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 시나리오
7화

북저널리즘 인사이드 ; 인류세의 주인공은 인류가 아니다

46억 년 지구 역사에서 인류가 존재한 시간은 고작 0.004퍼센트 남짓이지만, 지금껏 이토록 강력한 종種은 없었다. 300만 년 전 이 행성에 처음 등장한 이래로 인간은 끊임없이 문명을 고도화했고, 그 흔적을 이 땅에 켜켜이 쌓았다. 전 지구적 차원의 환경 변화나 특정 생물종의 등장 및 멸종으로 분류하는 지질시대에 인류세, 즉 인류의 시대를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말이다. 지질학적 개념에 ‘인류’라는 특정 종명이 들어가 착각하기 쉽지만, 인류세는 인류의 위대한 번영과 업적을 기르기 위한 용어가 아니다. 그보다는 인간 흔적이 지구 위기를 초래했다는 일종의 경고에 가깝다.

인류세를 주장하는 과학자들은 공룡과 암모나이트가 중생대를 대표하듯, 인간이 만들어낸 플라스틱, 방사성 물질, 콘크리트 같은 인위적인 물질과 공장식 축산 방식으로 매년 500~600억 마리씩 도살되는 닭의 뼈가 훗날 현세의 대표 화석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러한 땅 위의 변화 외에 전 세계가 직면한 기후 위기 역시 인류세를 상징한다. 산업 혁명 이후 화석 연료 사용과 더불어 온실가스 배출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100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사이에 지구 시스템은 균형이 깨졌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유례 없는 기후 재앙은 현상인 동시에 인류세의 증거인 셈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인류세는 낯설기만 하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설마 내가 죽기 전에 지구가 망하기야 하겠냐싶다. 빠르게 녹아내리는 빙하, 도시를 통으로 집어삼킨 홍수, 수개월째 꺼지지 않는 초대형 산불, 해수면 상승으로 지도에서 사라질 위기의 섬나라들 모두 지금의 나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코로나19 판데믹을 보내며 전 세계 국가 그리고 인간과 인간이 아닌 생명체들까지 아주 복잡하게 얽혀 서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인류가 이 땅 위의 유일한 주인공이 아님을 깨달았다.

지금 우리에겐 상상력이 필요하다. 과학자들이 발표하는 연구 결과 혹은 지구 온도 1.5도, 해수면 10센티미터 같은 수치 데이터가 와 닿지 않는 이유는 내가 처할 미래의 상황과 맥락이 통하지 않아서다. 이 책의 저자는 내러티브와 이야기가 “우리가 누구이고, 지구에서 우리의 역할이 무엇이며, 자연과 어떤 관계인가를 탐구하고 재설정하게 한다”고 말한다. 인류의 위기와 파국을 다룬 SF 소설, 디스토피아 영화가 현실을 이해하는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전찬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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