운드에 구매한 〈비너스〉는 그의 컬렉션을 공개하는 전시회에서 단연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이 그림은 전시회 카탈로그의 표지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익명으로 경찰에 접수된 제보에 의하면 이 작품은 현대에 만들어진 위조품일 가능성이 있었다.

이 그림은 프랑스의 수집가인 줄리아노 루피니(Giuliano Ruffini)가 시장에 내놓은 것이었다. 이 작품이 압수되면서 앞으로 위작의 물결이 몰아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루피니는 당시 최소 25개의 작품을 팔았고, 작품의 총 판매 가격은 약 1억 7900만 파운드에 달했다. 그 당시 팔렸던 그림들 모두가 위작으로 의심받았고, 특히 크라나흐의 그림을 포함에서 네 개의 작품이 주요 검증 대상이 되었다. 미술사학자인 벤도어 그로브너(Bendor Grosvenor)는 그 작품들이 “지금까지 본 위조품 중에서 가장 뛰어난 수준”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프랑스 경찰의 수사 대상에 올라 있는 루피니는 해당 그림들을 진품으로 속여 시장에 내놓은 사실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아트 뉴스페이퍼(Art Newspaper)〉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수집가이지, 전문가가 아닙니다.”

원본과 다를 바 없는 위조품들의 수준은 시장을 뒤흔들었다. 예로부터 그래왔지만, 오늘날 미술 시장에 걸린 돈의 규모는 무시무시할 만큼 크다. 30년 전, 그림 한 점에 대한 최고 경매가는 1985년에 J. 폴 게티 미술관(J. Paul Getty Museum)이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의 〈동방박사의 예배(Adoration of the Magi)〉를 구입하면서 지불한 1040만 달러였다. 2017년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i)〉가 4억 5000만 달러에 팔린 것은 예외로 간주하더라도, 추상표현주의나 인상주의 작품들도 경매나 비공개 거래를 통해서 아홉 자리(1000억 단위) 금액에 판매되는 경우도 흔하다.

이런 흐름에 따라 전문 위조업자가 되려는 사람도 급증했다. 거장의 작품 하나만 제대로 위조하면 편안히 여생을 보낼 수 있을 만큼의 자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술 발전은 잠재적인 위조꾼들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처럼 사기꾼들의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박물관, 미술관, 경매장 등 예술 관련 기관과 진품과 모조품을 감별해야 하는 전문가들의 위기의식도 커지고 있다.

루피니가 판매한 위작들에 대해서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속였느냐 하는 것이다.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는 16세기의 화가인 오라치오 젠틸레스키(Orazio Gentileschi)가 그린 것으로 여겨지는 작은 유화 한 점을 전시했었다. 강청색의 청금석 조각 위에 전투에 지친 다윗(David)을 그린 이 그림도 현재 위작으로 의심받고 있다. 2011년 소더비(Sotheby's)는 흐릿한 배경 속에 서 있는 한 귀족의 초상화를 프란스 할스(Frans Hals)의 작품이라며 개인 수집가에게 판매했다. 구매자는 이 작품에 850만 파운드를 지불했다. 또한 소더비는 2012년의 경매에서, 16세기의 화가인 파르미자니노(Parmigianino)가 그렸다고 하는 유화 〈성 제롬(Saint Jerome)〉을 84만 2500달러에 팔았다. 카탈로그에는 이 작품이 파르미자니노의 ‘서클(circle)’에서 나온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언급되어 있었다. ‘서클’이라는 말은 이 그림이 파르미자니노의 영향을 받은 화가나, 그의 제자에 의해 그려졌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관용구다. 그러나 해당 카탈로그에는 이 작품이 파르미자니노가 그린 것이라고 믿는 몇몇 전문가의 발언도 함께 인용되어 있었다.

이 작품들은 모두 놀랄 만큼 세밀한 흔적들로 가득했다. 예를 들어서 〈성 제롬〉에서 제롬의 팔에는 수평 방향으로 난 수십 개의 갈라짐을 볼 수 있다. 그런 갈라짐이 수직 방향의 깨끗한 균열과 교차하는 부분도 많았다. 18세기 프랑스의 캔버스에서는 물감이 거미줄처럼 갈라지는 경향이 있고, 플랑드르의 판자에서는 나무껍질같은 갈라짐이 나타난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그림의 패턴은 엉성하게 쌓아놓은 벽돌처럼 보인다. 〈성 제롬〉의 균열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그 그림이 파르미자니노의 작품이라는 것을 의심했던 미술사학자 가운데 한 명인 데이비드 엑서지안(David Ekserdjian) 교수는 그 그림에서 진품을 바라볼 때의 섬뜩함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 섬뜩함이란 학자들이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그들이 미술가에게 가지는 친밀한 느낌이나 수많은 군중 속에서도 친구를 찾아낼 수 있는 능력에 비유한다. “하지만 솔직히 저는 그 작품을 보면서 ‘아, 저건 위작이야’라고 말하진 않았습니다.”

소더비는 예술품을 판매할 때 해당 작품이 위조품으로 판명될 경우 5년 안에 환불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 준다. 환불 조항에는 “속이려는 의도를 가진 현대의 위조품”이라고 대상을 명시하고 있다. “2016년에 할스와 파르미자니노의 작품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기되자 소더비 경매장은 두 작품을 매사추세츠주의 윌리엄스타운에 있는 오라이언 애널리티컬(Orion Analytical)에 보냈다. 이곳은 오라이언(Orion)이 운영하는 보존과학(conservation science)[1] 연구소로, 상주 직원은 제임스 마틴 한 명뿐이었다. 마틴은 FBI가 수사하는 수많은 예술품 위조 사건에 자신의 포렌식(forensic) 기술을 활용하고 있었다. 마틴은 며칠 만에 소더비 측에 보낼 답을 찾아냈다. 할스와 파르미자니노의 작품 모두 가짜라는 것이었다.

할스의 작품에는 17세기 화가가 사용할 수 없었던 합성 색소가 포함되어 있었다. 마찬가지로 〈성 제롬〉에서 마틴은 프탈로시아닌 그린(phthalocyanine green)이라는 성분을 발견했는데, 이것은 파르미자니노가 죽은 지 4세기 뒤에 처음으로 합성된 색소였다. 이 안료는 그림의 여러 부위에서 채취한 21개의 샘플에서 일관되게 나타났다. 지난해 마틴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것은 마치 시체의 맥박을 21번 짚어보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소더비는 두 작품의 구매자 모두에게 금액을 환불해 주었고, 판매자들을 상대로 작품 판매를 통해 얻은 수익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2016년 12월, 작품의 진위와 관련된 스캔들이 예술품 시장에 얼마나 위협적인 것인지 짐작케 하는 일이 일어났다. 소더비가 오라이언 애널리티컬을 전격 인수한 것이다. 이로써 소더비는 자체적으로 예술품 보존 및 분석 부서를 갖춘 최초의 경매장이 되었다. 소더비의 CEO인 태드 스미스(Tad Smith)는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너무도 커져서 회사의 수익을 갉아먹을 정도였다고 말한다. “1, 2년 전부터 수익보고서를 들여다보면 여기저기에서 경고 신호를 볼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합의금으로 발생하는 비용인데, 자주 있는 일도 아니고 횟수도 적어서 통계적으로는 무시할 만한 수준이긴 합니다. 하지만 금액은 엄청나게 비싸죠.” 합의금에 대한 보험비용 역시 상승했다. 스미스는 마틴을 상주시킴으로써 “이제 소더비를 통해 오가는 미술 작품들을 제대로 검사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더 커졌다”고 말한다. 지난해, 마틴은 경매나 비공개 판매에 착수하기 전에 1억 달러 가치 이상의 모든 예술품을 분석했다. 소더비가 그를 영입한 이유에는 부분적으로 보존전문가의 역할도 있기에, 그는 소더비를 오가는 그림과 조각들을 안전하게 보살핀다. 한편으로 마틴은 지난 20년 동안 세계 최고의 미술계 포렌식 탐정으로도 활약해왔다. 그는 수많은 위조 사건을 성공적으로 처리함으로써, 엉터리 작품들이 시장에 밀려 들어오는 걸 막아주는 일종의 방어선 역할을 해왔다.

 

가짜로 드러난 프란츠 할스의 그림

마크 바이스(Mark Weiss)가 소더비에 맡겼던 프란스 할스의 〈신사의 초상〉. 이 작품은 850만 파운드(135억 원)라는 기록적인 가격에 판매되었으나, 가짜로 판명되었다. ⓒSotheby's
소더비가 처음으로 판매한 미술 작품 역시 할스의 그림이었다. 그것은 진품이었으며, 모자를 쓴 신사를 그린 〈검은 옷을 입은 남자(Man in Black)〉라는 제목의 반신 초상화였다. 소더비는 1913년까지 100여 년 동안 주로 책을 다루어왔다. 예술품은 그저 미미한 부업일 뿐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해에 소더비의 파트너 한 명이 회사에 위탁된 할스의 작품을 발견했다. 그는 평소 관행대로 크리스티(Christie)로 전달하는 대신 그것을 직접 경매에 내놓았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치열한 입찰 경쟁 끝에 9000파운드에 판매되었다. 이는 크리스티가 그 작품을 1885년에 약 5파운드에 판매한 이후로 매년 26퍼센트의 수익률이 더해진 가격이었다. 소더비로서는 그림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지난해 그들은 예술품과 보석, 부동산을 모두 합해서 55억 달러어치의 자산을 판매했다.

소더비에게 작품의 진위는 단순히 학술적인 차원의 사안이 아니다. 거기에는 서양미술사에서 오래도록 주장과 반박이 이어져 온 ‘진품이 과연 중요한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만족스러운 답변을 내놓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비평가인 얼라인 사리넨(Aline Saarinen)은 언젠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만약 어떤 위작이 너무나도 전문적으로 제작되어서, 심지어 철저한 검사와 신뢰할 수 있는 조사를 마친 후에도 여전히 진위성에 대한 의심의 여지를 남겨 둬야 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진품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만족스러운 미술작품일까, 아닐까?” 일반적으로 이러한 논의는 매번 같은 지점에서 멈춘다. 물론 진위 여부는 중요하다. 렘브란트(Rembrandt)의 위작을 진품인 줄 알고 연구한다면, 화가인 렘브란트 개인만이 아니라 미술의 진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방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이 지닌 철학적인 속성은 이제 재정적인 위기로 대체되었다. 미술 시장이 미술 자체와 동의어가 된 시대에 작품의 진위에 대한 관심의 부족은 렘브란트의 진품이 지니는 희소성을 거래하는 시장의 관행에 탈선을 불러올 것이다.

노골적인 위조에 대해서는 잠시 제쳐두고, “진본성(authenticity)”에 대한 논의를 하다 보면 마치 작은 옆문들처럼 아주 혼탁한 의미론의 세계가 열린다. 미술사학자들은 진본성에 있어서 ‘~가 그린(painted by)’, ‘~의 손을 거친(hand of)’, ‘~의 작업실(studio of)’, ‘circle of(~의 서클)’, ‘~의 양식(style of)’, ‘~의 사본(copy of)’ 등 다양한 차원의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각 단계를 거칠 때마다 미술가가 직접 그린 것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진다. 이런 미묘한 차이에 덧칠이라는 쉽지 않은 문제까지 더해지면 사안은 더욱 복잡해진다. 비평가들은 〈살바토르 문디〉를 두고 아주 많이, 그리고 너무도 심하게 재작업을 했기 때문에, 그것은 다 빈치의 그림이라기보다는 복원가들의 작품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의도적인 위작, 잘못된 판정, 형편없는 복원 등이 모두 진본성의 영역을 침범한다. 1977년까지 관장을 포함해 20년 동안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근무했던 토마스 호빙(Thomas Hoving)은 지금까지 최소한 5만 점의 예술품을 검사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인 《거짓 인상(False Impressions)》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세상에 진품만큼이나 거짓 작품들이 많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다른 모든 유형의 범죄자들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위조범들은 그들을 함정에 빠트리려는 검사 기술에 보조를 맞춰왔다. 어떤 그림의 추정 연대와 거기에 사용된 재료의 제작 시기가 불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것은 마틴이 가진 기술의 핵심이다. 그래서 위조범들도 재료를 선정하는 데 더욱 엄격하게 주의를 기울인다. 예를 들면 그들은 위조하고자 하는 그림과 같은 연대에 만들어진 가구에서 나무판자를 잘라내 사용한다. 물론 이런 속임수는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17세기의 사기꾼이었던 테린치오 다 우르비노(Terenzio da Urbino)는 여기저기를 뒤져서 더럽고 오래된 캔버스와 프레임을 찾아냈고, 그것을 깨끗이 씻어서 ‘라파엘’의 작품들로 바꿨다. 또한 위조범들은 자신이 만든 위작이 합격인지를 검증하기 위해 자체적인 테스트를 수행한다. 4500만 달러 상당의 그림들을 위조해서 3년 동안 수감되었던 독일의 화가 볼프강 벨트라키(Wolfgang Beltracchi)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X선 형광(X-ray fluorescence) 검사기 아래에 놓고 화학 성분을 조사했다. 마치 〈스타트렉〉의 페이저(phaser)를 연상시키는 이 휴대형 기기는 현재 수많은 미술 전시회에서 작품을 검사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미술 시장의 과잉에 대해 다룬 《호황의 어두운 면(Dark Side of the Boom)》을 쓴 조지나 애덤(Georgina Adam)은 현재 많은 위조범이 모방할 대상으로 영리하게 20세기의 화가들을 선택하고 있다고 말한다. 20세기 화가들은 지금도 구할 수 있는 물감과 캔버스를 사용했고, 그들의 추상적인 표현이 모방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을 위조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기술력이 필요하지만, 모딜리아니(Modigliani) 같은 화가의 작품은 그렇지 않습니다. 위작을 가려내는 게 더 쉬워졌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녀의 말이다. 2018년 1월에 제노바에서 모딜리아니의 전시회가 열렸는데, 여기에 전시된 21점의 그림들 가운데 20개가 위조품으로 밝혀졌다.

미술 시장으로 밀려오는 자금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작품의 진위를 판정하는 일은 위험하고 난처한 모험이 되었다. 자신이 얼마나 큰 금액을 잃게 될지 알고 있는 수집가들은 작품의 진위에 대한 최종적인 권위자인 학자들과 감정가들이 실수를 저질렀다고 판단하면 서슴없이 그들을 법정에 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들의 명성, 더불어 은행 잔고까지도, 이러한 상황에 휘말려 위축될 것을 우려해 이 게임에서 완전히 발을 빼기 시작했다.

20세기 몇몇 미술가의 유산 집행인들은 한때 진위성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 그 작품을 가장 잘 안다고 여겨지는 전문가들이나 예전의 동료들 또는 친구들로 구성된 인증 위원회를 만들었다. 2007년, 조 사이먼 웰런(Joe Simon-Whelan)이라는 수집가가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작품 인증위원회(Andy Warhol Art Authentication Board)를 고소했다. 위원회가 시장에서 워홀 작품의 희소성을 원한다는 이유로 그가 소유한 워홀의 실크 스크린 작품의 인증을 두 번이나 거부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4년 뒤, 소송비용으로 700만 달러를 소모한 유산 집행인은 위원회를 해산했다. 장 미쉘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키스 해링(Keith Haring),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등 다른 현대 미술가들의 인증위원회도 비슷한 운명을 맞이했다. 비평가인 제리 살츠(Jerry Saltz)는 〈살바토르 문디〉의 어마어마한 가격을 신랄하게 비판한 에세이에서, 미술계에서 개인 감정인(Connoisseur)이라고 부르는 전문가들은 더이상 대중의 인식에 도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그들은 이미 무너지고 있는 제도를 흔들고자 하지 않는다.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하며 가만히 지켜만 보는 세상에서, 수많은 예술품 전문가들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유지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들 위원회의 해체는 진본의 입증이라는 명분에 대한 타격이자, 학계에 대한 시장의 승리로 느껴진다. 뉴욕에서는 학자들이 단지 의견을 표명하는 것만으로 소송당하는 걸 막기 위한 법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일군의 변호사들이 로비를 벌이고 있다. 이처럼 전문가의 의견이 부재한 가운데, 작품의 감정을 신비한 본능이나 직감이 아니라 과학적 절차에 의해 도출된 검증 가능한 결과물로 제시하는 마틴의 역량은 더욱 높은 가치를 갖게 된다.

키가 크고 어깨가 앙상한 마틴은 나긋하게 말하지만 그의 목소리에서는 어떤 힘이 느껴진다. 그는 완벽한 너드(nerd)이다. 마틴이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마치 푸리에 분광 적외선(FTIR)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회화 보존전문가(paintings conservator) 교육을 받았지만, 지금은 그것을 분석하는 일을 하고 있다. 즉, 그림의 화학 성분을 골라내고, 안료와 결합제(binder)를 조사하며, 겹겹이 칠해진 색상들을 들여다본다. 그림에 사용된 재료들로부터, 그는 그것이 언제 만들어질 수 있는지 또는 만들어질 수 없는지에 대한 핵심적인 세부 사항을 추적할 수 있다.

미술 보존은 지원자들로 북적이는 분야는 아니다. 이 분야에서 미국 최초로 영리 목적의 연구소를 설립한 제임스 마틴은 지난 25년 동안 거의 모든 굵직한 위조 사건을 자문해왔고, FBI를 비롯한 수사 기관과도 자주 협업했다. 그는 현재 미술계 최고의 포렌식 탐정으로 소개된다. 이러한 찬사는 수십 건의 예술품 거래를 주관했던 뉴욕의 존 케이힐(John Cahill) 변호사 같은 사람뿐만 아니라,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서도 나올 정도다. 케이힐 변호사는 마틴을 두고 “단연코 이 업계의 최고”라고 말한다. 독일의 위조 화가인 벨트라키는 체포된 이후에 경찰과 검찰이 수집한 다양한 연구 내용을 보았다. 그는 마틴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보고서에는 가장 정확한 결과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의 보고서는 중립적이었고, 거기에 비현실적인 추측은 없었습니다.” 소더비는 마틴을 자체 인력으로 영입함으로써 작품이 화려하고 값비싼 구경거리로 전락하기 전에 그것의 진위를 가려낼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술계가 그를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에 가장 귀중한 인재를 울타리 안에 가두었다는 느낌도 든다.

 

세계 최고의 미술품 감별사, 제임스 마틴


마틴은 지난해 대부분을 맨해튼에 있는 소더비 본사 5층의 기존에 사진 스튜디오가 있던 자리에 새로운 연구소를 꾸리면서 보냈다. 조만간 그는 런던에도 이러한 시설을 하나 열게 될 예정이다. 그곳은 비틀즈가 〈BBC〉를 위해 “A Taste of Honey”를 녹음했던 건물 인근에 있다. 하나의 커다란 방으로 된 뉴욕의 연구소는 마치 치과 진료소처럼 하얗고 무균 상태이다. 많은 캐비닛이 아직 비어있었고, 책상 위에는 마틴이 올려놓은 빨간색 덴타인 파이어(Dentyne Fire) 껌 한 팩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연구소 바깥의 납으로 안쪽을 덧댄 이중문 위에는 경고등이 있었다. 경고등에 불이 들어와 있다면 그것은 거대한 X선 형광 기계가 작동하고 있으니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는 의미다.

2월 중순의 어느 금요일, 방에는 오직 두 개의 예술 작품만이 놓여 있었다. 작업대 위에는 조각이 새겨진 나무 의자가 놓여 있었고, 스탠드 위에는 그림 한 점이 놓여 있었다. 기밀 유지를 위해 “19세기 말 미국 작품”이라고만 설명하겠다. 연구소에 그림이 도착하면 가장 먼저 흰색의 밝은 불빛 아래에서 육안으로 검사를 한다. 그런 다음에 램프를 한쪽으로 가져가 불빛이 그림의 표면을 비스듬히 비추게 해서 복원된 부분과 변경된 부분을 확인한다. 다음 단계는 연구소 내부의 캔버스로 덮여 있는 공간에서 진행된다. 그곳에서 자외선과 적외선으로 촬영하고, 그다음은 X선을 통해서 그림의 화학 성분을 밝혀낸다.

마틴은 두 명의 동료가 있다. 그중 한 명이 컴퓨터 화면을 통해서 그 이미지들을 쭉 훑어보았다. 적외선 아래에서 그림의 갈색과 노란색, 녹색이 모두 회색으로 변했지만, 유령 같은 밑그림은 보이지 않았다. 밑그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작품의 진위에 대한 무언가를 암시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단지 고려해야 할 추가적인 정보일 뿐이다. X선 형광 장치가 납(lead)을 찾아낼 수 있도록 매핑(mapping)된 그림은 빛이 바래고 짙은 녹(rust)으로 얼룩져 보였다. 복원 전문가들이 납이 첨가되지 않은 현대의 페인트로 덧칠했을 것으로 보이는 부위에서는 줄무늬가 나타났다. 장치를 칼슘으로 매핑하자, 복원 전문가들이 탄산칼슘 충전재(filler)로 그림을 복원한 부위에 황록색의 얼룩이 나타났다.

모든 작품이 이러한 일종의 외과수술 같은 검사 과정을 거칠 필요는 없다. 오라이언에서 일하던 시절 마틴은 적외선을 비춰 위조범이 작업용 안내선으로 그렸을 것으로 보이는 희미한 격자무늬를 발견하면서 그것이 모딜리아니의 위작임을 밝혀냈었다. 만약 마틴이 그림을 건드려야 한다면, 그는 그것을 입체현미경 아래에 놓고, 두 개의 렌즈로 들여다보면서 수술용 메스로 물감을 아주 조금 떼어낼 것이다. 그는 다양한 색깔의 페인트 덩어리들을 담아 놓은 상자 안에서 합성 색소인 프탈로시아닌 블루(phthalocyanine blue) 샘플을 꺼내 그 과정을 직접 시연했다. 그는 말할 때와 마찬가지로 안정되고 신중한 태도로 업무에 집중했다. 그는 사람의 머리카락 단면보다 작은 입자 하나를 집어 부드럽게 떼어냈고, 작고 얇은 직사각형의 금속 조각 위로 가져갔다. 그리고 두 개의 작은 다이아몬드 사이에 그것을 고정했다.

그는 찡그린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 일을 하기 전에는 커피를 많이 마시면 안 됩니다.”
마틴의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16세기의 그림 표면에 있는 균열들 ⓒJoshua Bright/The Guardian
그런 다음 금속판을 하나의 슬라이드처럼 푸리에 분광 적외선 현미경으로 가져갔다. 분광기(spectrometer)가 안료의 얼룩들에 적외선을 쏟아부었다. 컴퓨터가 빛의 특성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정리된 스펙트럼 그래프로 보여주었다. 마틴은 이러한 스펙트럼을 어찌나 많이 봐 왔던지 다양한 색소들이 만들어내는 패턴들을 금방 알아보았다. 물론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컴퓨터가 다른 화학물질의 스펙트럼 패턴이 저장된 데이터베이스에서 가장 근접한 물질을 찾아서 마틴에게 알려줄 것이었다. 결국 이 샘플은 프탈로시아닌 블루라는 결과가 나왔다.

시스템을 통해 과거에 위조된 경우가 많은 화가나 의심스러울 만큼 긴 과학적 분석 리포트가 첨부된 작품들은 따로 분류된다. 그래서 소더비를 거쳐 가는 수만 점의 작품 중에 단지 몇 퍼센트만이 이곳 연구소에 전달된다. 마틴은 이런 작품들을 증상을 보이는 환자라고 여긴다. 그는 검진에 나선 의사처럼 소더비에서 판매를 앞둔 작품들을 둘러보며 휴대용 적외선 카메라로 모든 작품을 확인한다. 지난해 그는 다수의 작품이 시장에 나가는 것을 막았고, 그로써 판매 후에 제기될 수 있는 분쟁을 사전에 방지했다. 700만 달러 상당의 가치를 지닌 그림을 판매 대상에서 제외한 적도 있었다. 복원 전문가가 그림에 지나칠 정도로 덧칠을 했다는 것을 그가 밝혀냈기 때문이었다. “경매에 내놨다고 해도 감정인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말했을 겁니다. 그래서 팔지 않았습니다.” 그가 말했다. 

마틴이 수행하는 고된 작업은 미학과 기술을 분리하는 것이다. 위대한 명성이나 뛰어난 아름다움을 가진 미술작품을 기본적인 입자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일이다. 이런 접근은 마틴이 미술을 순수한 물질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는 누구보다 그 예술가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작품의 물질성에 대해서, 안료의 화학적 성질에 대해서, 캔버스의 물리적 특성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두 번째 사람이 된다. 그가 분석하는 미술은 독특하면서도 번뜩이는 영감으로부터 가치를 획득한다. 반면에 그의 재능은 오히려 위조범들과 더욱 공통점이 많다. 화려하진 않지만 근면한 그의 능력이 빛을 발한다. 다시 말해,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한 번에 하나씩 임무를 수행하며, 단 하나의 분자도 놓치지 않고, 작품이 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이상으로는 결론을 내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미술품 감별의 최고 권위자가 되기까지


마틴이 13살 때 그의 부친은 현미경과 화학실험 세트를 그에게 선물하고 미술 교습도 받게 해주었다. 그의 미래에 대한 훌륭한 전조인 셈이다. 그는 그것들을 모두 다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미술에 매료되었다. 그의 가족은 볼티모어에 살았는데, 그들이 워싱턴DC에 방문할 때면 마틴은 가족들이 수도를 돌아다니는 동안 언제나 국립자연사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내며 실물 모형의 그림을 그렸다. 그의 부친은 육군 정보부에서 일했다. “어린 시절에 저는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공항에 가면 어떤 사람이 스파이일까 추측해보곤 했던 게 기억납니다.” 마틴의 말이다. 그는 탐정소설들을 탐독했고, 지금도 여전히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퍼트리샤 콘웰(Patricia Cornwell)이 법의학자인 케이 스카페타(Kay Scarpetta)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을 좋아한다. “우리는 둘 다 자신의 과거를 말할 수 없는 환자들을 검사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이다.

이 세계가 살짝 비틀린 다른 세상이었다면, 마틴은 어쩌면 직접 위조범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10대 후반에 미술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는 학생들에게 직접 안료를 갈고 캔버스를 펴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는 실습을 위해서 볼티모어 미술관에 이젤(easel)을 하나 세우고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따라 그렸다. 그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는데, 한번은 윌리엄 메리트 체이스(William Merritt Chase)의 〈깨진 항아리(Broken Jug)〉를 베낀 그림을 들고 나가려는 그를 미술관장이 발견하고는 그림을 창고로 돌려놓으려는 것인지 물었을 정도였다.

“저는 기술적으로 뛰어나긴 했지만, 대부분의 예술품 위조범들이 그렇듯이, 위대한 작가들처럼 창의적인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내지는 못했습니다.” 마틴의 말이다. 그는 자신이 의학 교재의 삽화를 그리는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 델라웨어의 윈터더 미술관(Winterthur Museum)에 미술작품 보존 프로그램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가 여기에 제출한 포트폴리오에는 다른 화가들뿐만 아니라 위에서 말했던 체이스의 작품을 따라 그린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윈터더에서 그를 가르쳤던 리처드 울버스(Richard Wolbers)는 그의 솜씨가 너무나도 뛰어났던 나머지 “우리 모두 까무러칠 정도”였다고 말한다. 실제로 복제 솜씨가 너무나도 뛰어나서 하마터면 접수를 거절당할 뻔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위원회에서는 제가 보존전문가로 훈련받고 과학적인 지식도 모두 배우고 나면 전문 위조범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다고 합니다.”

윈터더에서의 과정을 마친 후, 마틴은 매사추세츠의 윌리엄스타운에 있는 클라크 아트 인스티튜트(Clark Art Institute)라는 미술관에 채용되었다. 몇 년 후 그는 이 미술관의 첫 번째 보존기술 연구소를 세우고, 직접 구입하거나 인근 대학의 화학과에서 얻어낸 장비들로 가득 채웠다. 1990년 당시만 하더라도 현미경, 분광기, 적외선 카메라 등의 분석 장비들은 덩치가 크고 비쌌으며, 조작하기도 어려웠다. 마틴은 그런 연구소를 자체적으로 가진 미술관은 거의 없었다고 말한다. “구겐하임 미술관이나 브루클린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MoMA),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미술관 중 어느 곳도 그런 시설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런 미술관에 소속된 보존전문가들이 어떤 그림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가장 먼저 의존하는 것은 자신의 촉감이었다. “캔버스 위를 면봉으로 쓸어내며 소리를 듣거나, 광택제를 쓸어낼 때 당겨지는 힘을 느끼는 겁니다.” 마틴의 말이다. 보존 작업을 하는 대부분의 부서는 현미경을 갖고 있었고, X레이 기계를 보유한 곳도 있었다. 그러나 푸리에 분광 적외선 현미경이라든가, 전자현미경 같은 더 본격적인 기술이 필요하다면, 그들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나 그런 장비를 보유한 대학교에 의지해야 했다. 또 그렇게 하더라도, 그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했다. “작은 미술관들은 의지할 곳이 전혀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X레이를 찍기 위해서 그림을 수의사에게 들고 갔을 정도입니다.”

마틴은 그렇게 자체적인 장비들을 보유하지 못한 보존전문가들을 돕기 위해 연구소를 차렸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한다. “만약 그림에서 광택제를 없애고 싶은데 너무 강한 용제를 사용해서 그림을 손상하지 않고 싶을 때, 사람들은 제게 샘플을 보냈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 폴리우레탄이라서 벗겨내지 못할 겁니다’, 혹은 ‘이건 셸락(shellac)이라서 알코올을 사용하면 됩니다’라고 말이죠.” 만약 풍경 속의 하늘이 이상해서 후대에 작업자가 덧칠한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면, 작품의 단면을 미세하게 샘플로 떼어내서 마틴에게 우편으로 보낼 수 있었다. 그러면 그가 그 샘플을 현미경으로 검사했다. “우리는 단면에서 여러 개의 층을 볼 수 있습니다. 광택제, 광택제, 광택제, 그런 다음 파란 하늘, 다시 광택제, 그리고 다시 하늘, 이런 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위쪽에 있는 파란색 층이 덧칠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미술작품은 그 물질 안에 자신의 역사를 담고 있다. 그래서 마틴은 필연적으로 작품의 진위 감별에 대한 권위자가 되었다. 유럽과 미국에서 민간이 소유한 미술 연구소의 대부분이 지난 10년 사이에 설립된 것이었는데, 그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라, 그즈음 전 세계 백만장자들이 미술이 없는 삶이 얼마나 공허한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에는 클라크 미술관에서, 2000년 이후에는 직접 설립한 오라이언에 있었던 마틴은 수집가들과 미술상인들이 의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원이었다.
뉴욕의 소더비 연구소에서 입체 형광 현미경을 사용하고 있는 제임스 마틴 ⓒJoshua Bright/The Guardian
그 시기에 그가 경험한 일 중에는 엘모어 레너드(Elmore Leonard)[2]의 바로크풍 장르 소설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이야기들도 있었다. 마틴은 당시의 일들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는 자신의 일이 이목을 끄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기본적으로 항상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다. 한 번은 텔아비브에서 의심스러워 보이는 두 명의 신사가 온 적이 있었다. 그들은 건축가들이 들고 다니는 화구통에서 두 점의 그림을 꺼내더니, 그것을 마치 양탄자처럼 흔들어 펼쳤다. 그들은 그것이 모딜리아니의 작품이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둘 다 모딜리아니의 진품이 아니었다. 또 다른 의뢰인은 마틴에게 경매장에서 입찰에 참여하는 것처럼 하면서 실제 작품을 살펴봐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 다음, 그는 한 창고에서 그 그림과 “끔찍할 정도로 똑같은 복제품”을 검사한 일도 있었다. 그 의뢰인은 위조품이 진짜 작품과 얼마나 비슷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었던 것이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현관 근처에 두 마리 사나운 개가 쇠사슬에 묶여 있는 주택에 갔는데, 그곳에는 도난당한 중국의 조각품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마틴에게 비행기를 타고 은밀한 장소로 날아와달라고 요청한 수집가도 있었다. 그곳에 도착하는 순간 보안요원들이 그를 차에 태워 멕시코의 오래된 비석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약 5000만 달러로 추정되는 돌조각을 검사할 예정이었다. 그곳으로 떠나기 전날 마틴은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그 수집가에 대해 구글로 찾아보았다. 그는 불법무기 소지 혐의로 연방 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다음 날 아침, 마틴은 그 수집가에게 전화를 걸어서 의뢰를 거절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수집가가 말했다.

“아, 살인 사건에 대한 기사를 읽은 거요?”

마틴이 말했다. “아니요. 그런데 살인사건이라고요?”

알고 보니, 그 수집가는 멕시코의 비석과 관련해서 두 명이 살해된 사건에 연루되어 있었다. 마틴은 다음날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았다.

FBI가 마틴을 처음 찾아온 것은 1994년이었다. 미국 남부의 흑인 소작농들의 그림을 자주 그렸던 19세기 화가 윌리엄 에이킨 워커(William Aiken Walker)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의심스러운’ 작품들이 시장에 나온 것이었다. 마틴은 말한다. “그 작품들은 작은 시골의 경매장에서 5000달러나 10000달러 정도에 판매될 예정이었습니다. 굳이 비싼 비용을 들여서 분석을 의뢰하기에는 너무 저렴한 가격이었죠.” 마틴은 그 그림들에서 PY3라는 노란색 색소를 샘플로 추출했는데, 그것은 독일에서 제조된 것으로 1940년대 후반까지는 미국의 화가들이 사용할 수 없던 물질이었다. 워커가 죽은 지 수십 년이 지난 뒤 제조된 안료인 것이었다. 마틴은 또한 워커가 연백(lead white) 물감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는데, 반면에 위조범은 아연백(zinc white) 물감을 사용했다. 결국 찰스 헬러(Charles Heller)라는 전직 비타민 판매원이 일련의 위조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형량이 더 낮은 혐의들에 대해서만 유죄가 인정되어 1년간 복역했다.

조금만 더 조사를 했더라면 사기꾼은 아연백 물감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위조범들은 기술 저널과 연구 사례를 찾아보면서 전문가들이 무엇을 찾아내려 하는지 배우고 연구한다. 마틴은 1932년에 그려졌다고 하는 약 3.5제곱미터 크기의 그림의 조사를 의뢰받았던 일을 떠올렸다. 첫 번째 조사에서는 아무런 잘못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작품은 소유권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출처가 불분명했기 때문에 그는 현미경으로 다시 한번 검사를 했다. 그는 온종일, 눈이 마를 때까지 동전 크기 단위로 그림을 훑어보았다. 그림 안에 먼지나 머리카락, 아니면 곤충의 날개 같은 것이 박혀 있지 않을까? 먼지가 일부러 더럽힌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가? 마침내 그는 푸른 반점 속에 박혀 있는 가는 섬유를 하나 찾아냈다. 그는 그것을 메스로 잘라낸 다음, 적외선 분광기(infrared spectroscopy)로 검사했다. 그 섬유는 폴리프로필렌으로 밝혀졌다. 폴리프로필렌은 1951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이걸 그리던 시대에 누군가 모조 스웨터라도 착용했던 걸까?

마틴은 그가 가르치는 이틀 과정의 강좌에서 이 사례를 언급했었다. 그는 작년에 〈위조범(Faussaire)〉이라는 프랑스 소설을 읽었는데, 거기에서 위조범들이 참고할 만한 지식을 아주 많이 발견했다. 예를 들어 한 인물이 다른 이에게 이렇게 조언을 한다. “만약 고대의 납 성분을 구하고 싶다면 로마의 오래된 건물에서 그걸 조금 가져오면 된다네.” 경계해야 할 사항도 빼놓지 않는다. “옷에서 나오는 미세한 입자들을 조심해야 해. 항상 오래된 작업복을 입고 일해야만 한다네. 절대 나일론이나 현대의 앞치마를 입어선 안 돼.” 마틴은 이 소설에서 묘사하는 상세한 내용이 자신의 강연을 참고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모든 강좌와 교육을 중단했다.

범죄의 관점에서 보자면 예술품 위조는 사소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오직 부자들만 강탈하는 로빈 후드의 반쯤 장난 같은 행위보다도 덜 사악해 보이기도 한다. 2010년에 벨트라키가 체포된 이후, 독일의 언론사〈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FAZ)〉는 예술품 위조를 두고 “1600만 유로를 횡령하는 가장 도덕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슈피겔(Der Spiegel)〉은 벨크라치가 부패한 은행가들과는 달리 일반인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범죄에는 피해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마틴은 그러한 피해자들을 자주 만나면서, 그들에게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하기 위한 나름의 부드러운 방식을 만들어냈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마련해 놓았던 돈을 털어서 그림을 구입한 사람들도 만났다. 그는 그들에게 그 작품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려줘야만 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부자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 전부가 걸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전문적인 미술품 감별사의 필요성


예술품 시장이 급성장하고 그와 함께 각종 소송도 이어지고 있다. 미술작품의 진위에 대한 요청을 받은 사람에게는 거센 압력이 가해진다. 이와 관련해서 마틴이 겪었던 가장 가혹한 경험은 노들러(Knoedler) 갤러리의 운명을 둘러싸고 벌어진 치열한 법적 공방이었다. 노들러는 한때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갤러리였다. 2011년에 마틴은 노들러 측이 1700만 달러에 판매했던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작품이 가짜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결국 갤러리는 며칠 만에 문을 닫았다.

폴록의 위작은 거대한 스캔들의 시작에 불과했다. 노들러는 15년간 대표적인 현대 화가들의 작품 40점을 판매했고, 그 과정에서 약 8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빌럼 데 쿠닝(Willem de Kooning), 마크 로스코(Mark Rothko), 리처드 디벤콘(Richard Diebenkorn), 로버트 마더웰(Robert Motherwell) 등이 있었다. 이 작품들은 출처가 모호했고, 결국 의혹이 불거졌다. 10명의 구매자들이 노들러와 그곳의 관장인 앤 프리드먼(Ann Freedman)을 고소했다. 해당 소송은 단 한 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합의로 종결되었다. 사건을 조사하던 수사관들은 이 위작들이 2013년에 당시 73세였던 중국인 이민자가 퀸즈에 있는 그의 차고에서 그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한 예술품 중개인이 그걸 노들러에 전달한 것이었는데, 결국 그 중개인은 재판에서 유죄 판정을 받았다. 노들러의 임원들은 그것이 사기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항변했고, 판매하기 전에 학자들의 검증을 받았다고 말했다.

몇 년 동안 진행된 이 소송 중에서 적어도 4건의 원고가 마틴을 고용해 자신들이 구입한 그림을 조사하도록 했다. 마틴은 그 작품들이 모두 위작이라고 판단했다. 830만 달러에 팔린, 로스코가 1956년에 그렸다고 하는 작품은 캔버스와 유화물감 사이에 흰색 물감으로 바탕칠이 되어 있는데, 그 시기에 로스코는 바탕칠 용도로 투명한 색을 사용했다. 폴록의 것으로 보이는 작품에서는 그걸 그린 사람이 화가의 서명을 “Pollok”으로 잘못 표기하는 실수를 범했다. 더 나아가서 마틴은 그가 분석한 노들러의 그림 16점에서 같은 흰색 바탕칠을 찾아냈고, 시대에 맞지 않는 안료를 사용한 흔적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마더웰과 데 쿠닝, 로스코가 모두 시대를 뛰어넘어서, 어느 술집에서 만난 다음, 같은 물감을 서로 주고받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2016년 뉴욕에서 열린 재판에서 마크 로스코의 위작이 법정에 공개되고 있다. ⓒAP
결국 마틴이 옳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FBI가 퀸즈의 차고를 급습했고, 그곳에서 흰색 물감을 발견했다. 가짜 로스코 작품의 캔버스에 칠해져 있던 안료였다. 그러나 그전까지 재판 과정은 매우 험난했다. 노들러는 법정에서 마틴을 공격할 수 있는 전문가를 모집했다. “그들은 그가 우발적이든 고의적이든 증거를 훼손했다고 주장했고, 복수심에 불타 그를 쫓아다녔습니다.” 마틴의 의뢰인을 변호했던 존 케이힐 변호사의 말이다. 노들러의 변호인단은 마틴에게 여섯 차례나 소환장을 보냈고, 사건과 연관된 8000개 이상의 문서와 이메일을 요구해 받아갔다. 그는 전문가 자격으로 증인석에 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변호해야 했다. 그의 검증이 세심하고 객관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의 인성 자체에 대해서 말이다.

노들러 재판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마틴의 얼굴에는 공포가 깃들었다. “그는 진정한 보이스카우트입니다. 그에게는 진실성이 엄청나게 중요하고, 그래서 그는 더욱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케이힐 변호사의 말이다. 그들의 공격은 마틴의 경력 전체를 부정하려는 시도였다. 하버드대학교의 스트라우스 보존기술연구센터(Straus Center for Conservation and Technical Studies)를 책임지고 있는 나라얀 칸데카르(Narayan Khandekar)는 이렇게 말한다. “그의 모든 권위는 어느 특정한 편에 속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입장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의 분석 결과에 많은 사람의 어마어마한 돈이 걸려 있기 때문에, 그는 엄청난 부담감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일에 있어서 매우 용맹하게 맞서왔고,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을 해왔습니다.”

마틴은 진실을 추구할 수 있도록 그를 안내해 주는 과학을 언제나 좋아했으며, 그가 찾아낸 객관적인 사실에 반하는 비열한 속임수와 개인적인 비방을 마주할 때면 깊은 상처를 받았다. 2016년, 그의 의뢰인들이 노들러 측과 합의한 이후, 마틴은 다시 원래의 일로 복귀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시는 전문가로서 증언하고 싶지 않았고, 한동안 그림을 그리러 떠나려고 했다. 그림을 그릴 도구는 이미 준비된 상태였다.

그는 말한다. “제게 일어난 일은 초현실적인 것이었습니다. 어떤 과학자도 이런 일을 경험해서는 안 됩니다.” 그해 말 오라이언의 인수에 대해 소더비 측과 협상을 시작했을 때, 마틴은 더 거대한 조직의 품에 안길 준비가 돼 있었다. 그는 이미 판매된 작품에 대한 논쟁에 끼어들기보다 아직 시장에 나오지 않은 작품을 검증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소더비에 있는 그의 책상에는 노들러 소송 당시 법정 안의 자신의 모습을 스케치한 그림 두 장이 핀으로 고정되어 있다. 그가 무엇을 위해 여기에 왔는지 매번 상기하기 위한 것처럼 말이다.

마틴은 대화할 때 투박한 비유를 자주 사용하는데, 그중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비유는 ‘다리 셋 달린 의자(three-legged stool)’였다. 미술작품의 저작자를 판단하는 작업은 감정 평가, 기술적 분석, 출처 확인이라는 세 가지의 요소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는 감정인의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의견이 그의 기술을 보완해준다고 여긴다. 그의 검증 절차는 어떤 그림이 다 빈치 또는 모딜리아니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밝혀낼 수는 있지만,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 그것이 진품이라는 사실은 확인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과학은 학자들의 총명함을 드러내 주는 유용한 도구다. 1932년 베를린에서 열린 재판에서 예술품의 검증에 포렌식 기법이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당시 법정에서는 두 명의 감정인이 33개의 캔버스에 대한 진위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그것들은 모두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그렸다고 알려진 것이었으며, 전부 미술 중개상인 오토 바커(Otto Wacker)가 판매한 그림들이었다. 결국 화학자인 마틴 데 빌트(Martin de Wild)가 그림에서 반 고흐는 절대 사용하지 않았던 합성수지를 찾아내서 그것들이 위작임을 입증했다. 그 이후로 과학은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인간의 판단력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새로운 작품이 발견됐다는 스릴에 여전히 취약하고, 시장의 압력이 거세면 굴복하고 만다. 케이힐의 말에 따르면, 노들러의 소송에서 한 전문가는 로스코의 그림을 그의 다른 작품과 구분할 수 없다고 말했으며, 심지어 로스코의 그림이 위아래가 제대로 걸려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마틴은 다리가 셋 달린 의자를 선호하지만, 조만간 다른 종류의 가구를 떠올려야 할지도 모른다. 모든 분야에서 인문학이 쇠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2016년에 대학입시자격 시험에서 미술사 과목이 완전히 폐지될 뻔했다. 감정인들의 층도 엷어지고 있다. 미술사학자인 벤도어 그로브너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영국 미술계에는 심지어 조지 스터브스(George Stubbs) 같은 주류 화가의 작품에 대해서도 ‘이것이 조지 스터브스의 작품인가, 아닌가’를 물어볼 수 있을 만큼 권위를 가진 인물이 없습니다. 많은 전문가가 최근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들을 대체할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한편 럿거스대학교(Rutgers University)의 연구진은 세세한 붓놀림을 하나씩 살펴보고 비교함으로써 위조 그림을 100퍼센트 정확도로 감별해낼 수 있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개발해 테스트하고 있다. 한쪽 다리는 점점 길어지고 있지만, 다른 다리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의자의 균형이 기울고 있다. 따라서 미술 시장이 정교한 위조품들로 인한 위협을 물리치고자 한다면, 진본성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활발하게 움직이는 거대한 자금을 보전하고 싶다면, 과학이라는 분야에 점점 더 의지해야 할 것이다.

사고실험을 해보면, 과학자들과 감정인들을 모두 속일 수 있는 완벽한 위조품을 만드는 일은 가능하다. 만약 이 악당들이 복제하는 재능이 매우 뛰어나고, 위조하려는 화가의 양식과 주제에 대해서도 해박하다면 말이다. 또한 재료를 조달하는 능력도 매우 뛰어나다면, 어떠한 시대이든 그 시기에 적합한 캔버스와 프레임, 안료와 결합제를 뚝딱 만들어낼 것이다. 위작에 딱 들어맞는 소유권 이력도 만들어낼 수 있다. 지금은 소실되어서 찾을 수 없는 작품의 이름을 붙이거나, 허위 문서를 만들어서 잘 알려진 개인의 소장품이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론적으로 이런 모든 과정이 완벽하게 수행된다면, 그 그림이 가짜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 그림은 모든 면에서 하나의 완전한 예술품이 될 것이다. 가짜로 만들어졌다는 사실 하나만을 제외하곤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위조품이 만들어지는 세상에서는 방사능 먼지나 고양이의 털, 또는 공기 중을 떠돌던 폴리프로필렌 섬유 등 어떠한 형태로든 그림 안에 흔적이 남게 될 것이다.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는 오직 과학자들만이 그것을 밝혀낼 수 있다.
 
[1]
과학적인 기법을 통해서 예술품이나 문화재 등의 보존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위키피디아 참조)
[2]
미국 범죄 소설의 대부 격인 작가이자 펄프 픽션의 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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