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예순이 다 된 나이에 이르러서야 자신에게 어떤 질환이 있다고 진단을 받는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심지어 이름도 모르는 그 질병 때문에 평생을 고통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경우 일반적인 첫 반응은 그 질병에 저항하는 것이다. 나도 저항했다. 양극성 장애란 어느 날 갑자기 유행하기 시작한 개념들 가운데 하나이며, 거의 모든 것에 갖다 붙일 수 있는 병명이라면서 말이다. 그다음 단계는 그 주제에 관해 찾을 수 있는 내용들을 모두 찾아서 읽어보고, 습득한 지식에 기반하여 자신의 인생 전체를 재평가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면 바로 그 질병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말이다. 사람들은 평생을 살아가면서 흥분감과 우울감이 교대로 찾아오며, 그것은 우리 모두의 운명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의 기분은 늘 바뀌는 데다, 누구나 기분이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으며, 하늘은 맑게 갤 때도 있고 먹구름이 잔뜩 낄 때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속한 인구집단 가운데 2퍼센트의 사람들은 기분이 좋을 때는 평균치보다 더 좋고 안 좋을 때는 평균치보다 더욱 안 좋게 떨어지기도 하며, 그것이 계속해서 이어지면 병적인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양극성 장애는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조울병(manic depressive psychosis)’이라고 불렀는데, 처음에는 이러한 설명이 나와는 맞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어쨌든 당시 나의 증세는 그중에서도 “조증(manic phase)”과 관련이 있었다. 조증 상태란 예를 들자면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옷을 벗거나, 갑자기 페라리 3대를 구입하거나, 또는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다가가서 3차 세계대전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구아바를 먹어야 한다고 열렬히 설명하는 상태를 말한다. 예전에 나는 그런 젊은이를 한 명 알고 있었는데, 그는 일단 그런 위기가 지나가고 나면 자신이 그랬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하곤 했다. 그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양극성 장애를 가진 사람들 가운데 최대 20퍼센트 정도는 그런 선택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총명했으며 절망적이었던 그 젊은이가 안타까웠다. 그리고 설마 내가 그 청년과 동일한 장애로 고통받으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물론 나에게는 우울증 증세가 있었다. 공허함을 느끼는 건 자주 겪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더해서 두 가지의 단계로 진행되는 진짜 심각한 우울증을 겪어 왔다. 이러한 증세는 몇 달 동안이나 이어지는데, 이 기간이 되면 자리에서 거의 일어날 수도 없고, 아주 간단한 일조차도 처리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최악인 것은 상황이 바뀌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울증의 특징이 바로 언젠가는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친구들은 좋은 뜻으로 이렇게 말하곤 한다. “괜찮아질 거야, 두고 봐.” 그러나 당신은 그들을 실망스럽게 바라볼 뿐이고, 심지어 그들을 원망하기까지 한다. 그저 하나 마나 한 말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분명,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당신이 일단 우울증에 빠지면 절대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당신이 살아서 그 상황을 빠져나가지 못할 거라고, 유일한 탈출구는 자살뿐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 견딘다면 조만간 그런 상태에서 빠져나올 것이며, 일단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서 좋은 친구들과 함께하게 된다면 그토록 참을 수 없고 끝이 없어 보였던 고통의 상태는 더 이상 상상도 할 수 없는 먼 이야기가 된다.
어렸을 때 나는 실수로 환각성 버섯을 먹어본 적이 있다. 지옥에라도 다녀오는 듯한 경험이었다. 말 그대로 끔찍하면서도 절대 끝나지 않는 고통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악몽을 꾸면서도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황하지 마. 나는 독을 먹긴 했지만, 버섯이 다 소화되면 효과는 사라질 거야. 8시간이나 10시간만 지나면 끝날 테니까, 그때까지만 버티면 돼.” 나는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이런 말을 했는데, 그것은 합리적이기도 했고 사실이기도 했다. 그런데 동시에 나는 이런 걱정이 들었다. “내가 과연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8시간이나 10시간이 지났을 때도 내가 과연 살아 있을까?”
나는 그걸 이겨냈다. 그리고 일단 살아나서 이런 지옥의 상태를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당시의 공포를 금세 잊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루이-페르디낭 셀린느(Louis-Ferdinand Céline)은 《밤 끝으로의 여행(Journey to the End of the Night)》 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삶의 어느 부분에서든 가장 커다란 패배는 잊어버리는 것이며, 특히 당신을 힘들게 했던 상황을 잊는 것이다.”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불행하게도, 나는 우울증이 낯설지 않다. 그러나 내가 처음 정신과 상담을 받을 당시에도 알지 못했던 사실이 있었다. 양극성 장애의 정의에 따르면, 우울증의 정반대 극성(pole)이 반드시 엄청난 행복감이나 완전한 탈억제(disinhibition)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즉, 양극성 장애라고 해서 반드시 사회적 자살행위(social suicide)나 때로는 자살 그 자체로 이어질 정도의 심각한 상태에서 극도의 희열감을 느끼는 경지로 급격하게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정신과 의사들이 경조증(hypomania, 가벼운 조증)이라고 부르는 상태를 경험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는 쉽게 말하자면 당신이 바보처럼 행동하지만 터무니없는 바보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유형을 ‘제2형 양극성 장애(bipolar II disorder)’라고 부른다. 불안함을 느끼지만, 크게 기쁨을 느끼는 일도 없다. 오히려 때로는 매력적이고, 이성에게도 적극적이며, 매우 섹시하고, 겉으로는 매우 활기가 넘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떤 결정을 내렸을 때 나중에 가장 크게 후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옳았으며 그러한 결정을 절대로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그 이후에는 정반대의 확신이 들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최악의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것을 시정해보려 노력하지만, 오히려 상황은 더욱 악화하기만 할 뿐이다. 한 가지 생각을 하다가 정반대로 생각하고, 한 가지를 했다가 다시 정반대로 하는데, 이런 상황이 무서울 정도로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러나 만약에 당신이 나와 비슷하고 스스로를 분석하는 일에 익숙하다면, 최악의 사실은 일단 양극성 장애의 진단을 받고 기분의 두드러진 변화가 실제로 확인되고 나서야 과거에 자신이 그랬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는 점이다. 이렇게 뒤늦게 깨달아봐야 별 소용이 없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말하든, 행동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한 사람 안에 서로에게 적대적인 두 명의 자아가 존재하기 때문에 더는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1. 병과 함께 삶이 무너졌다.
그것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왜냐하면 조증의 흥분상태가 있으면 그 이후에는 예외 없이 우울증에 빠지기 때문이었다. 끔찍한 기간이다. 첫 번째 단계에 있던 나는 새로운 책과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으로, 그리고 수많은 가능성과 성취감에 대한 충만함으로 마냥 신이 났다. 나는 파리의 포부르 푸아소니에르 거리(Rue du Faubourg Poissonnière)에 있는 상당히 멋진 아파트를 빌렸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구입했고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인 디저(Deezer)에 가입했는데, 아주 묘하지만 이 두 가지가 내 새로운 삶을 대표하는 특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나는 한 마리의 쥐가 된 것처럼 외로워졌다. 만나는 여자도 없었다. 어쩌다 여자를 한 명 집에 데려와도 성 기능은 무기력했다. 나의 목덜미에는 비듬이 가득 내려앉았고, 성기에는 포진이 뒤덮였다. 불과 몇 주 전만 하더라도 아주 정확했고, 매우 필요했으며, 충분히 해낼 수 있었던 글쓰기 프로젝트에 대한 모든 믿음을 잃어버린 채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그저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만이 나의 지상과제처럼 느껴졌다. 문제는 그런 상태가 되면 내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알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나 스스로는 물론이고 그 누구에게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산다는 건 하나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런 상태가 되면 나에게는 이야기라고 할 만한 것이 없어진다. 나의 삶은 끔찍한 땀으로 범벅이 되는 침대와 흐리멍덩한 상태로 줄담배만 피우며 몇 시간을 보내는 카페 르 랄리(Café Le Rallye) 사이에 있는 비좁은 길 위로 축소된다. 요즘에도 이 카페를 지날 때면 몸서리가 쳐진다. 거의 두 달 동안 나는 거의 씻지도 않았고 옷도 갈아입지 않았다. 욕조가 막혔지만 고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침대에 갈 때조차도 우울증에 걸린 남자의 의상을 갈아입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아무런 개성 없는 코듀로이 바지, 구멍투성이의 낡은 스웨터, 그리고 끈이 없는 운동화 차림 그대로였다. 운동화에 끈이 없는 이유는 마치 정신병원에서 혹시 일어날지도 모를 불의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조처를 하는 것처럼 나 스스로 그것을 없앴기 때문이었다. 떨림이 멈추지 않았고, 손에서는 물건들이 떨어지기 일쑤였다. 냉장고에 요거트 병을 넣으려고 하면 미끄러져서 부엌의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요거트를 겨우 다룰 수 있게 된 어느 날에는 쌍둥이자리를 본뜬 작은 조각상을 옮기고 싶었다. 마치 제단처럼 선반 위에 올려놓고 있었던 것인데, 불과 몇 센티미터 옮기자마자 그것 역시 떨어트리고 말았다. 산산조각이 났다. 나는 적어도 한 시간 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마룻바닥의 두 발 사이에 흩어져 있는 내 사랑의 비밀스런 상징이었던 테라코타 조각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저게 바로 너야. 이보다 더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었을 거야. 모든 것이 부서졌어. 아무것도 고칠 수 없어. 모든 게 끝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