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 시나리오
6화

과학 기술의 명암 ; 〈설국열차〉와 〈인터스텔라〉

“마침내 오늘, 2014년 7월 1일 오전 9시를 기해 전 세계 78개국에서 CW-7의 동시 살포가 시작됐습니다. 숱한 논란과 환경 단체들의 반대 속에서도, 지난 7년여간 꾸준히 계속된 연구 개발로 완성된 이 CW-7의 입자들은, 이제 곧 대기권으로 급속하게 퍼지며 지구의 평균 기온을 하강시켜 줄 것입니다. 이로써 오랜 세월 인류를 위기 속으로 몰고 갔던 지구 온난화 문제가 마침내 그 드라마틱한 해결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바이바이 지구 온난화! 이제는, 완전히, 끝입니다!”

영화가 시작하자 흥분한 뉴스 리포터의 내레이션이 들린다. 그러나 이 희망과 기대에 찬 멘트 이후로 이어지는 장면은 눈보라가 전 세계를 뒤덮고 모든 것을 압도하는 파국이다. 2013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SF 영화 〈설국열차〉는 전 인류가 멸망하고 소수의 생존자만이 끝없이 지구 위를 달리는 무한궤도의 열차에서 삶을 이어가는 암울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풀 한 포기, 개미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이 눈이 멀어 버릴 듯 새하얀 설원만 끝없이 펼쳐진 열차 밖 세상과, 어두컴컴하고 답답한 기차 안 세상이 극단적인 대조를 이룬다.

인류의 생존이 극한까지 내몰린 세계를 배경으로 한 또 한 편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는 휘몰아치는 모래 폭풍이 삶을 위협한다. 병충해로 식용 작물들이 하나씩 사라져 가면서 인류는 자원 부족과 굶주림에 시달린다. 밥상을 차릴 때도 식탁에 접시를 엎어 놓아야 할 정도의 극심한 황사로 숨조차 쉬기 어렵다. 지구가 더는 생존 불가능한 곳이 됐다는 판단 아래, 과학자들은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될 다른 행성을 찾아 인류를 이주시킬 계획을 세운다.

〈설국열차〉와 〈인터스텔라〉의 디스토피아적 세계는 이미 어느 정도 우리의 현실이 됐다. 그리고 이 두 영화에서 벼랑 끝까지 온 인류가 선택한 위기의 해결책 또한 SF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실제로 연구 중에 있다. 〈설국열차〉의 화학 물질 살포처럼 과학 기술의 힘을 빌려 인위적으로 지구 환경을 조작하려는 시도가 ‘지구 공학(geoengineering)’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고 있다. IPCC의 정의에 따르면 지구 공학은 “기후 변화의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기후 시스템을 의도적으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방법과 기술”이다. 인류세의 위기가 진행되는 속도는 예상보다 빨라지는데 이에 대처하는 세계 각국의 공조는 삐걱거리면서, 지구 공학은 인류를 구할 희망적인 대안으로 점점 주목받고 있다. 그간 지구 공학의 위험성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높았고, 논의 중인 지구 공학 기술들도 대부분 아직 실용화 단계까지 이르지 못했다. 2001년 IPCC 3차 평가 보고서에서는 지구 공학을 한 챕터의 일부만 할애하는 식으로 가볍게 다뤘다. 그러나 2011년 〈지구 공학에 관한 전문가 회의(Expert meeting on geoengineering)〉가 열렸고, 2014년 IPCC 5차 평가 보고서에서는 기후 변화의 영향을 완화하는 데 지구 공학이 맡을 수 있는 역할을 논의했다. IPCC 보고서에 지구 공학에 관한 내용이 본격적으로 추가된 것은 지구 공학이 이제 기후 변화 정책 논의의 변두리에서 주류로 이동했음을 보여 준다.

 

지구 냉각화 실험의 부작용


지구 공학을 둘러싸고 여전히 거센 찬반 논쟁이 진행 중이다. 옹호자들은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2도 이내로 억제한다는 목표는 지구 공학 없이는 달성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교토 의정서와 같은 정치적 노력이 실제로 온실가스 감축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고, 효과에 비해 너무 큰 비용이 드는 현실을 근거로 내세운다. 사실 해마다 세계 곳곳이 산불이니 해일이니 홍수니 점점 강도를 더해 가는 기후 재앙으로 난리인데도 국제적 합의는 세계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앞세워 주판알을 튕기느라 지지부진한 상황을 보면, 과학 기술의 힘을 동원해 확실한 돌파구를 찾는 편이 현명할 듯하다. 또 인간이 지금까지 이뤄 온 문명과 기술의 발전을 생각하면, 인류 앞에 놓인 또 하나의 과제인 기후 변화도 인간의 힘으로 해결 못할 이유가 뭐겠는가 싶은 낙관적인 기대도 생긴다.

현재 연구 중인 대표적인 지구 공학 기술에는 크게 태양 복사 관리 기술(Solar Radiation Management techniques·SRM techniques)과 이산화 탄소 제거 기술이 있다. 〈설국열차〉의 CW-7이 바로 이 태양 복사 관리 기술에 속한다. 파울 크뤼천은 성층권 에어로졸 분사 실험(Stratospheric Aerosol Injection·SAI)을 제안했는데, 황산염 먼지와 같은 에어로졸[1] 입자를 대기 중에 분사하여 태양열 흡수율을 떨어뜨림으로써 지구 온도를 낮추는 것이다. 이 기술은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하면서 약 2000만 톤의 황산염 에어로졸이 성층권에 유입돼 1~3년간 지구 평균 기온을 0.5도나 낮춘 사건에서 착안했다. 이러한 원리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햇빛을 차단하는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지구 온난화’에 대응할 ‘지구 냉각화’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꽤 그럴듯한 아이디어다. 하버드 대학에서 지구 공학 기술이 안전하게 화산 분출의 대기 냉각 효과를 낼 수 있는지 결정하고자 실험을 진행하고 있으며, 워싱턴 대학은 구름에 소금물 에어로졸을 뿌려서 구름 밝기를 높여 더 많은 열을 우주로 반사하게 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2010년 미국 의회 과학우주기술위원회 의장은 지구 공학 연구를 활성화할 것을 권고했으며, 이에 호응하듯 빌 게이츠는 수백만 달러를 지구 공학 연구 사업에 투자했다. 그가 투자한 회사 중 하나인 인텔렉추얼 벤처스(Intellectual Ventures)는 최소한 두 개 이상의 지구 공학 도구를 개발 중인데, 그중 하나인 성층권 방패(Strato shield)는 헬륨 풍선을 이용해 30킬로미터 길이의 호스를 하늘에 띄우고 황산염 입자를 분사해 태양 광선을 차단한다.

두 번째 기술인 이산화 탄소 제거 기술은 화석 연료를 연소시킬 때 대기 중에 배출되는 이산화 탄소를 포집하여 액체로 압축한 다음, 바다 밑바닥이나 땅속에 저장하는 것이다. 이를 탄소 포집 저장 기술(Carbon Capture and Storage·CCS)이라 한다. 이산화 탄소가 대기로 유입되기 전에 포집하여 분리하는 기술은 지금도 유전과 천연가스 매장지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아직은 소규모로만 이용되고 있다. 따라서 대규모 석탄 화력 발전 시설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그 밖에도 해양에 철분을 투입해 식물성 플랑크톤의 번식을 촉진해 탄소를 대량으로 빨아들이게 한다던가, 메탄을 소비하는 박테리아를 이용하는 기술 등이 연구 중이다.

기왕 기술의 힘을 빌려 보기로 한 김에, 이미 상태가 많이 나빠진 듯한 지구를 고치느라 애를 먹느니 〈인터스텔라〉에서처럼 더 살기 좋은 별을 찾아 아예 지구를 떠나는 건 어떨까? 〈인터스텔라〉 이전에도 이러한 상상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1929년 물리학자 J.D. 버널(J.D. Bernal)은 인류의 미래는 지구의 한계를 초월할 것이고, 인류는 적절한 사이버네틱 강화로 우주를 식민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직경 10마일의 구(球)에 인간이 거주할 수 있고 지속 가능한 인공적 환경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런 우주 식민지의 꿈은 공상에서 끝나지 않는다. 미 방위고등연구계획국(US 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과 NASA 에임스 연구 센터(Ames Research Center·ARC)는 해마다 100년 우주선 심포지엄(100 Year Starship Symposium)을 개최하여 이 꿈을 현실적으로 실현할 과학적 방법들을 논의하고 있다. 이 심포지엄에는 다음 세기 성간 비행과 식민화를 목표로 과학 소설 작가들, 유명 우주 비행사, 발명가들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발표된 논문들은 광속에 가깝게 날 수 있는 우주선 개발, 열역학적 법칙을 위반하는 열 추진 시스템, 완벽하게 지속 가능한 인공적 생물권을 구성하는 문제 등을 주로 다뤘다.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 모터스(Tesla Motors) 최고 경영자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민간 우주 탐사 기업 스페이스 X를 설립하고 2050년까지 화성으로 100만 명 이상 이주시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태양광을 이용해 자급자족하는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그는 인류가 지구라는 하나의 행성에만 머문다면 멸종할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므로,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함으로써 인류를 다행성 종족으로 진화시키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지구 공학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분명 매력적인 대안이다.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면에서 탄소세나 쓰레기 분리수거 등의 복잡한 정책들로 이산화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 이산화 탄소 배출량 감축에 들어가는 비용의 10분의 1에서 100분의 1만으로도 지구 공학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2] 기후학자 데이비드 키스(David Keith)는 지구 공학적 개입으로 전 세계 평균 기온을 1도 낮추는 데 들어갈 비용을 연간 7억 달러로 추정했다. 이 정도 액수는 온실가스 배출을 완전히 없애는 데 드는 비용에 비해 극히 낮으며, 한 국가, 한 기업, 심지어 억만장자 한 사람도 감당할 수 있는 규모다.[3] 그래서 미 하원 과학기술상임위원회 회장인 러마 스미스(Lamar Smith)와 같은 지구 공학 옹호자는 실행할 수도 없으면서 비용만 높게 드는 정부 지시를 미 국민에게 강제하는 대신, 기술과 혁신이 기후 변화에 대처할 방법을 이끌어야 한다는 열렬한 옹호론을 펼친다.

여기까지 들으면 지구 공학이 전 지구적 기후 재앙에 대한 현실적인 해결책이라는 게 꽤 솔깃하게 들린다. 그러나 〈설국열차〉에서 CW-7을 살포한 이후의 전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지구 공학이 가진 저렴한 비용이라는 현실적인 장점 이면에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위험성들도 분명 존재한다. 인류는 아직 지구 전체라는 이렇게 엄청나게 크고 복잡한 시스템을 대상으로 기후를 조작하는 대규모 실험을 해본 적이 없다. 지구 공학적 시도가 미칠 효과를 예상해 보려면 사전 실험이 필요하겠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니 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실제 현실과 얼마나 유사할지 알 수 없다. 컴퓨터 모델은 현실을 재현하는 데 많은 한계가 있다. 많은 가정에 의존해 큰 그림의 패턴만 잡아낼 뿐, 세부까지 포착하진 못한다. 성층권 에어로졸 분사 실험은 기후 패턴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불확실하다. 특히 생태와 농경 시스템에 예상치 못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성층권에 에어로졸을 뿌리면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에 가뭄이 올 수도 있고, 그 결과로 수억 명이 기아를 겪게 될 수도 있다. 또 이 기술은 해양 산성화에는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하며, 오존층에 뚫린 구멍이나 산성비, 대기 오염 문제는 오히려 악화시킬 수도 있다. 탄소 포집 저장 기술의 경우, 아직 대규모로 적용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땅속에 모은 탄소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더 큰 문제가 남아 있다. 자칫 핵폐기물처럼 지하 탄소 저장고가 잠재적인 위험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지구 공학 기술을 통한 기후 개입이 가져올 부수적 효과들을 모두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기술의 적용으로 어떤 외부 효과가 발생하게 될지도 알 수 없다. 경제학자 윌리엄 노드하우스(William Nodhouse)는 기후 변화 문제에서 외부 효과를 ‘이산화탄소 배출을 유발한 사람이 그로 인한 특권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해를 입은 사람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으로 정의한다. 현재도 기후 변화의 파괴적 영향은 방글라데시처럼 경제적으로 취약한 국가들이 더 크게 받고 있는데, 일부 국가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인 기후 개입에 나설 경우, 이러한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 의도하지 않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발생할 외부효과까지 고려한다면, 당장 들어가는 비용이 적다고 해서 과연 지구 공학이 경제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이처럼 현실적이고 기술적인 문제점들뿐 아니라, 지구 공학은 인류세의 위기를 우리가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할 것인가의 관점에서도 더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많다.

 

지구라는 시스템, 열차 혹은 가이아


〈설국열차〉에서 꼬리 칸의 반란 지도자 커티스는 피 튀기는 싸움 끝에 수많은 열차 칸들을 지나 드디어 엔진의 지배자 윌포드를 만난다. 그를 마주한 윌포드는 이렇게 말한다. “엔진은 성스럽고, 기차는 영원해.” 1년에 한 번,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기차는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의 축소판이다. 기차 내부는 윌포드의 말처럼 균형을 맞추어 돌아가도록 정교하게 조정된 ‘닫힌 생태계’다. 스시는 1년에 딱 두 번만 먹을 수 있다. 꼬리 칸 승객들의 숫자는 의도적으로 부추긴 반란과 학살을 통해 일정 비율로 조절된다. 윌포드의 말에서 기차 안의 견고한 계급 체제를 전복하려는 혁명의 시도조차 균형을 유지하려는 기차의 시스템 안으로 흡수된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 끝없이 달리는 열차를 기획하고, 제작하고, 유지하는 윌포드는 기차라는 시스템을 가장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하는 엔지니어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 면에서 설국열차의 세계는 공학자가 지배하는 세계이다. 지구를 하나의 닫힌 계이자 변수와 구성 요소들이 한정돼 있어서 그 움직임을 정확히 계산하여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본다면, 이를 관리하고 문제가 생길 경우 수리할 수 있는 공학자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태양 지구공학(solar-geoengineering)을 지구 온난화의 대안으로 내놓은 크뤼천의 생각도 인류세의 위기에 공학자와 과학자들이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에 두고 있다. 그는 인류세에 대규모 지구 공학적 프로젝트를 통해 환경을 지속 가능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사회를 이끌어야 할 두려운 임무가 과학자와 공학자들 앞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이성과 과학의 힘으로 세계의 비밀을 밝혀 환경을 개척하고 지배하는 인간의 이미지는 서구 사상의 뿌리 깊은 인간 중심주의적 세계관에서 나왔다. 성경에서 하느님은 세상을 만드신 후 아담에게 모든 동식물에 ‘이름 붙일 권리’를 부여했다. 이름 붙일 권리는 인간에게 만물을 자유로이 이용하고 관리할 수 있는 주인으로서의 자격이다. 생태 사상가 린 화이트(Lynn White)는 이러한 인간 중심주의적인 기독교 사상이 서구인들이 자행한 모든 환경 파괴의 근원에 있다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인간 중심주의적 세계관은 17세기 과학 혁명을 거치면서 과학 기술이라는 강력한 도구로 더욱 힘을 얻었다. 뉴턴 이후 수많은 부속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교하게 끼워 맞춰져 정해진 법칙에 따라 돌아가는 시계는 당대의 기계론적 세계관을 상징하는 핵심적 비유가 됐다. 이 세계를 만든 신은 시계공에 비유됐고, 인간도 합리적인 이성으로 이 정교한 시계를 움직이는 법칙과 원리를 파악한다면 이를 통제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기계는 여러 부분으로 나눠질 수 있다는 점에서 환원주의적 세계관의 상징이기도 했다. 환원주의란 대상을 하나의 전체로 놓고 보기보다는, 그 중 어느 한 부분으로 축소해서 보는 관점이다. 지구 공학은 서구 근대 과학의 문제점으로 비판받아 온 이러한 관점을 답습한다. 지구 공학은 말 그대로 고장난 지구를 고치는 기술을 연구한다. 자동차가 제 기능을 못한다면, 멀쩡하던 사람이 시름시름 앓는다면 어디가 문제인지 원인을 찾아내 그 부분을 고치면 된다. 브라이언 론더(Bryan Launder)는 지구 공학에 대해 의사가 환자를 수술로 고치듯 “병든 지구를 수술한다”는 표현을 쓴다. 아픈 부분을 치료하고 고친다는 생각은 당연하고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병이 눈이나 위장 등 신체의 어느 한 부분에 나타난다 해서 꼭 그 부분만의 문제가 아닌 경우도 많다. 신체 각 부분은 복잡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하나의 원인이 전혀 엉뚱한 다른 부분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렇기에 앞서 2장에서 설명했던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은 지구를 고장나면 땜질하고 수선할 수 있는, 심지어 버리고 새것으로 갈아탈 수도 있는 우주선 정도로 보는 관점에 반대한다. 가이아는 기존의 환원적인 과학으로는 그 실체와 작동 원리를 밝혀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양과 음의 피드백이 무수히 공존하기 때문에 인과 관계의 전통적인 선형 논리가 통하지 않는 순환 논리(circular logic) 회로를 갖는다. 따라서 일종의 블랙박스처럼 그 안에서 부분들끼리의 어떤 상호 작용에 따라 결과가 산출되는지 파악할 수 없다. 가이아의 이러한 특징들을 고려하면, 지구를 생명 없는 자원 혹은 인간이 작동 원리를 파악하기만 하면 뜻대로 조작할 수 있고 문제가 생긴 부분만 따로 떼어 복구할 수 있는 일종의 기계로 보는 근대 과학의 관점은 인간의 능력을 과신한 오만에서 나온 환상에 불과하다. 지구는 각 부분이 복잡하게 상호 연결되어 부분의 합이 전체보다 큰 시스템이다. 즉 특정 지역의 기후를 조정하려는 시도가 다른 지역에서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는 예측 불가능하다. 〈설국열차〉에서 CW-7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대재앙을 가져오고, 윌포드는 “기차는 영원하다” 말하면서도 계속해서 부품들이 멸종되고 유지가 어려워지는 상황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구 시스템, 혹은 기차를 통제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부질없다.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인간의 어설픈 노력이 오히려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하는 〈설국열차〉의 이야기와는 달리, 인간의 능력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인류세를 전혀 다르게 보는 관점도 있다. 에코모더니스트(Ecomodernist)들은 인류세를 ‘인류의 세기’라는 긍정적 의미로 해석하고, 인류세의 위기도 인간이 결국 극복하고야 말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세계의 주인이며, 위기를 초래한 것은 인간이지만 이를 해결할 책임과 능력 또한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다. 얼 엘리스는 인간이 파괴력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생물권의 한결같고 영구적인 관리인”이었다는 견해를 옹호한다. 우리는 과학으로 위험을 통제할 수 있고, 무너져가는 세계와 멸종 위기에 처한 생물종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에코모더니스트들은 인류세가 인간의 오만이 낳은 위험성에 대한 결정적 증거가 아니라 자연을 개조하고 제어하는 인류의 능력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역사가 우리 인류의 적응성을 입증하며, 인류세는 우리가 극복해야 할 또 다른 도전 과제라는 것이다. 데이비드 키스는 행성의 환경을 형성할 수 있게 된 인류의 새로운 능력에 대해 기뻐하며 지구 공학 기술을 활용해 번성하는 문명을 건설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에코모더니즘은 인간의 자발성과 창의성이 미래를 만든다는 휴머니즘의 전통에 입각해 있으며, 인간화된 지구는 불가피할 뿐 아니라 나아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지구 시스템의 위기로 도래한 인류세는 퇴보의 상징이 아니라 극복을 통해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하게 해주는 전환이다.

〈인터스텔라〉는 영화 내내 지구 환경을 인간의 요구에 맞도록 개조하고 재형성해 나가는 인간의 끝없는 잠재력에 대한 굳은 믿음을 드러낸다. 인류 멸망이 눈앞까지 닥친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주인공 쿠퍼는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라는 신념을 버리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어두운 밤을 쉬이 받아들이지 말라”는 토머스 딜런의 시구는 자연이 부과한 한계에 도전하는 인간의 불굴의 의지를 강조한다. 전직 우주 비행사이자 엔지니어인 쿠퍼는 달 착륙조차도 냉전 시대의 날조로 부정되고 과학자보다 농부를 더 필요로 하는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기 힘들어한다. 우리는 농부가 아니라 탐험가, 개척자의 후손이며 과학과 이성의 힘이 세상을 진보시킬 수 있고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정한다고 믿는 지극히 미국인다운 사고방식의 소유자로서, 다른 사람들처럼 무력하게 소멸을 정해진 운명으로서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극심한 환경 파괴로 더는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지구 대신 다른 행성을 찾아 인류의 새로운 집으로 개조한다는 발상에서 ‘테라포밍(terraforming)’이라는 개념이 나왔다. 마틴 J. 포그(Martyn J. Fogg)는 1995년 《테라포밍: 행성 환경의 엔지니어링(Terraforming: Engineering Planetary Environments)》에서 테라포밍을 행성의 전체적 특질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하는 기술 적용으로 정의했다. 즉, 테라포밍은 생명을 부양하기 위해 행성 환경의 능력을 강화하는 프로세스로, 궁극적인 목적은 지구의 생물권의 모든 기능을 모방하는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포그는 생태학적 지구 공학 기술이 언젠가 다른 행성에 생명을 이식하는 데 이용돼 환경 파괴의 대안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하겠다는 머스크의 계획도 테라포밍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스텔라〉에서 테라포밍을 이용한 우주 식민지 건설의 꿈은 무대를 서부의 황야에서 우주로 옮겼을 뿐, 미국 역사에서 미국적 정체성의 핵심으로 평가돼 온 개척자 정신을 잇고 있다. 종교의 자유와 새로운 삶을 펼칠 기회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을 찾아온 청교도 선조들의 역사 이래로, 끝없이 펼쳐진 황야를 정복해 문명을 건설하고 부를 일군다는 프런티어(frontier)의 이상은 미국 문화를 관통하는 중요한 정신적 요소가 됐다. 미국적 정체성의 근원을 프런티어에서 찾으려는 ‘프런티어 사관’은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과 확신으로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적극성과 독립성, 민주주의적 정신을 미국적 정체성의 본질로 찬양하게 됐다.

주인공 쿠퍼는 통제와 구속을 싫어하는 개척자 미국인의 전형이다. 황폐해진 지구를 버리고 새로운 개척지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것이 그로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서, 그가 블랙홀에서 얻어 딸에게 전송해 준 정보로 중력 방정식을 풀어낸 덕분에 인류는 절멸의 위기에서 벗어나 거대한 우주 정거장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게 된다. 프런티어 역사의 팽창주의적 정신은 문화적으로는 한때 번성했던 서부 영화에서 1960~1970년대 우주 개발과 달 탐사의 분위기를 타고 SF 영화로 이어졌다. SF 영화 속 우주는 서부를 대체할 새로운 프런티어 즉, 모험과 개척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일론 머스크가 우주선을 쏘아올리고 화성을 개척하겠다고 나서는 데에도 나름의 역사적 배경이 있다.

그러나 ‘프런티어 사관’의 팽창주의는 끝없이 자원을 추출하고 소비해야만 유지될 수 있는 미국식 소비 자본주의와 유사한 면이 있다.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루이스 해커(Louis Hacker)는 개척 정신이니 혁신이니 하는 근사한 명분 때문에, 농작에 무지했던 서부 개척자들이 되는대로 농사를 짓다가 토지 수명이 다하면 땅을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는 행태를 반복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으면 지구의 자원을 뽑아 쓸 수 있는 데까지 함부로 뽑아 쓰다가 결국 어떤 농작물도 자랄 수 없게 되자 새로운 별을 찾아 나서는 〈인터스텔라〉의 상황과 겹친다.

기나긴 시간 동안 광막한 우주에서 인류의 단 하나의 집이었던 지구를 버리는 일이 그렇게 다 쓴 빈 깡통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 일처럼 간단할까? 일단 망가진 지구를 되살리는 일보다 우주 식민지 건설이 더 간단하다는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다. 포그는 인간, 정치, 인프라가 걸 제동 때문에 지구를 고치는 것보다 사람이 살지 않는 행성을 개척하는 쪽이 더 쉽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이곳에서의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다루면서 문제를 해결하기가 너무 복잡하다는 이유로 새로운 텅 빈 땅으로 옮겨간다면, 새로운 세계에선 지구상 존재했던 복잡한 갈등들이 말끔히 사라질까? 서부 개척 시대에 인구가 늘고 자원이 부족해지면서 사회적 갈등이 증폭할 때, 아직 남아 있는 빈 토지를 개척하면 된다는 생각은 그러한 갈등과 불만이 쌓이지 않고 해소될 수 있는 배출구의 역할을 해줬다. 그러나 아메리카 대륙이 아무리 넓다 해도 무한히 넓지는 않다. 서부 개척 시대는 1890년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낭비가 깃든 생활 습관을 바꾸지 않는 한, 인간은 새로운 별에 가더라도 언젠가는 그 별 또한 지구처럼 더는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죽은 땅으로 바꿔 놓을 것이다. 인류는 주기적으로 새로운 행성을 찾아 옮겨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삶은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 우주에 원형 위성을 띄워 생태계를 건설하는 페르세포네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회학자 스티브 풀러(Steve Fuller)는 “지구가 기후 변화나 핵전쟁, 생물전으로 인해 인간에게 쓸모없는 지대가 될 경우를 대비해, 인간 문명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회학자 클라이브 해밀턴(Clive Hamilton)은 이렇게 반문한다. “왜 우리가 인간 문명을 보존해야 한단 말인가? 문명을 태동시킨 자연 조건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그 문명의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

해밀턴의 질문에 〈설국열차〉와 〈인터스텔라〉는 각각 다른 식으로 답한다. 〈설국열차〉에서 윌포드는 기차의 지배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역시 기차에 종속된 시스템의 일부다. 멸종돼 가는 부품 대신 아이들을 투입하면서 기차를 유지·관리해 왔다. 사람은 늙고 죽지만 기차는 영원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젊은 피 커티스에게 자신의 자리를 넘겨받아 달라고 부탁한다. 아이들을 갈아 넣더라도, 지배자가 바뀌더라도, 기차는 계속 달려야 한다. 윌포드의 가장 큰 목표는 이 기차로 대표되는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15년 전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기차 밖으로 도망쳤지만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얼어 죽은 ‘7인의 반란’ 주도자들의 시신은 체제에서 이탈하려는 시도가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 보여 주는 예다. 기차 밖의 세상은 아예 존재하지 않고 기차의 문은 오래 전에 이미 출입구가 아닌 벽이 되었다고 한다면, 기차의 맨 앞칸까지 도달한 커티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기차 바닥에서 발견한 아이들의 모습은 윌포드의 설득에 거의 넘어간 커티스에게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왜? 그렇게 해서까지 기차라는 시스템을 계속 유지해야만 할 이유가 있는가?’ 해밀턴의 질문처럼, 지속 가능성과 점점 멀어져 가는 문명을,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인터스텔라〉는 눈앞에 닥친 인류의 종말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에 분노하고 탄식할 뿐, 병충해와 대기 오염, 황사와 같은 재앙이 어디에서 비롯했는지는 묻지 않는다. 자연의 힘은 끝없이 확장하고 정복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방해하는 장애물이며 극복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숨을 쉴 수 없게 온 세상을 뒤덮는 지독한 황사는 1930년대 미국의 더스트 볼(Dust bowl)을 연상시킨다. 더스트 볼은 1930년대 초반 거대한 모래 폭풍이 미 중서부를 강타해 20만 명이 타지로 이주해야만 했던 큰 환경 재앙이자, 존 스타인벡(John Ernst Steinbeck, Jr.)의 소설 《분노의 포도》의 배경이다. 〈인터스텔라〉에서도 영화 앞부분에 등장하는 여러 노인의 인터뷰 중에 더스트 볼을 짧게 언급한 부분이 있어서, 영화 속의 모래 폭풍의 묘사가 과거의 역사로부터 영감을 얻었음을 보여준다. 더스트 볼의 원인은 1933년부터 4년간 계속된 가뭄 탓도 있지만, 1929년 대공황 이후 식량 증산을 위해 무리하게 경작량을 늘림으로써 농토가 황폐화한 것이 크다. 지력을 보존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경작을 하는 과정에서 급속한 사막화가 진행된 것이다. 이는 자연적 요인과 인간적 요인이 결합된 인류세적 환경 재난의 특징을 드러낸다. 이후 농사법의 개량과 복구 사업으로 1940년대에는 어느 정도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으나, 스타인벡의 소설에서 잘 묘사됐듯이 정든 고향 집과 농토를 버리고 새 삶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떠난 오클라호마 농민들은 삶이 무너지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가난하지만 평화로웠던 그들의 삶을 파국으로 몰아 넣은 것은 단지 모래 폭풍이라는 자연의 힘만이 아니었다. 오랜 가뭄으로 수확량이 감소하면서 농민들은 은행 대출로 버틸 수밖에 없었고,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결국 가진 것 모두를 은행에 빼앗기고 고향을 떠난다. 새로운 삶을 꿈꾸며 찾아간 캘리포니아도 이들이 그리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아니었다. 그들은 〈설국열차〉의 꼬리 칸 사람들처럼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밑바닥에서 착취당하다가 버려지는 잉여 인간일 뿐이었다.

 

기술 발전이 그린 다른 미래


인류세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은 기술 부족이 아니다. 오히려 과도한 기술의 발전이 이 위기를 촉발했다. 따라서 기술 발명과 발전이 문제의 해결책이 되기도 어렵다. 환경 사회학자 다이애나 스튜어트(Diana Stuart)는 지구 공학 기술은 현 사회 질서를 초월할 잠재성을 담보하지 않으며, 기존 사회 질서를 유지할 뿐이라고 말한다.[4] 지구 공학은 외려 기술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테니 고통스럽게 기존의 체제와 질서를 바꿀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는 환상을 심어줄 수 있다. 그러나 기차의 부품은 점점 멸종되어 가고 기차는 윌포드의 표현을 빌면 점점 더 “예민해질” 것이다. 〈인터스텔라〉에서 제3의 별을 찾아 떠난 인류에게 그곳도 영원한 집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지구 공학의 가장 큰 위험성은 기술적 결함보다도, 어쩌면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대로 욕망하던 것을 욕망하며 이 기차 안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지구 공학이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한 도덕적 해이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데는 이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지만,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비용도 더 들뿐더러 상당한 노력이 든다. 그런데 지구 기온을 확 낮출 수 있고, 이미 대기 중에 배출된 탄소까지 제거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더 비싼 친환경 제품을 사느라 지갑을 열고 분리수거를 하느라 고생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후 변화를 막으려는 노력을 애써 하지 않고, 그게 내 일이라고 생각지도 않는 도덕적 해이가 찾아온다. 굳이 내가 애쓰지 않아도 첨단 과학 기술이 어떻게든 해결해 줄 테니까 말이다. 지구 공학적 해결책은 불편한 사회적, 정치적 해결책을 회피할 수 있다고 유혹하지만, 지구 공학을 기후 변화의 해결책으로 내세우면 적응 전략에는 더 적은 자원을 투자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구 공학 기술에는 현재의 지배적인 정치·경제 체제를 보호하겠다는 암묵적 약속이 담겨 있다. 다이애나 스튜어트는 사회적 맥락에서 지구 공학 전략은 현재의 화석 연료가 이끄는 자본주의 질서를 보호하고 재생산하는 기후 변화 전략으로 보일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CCS(Carbon Capture and Storage·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은 화석 연료, 특히 석유 회사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 세계적인 석유 회사 셰브론(Chevron Corporation)이 2005년 이산화 탄소 포집과 저장에 관한 IPCC 특별 보고서 개발에 참여했으며, 조지 부시 행정부는 2009년 강제적인 배출 감축 등 정부 규제에 대한 대안으로 CCS를 포용했다. 이처럼 지구 공학은 화석 연료 추출과 소비를 지속하면서도 기후 변화에 대처할 접근법을 제시한다. 회사들에 남은 화석 연료 자원을 뽑아내고 여기서 이익을 최대화할 시간을 벌어 주고, 배출 감축 접근법을 연기하게 만든다.[5] 부시 이외에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기후 변화 부인론자와, 정부 규제에 반대하는 자유 시장 및 자본주의 지지자들이 지구 공학을 옹호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스튜어트는 지구 공학을 두고 “기후 변화를 완화하기 위해 대규모 변화가 일어나야만 하지만, 구조적으로 그렇게 하기에 필요한 사회 구조적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사회의 산물”이라고 비판한다. 냉전 시대에 핵전쟁을 막으려는 기술적 노력이 근본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공적 조사를 가렸듯이, 지구 공학 기술은 환경 파국의 진짜 원인을 가린다는 것이다.[6]

무한한 우주를 끝없이 정복하고 인간의 영역을 확장하여 영원히 번성을 누리는 〈인터스텔라〉 식의 미래가 환상에 불과하다면, 〈설국열차〉의 미래에서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굳게 닫힌 열차의 문을 열고 싶은 전직 보안 책임자 남궁민수가 문을 폭파하여 기차가 전복하는 결말은 개봉 당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다른 승객들은 모두 죽고 마지막으로 한국인 소녀 요나와 기차의 부품 노릇을 하던 흑인 소년 티미 단 둘이 살아남았다면 사실상 인류의 멸종이라는 암울한 결말로 보아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들도 많았다. 하지만 열차의 체제를 그대로 존속시켰다면 인류에게 다른 미래의 가능성이 있었을까? 열차 안의 닫힌 생태계가 지속하기 위해서는 약자들의 희생이 요구되며, 그나마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확실했다. 조금이라도 다른 미래의 가능성을 보려면 남궁민수의 말대로 너무 오래 굳게 닫혀 있어서 모두가 벽이라고 믿어 버리게 된 문을 열고 나가야만 했다. 열차는 〈인터스텔라〉의 우주 정거장과 비슷하게 외부로부터 차단돼 독자적으로 유지되는 공간이며, 그 안에 머무는 한 그곳을 유지하는 데 요구되는 논리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열차 칸 사이의 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커티스 무리의 일직선적 움직임은 열차의 진행 방향을 따르며, 열차의 논리에 종속해 있다.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도 열차 자체는 늘 같은 궤도를 반복하듯, 그들은 사실상 전진하지 못한다. 그러나 남궁민수가 열차 문을 폭파하여 열차를 정해진 궤도에서 이탈시킴으로써 기술과 이성에 의한 역사의 진보라는 일직선적 시간관은 파열한다.

봉준호 감독은 인터뷰에서 영화의 결말을 둘러싼 온갖 논쟁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나는 사실 100퍼센트 희망적인 엔딩을 생각하고 찍었다. 한 시스템이, 한 체제가 종말을 고했고 인류의 새로운 시작인 것이다.” 너무 많은 폭력이 영화의 전반을 지배하는 것은 사실이다.

벽이 사실은 문이라는 사고의 전환과, 그 너머의 전혀 다른 세상에 대한 상상력 없이는 기존의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서 벗어난 인류세의 새로운 세계를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남궁민수는 열차의 탈선 이후를 책임질 수 없다. 크로놀이 폭발한 순간 사태는 이미 그의 손을 떠나 통제불능의 상태로 넘어갔으며, 이후의 미래는 어린 두 생존자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무력함 탓에 영화의 결말이 기존 체제를 파괴했을 뿐 새로운 정치적 대안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터스텔라〉의 안정된 우주 정거장이 제공하는 미래 대신, 이런 불확실한 미래의 전망이 역설적으로 〈설국열차〉가 제시하는 희망의 비전일 수 있다. 인간들이 열차 안에 갇혀 과거의 역사를 반복하는 동안, 열차 밖의 세계는 인간과 상관없이 생태계의 균형을 회복했다. 이제 더는 인간이 주인이 아닌 그 세계에서, 요나와 티미는 이미 적응에 성공한 북극곰과 더불어 생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미타브 고시는 《대혼란의 시대(The Great Derangement)》에서 기후 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에 의해 고향인 콜카타가 큰 위험에 처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고향에 사는 어머니께 이사를 하도록 권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열심히 설득했으나 어머니는 전혀 넘어가지 않았다. 세계은행의 보고서에 언급된 위험 때문에 정든 집을 떠나야 한다니, 어머니에겐 미친 소리처럼 들렸던 것이다. 고시는 그 경험으로 삶은 논리가 이끌어가지 않으며, 습관적인 행동이라는 관성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변화를 만들어 내는 일이 각 개체에게 맡겨진다면 우리 가운데 지구 온난화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의 미친 것처럼 보이는 강박적이고 편집적인 사람들만이 스스로 뿌리째 변화하고 올바르게 준비할 수 있다.”[7] 수십 년간 크로놀(설국열차에 등장하는 미래의 마약)을 모으고 감옥 칸에 갇혀 살면서도 문을 폭파하고 밖으로 나갈 날만을 기다렸던 남궁민수라면 고시가 말하는 조건에 부합할지도 모르겠다.

지구 공학이라는 기술이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이라는 맹목적 믿음은 기술이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이지만, 제한적으로, 적절히 사용된다면 인류세의 위기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며, 시간을 벌어 주거나 일종의 보험 역할을 하는 정도일 것이다. 정말로 경계해야 할 것은 기차 밖으로 나가면 얼어 죽는다는 이야기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지구 공학적 기술만이 우리의 구원이며, 화석 연료 없이는 우리 삶을 지탱할 방법이 없다고, 저 문은 문이 아니라 벽이라고 믿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기술 공학은 개척자이자 발명가로서 인간의 역할, 인간이 주인공이 되어 만드는 역사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그러나 인류세의 이야기에서, 인간은 더 이상 유일한 주인공이 아니다. 테라포밍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태곳적부터 지렁이들은 분변토로 흙을 기름지게 바꿔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지구를 만들어 내는 데 일조했다. 이런 생물체들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새로운 행성에서 인간의 세계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공동으로 만들어 내고 지구의 이야기를 공동으로 써내려 온 다른 존재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렇게 건설된 새로운 사회는 온전하지도, 풍요롭지도 않을 것이다. 도나 해러웨이는 “이야기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또한 세계를 만들기도 한다”며 이야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어떤 이야기가 세계를 만드는가, 어떤 세계가 이야기를 만드는가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8] 이것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새로운 지구 공학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지 모른다.
[1]
에어로졸은(Aerosol)은 Aero-Solution의 줄임말로, 지구 대기를 떠도는 미세한 고체 입자 혹은 액체 방울을 의미한다. 크기가 0.001~100나노마이크로 정도로 아주 작아 육안을 보기 힘들다.
[2]
윌리엄 노드하우스(황성원 譯), 《기후카지노: 지구온난화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한길사, 2017.1.6., 224쪽.
[3]
얼 엘리스(김용진, 박범순 譯), 《인류세》, 교유서가, 2021.4.19., 251쪽.
[4]
Diana Stuart, Ryan Gunderson and Brian Petersen, 《Climate change solutions: beyond the capital-climate contradiction》,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2020.1, pp.63.
[5]
Diana Stuart, Ryan Gunderson and Brian Petersen, 《Climate change solutions: beyond the capital-climate contradiction》,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2020.1, pp.57-58.
[6]
Diana Stuart, Ryan Gunderson and Brian Petersen, 《Climate change solutions: beyond the capital-climate contradiction》,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2020.1, pp.63.
[7]
아미타브 고시(김홍옥 譯), 《대혼란의 시대》, 에코리브르, 2021.4.20., 76쪽.
[8]
도나 해러웨이(최유미 譯), 《트러블과 함께하기》, 마농지, 202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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