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직전의 풍요로운 삶
오늘날의 우리 삶을 표현하자면 냉장고, 서랍장, 신발장, 옷장을 가득 채우고 사는 파산 직전의 빚쟁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손가락 하나로 미국에 있는 물건을 주문할 수도 있는 세상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생산과 소비 사이클이 지구를 망가뜨리고 있고 더 나아가 미래의 자원까지 끌어다 쓰고 있으니 빚쟁이나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미래세대가 누려야 할 환경을 훼손하며 누리는 풍요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글로벌 생태 자국 네트워크(GFN : Global Footprint Network)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소비 수준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나라별 지구 수는 미국은 5개, 한국은 3.5개, 세계 평균으로 는 1.7개가 필요하다고 한다. 매년 지구가 한해 생산할 수 있는 자원의 양을 다 써버린 날을 ‘지구 생태 용량 초과의 날(Earth Overshoot day)’로 공표하고 있는데 2018년 기준 세계 평균이 8월 1일 때 한국은 4월 16일이었다. 매년 15일 씩 앞당겨지고 있다고 하니 그동안 ‘경제 성장’이라고 부르며 성장을 향해서 달려가던 걸음을 멈추고 우리의 발판인 지구의 생존을 고민해봐야 할 시점인 듯하다.
어쩌면 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 산업화와 대량생산일지 모른다.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생산과 소비 그리고 폐기의 분업화가 시작되었다. 자연스럽게 물건을 빨리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싸게 살 수 있게 되었다. 도시에 일자리가 많아지면서 사람들의 일터가 농촌에서 도시로 옮겨졌고 대부분의 사람이 자연 주기와 동떨어진 삶을 살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시사철 농산물이 유통되니 제철이란 의미도 무색해졌다. 농촌에서는 해가 지면 자연스럽게 일과를 마치고 쉬지만, 도시의 빌딩은 밤에도 환하게 빛을 밝히며 그 속에서 노동자는 쉼 없이 노동을 이어나간다. 길어진 노동시간으로 밥을 사 먹거나 배달을 시키고, 빨래를 맡기고, 청소를 맡기는 등 생활에 꼭 필요한 부분을 타인에게 의탁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물론 많은 사람이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표현한다).
또한, 분업화로 물건의 생산과 폐기의 과정은 경험할 일이 없어졌다. 대부분의 사람이 소비에 대해서는 열광하는 반면 상품의 폐기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관심하다. 만약 내가 버리는 쓰레기가 내 집 앞에 쌓인다고 하면 누구든 쓰레기를 줄이려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쓰레기를 수거해가는 도시의 시스템에서는 쓰레기는 집 밖에 내놓으면 볼 일이 없다. 환경 오염으로 고통 받는 자연의 모습이 매일같이 보도된다고 할지라도 당장 내 삶에 끼치는 영향을 느끼기는 힘들다. 소비를 많이 했다고 해서, 쓰레기를 많이 발생시켰다고 해서 어떠한 페널티도 없다. 쓰레기 배출량에 맞게 처리요금을 약간 더 내거나 종량제 봉투를 더 사서 집 밖에 내놓으면 끝이다. 눈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과연 끝일까.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경제적 풍요를 걷어내면 시름시름 곪아가고 있는 지구가 있는 듯하다. 유럽에서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플라스틱세[1]가 도입되었다. ‘재활용 불가능한 플라스틱 폐기물 1kg당 0.8유로’. 우리 돈 천 원 정도를 부과하기로 했다. 유럽의 환경세금에는 에너지세, 수송세, 오염세, 자원세가 있는데 플라스틱세는 그 중 오염세에 해당한다고 한다. 오염을 유발한 데에 대한 책임, 유럽을 시작으로 실효성을 얻어서 한국에서도 도입될 수 있다면 좋겠다.
다행히도 미니멀라이프[2]가 퍼지면서 적은 물건으로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제로웨이스트[3]를 위해 행동하는 소비자가 많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필요 없는 포장을 줄이기를 기업에 적극적으로 변화를 요구하는 ‘쓰레기어택 캠페인’[4]이 일어나기도 했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그동안의 소비를 뒤돌아보고 분리배출이 어려운 제품을 줄여보기로 다시 한번 마음먹었다. 한 사람이 움직이면 여러 명이 영향을 받아 조금이라도 변화하는 것, 이것이 지구에 남아있는 희망이 아닐까 싶다.
옷 한 벌의 나비효과
한 계절이 지나고 옷 정리를 할 때마다 안 입는 옷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냉장고에 넣어두고 제때 먹지 않아 상해 버린 음식을 볼 때만큼이나 죄책감이 밀려온다. 분명 적지 않은 돈을 주고 산 옷들인데, 제 쓸모를 다하지 못하고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네크라인이 좁아서 입고 있으면 답답했던 티셔츠, 예쁜 패턴에 끌려서 충동구매를 했지만 가진 옷이랑 잘 안 어울리는 블라우스, 불편해서 더 못 입는 스키니진 등 이유는 다양하다. 옷의 품목을 줄이고 안 입는 옷은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하거나 재활용 수거함에 넣었다. 그런데 과연 내 손에서만 없어지면 끝일까. 옷을 만들고 입고 버리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점을 꼽아보았다.
1. 과잉생산
세계 인구는 약 77억인데 한 해 중국에서 만들어지는 티셔츠는 50억 장에 이른다. 자라(Zara)에서만 한 해 4억 5,000만 벌을 생산한다. 의류 생산은 연간 1,000억 개 이상인데 이 중 50퍼센트 가량이 폐기된다.[5] 폐기된 옷 중 미착용 옷은 30퍼센트나 된다. 패션 업계의 탄소 배출량은 10퍼센트에 달하는데 이는 항공과 선박을 포함한 운송 산업을 합친 것보다 더 높은 수치이다. 2050년에는 25퍼센트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작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매출 악화가 이어진 브랜드들이 컬렉션 횟수와 규모를 축소하기로 하였다. 패션업계 전반에 속도를 늦추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라본다.
2. 과잉소비
소비자 한 명의 옷 구매량은 15년 전보다 60퍼센트 늘어났다. 영국에서 1분 간 거래되는 의류는 2톤 이상이며 전 세계적으로 매년 5600만 톤의 의류 구매가 일어나고 있다. 이는 2030년이면 9300만 톤으로, 그리고 2050년에는 1억 6천만 톤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소비를 하는 미국은 2018년을 기준으로 한 명당 1년에 68벌의 의류를 구매하고 있다고 한다. 매주 한 벌 이상의 옷을 구매하고 있는 것이다.
2020년 코로나 19로 활동하는 시간이 줄었음에도 블랙프라이데이 세일 기간에 역대 ‘온라인 매출 2위’라는 기록을 세웠다. 도시가 봉쇄되자 온라인 쇼핑으로 고객이 몰린 결과인데, 이 중 의류 구매는 26퍼센트를 차지했다. 2020년 블랙프라이데이에는 파타고니아, 올버즈를 비롯해서 영국의 300여 개 의류 브랜드가 과잉소비를 방지하고자 참여하지 않았다.
3.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 물질
의류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목화 재배에만 전 세계 농약의 10퍼센트와 살충제의 25퍼센트를 사용하고 있다. 목화를 재배하면서 땅에 살충제, 제초제를 뿌려야 하니 땅과 물이 오염되는 건 당연하고 화학물질이 흘러들어 주변 생태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 한 예로 중앙아시아의 아랄해는 목화 재배로 인해 물이 마르고 심각한 사막화가 진행되었다. 또 목화를 면섬유로 만들 때 여러 화학물질을 사용하게 되는데 표백과정에서는 다이옥신, 포름알데히드와 같은 발암물질이 발생한다. 이를 재배하는 농민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것 또한 문제다.
우리가 마치 소모품처럼 구매하는 흰색 티셔츠는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고 있었다. 청바지는 그중에 제일 심각한 오염을 끼친다.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데 칠천 리터의 물이 사용될 뿐만 아니라 화학물질로 이루어지는 염색과정도 수질 오염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이미 전 세계 폐수의 20퍼센트를 패션 산업에서 만들어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유통망을 타고 물류가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탄소가 지속해서 발생한다.
4. 소비자에게 끼치는 악영향
화학물질은 옷을 만드는 사람뿐만 아니라 옷을 입는 사람에게도 문제가 된다. 옷에 남아있는 화학물질은 결국 어떻게든 인간에게 돌아온다. 우선 즉각적으로 피부에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옷을 입고 활동하는 중에도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한다. 미세플라스틱은 세탁할 때도 발생하는데 크기가 아주 작아 하수처리시설에서 걸러지지 않고 강과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이는 바다 생물에 축적되고, 이 생물들이 다시 우리 식탁에 올라와 축적된 미세플라스틱을 인간이 먹게 된다. 옷 한 벌이 미치는 영향이 실로 막대하다.
5. 싼 가격의 제품을 위해 희생되는 노동자
2013년 방글라데시의 의류공장 ‘라나 플라자’가 무너지면서 천여 명의 사상자를 낸 큰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주로 패스트 패션에 납품하는 의류공장의 실태가 알려졌다. 신상품 주기를 맞추기 위해서 노동자들은 감금을 당하며 장시간의 노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사고 당일에도 감금되어 일하던 사람들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더 큰 사고로 이어졌다.
사고 후에 패스트 패션 업체는 자사 제품을 만드는 공장이 아니라고 발뺌하기도 했지만, 공장 건물 붕괴 및 화재 방지를 위한 안전협약에 가입하기로 했다. 의류공장 대부분이 불법으로 지어진 건물인 탓에 2016년에도 폭발사고가 있는 등 크고 작은 사건이 끊이질 않고 있다. 방글라데시 의류 노동자는 400만 명에 이르며 최저임금은 시간당 약 260원이다. 방글라데시뿐만 아니라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목화 재배에 아동착취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고 중국에서는 노동자들이 각종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옷을 만들고 있다. 가격 경쟁력 뒤에는 정당한 비용을 지불받지 못하며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있다. 이것이 단 몇천 원이라도 더 저렴한 물건을 찾는 것을 그만해야 할 이유다.
6. 재활용의 어려움
전 세계적으로 매년 9200만 톤의 의류 폐기물이 발생하고 있고 이 중에 85퍼센트 가량이 매립되거나 소각된다. 재활용되는 옷은 15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미국인 1명이 1년에 평균적으로 내버리는 옷이 37킬로그램 정도라고 한다. 또 합성섬유를 소각하면 다이옥신과 같은 유독물질과 이산화탄소가 엄청나게 발생한다. 중국에서는 더 묻을 땅이 없어 소각하고 있다. 명품 브랜드 버버리에서는 싸게 팔리지 않게 하기 위해 5년간 1300억 원치 의류와 잡화를 소각해서 지탄을 받은 바 있다.
한때 나는 점원이 눈치 주지 않고 다양한 상품이 있는 매장에 가서 마음껏 입어보는 것을 즐겼다. 망설임 없이 살 수 있는 가격대도 즐거움에 한몫했었다. 원하는 것은 다 가질 수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환경을 파괴하고 노동자들을 착취해 얻은 대량생산의 결과물, 그것이 패스트 패션의 본질이었다. 그 결과물을 사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패스트 패션이 오늘날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만약 과거와 같이 스스로 옷을 지어 입어야 한다면 지금처럼 옷을 쉽게 버리지 못할 것이다. 옷 하나를 만드는 게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직물을 만들 목화까지 스스로 생산해서 옷을 만들어야 한다면 옷에 구멍이 나도 어떻게든 수선해서 입지 않았을까. 그러나 패션 산업이 고도화된 오늘날에는 만드는 사람이 하는 일을 알기가 쉽지 않다. 보통 소비자들은 광고에서 멋진 모델이 착용한 이미지 또는 세련된 매장에 전시된 모습으로 옷을 접한다. 온갖 살충제와 제초제를 시작으로 화학물질로 범벅되는 의류생산과정을 볼 기회가 없다. 산업화와 세계화가 가져온 부작용일 테다. 분명한 건 현재와 같은 사이클이 계속되면 우리는 욕망을 채울지언정 우리와 자연의 건강을 동시에 잃을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살면서 옷을 아예 안 사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조금 다른 선택을 할 수는 있다. 다행히 환경에 피해가 덜 가는 방식으로 옷을 만드는 브랜드가 늘어나고 있고 이를 지지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페트병을 재활용한 소재로 만든 옷, 동물의 털을 사용하지 않는 패딩, 선인장으로 만든 가죽 등 대안적인 소재에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뜨거운 듯하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방법은 현재 있는 옷을 더 오래 입거나 중고 의류를 구매하는 것이다. 생산하지 않고 이미 생산된 물품을 낡을 때까지 쓰는 것이 가장 친환경적인 방법이다. 완벽하게 실천하기는 힘들겠지만 이제 다음 세대를 위한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완벽한 소수가 실천하는 것보다 느슨하게 실천하는 다수가 장바구니를 조금씩 덜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
77억 개의 트루먼 쇼
인스타그램의 사용자가 늘어난 이후로 세상이 인스타그래머블하게 바뀌었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소위 사진발 좀 받는 음식의 인증샷을 찍으려고 줄을 서고, 여행지의 포토스팟을 담으려고 애를 쓰고, 인생샷을 건지기 위해 카페에 앉은 내내 사진을 찍는 모습은 일상적으로 볼 수 있다. 유튜브를 시작으로 영상이 인기를 끌다가 이제는 틱톡과 같은 짧은 영상이 인기를 끄니 온 세상이 스튜디오가 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런 보여주기식의 문화가 진화하여 지름 인증, 하울 영상 등을 만들어 냈다. 최근에는 한층 더 진화하여 라이브로 소비자와 대화하며 상품을 판매하는 쇼핑 라이브가 점차 시장을 넓혀가고 있고, 더 나아가 VR 장비를 사용해서 실제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을 느껴볼 수도 있는 서비스까지 등장하였다.
쇼핑은 더 즉각적인 형태로 변하고 있는 데다가 결제가 간편해지고 새벽 배송을 시작으로 배송은 더 빨라지고 있다. 인증문화 속의 아름다운 오브제였던 쇼핑 아이템은 이제 프레임 밖으로 튀어나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증강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제는 쇼핑이 하나의 놀이이자 삶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소셜미디어의 활약이 있었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에서는 한때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과 같은 서비스의 관계자였던 이들이 소셜미디어의 이면을 소개하고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SNS가 우리 삶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말한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다수의 사용자를 확보한 소셜미디어에서는 관심사를 놓고 경쟁을 벌인다. 사용자의 관심을 끌어 더 많은 시간을 SNS에 쓸 수 있도록 연구하고 발전시킨다. 이렇게 늘린 사용자의 사용 시간에 띄울만한 맞춤형 광고를 광고주에게 팔아 수익을 올린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성별, 결혼 유무, 나이, 어떤 사람과 친밀한지, 심지어는 어떤 이미지를 얼마나 오래 봤는지 모든 것이 기록된다. 실제로 구글의 인터넷 브라우저인 크롬을 주로 사용한다면 크롬 광고 페이지에서 그동안 수집된 나의 키워드를 볼 수 있다. 분석한 관심사를 기반으로 흥미를 느낄만한 광고를 콘텐츠 사이사이 끼워 넣는다. 트루먼 쇼를 찍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표현이 와닿았다.
“상품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네가 상품이다.”
“개인의 점진적이고 눈에 띄지 않는 행동과 인식의 변화가 상품인 것입니다.”
-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 중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관심사와 행동이 기록되고 이를 통해 만들어진 개인화된 광고에 노출되는 환경, 그것이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욕망을 자극하기 위한 알고리즘은 더 정교해져 가고 있고 돈만 있으면 편리하게 살 수 있는 쇼핑환경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절제하기 힘든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흐름에 반기를 드는 의식 있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쇼핑 인증을 자중하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초연결사회에서 나의 소비가 타인의 욕망을 자극해 과잉소비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사용하는 디지털 기기와 온라인 서비스를 최소화하자는 ‘디지털 미니멀리즘’이란 개념도 등장했다. 만약 SNS를 사용하면서 의도치 않은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면 알고리즘에서 추천하는 콘텐츠를 거부하고 무분별하게 울리는 알람을 꺼보자. 앱을 지우거나 앱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등의 방법으로 잠시 디지털로부터 멀어지는 ‘디지털 디톡스’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타인의 인정에 휘둘리도록 설계된 치밀한 알고리즘을 거부하고 자기 소신에 의한 소비를 할 수 있을 때 친환경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고 생각해본다.
쓰레기로 만들지라도 아름다울 것
업사이클링은 기존에 버려지는 제품을 단순히 재활용하는 차원을 넘어서 디자인을 가미하는 등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여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을 말한다. 업사이클링의 우리말 표현은 ‘새활용’으로 생활 속에서 버려지거나 쓸모없어진 것을 수선해 재사용하는 리사이클링(Recycling)의 상위 개념이다.[6]
매년 새로운 업사이클링 브랜드가 등장하지만 정작 소비자에게 선택받는 브랜드는 많지 않다. 아쉽게도 재활용에만 중점을 두고 디자인에는 비교적 적은 가치를 두는 브랜드가 많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쓰레기로 만들든 무엇으로 만들었든 간에 디자인이 훌륭해야 오래 사용하고 덜 버려진다. 디자인에 많은 공을 들여야 친환경 제품의 취지를 충족시킬 수 있다.
또 선의에만 의지해서 판매되는 제품과 브랜드는 금방 한계에 부딪히게 되어있다. 친환경적인 재료를 윤리적인 공정을 거쳐 만들었을지라도 과정보다는 결과물을 기준으로 물건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가격 경쟁력을 갖기도 힘들다. 버려진 재료를 가공해서 제품을 만드는 일이 표준화하기 쉽지 않아 수작업 공정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업사이클링 브랜드는 재활용 소재로 근사한 디자인을 만들어야 하고, 생산방식도 친환경적이어야 하며 경제적으로까지 효용이 있어야 지속가능할 수 있다.
업사이클링 브랜드 중 제일 성공한 브랜드를 꼽자면 단연 ‘프라이탁’일 것 같다. 트럭 방수천을 재단하고 안전띠를 끈으로 만든 가방이 시그니쳐 아이템이다. 방수천의 그래픽을 재단하는 과정에서 한 개뿐인 패턴이 만들어진다. ‘새것으로만 만들어진 물건이 흉내 낼 수 없는 그 어떤 것’이 가방에 담겨있는 듯하다. 그뿐만 아니라 매장 디스플레이부터 유통과정을 표준화해서 낭비를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다. 모델명이 적힌 특유의 서랍장으로 통일된 매장 디스플레이에서는 간결함과 명료함이 느껴진다. 프라이탁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이유에는 ‘새것으로 흉내 낼 수 없는 가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사실 수선과 같은 약간의 변형을 통해서 가진 옷의 수명을 늘릴 수만 있어도 큰 의미가 있다. 파타고니아에서는 옷을 수선 해주는 ‘원웨어(Worn wear)’ 캠페인을 40년째 진행하고 있다. 이 캠페인을 통해 ‘헌 옷을 수선해 최대한 오래 입는 것이 가장 급진적인 환경 보호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이즈 수선, 지퍼나 단추 등의 부자재 수선, 봉제 수선을 지원하고 있는데, 2018년 파타고니아 리노 수선센터에서 수선한 고객들의 옷은 10만 288개[7]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