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T 아트로 읽는 뉴밸류에이션 시대
6화

중립의 기술, 새로운 가치를 만들다

1. 디지털 전환 시대의 미술 작품


개인 PC의 사용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2000년대를 시작으로, 생활 전반에서 디지털 전환(DT·Digital Transformation)이 일어나고 있다. 모바일 인터넷 환경과 클라우드 서비스의 발전, 제품과 서비스를 하나로 묶는 제품의 서비스화(as a Service)가 대표적이다. 하드웨어 업체와 소프트웨어 업체 간 경계 또한 희미해지고 있다. 일례로 과거 mp3 플레이어 용도의 아이팟을 제작하던 애플이 미디어 프로그램 아이튠즈를 함께 제공했고,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 역시 PC 제조업 분야에서 소프트웨어 솔루션 분야로 전환했다.

DT 시대에서 각 기업은 고객의 데이터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오프라인 비디오 대여점으로 시작해 오늘날 세계 최대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성장한 넷플릭스가 대표적이다. 디지털 전환을 통해 고객의 시청 습관과 취향을 데이터화했고 이를 통해 비즈니스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었다. 디지털 전환은 비즈니스 분야를 넘어 우리가 일하고 소통하는 일상생활 전반에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단순 노동이 대체되며 물리적 자유를 선사하고, 근로 생산성을 높였다.

과거 대한민국 소셜 미디어를 대표하던 싸이월드의 경우 이미지와 텍스트 업로드는 물론, 디지털 재화 ‘도토리’를 구매해 개인의 가상 공간 ‘미니룸’에 스티커를 붙이거나 가구를 들여놓을 수 있었다. 아바타를 꾸미거나 아이템을 구매하는 새로운 경험도 가능했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디지털 재화가 개인 소유가 아닌 싸이월드에 귀속돼 있었다는 것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하락세를 타던 싸이월드가 결국 2020년 9월 서비스를 종료하며 사용자들은 추억과 재화를 동시에 잃게 됐다. NFT는 이러한 디지털 재화의 맹점을 보완해, 그 가치가 현실에서도 보존될 수 있게 한다. 가상 세계와 현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특정 시스템이 마비되더라도 그 디지털 재화의 가치는 유실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아직 NFT는 여러 한계에 직면해 있다. 미술품과 같이 희소성 있는 재화들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되는 한계를 넘어야 하고, NFT 아트 구매자들이 해당 작품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현재는 차후 구매 시 우선권 또는 할인 혜택을 제공하거나, 구매자의 의견을 반영해 차기 프로젝트를 제작하는 형태일 뿐, 구매한 작품을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은 제한적이다. NFT 아트 구매 시 물질적 형태의 굿즈 등 실물 소장품을 별도로 발송해 주는 것 또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 하나의 작품이 물질적 형태와 비물질적 형태, 두 가지로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해당 작품은 재판매 시 어떤 기준으로 가격을 매기고 거래를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2. 차원이 다른 미술관


2021년 NFT 아트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데 이어, 2022년 코로나19의 기세가 꺾이며 NFT 아트를 물리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 이에 ‘NFT 아트를 어떻게 대중에게 소개할 것인가’에 대한 미술계의 고민이 깊다. 다가올 디지털 시대의 미술관은 어떤 모습을 띌까?

전통적인 미술관의 역할은 작품 수집과 보존, 그리고 전시가 핵심이었다. 미술 작품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기능 또한 중요했다. 이러한 형태의 미술관에 편입되기 위해선, 미술관에 전시되는 NFT 아트 작품들은 단순히 감상이나 투자의 대상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NFT 아트의 사회적 역할을 살펴보기 전, 혼동하기 쉬운 미술관과 갤러리의 차이를 먼저 짚고자 한다. 미술관은 미술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주로 사회, 문화적 흐름과 작품 간의 관계를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중을 교육한다. 반면 화랑, 즉 갤러리는 아티스트의 작품을 거래하는 것이 주 역할이다. 새로운 아티스트와 작품을 발굴하고, 이후 육성하기도 하는 매니지먼트의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 갤러리다. 미술관과 갤러리 모두 미술 시장을 이루는 중요한 두 축이지만, 본고에서는 미술관에 집중하고자 한다. NFT 아트가 미술계의 한 장르로 견고히 자리 잡기 위해서는 거래량의 많고 적음을 떠나 작품의 존재 목적과 가치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현재 NFT 아트 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종류의 정보가 파편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중간자 역할의 커뮤니케이터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시장에는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 이해도가 높은 이들, 혹은 이제 막 업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입문자들만 존재한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양극의 관점을 종합하고 조율할 이들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것이 미술관이다. 미술관은 NFT 아트에 대한 자료를 순차적으로 아카이빙하고, 그 내부적인 흐름과 관계를 분석할 수 있다. 또 NFT 아트가 대중적 인기를 끌게 된 사회 경제적 배경을 분석하고 그 데이터를 언어화된 형태로 저장할 수 있어야 한다.

NFT 아트가 지금처럼 주목받기 전, 예술과 과학 그리고 기술의 융합을 목표로 한 아트 그룹이 있었다. 2001년 일본 도쿄에서 결성된 국제 예술 집단, ‘팀랩(teamLab)’이다. 이 그룹은 예술가, 프로그래머, 엔지니어, 수학자, 건축가 등이 함께 모여 획기적인 방식으로 디지털 아트를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디지털 아트의 경우 작품을 구현해 내는 수단 그 자체가 기술이다. 아티스트가 주려는 메시지의 외연과 한계를 결정하는 것도 기술이다. 그렇기에 작품 창작 과정에서 예술성보다 기술력에 집중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팀랩은 기술에 잠식되지 않고, 인간과 자연을 연결한다는 철학적인 목적을 위해 기술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이 작품을 전시하는 방식 역시 혁신적이었다. 전통 예술 회화의 경우 벽면에 걸려 있어 감상자가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 조형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좌대 위에 비치되어 감상자와의 심리적인 거리감을 조성한다. 그러나 팀랩은 기존 감상자-작품 간 경계를 허물며 디지털 아트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작품과 감상자 간의 거리를 좁혔다. 또 작품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는 기성 전시와 달리 팀랩의 전시는 자유로운 사진 촬영 및 업로드가 가능했다. 그에 따라 전시의 중심은 작품에서 개인 감상자에게 이동했고, 각 감상자의 몰입도가 높아지는 효과를 낳았다.

팀랩은 출범 후 20년이 지난 2020년 9월, 서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팀랩 : 라이프〉 전을 열었다. ‘예술과 기술의 결합’이라는 팀 정체성에 맞게 작품과 감상자 간 상호 작용이 가능한 인터랙티브 아트(Interactive Art)를 선보여 감상자가 작품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꽃을 주제로 한 작품의 경우 감상자가 꽃을 만지면 그 모양이 변하며 해당 공간에 꽃향기가 퍼지는 등 오감을 통해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대소비례 반전 또한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작품의 축소와 확장 등 변이가 가능하다는 것은 디지털 아트의 큰 장점이다. 넓은 벽면에 작품을 전시해 압도감을 살린 것은 물론, 벽에 표현된 작품을 손으로 만졌을 때 그 크기와 질감이 변화하는 효과까지 구현해 냈다.
〈Proliferating Immense Life - Whole Year per Year〉 ©teamLab 공식 홈페이지, presskit 파일
〈Universe of Water Particles, Transcending Boundaries〉©teamLab 공식 홈페이지, presskit 파일
그러나 팀랩의 전시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그들의 전시 운영 및 재생산 방식이었다. 예술가와 프로그래머, 엔지니어 등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이들이 모여 함께 작품을 만들어 낸 덕에 창의적인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이끌 수 있었다.

창작자 집단의 다양성은 양날의 검이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탄생할 수 있는 동시에, 각기 다른 성장 배경과 경험, 관점을 가진 이들이 모여 갈등과 비효율을 초래하게 된다. 팀랩은 이러한 생각의 차이를 극복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집중한 결과 우수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창작자 개개인에 대한 존중을 통해, 기술이 아닌 가치 기반의 예술을 만들어 낸 것이다.

많은 이들이 디지털 시대의 전시 공간을 마치 완전히 새로운 형태여야 할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전통적인 갤러리 중에서도 미술 전시의 혁신을 도모하는 곳이 있다. 바로 세계 정상급 갤러리, 페이스(PACE) 갤러리다. 페이스 갤러리는 뉴욕, 런던, 제네바, 홍콩 등 세계 아홉 개국에서 전시 공간을 운영할 정도로 규모가 큰 갤러리로, 미디어 아트를 선보일 수 있는 공간 페이스엑스(PaceX)를 오픈했다. 페이스엑스(PaceX)는 이후 2020년 슈퍼블루(SuperBlue)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재단장하며 미국 마이애미에 첫 번째 전시 공간을 꾸미겠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기성 미술관과 새로운 형태의 아트 팀을 비롯해 다양한 신구 세력이 미래의 디지털 아트에 관심을 보이며, 차세대 미술관의 새로운 역할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역으로 NFT는 미술관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메타버스와의 연결성을 통해 시공간의 제약 없이 언제 어디서나 전시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NFT 아트의 장점이다. 이에 따라 작품을 전시한다는 개념의 허들이 낮아지고, 점점 특정 단체 혹은 기관이 아닌 개인이 직접 갤러리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오픈씨에서 인기 있는 컬렉터 중 하나인 punk6529는 약 2000점의 NFT 작품을 소유하고 있다. 이들은 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현 NFT 시장을 이끌고 있는 크립토펑크(CryptoPunks), 타일러 홉스(Tyler Hobbs)의 피덴자(Fidenza) 컬렉션, BAYC와 아트블록스(Art Blocks)를 포함해 매우 다양한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자신들이 수집한 작품들을 온사이버(oncyber) 플랫폼에서 〈6529 Museum District〉라는 이름의 디지털 미술관으로 선보인 적도 있다.
punk6529의 6529Museum 화면 캡쳐. ©온사이버
이들은 디지털 공간인 ‘온사이버 박물관’의 지구 광장에 25개의 건물이 있고, 아직 공개하지 않은 2000여 개의 건물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6529Museum에 전시된 작품들은 24시간 감상 및 구매가 가능하다. 또 사용자들은 원하는 카테고리를 손쉽게 검색해 자신이 보고 싶은 작품과 아티스트를 선별할 수 있다. 블록체인의 핵심 가치관에 맞게 사용자 중심의 형태를 띠는 것이다. punk6529 측은 남은 건물을 NFT 아트를 장르별로 구분하거나 다른 유저들에게 대관하는 용도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즉 NFT 아트의 발전은 특정 단체가 아닌 개인 운영자가 선보이는 디지털 미술관이 늘어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들이 앞으로 어떤 NFT 아트를 수집하고, 새로운 전시의 문화를 만들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제 예술의 가치는 무언가를 재현해 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날로그 문화의 종말이 다가오며, 차세대 예술은 예술 시장 내부가 아닌 콘텐츠 시장과의 경쟁에 돌입하게 된다. 더 많은 미술 작품은 NFT의 형태와 같이 온라인 공간에서 선보이고, 소장될 것이다. 이에 대한 접근은 디지털 기술에 대한 공포감이 아닌 호기심에서 비롯해야 한다. 창의적으로 기술에 접근할 방법을 찾고, 예술의 역할을 재정의해야 한다.

그 역할의 중심에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있다. 현실 공간과 가상 공간의 공존을 통찰하고, 작품의 형식과 아우라를 담아내기에 최적화된 방식을 고민하는 것이다. 조직이 디지털 아트를 전문적으로 다루기 위해 갖출 역량은 무엇이며, 문화 예술 콘텐츠는 어떤 디지털 전환을 시도할 수 있을까? 미술관이라는 중재자와 함께 기술 산업과 예술이 어떻게 조화를 이뤄 갈 것인지 고민할 시점이다.

 

3. 예술 민주화가 시작된다


미술계의 디지털 전환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우선 작품의 진위 논란은 미술 시장의 오랜 난제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기기를 동원해 과학적인 방법으로 미술품을 감정했다. 지난 시대 작품의 경우 X선 촬영을 통해 해당 시대에 주로 사용되던 재료가 맞는지 확인하는 방식이다. 그렇기에 과거 작품의 위작보다도, 동시대 위작은 늘 한층 더 감별이 어려웠다.

물질 기반의 작품도 위작 판별이 어려운 상황에서 디지털 아트의 위작은 더 큰 골칫거리였다. 다운로드와 캡처 등 복제가 손쉽다는 이유로 미술의 독자적인 한 장르로서 지위를 획득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진품 보증이 가능한 NFT 아트의 등장은 획기적이었다. 진품, 가품 판별은 물론 해당 작품이 이때까지 판매된 이력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위작은 손 바뀜 기간 동안 발생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러나 NFT 아트는 작품이 판매된 시점과 가격이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역추적이 가능하다. 기존의 미술 시장은 갤러리를 비롯한 중개인에게 정보가 집중된 구조였다. 폐쇄적이고 불투명한 시장 구조 때문에 구매자가 작품의 유통 과정이나 거래 내역, 실 소유자 및 가격 등의 정보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반면 NFT 아트는 작품과 정보가 함께 움직인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미술 시장을 투명하고 신뢰 가능한 구조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시장 변화는 여러 방면의 예술 민주화를 불러왔다. 우선 시장 참여자들이 대거 출현하며 작품의 형식과 내용에 혁신을 일으켰다. 과거 미술 작품은 구매 후 집 안에 걸어 두는 것이 일반적인 보관 및 감상 방법이었다. 따라서 인테리어 및 가구의 색감과 소재 등 고려해야 할 부가적인 요소들이 많았다. 실제로 작품이 좋아서 구매하는 경우보다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작품을 집에 끼워 맞추는 식의 구매가 흔했다. 아티스트들 역시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기에 구매자들이 선호할 만한 작품을 다수 생산했다. 시장은 점차 다양성을 잃었고, 이는 결국 소비자의 만족을 저해하고 시장을 둔화시켰다. 그러나 벽에 고정할 필요가 없는 NFT 아트 덕분에 이러한 제약이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작품은 그 자체로 존재하고 판매될 수 있게 됐다.

또한 누구나 공평한 문화 향유의 기회를 얻게 됐다.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실제 NFT 작품을 제작하고 판매할 수 있게 되면서 아마추어와 전문가를 구분하지 않고 개인의 참여와 창의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제3의 문화가 촉발됐다. 관객 지향성이 커지며 관객은 일방적인 작품 수용자에서 벗어나 아티스트에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또 다른 생산자라는 지위를 갖게 됐다.

아티스트는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여러 작품을 시도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시장 전반의 질적 성장이 이루어졌다. 이는 단순히 기성 예술 작품이 중시하던 독단적인 생산자 기준의 능력 중심적 성장이 아닌, 사회적 형평성과 다양성에 기반한 가치 중심적 성장이다.

전통적으로 미술품 구매는 경제적 자유를 달성한 기성세대가 주축이었다. 그러나 암호 화폐로 거래하는 NFT 아트의 경우 디지털 수용도가 높은 이들에게 소구되며 새로운 구매자 집단이 시장에 등장했다. 또 P2P 거래가 가능해지며 개인과 개인이 서버 없이 인터넷을 통해 각자의 컴퓨터에 존재하는 텍스트와 영상 등의 파일을 공유할 수 있게 됐다. 기존의 서버 거래와 달리, 그리고 공급자와 소비자의 개념과 달리 모든 참여자가 공급자인 동시에 수요자가 되는 것이다.

또한 아티스트의 매니지먼트 역할을 수행하던 기존 갤러리는 잘 팔리는 작품을 제작하도록 아티스트의 창의성을 배제하고 특정 스타일을 종용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에 P2P 거래 기반의 NFT 아트는 아티스트의 아이덴티티를 존중하고, 중개 과정에서 소통이 지연되거나 정보가 왜곡되는 일을 방지한다. 즉 미술 시장 자체가 갤러리를 비롯한 중개인 중심에서, 창작자와 사용자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간 많은 대중이 미술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선뜻 미술관 혹은 갤러리를 방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갤러리의 무겁고 딱딱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NFT 아트는 이러한 경직된 분위기를 벗어나, 사용자가 장소를 이동하지 않고 원하는 곳에서 편안한 상태로 감상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주로 디지털 공간에서 전시가 이뤄지기 때문에 감상자가 전시를 찾아가지 않아도 되며, 24시간 열려 있다. 이처럼 NFT는 물리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도 창작자와 소비자를 가깝게 만들고 있다.

전시 서문이 없다는 것 또한 큰 장점이다. 일반적인 전시회 공간을 방문하면 입구에는 늘 전시 서문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감상자에 대한 침해 행위나 다름없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미술을 학문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서문은 작품을 보고 느낄 틈도 주지 않고 전시 기획 의도와 내용을 포고한다. 모두 다른 배경에서 다른 경험을 하며 성장한 개인들이 다양한 담론을 펼치기도 전에 전시장 입구에 전시 서문을 게재하는 것은 감상자의 발목을 잡아 정답을 지시하는 듯하다. NFT 아트는 이러한 기존 문법을 벗어나 전시 공간의 새로운 질서를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작품을 감상하며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닌, 감상자 자신에게 작품이 주는 영향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정신적 자유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 NFT 아트는 소비자 친화적이다. 많은 NFT 작품의 창작자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감상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영국의 팝 아티스트 필립 콜버트(Philip Colbert)는 회화, 조각, 의류, 가구 등 여러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한다. 지난 2020년 영국 런던에서 콜버트가 공개한 신규 컬렉션에선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할 목적으로 로봇을 통한 관람객과의 소통을 시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의 작품 세계의 메인 주제는 랍스터다. 랍스터라는 생물에 그의 자아를 투여하고, ‘세계 랍스터랜드’를 만들어 디스코드 참여자들에게 ‘명예 랍스터 시민’ 지위를 부여했다. 콜버트는 랍스터랜드가 단순히 놀이 공간에 그치지 않도록 ‘화이트 리스트(White List) 제도’를 활용했다. NFT 발행 전 구매 우선권을 주거나 공식 컬렉션을 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확실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보상 제도를 통해 사람들은 그의 세계에 더욱 깊이 몰입했다.

작품에 가치가 매겨지는 방식 역시 다르다. NFT 아트는 특정 의제를 내세우고, 그 메시지에 동의하는 이들이 모여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커뮤니티 참여자는 자신이 구매한 NFT를 활용해 팬아트를 제작하거나 자체적인 문화를 형성해 간다. 이렇게 생성된 콘텐츠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유되는데, 이때 커뮤니티가 만든 문화의 성격에 따라 NFT의 가격이 결정된다.

물론 NFT 아트 시장에도 기성 미술계처럼 특정 조건과 권위에 따라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마켓이 존재한다. 슈퍼레어(SuperRare)에선 그 이름에서도 유추할 수 듯 있듯, 자체적인 엄격한 심사를 통과한 아티스트만이 NFT 아트를 발행할 수 있다. 기성 미술계의 관점에 익숙하던 컬렉터들은 슈퍼레어에서 선보이는 아티스트와 작품만큼은 신뢰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고, 이 덕분에 슈퍼레어 마켓에 발행된 작품들은 고가에 거래됐다.

그러나 DAO의 흐름이 커지자 슈퍼레어의 존 크레인(John Crain) 대표 또한 기존 작품 선별 방식이 본질적으로 중앙 집중화된 방식이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블록체인 철학에 기반한 탈중앙화의 방식으로 선별 방식을 바꿀 것을 예고했다.

이처럼 NFT 아트는 구조적, 물리적, 정신적으로 예술 민주화 운동의 시발점이 됐고, 디지털 문화 자체를 부흥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오프라인 전시 공간에서 제한된 소수가 폐쇄적으로 정보를 교환하던 시장에서 벗어나, 하나의 작품을 수천 또는 수만 명이 공유하고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도록 디지털 문화 자체를 확장했다. 이로써 모든 사용자가 작품에 주인 의식을 갖고, 창작자에게 한 걸음 다가설 수 있게 됐다. 가치 중립적으로 탄생한 기술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미술 시장에 나비 효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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