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너들이 만든 러닝 스페셜티 브랜드
2023년 6월, 운탄고도 스카이레이스에서는 그간 국내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해발 고도 1100미터 백두대간 원시림의 업힐과 다운힐을 따라 트레일 러닝 주자들의 모습이 실시간 중계됐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세 개 나라를 지나는 세계 최대 트레일 러닝 대회 UTMB나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일대의 골든 트레일 시리즈 등에서나 볼 수 있던 장면이었다. 굿러너의 유튜브 채널 ‘굿러너TV’는 2022년 운탄고도 스카이레이스 때부터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42, 20, 12킬로미터로 구성된 대회가 진행되는 무려 8시간 20분 동안 라이브 스트리밍이 이어졌다. 선수의 수상 이력, 착용 장비, 대회 코스 소개와 입상자 인터뷰가 이어져 현장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참가자 2000명의 국내 메이저 트레일 러닝 레이스를 주최한 굿러너컴퍼니는 국내 러닝 비즈니스 업계의 대표 격인 회사다. 2015년 달리기를 좋아하는 러너들이 모여서 설립했다. 직원 모두가 선수급 또는 준선수급 러너다. 러너들을 위한 이벤트와 대회를 기획·운영하고, 다양한 러닝 용품을 판매한다.
한국 대표로 아디다스 글로벌 본사의 이벤트에 초청받기도 했다. 굿러너는 자체 채널을 통해 현장의 레이스와 에티오피아와 케냐 출신 레전드 러너의 토크 세션 등을 생생히 전했다. 2023년 6월에는 굿러너, 스포츠 브랜드 미즈노, 제주 러닝 클럽 JEJU RC의 러너 24명이 제주도 한 바퀴 245킬로미터를 달려서 완주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굿러너가 국내 러너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는 이유 중 하나는 로컬 러닝 문화를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코스를 만들고 입문자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2022년 11월 여성 러너들이 월계관을 쓴 모습이 굿러너 인스타그램에 올라왔다. ‘첫 10킬로미터 완주’를 돕는 굿러너 시스터즈 2기의 수료식이었다. 프로그램은 2023년 6월 3기를 배출할 만큼 여성 러너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2022년 굿러너는 메인 비즈니스를 대회 에이전시에서 러닝 용품을 판매하는 리테일로 전환했다. 이윤주 대표는 굿러너를 미국의 대표적인 러닝 전문 숍 SFRC(San Francisco Running Company)처럼 온·오프라인 리테일 서비스를 제공하며 러닝 커뮤니티를 갖춘 모델로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트라바의 SFRC 러닝 클럽에는 1만 명이 넘는 로컬 러너가 멤버로 활동한다.
굿러너가 운영하는 매장은 서울숲점, 여의도점, 부산서면점 세 곳으로, 서울숲점은 약 30개의 러닝 및 아웃도어 브랜드 상품을 갖추고 있다. 매장에 가면 러닝 용품의 세부 스펙과 착용 경험을 상세히 소개받을 수 있다. 가령 아식스의 트레일 러닝화 트라부코 맥스의 경우 쿠셔닝과 접지력이 좋고 데일리 신발로도 적절하다는 점, 한두 사이즈 크게 신는 게 좋다는 점 등을 안내받았다. 실제 몇 달간 신어본 입장에서 크게 공감되는 피드백이었다. 매장 방문이 여의치 않다면 굿러너TV를 통해 제품 후기를 볼 수 있다.
이윤주·김재희·송무경 인터뷰 ; “굿러너만의 커뮤니티와 리테일 서비스”
굿러너컴퍼니의 구성원들은 달리기가 좋아서 회사에 합류했다. 회사 자체가 러닝 커뮤니티라고 말할 정도다. 직급에 상관없이 서로를 윤주 님, 재희 님, 무경 님으로 부른다. 회의실보다 한강변에서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이들에게 ‘일로서의 러닝’에 관해 들어 봤다.
멤버 모두가 러너다. 설립 계기가 궁금하다.
이윤주 대표(이하 이) 사실 정말 심플하다. 2014년 시작한 달리기가 너무 좋아서, 이걸 평생 하고 싶었다. 첫 8개월 동안은 친구들과 러닝만 하다가 ‘달리기를 비즈니스로 한다면 어떤 역할이어야 할까’ 생각했다. 전 직장에 사표를 내고 2015년 김영준 대표와 러닝 이벤트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회사를 창업했다.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고 이전 회사에서도 관련 업무를 했기 때문에 초기엔 러닝 비즈니스와 관련한 인사이트가 부족했다. 서울의 많은 러닝 클럽을 방문하고 국내의 거의 모든 러닝 대회에 출전하면서 노하우를 익혔다. 그 과정에서 이벤트 기획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정했다.
러닝을 취미이자 일로 선택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
김재희 매니저(이하 김) 달리기 자체가 너무 좋아서. 굿러너의 일원이 된 가장 큰 이유다. 달리면서 경험하는 긍정적인 삶의 변화도 꼽을 수 있다. 하루의 피로가 누적됐을 때 뛰고 나면 오히려 활력이 넘친다. 뛰면 기분이 좋다. 러너가 많아지면 세상이 행복해질 것이다. 이런 걸 구상하고 누구와 함께할까 생각하던 시기에 멤버가 될 것을 제안받았다. 감사했다.
송무경 매니저(이하 송) 굿러너가 아디다스에서 각종 클래스를 운영할 때, 나는 달리기를 좋아하는 대학생이었다. 그곳을 자주 방문하면서 굿러너 멤버들을 알게 됐다. 로드 러닝만 할 때였는데 이윤주 대표의 남편이자 굿러너 초기 멤버인 예상국 대표를 통해 트레일 러닝에 입문했다. 멤버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결정적인 이유는 굿러너가 러닝 분야에서 리테일과 이벤트를 함께 하는 몇 안 되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러닝화 라인업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방식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취미와 일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 아닌가.
송 지난주에 6일을 뛰었다. 점심에 이어 저녁에 달린 날도 있다. 퇴근 후 굿러너 긍정 달리기의 페이서(pacer)를 하면 그게 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내겐 일과 운동의 경계가 없다. 러닝을 업으로 삼고 있으니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뛰어서 행복하고, 일할 때 그것을 에너지로 삼는다.
이 아이가 태어난 지 일 년이 넘었다. 일과 운동의 밸런스를 신경 쓰지만, 개인적으로는 운동을 통해 육아의 선순환을 체감한다. 아이의 돌 무렵 마라톤에 출전했다. 오랜 기간 달렸지만, 또 새로운 걸 느꼈다. 러닝을 하면 엄마가 행복하고 그래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것. 육아에 지쳐 운동을 하지 않으면 에너지 레벨이 많이 떨어진다. 귀찮고 힘들 수 있지만 뛰고 나면 그 에너지가 아기에게 간다. 자연스레 체력도 키웠다. 덕분에 풀코스에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바쁜 일정으로 일에 집중이 안 될 때면 서울숲 일대를 달리고 온다. 러닝을 시작하지 않은 분들은 보름만 꾸준히 해볼 것을 권한다. 첫 주는 힘들 수 있지만 둘째 주까지만 이겨내면 습관이 된다.
국내에도 트레일 러너가 많이 늘었다.
김 코어 층이 점점 늘고 있다. 무경 님처럼 여러 해외 대회에 참가하고 진지하게 레이스에 임하고 UTMB까지 생각하는 러너가 많아졌다. 난이도가 높은 대회를 위해서 장비, 보온, 뉴트리션을 전문가 수준으로 준비한다. 필수 장비에 대한 수요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송 50 또는 100킬로미터, 100마일(약 160킬로미터) 등 장거리를 준비하는 러너가 많아졌다. 국내외 트레일 러닝 대회, 해외 로드 대회 참가자가 늘면서 우리 레이스도 오픈 몇 분 만에 마감되곤 한다. 대회를 준비하며 매장을 방문하고, 굿러너 멤버의 장비 설명을 듣고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레이스와 세일즈의 선순환이다. 굿러너와 협업하는 브랜드는 더 확대될 예정이다.
굿러너컴퍼니 설립 후 러닝 비즈니스 전반에 바뀐 점이 있나.
송 유튜브 생중계를 꼽고 싶다. 운탄고도 스카이레이스 라이브는 재희 님과 유튜버 제제 님이 진행했다. 국내에 그런 사례가 거의 없었다. 2022년 몽블랑 현지에서 UTMB도 실시간 중계했다. 라이브 이후 관련 문의가 급증했다.
이 플로깅(plogging)도 꼽고 싶다. 2018년만 해도, 스웨덴에서 유래된 조깅과 쓰레기 줍기를 함께 하는 플로깅은 생소했다. 굿러너는 플로깅을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도심에서 플로깅을 하면 주민들로부터 박수를 받는다. 그때 달리기를 하며 커뮤니티와 상생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굿러너는 오프라인 이벤트를 여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러닝 정보를 전달하는 온라인 콘텐츠를 꾸준히 제작한다. 굿러너의 러닝 용품 리뷰는 제품 스펙, 장단점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트레일 러닝 폴 제품을 설명할 때면, 스페인 트레일 러닝 대회 트랜스 그란 카나리아의 2022년 우승자가 쓴 것이라는 등 브랜드 히스토리를 덧붙인다.
굿러너 매장을 주로 찾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송 보통 러닝 용품 매장을 찾는 고객 중에는 남성이 많지만, 굿러너는 다르다. 남녀 성비가 비슷하다. 게다가 20~40대에 국한되지 않고 전 연령대가 굿러너의 고객이다. 매장에 입고된 아웃도어 브랜드 호카 오네오네의 경우 러닝화뿐만 아니라 일상화, 워킹화, 등산화 등 다양한 라인을 갖추고 있어 20대부터 부모님, 조부모님 세대까지 거의 모든 나이대의 분들이 찾는다.
김 최근 1년 사이 바뀐 점이 있다. 2022년까지만 해도 트레일 러닝 용품을 찾는 고객 중에는 30~40대 남성이 많았다. 로드를 달리다가 트레일에 관심을 갖게 된 경우가 다수였다. 2023년 들어서는 러닝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분들도 트레일 러닝 제품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트레일 레이스 참가자가 많아지고 주변 친구들이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물론 모두 바로 구매까지 이어지진 않겠지만 신어 보고 구경하기 위해 매장에 오는 분들도 늘었다.
그래서인가, 초보 러너를 위한 프로그램이 많다.
이 굿러너 시스터즈가 대표적이다. 10킬로미터를 안 뛰어 본 러너가 대상인 프로그램이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서로를 독려하며 6주 트레이닝 과정을 마친다. 서울숲부터 한강까지 레이스를 마친 참가자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러너 사이의 연대감을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느꼈다. 함께 달리는 힘을 체감했다. 비기너를 위한 보강 운동과 스트레칭 리스트를 만들고 러닝 리추얼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왔다. 굿러너는 달리기 입문자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꾸준히 제공할 계획이다.
굿러너가 추구하는 러닝 문화는?
김 러닝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접근의 허들을 낮추고 싶다. 유튜브 채널을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그런 고민을 많이 한다. 러닝 용품 중에는 어려운 기술적인 설명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장비의 기능을 정확히 파악하되 굿러너의 언어로 쉽게 전달하려 한다.
이 회사 자체가 러닝 커뮤니티다. 멤버 한 명 한 명이 다 ‘굿러너’다. “퇴근하고 뭐해, 뛸까?” 그리고 함께 달린다. 42일 연속으로 주중과 주말에 달린 적도 있다. 서울숲, 한강, 북한산을 오갔다. 굿러너 매장은 호스팅 공간이기도 하다. 언제든지 달리러 와서 짐을 맡길 수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러닝 문화는 이런 모습이다.
서울 고유의 러닝 문화는 어떤 것일까.
송 인구수가 많고 밀집도가 높은 도시인 만큼 자연스레 다양한 러닝 크루가 생겼다. 서울, 춘천, JTBC 마라톤 등 메이저 대회가 있을 때면 SRC(Social Running Crew)를 포함한 여러 서울의 러닝 클럽이 KRW(Keep Running Weird)라는 러닝 커뮤니티를 형성해 같이 이벤트를 연다. 서울은 전 세계적으로 ‘크루 문화’를 대표하는 도시가 됐다.
김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러닝 클럽이 몇 개 없었는데 지금은 생소한 크루가 많다. 달리기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색깔을 드러내는 방식이라 생각한다.
전국 각지에서 레이스도 연다.
김 2023년 6월 운탄고도 스카이레이스를 마치고 7월 동해, 8월 원주 다둔에서 연달아 대회를 개최했다. 한 달 만에 800명 모집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동해 스카이레이스의 경우 하루 만에 정원이 다 찼다. 트레일 러닝 문화의 규모가 커지고 있는 것을 체감한다. 답사를 거쳐 코스 설계를 했다. 바다를 보며 능선을 달리는 코스가 있다.
송 동해 대회는 몇 년 전 산불이 났던 곳에서 열렸다. 풀이 다시 자라고 있다. 아픔이 있는 코스에서 ‘극복’의 메시지를 주고자 했다. ‘에코 하이킹’의 취지로 나무 심기를 진행하고 산불 방지 기부금을 냈다.
김 동해와 다둔 대회는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일대의 골든 트레일 레이스 참가 자격이 주어지는 골든 트레일 시리즈에 포함된 국내 3대 레이스다. 다른 하나는 동두천을 달리는 코리아 50K다.
오래 즐기면서 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김 윤주 님과 함께 자주 뛴다. 정적인 회의실에서 얘기할 때보다 동적인 상황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 새로 출시된 러닝화를 신고서 서울숲과 한강을 따라 나란히 달리면서 제품 리뷰를 한다. 동호대교의 야경, 오후의 공기, 같은 걸 보고 느낄 때 생기는 유대감, 이런 것들이 좋아서 함께 달린다.
송 혼자 뛸 때와 함께 뛸 때를 구분하려 한다. 혼자일 때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 같이 달리면 같은 페이스로 뛰는 것만으로 팀 스포츠가 된다. 축구처럼 함께 하는 유대감을 느낀다. 해외에서 달리기라는 공통분모만으로 현지 러너와 친구가 되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2022년 베를린 마라톤, 시카고 마라톤에 참가했을 때 내가 속한 한국 러닝 클럽의 유니폼을 보고서 알아봐 주는 외국 러너가 많았다.
굿러너의 넥스트 스텝이 궁금하다.
이 ‘굿러너가 소개하면 신뢰한다’는 인식을 확대하는 것이다. 국내에 덜 알려진 생소한 브랜드와 장비를 소개할 때 고객들이 ‘굿러너니까’라는 생각과 함께 믿고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싶다. 중장기적으로는 해외 러너도 ‘한국에는 굿러너컴퍼니가 있다’고 인식할 수 있는 러닝 비즈니스 브랜드로 성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