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인플루언서 히맨이 생각하는 채널의 아이덴티티는 러닝보다 장거리 하이킹에 가깝다. 닉네임 ‘히맨’은 하이킹 당시 만난 외국인 부부가 빠르고 힘차게 걷는 그를 보고 애니메이션 ‘우주의 왕자 히맨’을 닮았다고 하여 지어준 것이다. 그는 2015년 미국 서부 약 4300킬로미터의 PCT(Pacific Crest Trail) 종단을 영상에 담고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PCT를 걸으며 자연에 오래 머무는 것에 빠졌고, 하이킹에서 트레일 러닝으로 이어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국에서도 장거리 하이킹을 기대했으나 야영, 취사 금지 등 제약으로 트레일 러닝의 비중을 늘리게 됐다. 서울, 제주, 거제, 운탄고도 등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후지요시다, 태국 치앙마이 등 해외 대회까지 끊임없이 달렸다. 러닝은 곧 꾸준함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히맨은 영락없는 ‘러닝 매니악’이다.
꾸준히 달리고 꾸준히 찍는다. 히맨은 지리산 화대종주 트레일 러닝부터 동네 코스까지 늘 고프로를 들고 달린다. 360도 카메라도 챙긴다. 장거리 트레일 러닝이 코스에 따라 5시간에서 40시간 이상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그냥도 힘든데, 저걸 들고서?’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가 이토록 기록에 집착하는 것은 도리어 ‘기록하지 못한’ 경험 때문이다. 2010년 참가한 대한산악연맹 한국 청소년 오지 탐사대 당시 그는 기록 담당 대원이었다. 고산병이 의심되는 증상으로 인해 운행 일지 다수에 여백을 남겼다. 기록되지 않은 경로는 결국 변형되거나 잊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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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 설명, 장비, 레이스 후기 등 특유의 꼼꼼한 기록 덕분에 유튜브 채널 히맨은 트레일 러너와 하이커 사이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서울 강북 다섯 개 산을 종주하는 ‘불수사도북(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을 촬영한 히맨의 영상과 산악 매거진 《월간산》의 인터뷰를 보고서 나 역시 친구와 종주에 도전하기도 했다.
산에 있을 때가 가장 편하다는 그는 늘 웃음을 잃지 않는다. 레이스 중후반 체력이 바닥나고 어떠한 악천후에도 즐겁게 달린다. 자연과 러닝, 각종 액티비티를 즐기는 그의 순수한 열정이 돋보였다.
히맨 인터뷰 ; “10년 넘게 아카이빙, 나의 러닝 성장 일기”
히맨으로 이름을 알리기 전, 그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김희남으로서의 그는 대학에서 기계 공학을 전공하고 건설사에 들어갔다. 홍해가 보이는 사우디아라비아 플랜트 건설 현장이 그의 부임지였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사계절을 보내고서 사표를 냈다. 매일 오전 6시부터 14~15시간 이어진 일과에 따른 피로, 반복되는 일상의 무료함이 이유였다. 대학 시절 티베트의 6200미터 고봉을 등정하고 마라톤, 트레일 러닝을 즐겼던 그에게 활동 제약이 심한 중동의 건설 현장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는 이후 앱 개발 스타트업에서 일했고 지금은 아웃도어 촬영을 지원하고 캠핑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히맨의 러닝 루틴 코스인 북한산과 불광천 사이 카페에서 그를 만나 일과 액티비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유튜브 영상에서처럼 차분하면서 해맑은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반기와 내년을 목표로 준비 중인 울트라 레이스와 각종 프로젝트를 설명할 땐 진중함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