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는 누군가를 “혐오할 권리거나, 선동할 권리거나, 가짜 뉴스를 퍼트릴 권리”가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을 표방하는 소셜 미디어 역시 그러한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잠정 중단된 도어스테핑은 소통과 수평이라는 탈을 썼습니다. 도어스테핑의 기본 조건은 언제나, 어디서든 진행돼야 한다는 겁니다. 불미스러운 사태의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소통은 도어스테핑의 전제를 잊었습니다. 전제를 잊은 권력자의 말은 소통이 아닌 선동이 되기 쉽습니다.
#11월 15일 포캐스트 〈나는 네가 트위터에 저지른 일을 알고 있다〉
중간 선거 이후 트럼프의 대항마로 떠오른 론 드샌티스(Ron DeSantis)는 학교에서 ‘게이’로 대변할 수 있는 성소수자와 성적 지향에 대해 가르치지 말라는 ‘
Don't Say Gay’ 법안을 주창했습니다. 유치원부터 3학년까지, 플로리다에서는 성에 대한 적합하지 않은 자료를 금지합니다. 아이들의 정서적 혼란을 막기 위함이었죠. 성소수자를 가르치지 않는 것이 실제로 학생들의 정서적 혼란을 막을 수 있는 건지, 혹은 그저 유예하는 것인지, 혹은 혼란스러울 수 있는 기회마저 앗아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게이의 존재를 잊어 가는 동안 2022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는 607건의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지난 11월 발생한 콜로라도 총기 난사 사건은 성소수자 전용 나이트클럽에서 발생했습니다. 다섯 명이 죽고, 18명이 다쳤습니다.
말의 힘
2022년을 장악한 말은 ‘힘의 말’이었습니다. 그동안 좁아진 것은 힘을 가지지 못한 이들이 말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1986년에 태어나 2013년에 목숨을 끊은 천재 프로그래머 애런 스워츠(Aaron Swartz)는 소셜 뉴스 사이트 ‘레딧(Reddit)’과 공유 프로토콜인 ‘RSS’를 개발했습니다.
자유 문화 운동을 전개하던 MIT 학생이었던 애런은 모교의 온라인 도서관에서 수백만 개의 학술 자료 파일을 훔쳤습니다. 이유는 명료했습니다. ‘읽고 싶은 것이 있다면 누구나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애런은 온라인 도서관의 자료를 훔쳤다는 이유로 미국 정부로부터 체포당합니다. 만일 패소한다면 35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애런 스워츠는 패소하기보다 죽음을 택합니다. 체포된 날로부터 정확히 2년 후, 애런은 목을 맨 채 발견됩니다.
학술 해적판 사이트에 대한 미국 정부의 압박은 현재 진행 중입니다. 연방법 집행 기관(Federal law enforcement)은 불법 전자책 사이트 ‘Z-Library’에 연루된 두 명의 러시아인을 저작권 침해 혐의로
체포하고 기소했습니다. Z-Library는 세계 최대의 전자책 도서관이었습니다. FBI는 성명을 통해 Z-Library를 “피해자의 독창성과 수익을 박탈”하는 공간으로 정의했고, 일간지 《슬레이트(Slate)》는 교육 자료에 접근할 여유가 없는 학생을 위한 “
생명줄(lifeline)”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미국에서 불법 학술 도서관이 사라지는 동안, 한국의 마포구에서는 작은 도서관들이 사라졌습니다. 마포구의 박강수 구청장은 작은 도서관을 독서실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포캐스트 〈
도서관의 불평등〉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한 기회”인 도서관이 사실은 불공정의 그늘 아래 있음을 짚고 있습니다. 북저널리즘 톡스(Tallks)에서 반포 도서관의 조금주 관장은 “미래는 공공도서관에 있다”고 말합니다. 모두가 평등하게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면 수많은 서가 사이에서 자신만의 미래를 상상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이 기회와 공정을, 빅테크가 자유와 표현을 부르짖는 동안 미래를 설계할 공간은 좁아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책은 없었습니다.
#5월 10일 톡스 〈미래는 공공도서관에 있다〉
대책과 기준이 없던 것은 소셜 미디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메타’가 운영하는 ‘인스타그램’과 ‘구글’의 ‘유튜브’는 얼마 전 포르노 사이트인 ‘폰헙(Pornhub)’의 계정을 삭제했습니다. 폰헙이 올린 게시물들은 어떤 의미에서도 부적절하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 근무하는 이들의 일상을 담은 게시물이 대부분이었죠. 폰헙은 공개서한을 통해 차별적이고 불확실한 실리콘밸리의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에 대항했습니다. 포르노 사이트만 그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메타는 여성의 유두를 부적절한 게시물로 판단합니다. 무엇이 적절한지 판단할 인력은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기 시작했죠. ‘텀블러(Tumblr)’ 역시 대대적인 규제가 있던 시절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해체했습니다. 과거는 다른 모습으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9월 30일 포캐스트 〈월계수 잎이 된 소셜 미디어〉
그럼에도 사람들은 새로운 공간을 찾아 나섭니다. 익숙한 공간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기도 하죠. 모두에게 열린 지식 공간으로 알려진 ‘위키백과(Wikipedia)’는 최근 편집자를 늘리기 위해 다양한 기능을 도입했습니다. 텀블러는 과거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다양한 기능을 선보였습니다.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가 직접 태그를 지정하고, 사용자는 태그가 달린 게시물을 허용하거나 거부할 수 있습니다. 텀블러는 판례가 없는 판결문을 만드는 대신, 대중으로 불리는 사람들에게 의사봉을 건넸습니다.
#10월 26일 포캐스트 〈공공재로서의 미디어, 위키백과〉
야심차게 출발한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는 하루가 멀다 하고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대형 광고 대행사인 ‘옴니콤(Omnicom)’은 자사 고객들에게 트위터에 광고하는 것을 중지하도록 권고했습니다. 트위터 매출의 90퍼센트는 광고 매출입니다. 광고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만든 ‘파란 딱지’ 유료화 계획은 처참하게 실패했고, 수많은 셀럽들이 트위터를 떠났습니다. 타 플랫폼의 홍보를 막는다는 기형적인 계획이나, 머스크 자신을 사칭한 계정을 삭제하는 등의 이랬다 저랬다 행보는 트위터를 위기로 몰아넣었습니다. 대중은 반응했습니다. 12월 18일, 머스크가 직접 올린 설문조사는 “머스크가 CEO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죠. 서서히 바뀐 세상은 이제 개인정보와 데이터가 소수의 민간 기업에게만 독점 공유되는 기존의 미디어 모델에 한계를 느끼고 있습니다. 새로이 등장한 소셜 미디어가 사용자를 최상단에 배치하고, 프로토콜의 형식을 취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한편으로 언론과 미디어에서도 그러한 변화가 없던 것은 아닙니다. 미국의 유니콘 언론 기업 ‘복스 미디어(Vox Media)’에 소속된 테크 전문 매체인 ‘더 버지(The Verge)’는 지난 9월 13일
대대적인 개편을 맞았습니다. 주인공은 블로거의 블로깅이었습니다. 더 버지는 ‘스토리 스트림(Story Stream)’ 형식의 뉴스 피드를 통해 기자가 선별한 가치 있는 블로그 포스트를 스레드 형태로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알고리즘에서 벗어나 더 가치 있는 뉴스 피드를 만들기 위해 그들이 시선을 돌린 곳은 오히려 사람들이었습니다. 블로그는 더 버지가 믿은 인터넷 공론장의 힘입니다. 중국의 대중은 아무 말을 하지 않기를 택하며 말의 힘을 보여줬습니다. 이렇게, 바뀌지 않을 것 같던 것들도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2022년을 지나며 말은 성가시고, 불편하고, 때로는 위험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모두가 어디서든, 어떻게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말이 가진 유일한 힘입니다. 그 힘 덕에 말을 전하는 미디어는 항상 바뀌고, 자본과 시선이 모이는 곳도 달라집니다. 새로운 말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2023년부터는 말할 공간과 말하는 이와, 말하는 방식이 바뀝니다. 트위터의 유저들이 새로운 곳을 향해 가는 것처럼, 소셜 미디어의 광고주들이 망설이는 것처럼, 위키백과의 편집자들이 토론하는 것처럼, 더 버지의 블로거들이 이상한 테크 기사를 올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글 김혜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