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101
2화

왜, 지금 기본소득인가

기본소득은 무엇인가


“기본소득이라 함은 공유부에 대한 모든 사회 구성원의 권리에 기초한 몫으로서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개별적으로, 정기적으로, 현금으로 지급되는 소득을 말한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정관 제2조 목적

이는 2009년에 설립된 이래 한국의 기본소득 운동을 이끌어 온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Basic Income Korean Network·BIKN)의 정관에 나오는 기본소득의 정의다. 먼저 이 정의의 뒷부분이 매우 중요하다. 흔히 기본소득의 ‘5대 원칙’이라 불리는 내용이다. 이 5대 원칙은 기본소득 운동의 세계 조직인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BIEN)가 2016년 서울에서 개최한 제 16차 대회의 총회에서 확정된 것이다. 하나씩 뜯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모두에게”는 보편성(universal)의 원칙이다. 재산이나 소득을 심사하지 않고 모두에게 지급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에는 ‘생계급여’라는 복지 제도가 있는데, 기준 중위소득[1]의 30퍼센트 이하인 가구에만 지급된다. 이에 반해 ‘아동수당’은 만 8세 미만인 ‘모든’ 아동에게 지급된다. 보편성 원칙에서 볼 때 기본소득은 생계급여보다 아동수당에 가깝다. 2020년의 1차 긴급재난지원금은 모두에게 지급됐지만, 2021년 상생 국민지원금은 소득에 따라 선별 지급됐다. 따라서 이 경우는 전자가 후자보다 기본소득과 유사하다.

“무조건적으로(unconditional)”는 일할 의무를 이행하거나 일할 의사를 표현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실업급여에는 “취업하지 못한 기간에 대하여 적극적인 재취업 활동을 한 사실을 확인하고 지급”한다는 조건이 달려있다. “실업이라는 보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지급되고 재취업하면 받을 수 없다. 또 ‘근로장려금’이란 제도도 있는데 일을 하지 않아 소득이 없으면 받을 수 없다. 기본소득은 일을 하건 안 하건, 일할 의사가 있건 없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급된다. 이것은 다른 복지 제도와 뚜렷이 구별되는 기본소득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다.

“개별적으로”는 사회 구성원 개인(individual)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지급된다는 의미다. 2020년 1차 긴급재난지원금은 가구별로 금액을 설정하고 가구주에게 지급했다. 1인 가구 40만 원, 2인 가구 60만 원, 3인 가구 80만 원, 4인 가구 이상 100만 원 등으로 구분했다. 이에 반해 2021년 상생 국민지원금은 1인당 25만 원씩 지급했다. 보편성 원칙으로 보면 1차 긴급재난지원금이 기본소득과 더 유사하지만, 개별성 원칙에서 보면 상생 국민지원금의 지급 방식이 기본소득과 더 유사하다. 가부장제의 관습을 벗어나 가족 구성원 모두의 동등한 권리를 인정한다는 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원칙이다.

“정기적으로(periodically)”는 매년, 매 분기, 매달, 혹은 매주 꼬박꼬박 지급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일회성인 재난지원금은 정기성의 원칙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다. 정기성의 원칙은 수령자가 자신의 생활을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하게 설계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삶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원칙이다.

“현금으로(in cash)”는 물품이나 특정 상품과 교환하는 상품권, 특정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쿠폰 등이 아니라 현금 혹은 현금에 준하는 것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의미다. 어디에 쓸 것인가의 ‘자유’를 준다는 점에서 이 원칙은 매우 중요하며, 물품을 지급하는 배급 제도와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재난지원금과 뉴 노멀


유례없는 코로나19 판데믹 상황은 감염병에 대한 위험만큼이나 생활고로 인한 고통을 가중했다. 많은 나라가 정부의 역할을 극적으로 확대해 엄청난 경기 부양 재정 지출과 함께 손실 보상책을 실시했고, 재난지원금의 형태로 국민의 손에 직접 현금을 쥐여 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에 대한 직접적 현금 지급이라는 사례가 낯선 만큼 재난지원금이 곧 판데믹이라는 특수 상황에서의 기본소득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미국의 경우 2020년 봄에 1차로 성인 1인당 1200달러, 아동 1인당 500달러를 지급했고 12월 말에 2차로 성인 1인당 600달러, 아동 1인당 600달러를 지급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2021년에는 3차 재난지원금이 집행되어 성인 1인당 1400달러, 아동 1인당 1400달러를 지급했다. 4인 가족으로 볼 때 3차 재난지원금만 계산해도 5600달러(665만 원)에 달하는 큰돈이다.
미국의 재난지원금(stimulus check)은 일정 소득 이상에서 지급액이 서서히 줄어들게 설계했다. 3차 재난지원금의 경우, 1인 성인 가구라면 연 소득 7만 5000달러 이하까지는 동일하게 1400달러를 지급하지만 연 소득 8만 달러까지 지급액을 점차 줄여 8만 달러가 넘는 사람에게는 한 푼도 지급하지 않는다.
한국의 1차 긴급재난지원금과 상생 국민지원금은 표에서 보듯 지급에서 차이가 있다. 긴급재난지원금과 달리 상생 국민지원금은 소득 하위 88퍼센트 국민에게만 지급됐다. 그런데 상생 국민지원금은 미국처럼 서서히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88퍼센트 기점에서 갑자기 사라지기 때문에 88퍼센트 바로 아래 소득자는 25만 원을 받고, 88퍼센트 바로 위의 소득자는 아무것도 못 받는다. 따라서 전자가 후자보다 총소득이 증가하는 ‘소득 역전’ 현상이 생긴다.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은 미국보다 액수는 훨씬 적지만 대한민국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기에 정부의 직접적 현금 지급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증가하는 계기가 됐고, 보편적 지급인가 선별 지급인가의 논쟁이 격화되면서 기본소득에 관한 관심도 함께 증가했다. 선별 지급의 문제를 인지한 상태에서 다시 한 번 기본소득의 5대 원칙을 적용해 보자. 재난지원금은 기본소득인가?
1차 긴급재난지원금은 가구별 지급이라 개별성 원칙이 없고 상생 국민지원금은 보편성 원칙이 적용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둘 다 일회성 지급이란 점이 기본소득과 크게 다르다. 물론 재난지원금은 코로나라는 특별한 위기 상황에서 긴급 지원의 성격으로 일시적으로 지급된 것이다. 이를 기본소득과 단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런데 만약 코로나가 일상화된다면 어떻게 될까? 판데믹과의 공존이 우리의 ‘뉴 노멀(New normal)’이 된다면 재난지원금 또한 뉴 노멀이 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정기화된 재난지원금은 결국 기본소득으로 접근하게 되는 것 아닌가.

바이러스가 아니더라도 현대 인류는 항시적인 재난 상황에 있다. 불평등과 기후 위기라는 재난은 우리에게 이미 일상이다. 사회적 재난에서 비롯된 기본소득의 아이디어는 이제 기후 재난과 질병 재난이 결합한 ‘복합적 재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한 필수적인 처방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본소득을 부른 것은


18세기 말 미국의 독립운동가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은 기본소득을 최초로 구상했다. 그는 기본소득을 “자선이 아니라 권리”로 “박애가 아니라 정의”로 정의했다. 19세기에는 프랑스의 사상가 샤를 푸리에(Charles Fourier)와 영국의 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등이 이 아이디어를 이어갔다. 20세기 초에는 영국을 중심으로, 1960년대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기본소득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1986년에는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Basic Income European Network·BIEN)가 출범했고 이것이 2004년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로 확장, 발전함으로써 현대적 의미의 기본소득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소득 양극화

특히 기본소득은 지난 10여 년 사이에 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큰 관심을 모았다.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가장 큰 원인은 소득 불평등과 극심한 양극화다. 전 지구적으로 불평등 데이터를 수집·연구하는 ‘세계 불평등 랩(World Inequality Lab)’의 통계에 따르면 1980년 전체 국민 소득의 11퍼센트를 차지하던 미국 최상위 1퍼센트의 소득은 2015년에 전체 국민 소득의 20퍼센트까지 올랐다. 한편 하위 50퍼센트 소득을 전부 더한 것은 같은 기간 전체 국민 소득의 21퍼센트에서 13퍼센트로 곤두박질쳤다.
이 시기를 소위 신자유주의 시대라고 한다. ‘시장이 최고선(善)’이라는 이데올로기에 기초하여 정부가 공공선이 아닌 시장 지배자들 편에서 국가를 운영하던 때다. 신자유주의는 민영화, 금융화, 세계화로 특징지을 수 있다. 안정된 일자리는 사라지고 일하는 사람들의 몫은 감소했으며, 실물 경제가 성장하지 않음에도 금융과 자산 시장만 성장하는 시스템이 정착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자본이 전 세계의 저임금 노동력을 찾아 이윤을 늘려가는 동안 주요 산업국 노동자의 일자리는 사라졌다. 소득이 줄어든 일반인들은 돈을 빌려서 의식주, 특히 주거를 해결했다. 이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는 실업과 부채의 증가로도 설명된다. 이 시스템의 한계는 2008년 세계를 강타한 금융 위기로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기본소득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주요한 처방의 하나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사회 보장 제도의 위기

더군다나 불평등 구조를 개선·보완해야 할 사회 보장 제도 또한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시작했다. 국민연금이나 고용 보험, 건강 보험 등의 ‘사회 보험’ 체계는 요컨대 완전 고용에 준하는 안정된 일자리를 기초로 세워진 것이다. 사업주와 노동자가 보험료를 분담해서 내고 기금을 조성하여 나중에 노동자에게 고령, 질병, 장애, 해고, 재해 등의 위험이 발생했을 때 노동자가 보험금을 타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사회 보험의 기초인 일자리가 줄어들며 고용이 불안정해지고, 표준적 고용 관계가 해체되어 비정규직 및 특수 고용직이 증가했다. 사회 보험의 사각지대가 너무 커진 것이다. 그래서 기본소득을 사회 보장 제도의 1층에 두고 사회 보험을 2층에 배치하는 21세기형 새로운 복지 국가 구상이 제시되기 시작했다.

사회 보장 제도의 다른 한 축을 이루는 ‘공공부조’는 엄격하게 재산과 소득을 심사해 정말 어려운 사람만을 선별하고 세금을 재원으로 하여 지원하는 제도다. 우리나라에서는 ‘생계급여’가 포함된 ‘국민 기초 생활 보장 제도’가 있다. 그러나 여기엔 숱한 문제점이 지적되어 왔다. 선별된 대상자들이 생계의 곤란함과 빈곤을 끊임없이 입증해야 하는 ‘낙인 효과’의 문제나 선별에서 누락되는 사람들이 다수 존재하는 ‘사각지대’의 문제 등이다. 따라서 공공부조를 점차적으로 폐지하고 기본소득으로 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게 됐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을 통한 자동화로 특징되는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전개도 기본소득 논의에 불을 지핀 원인이다. 과거에도 기술 혁신과 산업혁명이 있었고 그때마다 낡은 기술에 의존한 일자리는 사라졌지만, 사라진 일자리보다 더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은 다르다. 새로 생기는 일자리를 로봇이 맡는다. 또한 로봇은 인간의 육체노동만이 아니라 인간의 인지 노동도 일부 대신하기 시작했다. 극소수의 인공지능 관리자와 다수의 실업자로 이루어진 미래 사회에 대한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의존하는 빅 데이터는 특정 집단에 귀속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따라서 인공지능에 의한 기술 혁명의 혜택이 극소수에게만 귀속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기본소득 역시 인류가 함께 이룬 기술 혁명의 성과를 인류 모두가 함께 누린다는 의미를 지닌다.

생태계의 위기

마지막으로 최근 ‘기후 재앙’으로 표현될 정도로 심각해지는 생태계의 위기가 기본소득 논의를 불렀다. 그동안의 문명은 자연을 수탈의 대상으로만 간주해 왔다. 경제학에서 생산 요소는 자본과 노동, 지대(地代)였을 뿐, 자연은 비용을 치르지 않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논외의 대상이었다. 자본과 노동은 동맹을 맺고 자연을 수탈함으로써 경제 성장을 이뤘고, 이때 성장의 몫을 누가 더 많이 가져갈 것인가를 둘러싼 싸움이 전후 선진국 정치에서 목격되었던 좌·우파의 대립이다. 그러나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가 번갈아 집권하는 선진국의 정치는 불평등한 사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지속했던 불평등 시스템은 오히려 전체의 파이(pie)를 키우면 된다는 성장주의로의 유혹을 키웠다. 전체 몫을 키워야 자기 몫도 함께 커진다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파이 자체를 키우는 경제가 언제고 지속될 수는 없다. 무분별한 성장이 가져온 기후 위기가 그 증거다. 물질적 성장 없이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지 않으면 우리는 자연과 공존할 수 없다. 인간이 살 수 없는 생태계가 되는 것이다. 물질과 에너지의 처리량을 줄여 생태계의 균형을 회복하고, 소득과 자원을 더 공정하게 배분하고, 불필요한 노동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하며, 성장하지 않고도 번영하는 그런 사회가 필요하다. 더 평등하게 분배할수록 파이 자체를 키우려는 성장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쉬워질 것이다. 이러한 생태 사회로의 이행에 도움을 줄 정책으로 많은 사람들은 기본소득을 바라보고 있다.

 

운명의 2016년


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이 도약하기 시작한 해가 있다. 바로 2016년이다. 위와 같은 거시적 흐름에 이어 한국 사회에서 기본소득 논의에 불을 지핀 다섯 가지 사건이 있었다. 먼저 2016년 3월 9~15일간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가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와 한국을 대표하는 바둑 기사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이 있었다. 이 대국은 특히 바둑을 잘 아는 동아시아인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인공지능이 ‘딥 러닝’의 지도 학습(supervised learning)과 강화 학습(reinforcement learning)으로 기력을 향상해 바둑 최고수를 격파하는 모습은, 다가올 ‘인공 일반 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AGI)’[2]에 대한 공포와 함께 인간 노동이 필요 없어질 사회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었다. 알파고가 학습의 재료로 사용한 기보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온라인 대국실 ‘기세이도 바둑 서버(Kiseido Go Server·KGS)’에 등록된 것이었는데, 이 16만 개의 기보가 인류의 ‘공동자산(commons)’이라는 깨달음이 확산되면서, 기본소득의 인식에 일보 전진이 일어났다.

다음은 2016년 6월 5일 진행된 스위스 기본소득 개헌안 국민 투표다. 세계 최초로 이루어진 기본소득 국민 투표가 1인당 국민 소득이 매우 높은 유럽의 복지 국가, 그것도 스위스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은 기본소득 지지자와 반대자 모두에게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비록 23.1퍼센트의 찬성으로 부결되었지만 이 투표 결과를 놓고도 갑론을박이 벌어지며 기본소득 전반에 대한 논의가 확산됐다.

셋째로 앞에서 언급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제 16차 대회가 “사회적, 생태적 전환과 기본소득”이라는 표어 아래 2016년 7월 7~9일까지 서강대학교에서 개최됐다. 동 대회가 아시아에서 개최된 최초의 사례다. 이 대회는 대한민국이 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 기본소득의 선두 주자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넷째로 2016년 4월 13일에 진행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녹색당과 노동당이 기본소득 공약을 내걸고 총선에 참여했다. 비록 두 정당 모두 당선자는 내지 못했지만 한국 정당사에 중요한 한 획을 그었다.

마지막으로 성남시에서는 ‘청년 배당’이 시행됐다. 성남에서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세 청년 개인에게 분기별로 25만 원씩 총 100만 원을 지역 화폐로 지급하는 청년 배당 정책은, 특히 소득 요건을 따지는 서울의 ‘청년 수당’ 정책과 비교되며 한국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쟁이 증폭되는 계기가 되었다. 성남시 청년 배당은 2019년 경기도 ‘청년 기본소득’으로 확대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기본소득을 시도한 나라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통 세계의 흐름에 민감하다. 그래서 기본소득 얘기를 꺼내면 어느 나라에서 기본소득을 하고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본소득을 하고 있는 ‘나라’는 지금 없다. 하지만 과거에는 있었고, 지금도 국가 단위는 아니지만 기본소득을 시행하는 지역은 있다.

알래스카

먼저 1959년 미국의 49번째 주로 편입된 알래스카다. 알래스카는 1982년부터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다. 1968년 프루드호 베이(Prudhoe Bay)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된 후 1974년 주지사가 된 공화당의 제이 해먼드(Jay Hammond)는 주가 소유한 땅에서 나오는 이 유전의 수입을 주의 예산과 주민의 영원한 소득 원천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1976년 주 헌법을 개정하고 주민 투표를 통과해 알래스카 영구 기금(Alaska Permanent Fund)이 조성됐다.

석유 수입의 25퍼센트 이상을 계속 영구 기금에 투입하고 그 기금을 공기업인 ‘알래스카 영구 기금 회사(Alaska Permanent Fund Corporation·APFC)’가 주식, 채권 투자 등으로 운용하여 그 운용 수익을 1년 이상 거주한 알래스카 주민에게 매년 n분의 1로 균등 배당(dividend)하도록 한 것이다. 펀드는 무럭무럭 자라 현재 540억 달러(64조 원)를 넘어섰다. 석유가 고갈되어도 애초 의도대로 미래 세대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영구’ 기금이 된 것이다.

1982년부터 시작된 주민 배당은 운용 수익에 따라 매년 지급 액수가 일정하지 않은데 2008년 1인당 연 3269달러(390만 8841원)가 역대 최고액이었다. 알래스카 영구 기금 배당은 큰 액수는 아니지만 빈곤율을 떨어뜨리고 삶의 의욕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특히 미성년자, 원주민, 농촌 주민에게 크게 도움이 된 것으로 조사된다. 한편 ‘제주 삼다수’는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라는 공기업이 제주도 화산 암반수를 끌어 올려 만들고 있다. 수십 년간 ‘먹는 샘물 PET’ 부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기업의 수익이, 알래스카 영구 기금처럼 주민에게 배당할 기본소득의 재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란

지금은 중단됐지만 이란은 2010~2016년에 세계 최초로 전국적 기본소득을 실시한 나라다. 이란은 이라크와 전쟁을 한 1980년부터 국민에게 막대한 식량과 에너지 보조금을 지급해 왔다. 보조금은 이들의 시장 가격을 극도로 낮게 유지했고, 인구 8000만의 이란은 미국에 이어 휘발유 소비량 세계 2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국제 유가에 비해 너무 저렴했던 탓에 석유 밀수출이 빈번해졌고, 결국 산유국임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석유를 수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기 오염은 심각했고 에너지 보조금은 역진적이었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상위 1퍼센트가 하위 1퍼센트보다 보조금 혜택을 열두 배나 더 보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응해 이란 정부는 2010년부터 보조금 대신 전 국민에게 매월 40달러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기본소득을 받으려면 납세 신고를 해야 했기에 부유층 다수는 기본소득 수령을 스스로 포기했다. 매월 40달러란 액수는 이란 중위소득의 29퍼센트 수준이었고, 기본소득 연간 지급 총액은 GDP의 6.5퍼센트에 해당했다. 보조금을 폐지하고 기본소득을 지급함으로써 국내 유가는 올랐다. 하지만 에너지 보조금의 역진성이 해소되어 에너지를 적게 쓰는 저소득층은 보조금 지급 때보다 훨씬 이익을 보았다. 석유 밀수출이 줄어들고, 에너지 소비와 수입이 모두 20퍼센트가량 감소함에 따라 대기까지 개선되었다. 우려했던 고용 감소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다 2016년, 예산 적자가 늘어나면서 이란 정부는 자산 조사에 따른 현금 지급으로 정책을 바꿨다. 그 결과 수혜자는 크게 줄었다. 세계 최초라고 할 수 있는 이란의 기본소득 시행은 여러 가지 교훈을 남긴다. 기본소득은 사회적 빈곤과 생태적 위기 모두와 싸우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부유층에 대한 과감한 누진 과세와 안정적인 재원 확보 없이는 지속이 어렵다는 점이다. 즉 시스템의 변경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스위스

2018년 11월 17일 프랑스에서는 ‘노란 조끼 시위’라는 대규모 시위가 발발했다.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프랑스 교통법에 따라 차량에 항상 비치해야 했던 노란색 조끼를 입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운동의 직접적 원인은 유류세 인상이었다.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를 위해 인상한 세금(2014년 CO2 1톤당 7유로에서 2018년 44.6유로)은 연료 가격의 상승을 낳았고 일반 시민의 삶은 궁핍해졌다. 유류세 인상은 안 그래도 마크롱 정부를 반대하던 노동자들을 격분시켰다. 시위가 격렬해짐에 따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결국 같은 해 12월에 유류세 인상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반해 스위스는 2008년부터 난방용 연료에 CO2 1톤당 12스위스프랑의 탄소세를 부과한 것을 시작으로 지속적으로 탄소세율을 높여왔고, 2018년에 CO2 1톤당 96스위스프랑까지 탄소세가 8배 수직 상승했는데도 시위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비결은 생태 배당이다. 스위스는 탄소세로 걷은 액수의 3분의 1은 건물과 주택의 에너지 개량 사업 등에 사용하고 나머지를 주민과 법인에 배당으로 되돌려 주고 있다. 스위스에서 3개월 이상 거주한 사람들은 모두 개인별 건강 보험에 가입해야 하는데, 이때 사용되는 건강 보험 계좌로 입금받거나 건강 보험료에서 차감하는 식으로 배당을 받을 수 있다. 그 결과 2018년 난방용 연료 사용이 1990년 대비 28.1퍼센트나 감소하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반면 탄소세를 부과하지 않은 자동차 연료는 같은 기간에 소비가 3.3퍼센트 늘어났다. 스위스 의회는 자동차 연료에도 탄소세를 확대할 것을 고려하는 중이다.

탄소세는 온실가스 배출 억제를 위해 좋은 제도이지만 서민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 타격을 주는 역진적인 세금이다. 기본적으로 간접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탄소세로 걷은 재원을 생태 배당으로 돌려주게 되면, 탄소세는 연료 과잉 소비자가 많이 부담하고 생태 배당은 똑같이 n분의 1로 지급되어 소득 재분배 효과가 발생한다. 내야 할 탄소세액보다 돌려받는 생태 배당금이 더 많은 다수는 탄소세율 인상을 자연히 지지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지구도 좋고 사람도 좋은 길이다.

다만 명심할 것은 배당을 하려고 탄소세를 걷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거꾸로 탄소세를 올리기 위해 배당을 하는 것이다. 생태 배당을 하게 되면 탄소세로 인해 상승한 연료비를 부담하기 어려운 계층이 탄소세 인상에 부담을 갖지 않게 되고, 탄소 배출이 줄어들 때까지 탄소세율을 올릴 수 있다. 탄소세율이 오를수록 난방 과소비는 교정되고, 탄소세 부과가 없어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재생 에너지로 전환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탄소세를 내지 않는 상황을 만들기 위한 배당이다.

따라서 탄소세에 기초한 생태 배당은 지급 방식이 기본소득의 5대 원칙을 충족하고 있지만, 지속적인 기본소득 모델이라 볼 수 없다. 탄소세와 배당의 종식이 그 궁극적 목표이기 때문이다. 탄소 배출이 없는 세상이 이 모델의 목표다. 또한 탄소세·배당만 가지고는 현재의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점도 주지해야 한다. 이 글은 기본소득에 관한 것이므로 여기서 다루지는 않지만,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내연 기관차 금지와 비행기 운행 제한, 공장식 축산 금지 등 다양한 조치가 함께 필요하다.
[1]
모든 가구를 소득순으로 매겼을 때 정확히 가운데에 있는 가구의 소득
[2]
인공 일반 지능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어떠한 지적인 업무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는 기계의 지능을 말한다. 이는 인공지능 연구의 주요 목표이며, SF 작가들이나 미래학자들의 중요한 소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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