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3 ; 기억에만 남아 있는 것
다음은 사나 시내의 에라트 함단(Erat Hamdan) 지역에 사는 사바흐 압다 아흐마드 파레(Sabah Abda Ahmad Fare)의 증언이다. 2015년 6월 2일 오후 5시 30분, 아랍 연합군의 비행기들이 사바흐의 집을 공격했다. 사바흐의 딸인 노우라 알리 아흐마드 무하마드 알-카발리(Noura Ali Ahmad Muhammad al-Qabali)(19)와 아들인 슈하브 알리 아흐마드 무하마드 알-카발리(Shuhab Ali Ahmad Muhammad al-Qabali)(5)가 죽었다. 딸의 친구들인 루브나 술탄(Lubna Sultan)과 이쉬라크 알-자이피(Ishraq al-Zaifi)도 목숨을 잃었다. 그녀의 이웃인 카이드 알-아트미(Qaid al-Atmi)의 아이들 중에서도 루다이나 알-아트미(Rudaina al-Atmi), 아미라 알-아트미(Ameera al-Atmi), 압도 알-아트미(Abdo al-Atmi), 아디브 알-아트미(Adeeb al-Atmi), 이렇게 네 명이 죽었다. 연합군은 사바흐의 집을 파괴했다. 이곳은 그녀의 남편인 알리 아흐마드 무하마드 알-카발리(Ali Ahmad Muhammad al-Qabali)가 직접 지은 집이었다.
‘저는 그날 잔해 속에서 더 이상 무엇도 남지 않은 그곳을 멍하니 바라보며 서 있었습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날이었습니다. 제 딸인 노우라의 친구들이 찾아왔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말입니다. 마침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제 딸이 얼마나 기뻐했는지가 기억납니다. 딸은 그 친구들을 몇 달 동안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녀의 환한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습니다. 그녀는 저의 유일한 딸이며, 조만간 약혼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보다 이틀 전, 노우라의 숙모가 자신의 아들과 결혼하지 않겠느냐고 물어왔습니다. 노우라는 “생각해 볼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저는 딸아이와 친구들에게 얼마간의 자유 시간을 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노우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루브나에게 가 있을게. 만약 비가 올 것 같으면 동생 슈하브더러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렴.”
오후 4시 15분, 머리 위로 비행기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주변에서 가장 높은 자발 누쿰(Jabal Nuqum)이나 에라트 함단(Erat Hamdan)을 폭격하려나 보다.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바로 그 순간, 저는 제 아들 슈하브가 떠올랐습니다. 아들이 그 비행기가 날아가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무서워할지 생각했습니다. 아들은 비행기 소리가 들리면 언제나 잽싸게 저의 목에 매달렸고, 그러면 저는 참다못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슈하브, 숨 막혀. 내 목을 조르고 있잖니.” 그러면 아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엄마가 겁먹지 말라고 이렇게 꽉 붙들고 있는 거예요.”
이웃인 루브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걱정 말아요, 슈하브도 지금쯤이면 집에 들어와 있을 거예요.” 그때 창문이 폭발하면서 깨진 유리조각들이 우리 주위로 날아들었습니다. 루브나의 집이 연기로 가득 찼습니다. 그녀의 여동생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바깥에 나가서 슈하브가 괜찮은지 살펴볼게요.” 잠시 후, 그녀가 외쳤습니다. “아줌마! 아주머니네 집이 사라졌어요.” (그녀가 침묵에 휩싸인다.)
상상이 되나요? 당신의 집과 그 안에 있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모두 땅속으로 사라지는 게 말입니다. 창문 너머로 우리 집의 잔해가 보였는데,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정신을 잃지 않고 집이 있던 곳까지 몇 미터의 거리를 건너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이제 6미터 깊이의 구덩이만 있을 뿐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널려 있던 팔다리, 우리의 머리 위를 선회하는 비행기,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우리 집의 잔해, 일부가 파괴된 이웃집들뿐입니다.
제 앞으로 얼굴들이 지나갔습니다. 팔다리와 시체들이 보였습니다. 제 아들 칼리드(Khalid)가 자신의 형제들을 파냈습니다. 칼리드가 작은 발 하나를 집어 들었고, 저는 그만 풀썩 주저앉았습니다. 그건 슈하브의 다리였습니다. 틀림없었습니다. 이건 단순한 엄마의 직감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그날 아침 입혀준 검은색 바지와 재킷을 입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때 우리 집이었던 곳을 뒤로하고 정처 없이 걸었습니다. 이웃 여인 한 명이 저를 발견하고는 인근의 진료소로 데려갔습니다. 진료소는 부상당한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무너진 잔해에서 구조된 다른 이웃 한 명도 있었습니다. 그녀는 죽어버린 네 명의 자식들을 애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를 두 팔로 끌어안았고, 그날 있었던 일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계속 되뇌었습니다. 그녀는 횡설수설하며 자식들의 이름을 계속해서 부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식을 잃은 다른 어머니들처럼 소리를 지르지 않았습니다. 비통해하며 제 얼굴을 때리지도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몸뚱이를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날 잔해 속에서 더 이상 무엇도 남지 않은 그곳을 멍하니 바라보며 서 있었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마치 찬물을 맞은 것처럼 어떤 확고함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모든 것이 사라진 우리 집의 잔해를 바라보며 서 있던 바로 그때, 그러한 확고함이 저로 하여금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딸 노우라를 마지막으로 봤던 그 모습, 웃고 있던 모습으로, 친구들과 행복해하던 모습으로 기억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들 슈하브가 놀던 모습으로, 노래하던 모습으로, 자신을 죽이러 날아오는 비행기에도 겁을 먹지 않는 아이로 기억하게 만들었습니다.
참사가 덮쳤을 때 그러한 확고함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줄 수 있는지 잘 모를 겁니다. 그것은 강인함일 수도 있고, 어쩌면 저의 언니가 말하는 것처럼 망연자실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언젠가 제가 노우라와 슈하브와 함께하는 날들을, 우리가 또 다른 아름다운 집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꿈꿉니다.
폭격 사흘 후, 저는 한때 우리 집이었던 곳을 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우리 가족을 삼켜버린 구덩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제 남편이 몇 년 동안 힘들게 지은 그 집에서 안락하게 살았던 때의 기억에 빠졌습니다. 비바람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장소였던 그 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다만 하나의 구덩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그 구덩이의 한가운데를 들여다봅니다. 사라져 버린 그 집에서의 생활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노우라의 모습을, 그녀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그녀가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그녀가 얼마나 사랑받았는지를 기억합니다. 딸에게는 앞으로 창창한 인생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저는 골목길에서 놀던 슈하브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완벽하며 온전했던 당시의 삶을 기억합니다. 저는 아무 말 없이 그 구덩이 속을 계속해서 들여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