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다음 주, 또는 몇 주, 또는 다가오는 달에는 긴장이 고조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유럽연합(EU)에 파견한 특사가 지난 2월 16일에 한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유럽에서 수요일에 전쟁이 시작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2월 24일 목요일 새벽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텔레비전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쟁을 선언하며 이것이 우크라이나를 “비(非)나치화(denazify)”하기 위해 벌이는 “특별한 군사작전(special military operation)”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몇 분 만에 우크라이나의 주요 공항을 비롯한 수많은 도시들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우크라이나에서 촬영된 동영상에서는 순항 미사일들이 공중을 가르며 건물을 때리는 모습이 비쳐졌다. 푸틴이 개시한 것은 유럽이 현 세대 내에서 경험하는 가장 격렬한 전쟁인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최대의 전쟁이 될 수도 있다. 이 전쟁은 그의 통치 근간을 뒤흔들고, 러시아의 경제를 약화시키며, 러시아 사회를 분열시킬 것이다. 유럽의 안보에 대한 기존의 추정들을 산산조각 낼 것이다. 그리고 이 전쟁의 충격파는 세계 경제 전반에까지 전해질 수 있다.
본지가 발행된 시점을 기준으로, 첫 번째 미사일들의 행렬이 우크라이나의 공항들을 비롯한 나라 전역의 여러 목표물들을 강타했다. 러시아는 이들 모두가 군사시설이라고 주장했다. 그 다음에는 러시아뿐만이 아니라 벨라루스에서도 기갑부대들이 진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러시아의 기본 전투 조직인 110개가 넘는 대대전술그룹(Battalion Tactical Group, BTG)에 소속된 15만 이상 병력의 선봉대였다. 로찬 컨설팅(Rochan Consulting)의 콘라드 무지카(Konrad Muzyka)에 의하면, 러시아 군대가 “크림반도에서부터 말 그대로 쏟아져 들어왔다”고 한다.
서방의 안보 담당자들은 러시아가 주로 두 가지의 노선으로 공격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하나는 마리우폴(Mariupol)에 상륙한 병력도 그 중의 일부인 것으로 보이는데, 우크라이나 동부의 돈바스 지역 주변의 우크라이나 군대를 포위하여 그들이 드네프르(Dnieper) 강 너머의 서쪽으로 퇴각하는 것을 막으며 무너트리기 위해 펼치는 협공 작전이다. 두 번째는 벨라루스의 국경에서 남쪽으로 불과 14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수도 키예프(Kyiv)로 진격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다른 지역들을 공격하는 행위는 이러한 진격에 대한 대응을 분산시켜서 방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전쟁의 발발을 선포한 푸틴의 연설은 소름이 끼치는 것이었다. 그는 이번 침략을 소비에트연방이 붕괴된 이후에 “러시아를 끝장내고 완전히 파괴하려는 서방의 시도”에 대한 대응이라고 설명했다. 나토의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자들과 나치를 지원해왔으며, 그들은 러시아에 합류하기로 선택한 크림반도의 주민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는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러시아는 세계 최강의 핵보유국 가운데 하나이며, 최신 무기들에 있어서도 확실한 우위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형태로든 우리나라를 직접적으로 공격한다면, 그 누구든 참담하면서도 가장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침공이 벌어지면서 석유와 가스 가격이 치솟았다. 브렌트유(Brent crude) 기준 가격은 2014년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전 세계의 증시가 하락했다. 모스크바의 증권거래소에서는 일시적으로 거래가 중지되었는데, 재개되자마자 곤두박질쳤다. 민간 항공사들은 우크라이나의 영공에 접근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 공격이 가져올 죽음과 파괴는 모두 러시아의 책임이며, 미국과 그 동맹국들과 파트너들은 단결하여 단호한 방식으로 대응할 것입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발표한 성명이다. 이번 주 초에 우선적으로 제재를 단행했던 그는 2월 24일에 추가적인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EU)과 영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할 전망이다. 같은 날 오후에는 G7 정상회담이 영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EU의 지도자들도 이번 위기에 대하여 논의할 예정이다.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도 당연히 충격에 빠졌다. 드미트로 쿨레바(Dmytro Kuleba) 외무장관은 이런 트윗을 올렸다. “세계가 즉시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유럽과 세계의 미래가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의 전임이었던 파블로 클림킨(Pavlo Klimkin) 전 외무장관은 “우크라이나가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희망하는 최선의 결과는 서방이 개입하여 추가적인 영토 손실 없이 휴전 협상을 하는 것이다. “다른 대안은 고려할 가치가 없습니다.”
키예프의 역사적 중심지이자 가장 오래된 구역들 가운데 하나인 포딜(Podyl)은 평소보다 한산한 모습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나 트램의 운행은 지속되었으며, 정류장에 모여든 사람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서 토론을 벌였다. 27살의 알렉산데르 볼타르니스트(Alexander Voltarnist)는 가족들 가운데 여성들을 모아서 고향으로 데려간 다음에 자신은 군에 입대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전투 경험이 전혀 없지만, 그래도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는 안다고 말한다. “도망간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그리고 제가 미친 전쟁광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가 전혀 환영받지 못하는 곳에 코를 들이밀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엿먹일 겁니다.”
망치와 모루(hammer and anvil)[1]
러시아가 맹공격을 하면서, 이 지역에 오랫동안 이어져온 불확실성은 사라졌다. 우크라이나와 그 지도자들은 마치 당황하지 않기로 결심이라도 한 듯, 거의 기이할 정도의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그 전에도 이미 러시아가 사정거리 내에 전례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화력을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전력 증강에 대하여 서방의 정부들이 수집한 정보와 여러 단체들이 모은 공개출처정보(OSINT)[2]들은 명확했지만, 정작 푸틴 대통령의 계획은 불투명해서 극도의 대비를 이루었다. 그가 정말 우크라이나를 노리고 있는가? 아니면 진짜 의도하는 것은 우크라이나를 위협함으로써 국경 지역에서 야기되는 안보의 불안정 상태인가? 또는 자국 내에서 소비하기 위한 한 편의 작품을 원하는 것인가? 인공위성으로는 이를 판별할 수 없다. 심지어 푸틴의 이너서클(inner circle)조차 몰랐을 수도 있다.
2월 21일 월요일에 그가 행한 연설을 통해서 모든 것들이 명확해졌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있는 친러시아 성향의 도네츠크(Donetsk)와 루한스크(Luhansk)라는 두 개의 주를 독립적인 “공화국”으로 인정했다. 또는 러시아의 행정구역으로 받아들인 것일 수도 있다. 참고로 두 곳의 지명은 각각의 지역을 대표하는 도시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또한 두 공화국이 각자의 지역에서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나머지 부분에 대한 통치권까지 인정했다. 이렇게 주장하면서 그는 서방의 1차 제재와 우크라이나의 비상사태를 촉발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진심이었다. 그가 그러한 주장을 몸소 실천해 보이면서 비판적 사고를 가진 러시아인들은, (전제) 자국의 장기적인 이해관계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전쟁은, (결론) 절대로 일어날 리 없다는 기존의 믿음을 재평가해야만 했다. 이러한 분석의 전제는 여전히 유효했지만, 그에 따른 결론은 이제 의심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행위를 통하여 푸틴 자신의 지위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그는 고립되어 있고, 피해의식이 있으며, 공격적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예전에는 소비에트연방의 붕괴로 인해 낮아진 슬라브계이며 정교회(Orthodox)인 러시아 조국의 단일성을 복원하자는 그의 발언이, 그가 통치하는 정권의 부패와 권위주의, 그리고 국민들의 열망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은폐하려는 시도 정도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거기에 날카로운 의도의 집중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을 선출된 대통령이라기보다는 러시아 영토를 끌어 모은 권력자들이자 국가를 변혁했던 거물들인 공포의 이반 뇌제(Ivan the Terrible), 표트르 대제(Peter the Great), 예카테리나 대제(Catherine the Great), 스탈린(Stalin)과 같은 반열에 오르려는 황제라고 스스로를 표현했던 것이다.
그의 연설에서 원칙적으로 “공화국”이라고 표현한 분리세력들은 우크라이나의 “존엄혁명(Revolution of Dignity)”이라고 알려진 2014년의 사건에 뒤이어 벌어진 위기 상황에서 만들어졌다. 2013년 11월에 우크라이나 의회는 유럽연합의 “연합협정(Association Agreement)”에 서명하려 준비하고 있었다. 여기에 서명한다면 이 나라는 유럽연합에 훨씬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러나 푸틴이 개입하고 재정적인 유인책을 제시하면서 돈바스의 부정 폭력배 출신이었던 당시 빅토르 야누코비치(Viktor Yanukovych) 대통령은 이 합의를 무산시켰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 사람들이 시위에 나섰는데, 마이단(Maidan)이라고 하는 키예프의 독립광장(Independence Square)에 모인 시위대들이 보안군에게 폭행을 당했다. 그러자 더욱 많은 시위대들이 집결하여 몇 달 동안이나 마이단을 점거했다.
이듬해 2월에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사흘 만에 130명이 사망했는데, 그들 대부분이 시위대였다. 야누코비치는 국외로 도망쳤다. 이런 상황에서 뭔가를 보여줘야 했던 푸틴은 흑해에 있는 크림반도를 합병했다. 이곳은 많은 러시아인들이 우크라이나 영토가 아니라 러시아 땅이라고 생각하는 곳이었다. 그러면서 푸틴의 지원을 받는 비정규군들이 돈바스(Donbas) 지역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이후에 친러시아 성향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공화국”이 되는 세력이 바로 이들이다.
그러나 2월 21일의 연설에서 윤곽이 드러난 것처럼, 푸틴의 새로운 비전은 우크라이나로부터 두 개의 주를 떼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리주의자들의 권리를 지지하는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하나의 민족국가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하며, 그곳이 러시아와는 갈라놓을 수 없는 “우리의 역사, 문화, 정신적 영역의 일부”로서 사회주의 혁명 당시에 볼셰비키들에 의해 러시아로부터 떨어져 나왔고, 이후에는 스탈린 치하에서 헝가리와 폴란드, 루마니아의 영토를 차지하면서 더욱 강해진 지역이라고 주장한다. 푸틴은 단지 돈바스 지역만이 아니라, 오데사(Odessa)까지 이어지는 흑해 연안을 포함하는 “역사적으로 러시아 땅”이었던 지역 전체가 러시아 영토라고 주장했다.
사방의 적들
그는 이렇게 하면서 우크라이나인들을 향해 경멸을 퍼부었다. 그들이 러시아의 우정을 배신한 용서받을 수 없는 자들이며, 무분별하게 외국인 행세를 했다는 것이다. 그는 만약 우크라이나가 공산주의의 유산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공산주의가 그들에게 제공한 영토들을 자유롭게 풀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영 방송사들은 이러한 그의 주장을 설명하는 우크라이나의 지도를 보여주었는데, 여기에서는 그러한 “선물”들이 모두 사라져 있었고 그들의 영토는 키예프 남쪽에 있는 노란색의 작은 점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우크라이나의 주간지 제르칼로티즈니아(Дзеркало тижня)의 율리아 모스토바야(Yulia Mostovaya) 에디터가 보기에, 첩보기관에서 냉정해지는 기술을 훈련 받은 남성이 이렇게 감정을 표출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푸틴의 연설을 본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나토(NATO)나 미국에 대해서 말할 때는 감정을 전혀 읽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 대해 말할 때의 그는 격렬한 증오감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모든 걸 싫어합니다.”
그렇게 어조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푸틴의 발언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메시지는 그가 자신의 적들을 모두 하나로 여긴다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위협은 서방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크라이나에 있는 서방의 하수인들을 쫓아냄으로써 그들을 문전에서 밀어내기 위한 것이다. (그의 생각에) 우크라이나는 미국인들이 러시아를 무너트리기 위해 조종하는 적대국이었다. 상황을 그런 방식으로 묘사해야 하는 이유는 러시아 사람들에게 우크라이나인들보다는 미국인들을 싫어하도록 만드는 게 훨씬 더 쉽기 때문이다.
연설이 있기 전에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된 러시아 연방의 안전보장회의(SCRF)는 공포와 굴욕과 고독의 분위기가 합쳐진 기괴한 풍경이었는데, 여기에서 푸틴의 경호원 출신으로 현재는 러시아의 국가친위대장으로 수십만의 병력들을 통솔하고 있는 빅토로 졸로토프(Viktor Zolotov)는 푸틴의 입장을 간단히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은 미국과의 국경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곳의 주인이고,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하수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온갖 무기들로 전력을 키우고 있으며 핵무기를 개발하려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무기들은 결국 미래에 우리에게 피해를 입힐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의 공화국들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나라를 지켜내야 합니다.” 소비에트연방의 붕괴 직후에 잠시 핵무기를 갖고 있었던 우크라이나가 다시 한 번 핵보유국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근거가 없는 것이지만, 전쟁을 두려워하는 수백만의 러시아인들에게는 나름의 명분이 될 수 있다.
푸틴에게는 그러한 속임수가 필요하다. 그가 통치하는 러시아 사회는 현재 전례 없이 분열되어 있다. 1, 2년 전만 하더라도 정치학자인 키릴 로고프(Kirill Rogov)가 쓴 다음과 같은 글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 같은 수많은 사람들도 이제는 그의 주장에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면 그곳의 인프라 파괴로 인해 나토가 입게 될 피해보다는 러시아와 그들의 경제에 더욱 커다란 피해를 입힐 것이다.”
고요 뒤의 폭풍
이 연설이 러시아의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다면, 우크라이나의 일부에서는 그것을 그저 그런 것으로 받아들였다. 8년 동안 이어진 갈등은 전쟁에 대해서만 무감각할 정도로 친숙하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거의 4달 동안 무자비하게 전력 증강이 계속되면서, 진정한 공황상태를 야기하려면 충격적일 정도로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지난해 10월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푸틴이 우크라이나의 국경으로 병력을 이동시키기 시작했다는 징후를 포착했다. 거의 동시에 인력을 통해서든 통신 감청에 의한 것이든, 그들은 푸틴이 수십 년 동안 구축한 유럽 최대의 군사력으로 이웃 국가를 침공하려 한다는 의도의 계획안을 입수했다. CIA의 빌 번스(Bill Burns) 국장이 11월 초에 모스크바로 날아가서 푸틴에게 그의 계획이 간파되었다고 말했지만, 전력 증강은 계속되었다.
2월 중순에 러시아의 전력 대부분이 우크라이나를 타격할 수 있는 거리 내에 집결하면서 위기가 절정으로 치달았을 때, 크렘린은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지역에서 “대량 학살”을 자행하고 있으며 무력으로 그곳을 장악하려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돈바스 지역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러시아 영토에 대한 포격이 있었으며, 우크라이나가 갑작스럽게 공격한다고 주장하는 등 일련의 도발이 뒤를 이었다.
이처럼 긴장이 고조되는 시기에 어느 특정한 사건 하나가 우크라이나 전역에 경보를 울린 것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자본이 국외로 도피하고 채권 수익률이 오르며 통화가치가 하락하면서 나라 경제에 피해가 일어나기 시작하자, 이를 최소화시키려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강한 의지가 결연하게 냉정함을 유지하도록 촉구했기 때문이다. 아나스타샤(Anastasia)는 도네츠크 주의 슬로뱐스크(Slovyansk)라는 마을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여성이다. 이곳은 목요일 아침까지만 해도 서로 대치하고 있었던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분리주의 반군 사이의 경계선에서 8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2월 22일에 만난 그녀는 많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이렇게 말했다. 그녀 자신도 물론 러시아와의 진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에 때문에 “매우 두렵다”고 말했지만, 뉴스의 기삿거리 하나만으로는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기에는 부족했다고 말이다. 푸틴의 연설에 대해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걸 인스타그램에서 봤습니다. 아무런 느낌도 없었고, 아무런 생각도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매우 피곤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달 동안 긴장이 고조되는 과정 전반에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보여줬던 침착함은 새로운 침공이 개시되기 며칠 전부터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돈바스는 물론이고 키예프에서도 경제력이 있고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의 일부가 우크라이나의 서쪽이나 국외로 이동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미 떠난 이들도 있었다. 일부 부유한 러시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2월 22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재확인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최대 라이벌이자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투옥시키겠다고 위협했던 페트로 포로셴코(Petro Poroshenko)를 포함한 자국 내 모든 정파의 지도자들을 불러 모아서 그들이 단합되어 있음을 과시했다. 키예프의 정가에서는 “국방연합(Oboronnaya koalitsiya)”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다. 그날 저녁, 그는 20만에 달하는 우크라이나의 예비군들을 소집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는 우크라이나 전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고된 시련
우크라이나의 국방장관을 지냈던 안드리 자고로드니우크(Andriy Zahorodniuk)는 우크라이나의 군 지도부가 두 가지의 기본적인 시나리오를 근거로 대처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나쁜 시나리오이고, 다른 하나는 더욱 나쁜 시나리오였다. 첫 번째는 모스크바가 스스로 전략적 휴식을 취하면서 아마도 피로한 병력들을 교체한 다음, 분리주의자들이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지만 아직까지 점령하지 못한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으로 이동하리라는 것이다. 과거에도 푸틴은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심지어 전술적인 후퇴를 선택함으로써 적들의 평정심을 잃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보 참모들 가운데 일부는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전쟁이 대체로 기존의 분쟁지역이나 슬로뱐스크처럼 2014년에 분리주의자들이 점령했다가 나중에 패퇴한 영역에 한정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랬다면 러시아인들에게는 더욱 우호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판단은 미국이나 영국이 제공한 분석과는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미국과 영국은 푸틴이 몇 달 동안 훨씬 더 큰 무언가를 의도하고 있었다고 믿어왔다. 돈바스에만 한정된 행동은 그에게 거의 아무런 가치도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선택을 했다면, 유리한 입장을 날려버리는 결과였을 것이다. 두 개의 반군 공화국들이 있는 주들은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일부였긴 하지만, 분리주의자들의 주장을 활용한다면 우크라이나의 정책을 뒤흔들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소위 말하는 노르망디 그룹(Normandy group)이라고 하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프랑스, 독일이 체결한 “민스크 협정(Minsk accords)”의 핵심이었다. 2015년에 돈바스 지역에서의 대규모 전투를 종식시킨 이 협정에 의하면 분리주의자들에게는 일정한 수준의 자치권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나머지 지역이 경제적으로는 유럽연합(EU)에, 군사적으로는 나토(NATO)에 가입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거부권이 주어져야 했다. 그렇게 된다면 우크라이나는 분열되고 파편화되어서 스스로를 하나의 단일 국가라고 주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를 위해 원하는 바로 그런 형태의 이웃 국가이다. 프랑스의 싱크탱크인 FRS의 브후노 테흐트헤(Bruno Tertrais)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잠재력을 없애기 위한 일종의 거세를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두 개의 공화국을 독립적인 국가로 인정함으로써 민스크 협정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은 우크라이나를 거세한다는 노선을 폐기했다. 그 대안의 노선은 친러시아 성향의 정권을 무력으로 밀어 넣는 것이었다. 만약 러시아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여타의 군사적 도발은 푸틴이 원했던 전략적 재편은 일어나지 않은 채, 오히려 서방이 부과하려 했던 가장 강력한 제재를 초래했을 것이다. 대가는 크지만, 실익은 전혀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군대가 이번 공격을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1차 공습과 미사일 공격은 우크라이나의 통합 방공망을 파괴하려는 의도로 진행된 것이 거의 확실하다. 타격의 목표 가운데 하나는 키예프 인근의 바실키프(Vasilkiv)라는 마을에 있는 방공 포대였다. 만약 러시아의 전투기들이 공중을 장악한다면, 그들의 낙하산 부대와 헬리콥터로 수송되는 병력들이 최전선에 대규모로 집결한 우크라이나의 군대를 우회하여 한참 후방의 핵심 목표물들을 장악할 것이고, 이후에는 우크라이나의 저항세력들을 소탕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2월 24일 오전에 러시아가 키예프 외곽의 호스토멜(Hostomel) 공항에 낙하산 부대를 침투시키려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그런 헬리콥터들 가운데 일부를 격추시키고 러시아 병사들을 생포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얼마나 빨리 무너질지, 그리고 러시아 병력이 그들을 무너트리기 위해 키예프 시내까지 진입할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 가지 알 수 없는 요인은 얼마나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저항할 것이며,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협조할 것인가이다. 싱크탱크인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잭 워틀링(Jack Watling)과 닉 레널즈(Nick Reynolds)는 이번 달에 우크라이나의 군부 및 정보부 관계자들과 수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안보 담당자들을 만나보니, 심지어 일부 상당히 높은 고위직까지 포함하여 그들의 많은 동료들이 러시아를 위해 일하고 있거나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들은 러시아의 정보기관인 FSB가 지난 여름에 200명 규모의 우크라이나인들로 구성된 9번째 부서를 창설했다고 말한다. 지난 12월에는 어떠한 침공이라도 수행할 수 있는 특수부대 및 공수부대들과 함께 워게임(war game)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보도에서는 또한 러시아의 특수부대가 키예프에 각각 60-80명의 남성들로 구성된 두 개의 중대를 두고 있으며 공격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의 고위급 관료들은 해당 부대가 자신들의 목을 베기 위한 작전을 계획해왔으며 실제로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새로운 무언가
러시아는 괴뢰정권의 수립을 목표로 하고 있을 수도 있는데, 만약 그들이 그 꼭두각시가 야누코비치처럼 쫓겨나지 않고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킬 수 있게 하려면, 러시아는 단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것만이 아니라, 적어도 당분간은 이 나라의 일부라도 점령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방안은 다소 기이하게 들린다. 관련 정보에 정통한 서방의 정치인들조차도 그런 계획을 납득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크탱크인 CNA의 러시아 군사력을 전문가인 마이클 코프먼(Michael Kofman)은 침공 일선에 있는 러시아 병력들과 그 뒤를 뒤따를 것으로 보이는 졸로토프의 국가친위대와 같은 예비 병력들을 보자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대한 점령을 시도하기에는 충분해 보인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과 키예프의 인구를 합쳐도 1800만 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흑해 연안까지 합치면 300만 명이 추가된다. 해당 지역의 인구와 비교하자면 러시아가 현재 동원한 병력의 규모는 가공할 만한 것이며, 미국이 17만7000명의 병력으로 이라크를 점령했을 때와 비견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러시아는 이라크를 침공했던 미국인들이 이용하지 못한 장점들을 누리고 있다. 러시아 군대는 미군들이 이라크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언어의 장벽 때문에 고통을 받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해당 지역의 지형을 잘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폭력을 행사함에 있어서 훨씬 더 무자비할 것”이라고 워틀링은 지적한다. FSB의 9번째 부서는 우크라이나 정부에서의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인사들은 물론이고 잠재적인 저항군을 이끌 수 있는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해왔다.
테흐트헤가 지적하는 것처럼, 러시아의 목표가 원칙적으로는 제한적이지만, “전쟁은 그것을 개시한 자들이 만들어놓은 경로를 그대로 따르지 않는 경향이 있다.” 특히 다른 나라들에는 투표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2월 19일에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가 궁극적으로는 실패해야 하고 실패한 것으로 보여야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이익입니다.”
서방 및 그 동맹국들의 입장에서 훨씬 더 강력한 제재가 그러한 대응의 일환이 될 수 있다. 푸틴의 21일 연설로 촉발된 1차 제재에서, 미국은 러시아의 경제개발은행인 VEB와 러시아의 국방 부문에 재정을 지원하는 프롬스비아즈방크(Promsvyazbank)를 대상으로 그들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고, 미국의 개인 및 기업들이 그들과 거래하는 걸 금지했으며, 그들이 달러화에 접근하는 걸 차단했다. 이제는 러시아의 더욱 많은 기관들이 그에 상응하는 제재를 받게 될 것이다.
유럽연합(EU)도 미국과 비슷한 노선을 따라서 제재를 가하면서, 많은 이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그들의 계획이 더욱 일치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연대의 움직임들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독일이 우크라이나를 우회하여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공급할 예정이었던 노드스트림2(Nord Stream 2) 가스관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아직은 이곳을 통해서 어떠한 가스도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결정으로 인한 당장의 경제적인 영향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독일의 에너지 정책과 러시아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현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들은 러시아와의 상호의존성이 평화의 근간이 될 수 있다고 오랫동안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는 “현재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많은 이들은 앞서 취해진 1차 제재가 기대 이하였다고 비판한다. 제재에 관여했던 나라들은 추가적인 위협을 저지하기 위하여 그 중의 일부를 남겨두어야 했다고 말한다. 이제 그들은 어떤 조치들을 비축해두었는지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쿨레바 외무장관은 국제 금융거래에 사용하는 스위프트(SWIFT) 시스템에서 배제하는 것을 포함하여 러시아에 대한 “파괴적인” 제재를 요구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공격도 가능할 것이다. 영국의 신호정보(SIGINT, 시긴트) 담당 정보기관인 GCHQ의 부국장을 지냈던 마커스 윌럿(Marcus Willett)은 이렇게 말한다. “사이버 작전에는 상당한 장점이 있습니다. 미사일을 발사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통상적인 제재보다도 더욱 강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저항군들에게 미사일을 비롯한 여러 무기들을 원조할 수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에는 총기류들이 넘쳐나고 있고, 미국의 특수부대들이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잠재적인 게릴라들을 훈련시켜왔다. 폴란드와 루마니아는 자국의 영토를 사용하도록 허용하여 우크라이나의 국경 너머에 무기와 통신장비를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들도 물자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반란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1940년대에는 스탈린이 합병한 우크라이나의 서쪽 지역에서 소비에트의 점령에 반대하는 상당한 저항이 있었고, 지형도 언덕 지대였다. 러시아가 현재 관심을 갖는 부분은 동부와 중부의 평원 지대로, 이곳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mujahideen)이나 밤이 되면 마을과 부락을 살금살금 돌아다니면서 적들의 차량을 기습하는 방식의 시골형 반란에는 적합하지 않다. 미국 국무부의 자문위원을 지냈으며 현재는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에서 재직하는 새뮤얼 차라프(Samuel Charap)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북아일랜드와 영국 본토에서 오랫동안 대규모로 도심 테러 활동을 펼쳤던 민족주의 무장그룹인 IRA와 비슷한 형태를 잠재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한 반란이 조직된다면, 그것을 지원하는 세력에 대한 러시아의 보복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또한 사이버 공격도 일어날 것이다. GCHQ의 전 부국장 마커스 윌럿은 이렇게 말한다. “만약 러시아의 네트워크에 맞서기 시작한다면, 러시아도 미국을 비롯한 동맹 네트워크를 상대로 유사한 활동을 펼치기에 나쁘지 않은 상황일 것입니다.” 미국 상원에서 정보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마크 워너(Mark Warner) 상원의원은 사이버 공간에서 방해 공작이 일어나고 긴장이 고조되는 방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경고한다. 그가 그리는 시나리오는 러시아가 유럽의 민간인들에게 고의적이거나 또는 의도하지 않은 피해를 입히면서 나토가 보복에 나서도록 자극한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이런 종류의 사이버 공격을 주저할 것이라는 예상도 존재한다. 우크라이나 내륙의 거점 기지들과 네트워크들을 물리적으로 타격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욱 조심스러워 할 수도 있다. 서방이 이번 분쟁에 본격적으로 휘말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가지의 실수들이 있었다. 그리고 벨라루스에 있는 추가 병력들과 함께 우크라이나를 포위하고 있는 군사력의 존재는 이미 러시아와 나토의 화력을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몰아넣고 있다.
최근 몇 주 동안 미국은 동유럽에 수천 명의 병력과 수십 대의 전투기를 서둘러 배치했다. 비록 30개 동맹국 모두의 동의가 필요하긴 하지만, 2-3일 내에 전장에 투입될 수 있을 정도로 고도의 대비가 되어 있는 4만 명 규모의 나토 대응군(NATO Response Force)이 앞으로 며칠 내에 창설 이후 최초로 배치될 수도 있다. 나토의 전직 장교였던 제이미 셰이(Jamie Shea)는 “현재의 사태가 공공연한 갈등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하여” 나토의 토드 월터스(Tod Wolters) 최고사령관과 러시아의 발레리 게라시모프(Valery Gerasimov) 참모총장 사이에 군용 핫라인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악화된 상황
미국과 유럽에게 있어서, 푸틴이 벌인 이번 전쟁은 냉전의 종식 이후에 강대국들 사이에 공개적인 군비 경쟁과 갈등이 재개되기 전까지의 비교적 평온한 시대처럼 보였던 과도기가 확실히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절차는 푸틴이 2007년 뮌헨안보회의(Munich Security Conference)에서 행한 전투적인 연설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제 위기의 여건이 완성되었다. 이는 에너지 안보에서부터 핵전략을 비롯한 수많은 분야에서 서방 세계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또한 인도-태평양 지역을 자국의 미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역으로 여기겠다는 미국의 약속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만약 대립 상황으로의 전환이 완성되더라도, 갈등은 여전히 더욱 고조될 수 있다. 2월 21일 푸틴이 행한 장광설의 목표는 우크라이나였지만, 현재 나토에 가입되어 있는 구(舊) 소비에트연방의 국가들(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역시 과거의 영토를 회복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대하여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러시아가 사실상 벨라루스를 흡수한다면, (지난 2월에 합동 군사훈련을 위해 벨라루스로 이동한 러시아 병력들이 우크라이나로 이동했거나 여전히 주둔하고 있다), 이는 폴란드와 발트3국을 연결하는 비좁은 지역인 “수발키 갭(Suwalki gap)”의 양옆에 거대한 화력이 포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의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던 스티븐 해들리(Stephen Hadley)는 이렇게 경고한다. “만약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성공을 거둔다면, (러시아의 영토인)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와 벨라루스를 연결하는 육로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런 육로가 리투아니아 또는 폴란드를 통과해야 한다면, “그것은 러시아와 나토 사이에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다.
서방의 관계자들은 푸틴이 나토를 공격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인데, 특히 나토에는 3개의 핵보유국 미국, 영국, 프랑스
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심각한 변화를 겪어왔을 가능성을 직시해야만 한다. 정치학자인 키릴 로고프는 러시아가 언제나 스스로를 두 가지의 방식으로 여겨왔다고 말한다. 하나는 서방에 뒤쳐져서 따라잡아야 하는 존재이고, 다른 하나는 그걸 막으려는 서방의 목표물이라는 것이다. 현대화의 관점에서 보자면 서방이 매력적이다. 그러나 편집증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은 역겨운 존재이다. 현재 완전히 역겨움의 모드가 가동된 푸틴 정권에게 있어서 고립과 갈등이라는 요소는 서로를 더욱 강화시킬 것이라고 로고프는 말한다.
지금은 안정적인 역학관계와는 거리가 먼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