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디지털 공간인 ‘온사이버 박물관’의 지구 광장에 25개의 건물이 있고, 아직 공개하지 않은 2000여 개의 건물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6529Museum에 전시된 작품들은 24시간 감상 및 구매가 가능하다. 또 사용자들은 원하는 카테고리를 손쉽게 검색해 자신이 보고 싶은 작품과 아티스트를 선별할 수 있다. 블록체인의 핵심 가치관에 맞게 사용자 중심의 형태를 띠는 것이다. punk6529 측은 남은 건물을 NFT 아트를 장르별로 구분하거나 다른 유저들에게 대관하는 용도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즉 NFT 아트의 발전은 특정 단체가 아닌 개인 운영자가 선보이는 디지털 미술관이 늘어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들이 앞으로 어떤 NFT 아트를 수집하고, 새로운 전시의 문화를 만들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제 예술의 가치는 무언가를 재현해 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날로그 문화의 종말이 다가오며, 차세대 예술은 예술 시장 내부가 아닌 콘텐츠 시장과의 경쟁에 돌입하게 된다. 더 많은 미술 작품은 NFT의 형태와 같이 온라인 공간에서 선보이고, 소장될 것이다. 이에 대한 접근은 디지털 기술에 대한 공포감이 아닌 호기심에서 비롯해야 한다. 창의적으로 기술에 접근할 방법을 찾고, 예술의 역할을 재정의해야 한다.
그 역할의 중심에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있다. 현실 공간과 가상 공간의 공존을 통찰하고, 작품의 형식과 아우라를 담아내기에 최적화된 방식을 고민하는 것이다. 조직이 디지털 아트를 전문적으로 다루기 위해 갖출 역량은 무엇이며, 문화 예술 콘텐츠는 어떤 디지털 전환을 시도할 수 있을까? 미술관이라는 중재자와 함께 기술 산업과 예술이 어떻게 조화를 이뤄 갈 것인지 고민할 시점이다.
3. 예술 민주화가 시작된다
미술계의 디지털 전환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우선 작품의 진위 논란은 미술 시장의 오랜 난제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기기를 동원해 과학적인 방법으로 미술품을 감정했다. 지난 시대 작품의 경우 X선 촬영을 통해 해당 시대에 주로 사용되던 재료가 맞는지 확인하는 방식이다. 그렇기에 과거 작품의 위작보다도, 동시대 위작은 늘 한층 더 감별이 어려웠다.
물질 기반의 작품도 위작 판별이 어려운 상황에서 디지털 아트의 위작은 더 큰 골칫거리였다. 다운로드와 캡처 등 복제가 손쉽다는 이유로 미술의 독자적인 한 장르로서 지위를 획득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진품 보증이 가능한 NFT 아트의 등장은 획기적이었다. 진품, 가품 판별은 물론 해당 작품이 이때까지 판매된 이력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위작은 손 바뀜 기간 동안 발생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러나 NFT 아트는 작품이 판매된 시점과 가격이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역추적이 가능하다. 기존의 미술 시장은 갤러리를 비롯한 중개인에게 정보가 집중된 구조였다. 폐쇄적이고 불투명한 시장 구조 때문에 구매자가 작품의 유통 과정이나 거래 내역, 실 소유자 및 가격 등의 정보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반면 NFT 아트는 작품과 정보가 함께 움직인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미술 시장을 투명하고 신뢰 가능한 구조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시장 변화는 여러 방면의 예술 민주화를 불러왔다. 우선 시장 참여자들이 대거 출현하며 작품의 형식과 내용에 혁신을 일으켰다. 과거 미술 작품은 구매 후 집 안에 걸어 두는 것이 일반적인 보관 및 감상 방법이었다. 따라서 인테리어 및 가구의 색감과 소재 등 고려해야 할 부가적인 요소들이 많았다. 실제로 작품이 좋아서 구매하는 경우보다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작품을 집에 끼워 맞추는 식의 구매가 흔했다. 아티스트들 역시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기에 구매자들이 선호할 만한 작품을 다수 생산했다. 시장은 점차 다양성을 잃었고, 이는 결국 소비자의 만족을 저해하고 시장을 둔화시켰다. 그러나 벽에 고정할 필요가 없는 NFT 아트 덕분에 이러한 제약이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작품은 그 자체로 존재하고 판매될 수 있게 됐다.
또한 누구나 공평한 문화 향유의 기회를 얻게 됐다.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실제 NFT 작품을 제작하고 판매할 수 있게 되면서 아마추어와 전문가를 구분하지 않고 개인의 참여와 창의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제3의 문화가 촉발됐다. 관객 지향성이 커지며 관객은 일방적인 작품 수용자에서 벗어나 아티스트에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또 다른 생산자라는 지위를 갖게 됐다.
아티스트는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여러 작품을 시도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시장 전반의 질적 성장이 이루어졌다. 이는 단순히 기성 예술 작품이 중시하던 독단적인 생산자 기준의 능력 중심적 성장이 아닌, 사회적 형평성과 다양성에 기반한 가치 중심적 성장이다.
전통적으로 미술품 구매는 경제적 자유를 달성한 기성세대가 주축이었다. 그러나 암호 화폐로 거래하는 NFT 아트의 경우 디지털 수용도가 높은 이들에게 소구되며 새로운 구매자 집단이 시장에 등장했다. 또 P2P 거래가 가능해지며 개인과 개인이 서버 없이 인터넷을 통해 각자의 컴퓨터에 존재하는 텍스트와 영상 등의 파일을 공유할 수 있게 됐다. 기존의 서버 거래와 달리, 그리고 공급자와 소비자의 개념과 달리 모든 참여자가 공급자인 동시에 수요자가 되는 것이다.
또한 아티스트의 매니지먼트 역할을 수행하던 기존 갤러리는 잘 팔리는 작품을 제작하도록 아티스트의 창의성을 배제하고 특정 스타일을 종용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에 P2P 거래 기반의 NFT 아트는 아티스트의 아이덴티티를 존중하고, 중개 과정에서 소통이 지연되거나 정보가 왜곡되는 일을 방지한다. 즉 미술 시장 자체가 갤러리를 비롯한 중개인 중심에서, 창작자와 사용자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간 많은 대중이 미술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선뜻 미술관 혹은 갤러리를 방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갤러리의 무겁고 딱딱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NFT 아트는 이러한 경직된 분위기를 벗어나, 사용자가 장소를 이동하지 않고 원하는 곳에서 편안한 상태로 감상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주로 디지털 공간에서 전시가 이뤄지기 때문에 감상자가 전시를 찾아가지 않아도 되며, 24시간 열려 있다. 이처럼 NFT는 물리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도 창작자와 소비자를 가깝게 만들고 있다.
전시 서문이 없다는 것 또한 큰 장점이다. 일반적인 전시회 공간을 방문하면 입구에는 늘 전시 서문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감상자에 대한 침해 행위나 다름없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미술을 학문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서문은 작품을 보고 느낄 틈도 주지 않고 전시 기획 의도와 내용을 포고한다. 모두 다른 배경에서 다른 경험을 하며 성장한 개인들이 다양한 담론을 펼치기도 전에 전시장 입구에 전시 서문을 게재하는 것은 감상자의 발목을 잡아 정답을 지시하는 듯하다. NFT 아트는 이러한 기존 문법을 벗어나 전시 공간의 새로운 질서를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작품을 감상하며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닌, 감상자 자신에게 작품이 주는 영향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정신적 자유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 NFT 아트는 소비자 친화적이다. 많은 NFT 작품의 창작자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감상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영국의 팝 아티스트
필립 콜버트(Philip Colbert)는 회화, 조각, 의류, 가구 등 여러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한다. 지난 2020년 영국 런던에서 콜버트가 공개한 신규 컬렉션에선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할 목적으로 로봇을 통한 관람객과의 소통을 시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의 작품 세계의 메인 주제는 랍스터다. 랍스터라는 생물에 그의 자아를 투여하고, ‘세계 랍스터랜드’를 만들어 디스코드 참여자들에게 ‘명예 랍스터 시민’ 지위를 부여했다. 콜버트는 랍스터랜드가 단순히 놀이 공간에 그치지 않도록 ‘화이트 리스트(White List) 제도’를 활용했다. NFT 발행 전 구매 우선권을 주거나 공식 컬렉션을 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확실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보상 제도를 통해 사람들은 그의 세계에 더욱 깊이 몰입했다.
작품에 가치가 매겨지는 방식 역시 다르다. NFT 아트는 특정 의제를 내세우고, 그 메시지에 동의하는 이들이 모여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커뮤니티 참여자는 자신이 구매한 NFT를 활용해 팬아트를 제작하거나 자체적인 문화를 형성해 간다. 이렇게 생성된 콘텐츠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유되는데, 이때 커뮤니티가 만든 문화의 성격에 따라 NFT의 가격이 결정된다.
물론 NFT 아트 시장에도 기성 미술계처럼 특정 조건과 권위에 따라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마켓이 존재한다.
슈퍼레어(SuperRare)에선 그 이름에서도 유추할 수 듯 있듯, 자체적인 엄격한 심사를 통과한 아티스트만이 NFT 아트를 발행할 수 있다. 기성 미술계의 관점에 익숙하던 컬렉터들은 슈퍼레어에서 선보이는 아티스트와 작품만큼은 신뢰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고, 이 덕분에 슈퍼레어 마켓에 발행된 작품들은 고가에 거래됐다.
그러나 DAO의 흐름이 커지자 슈퍼레어의 존 크레인(John Crain) 대표 또한 기존 작품 선별 방식이 본질적으로 중앙 집중화된 방식이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블록체인 철학에 기반한 탈중앙화의 방식으로 선별 방식을 바꿀 것을 예고했다.
이처럼 NFT 아트는 구조적, 물리적, 정신적으로 예술 민주화 운동의 시발점이 됐고, 디지털 문화 자체를 부흥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오프라인 전시 공간에서 제한된 소수가 폐쇄적으로 정보를 교환하던 시장에서 벗어나, 하나의 작품을 수천 또는 수만 명이 공유하고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도록 디지털 문화 자체를 확장했다. 이로써 모든 사용자가 작품에 주인 의식을 갖고, 창작자에게 한 걸음 다가설 수 있게 됐다. 가치 중립적으로 탄생한 기술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미술 시장에 나비 효과를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