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of the Runner》의 저자는 일본이 ‘지구상에서 가장 달리기에 집착하는 나라이자 독특한 러닝 문화의 본고장’이라고 말한다.
일본에서 달리기는 인기 스포츠다. 이곳에서 통상 달리기를 이야기하면 장거리 러닝을 의미한다. 트랙 5000미터, 1만 미터, 에키덴(Ekiden·역전 경주), 마라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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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달리기에 매우 경쟁적인 접근 방식을 가지고 있다. 달릴 때 직면하는 도전, 피로와의 싸움, 완주해 내고야 마는 러너의 모습은 그들의 정체성을 닮았다. 일본 러너들은 더 높은 목표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달리는 동안 더위, 추위, 비, 바람과도 싸운다. 경쟁자를 제치고 결승선을 통과하려면 이런 것들을 지배해야 한다. 그들의 훈련과 경쟁 방식은 일본인이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해안선에 콘크리트 벽을 세우고 강의 경로를 바꾸는 등, 자연에 맞서는 것과 비슷하다. 일본인의 달리기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이 되는 내용이다.
일본 마라톤은 전통적으로 강하다. 비결이 있나.
근면, 인내, 집중하려는 훈련과 의지라고 생각한다. 아프리카 장거리 주자의 성공 비결과 같다. 유전적 측면과 높은 고도에서의 훈련 덕분이라는 분석도 있다. 내 생각에 비법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규율과 시스템뿐만 아니라 항상 최선을 다하려는 강인한 의지가 필요하다.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와 케네니사 베켈레, 더 거슬러 올라가서 아베베 비킬라 같은 선수가 세계적인 엘리트 러너가 된 비결은 무엇일까. 케냐에서 활동하는 존경받는 이탈리아 코치인 레나토 카노바, 역시 케냐에 거주하는 아일랜드 사제 겸 교사 출신 콤 오코넬 코치가 한결같이 말하는 것이 있다. 달리기에 대한 순수한 노력, 성실한 훈련, 집중하려는 의지다.
언제부터 달렸나.
여섯 살 때부터 트랙 달리기, 높이뛰기, 멀리뛰기를 했다. 10~18세 때는 독일 에센의 크로스컨트리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20대 초반에는 10킬로미터 로드 러닝으로 종목을 바꿨다.
첫 마라톤을 뛴 것은 30세가 되기 직전이었다. 당시 나는 레이스 초반 너무 빨리 질주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32킬로미터 지점에서 레이스를 중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좌절했다. 그때 나는 마음을 다스리고 다음을 기약할 만큼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 대회를 마치고 훈련을 이어 갔고 이듬해 2시간 42분 기록으로 레이스를 마쳤다.
러닝을 위한 특별한 노력이 있나.
러너로서 타고난 재능이 별로 없다. 역량을 기르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나만의 규율을 지키고 부족함을 만회하려 한다. 나는 달릴 때 최선을 다한다. 트레이닝, 식단, 라이프스타일 모든 것을 러닝에 맞춘다. 컨디션, 날씨, 분위기 모든 게 하나가 되는 순간이 있다. 이럴 때의 달리기 목표에 모든 것을 건다. 나는 러닝이라는 스포츠와 그 경험 자체를 소중히 여긴다.
혼자 달리기를 좋아한다. 특히 즐기는 것은 동남아 지역에서의 장마철 달리기다. 매번 신비로운 경험을 가져다준다. 달릴 때 시계를 제외한 아무것도 챙기지 않는다. 음악도 듣지 않는다. 주로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 달린다. 사람들과 현대 생활의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시간이다. 자연의 소리를 더 선명하게 들을 수 있고, 바람과 비, 빛과 어둠을 더 깊게 느낄 수 있다.
달리기 시작해 10~15분이 되면 호흡과 케이던스(1분 동안 딛는 보폭의 수)가 안정된다. 어떤 날에는 나뭇잎 사이에 부는 바람, 지저귀는 새소리, 강물이 흐르는 소리, 몸과 바닥에 닿는 빗소리, 이 모든 것이 내게 진정한 휴식을 준다. 그 순간 오직 달리기와 나만 존재한다. 달릴 때 누구든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 우리 몸은 애초부터 러닝에 맞춰져 있다. 꾸준히 달리면 몸과 마음이 편해지는 이유다. 삶을 지탱하는 힘도 얻을 수 있다. 러닝을 통해 도전에 직면하고 극복하는 방법, 투쟁하는 방식, 자신이 성장하는 방법을 배운다. 이 경험은 라이프스타일과 직업 생활에도 적용된다.
방콕에서도 오래 지냈다. 동남아에서의 러닝은 어땠나.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 사업상 이유로 태국 방콕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대규모 러닝 커뮤니티를 발견했다. 지역 커뮤니티에서 여러 러너를 사귀었다. 우리는 주로 오전 4시 30분 룸피니 공원에서 만나 2.5킬로미터 구간을 반복해 달렸다. 그곳에서 마라톤을 다시 시작했다. 이전처럼 기록에 집착하기보다 가족생활, 비즈니스, 기후 조건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달렸다.
가족 여행을 갔을 때는 그 지역의 레이스에 참가하기도 했다. 거의 매달 태국 각지의 마라톤에 나갔다. 태국의 레이스는 통상 오전 4시에 시작되는데, 대회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가족과 식사하곤 했다. 현지 대회장에서 만나는 러너 모두 애티튜드가 좋았다. 그들은 가족 중심적이었다. 아시아 고유의 문화가 러닝에 접목된 것으로 생각한다.
바뀐 환경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태국에서의 러닝은 내 몸을 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2013년에는 방콕의 북동쪽 카오야이 국립공원에서 열린 100K 트레일 러닝 대회에 참가했다. 다음 해에도 같은 레이스를 달렸다. 전체 26위를 기록했다. 러너 3분의 1만이 완주했을 만큼 극도로 덥고 습한 잔인한 날씨였다. 그때 극심한 더위에 어떻게 경기를 펼칠 수 있는지 뿐만 아니라 탈수에 대처하는 법도 배웠다.
첫 마라톤에서 DNF를 한 경험이 자산이 됐다. 그 이후에도 여러 위기가 있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나는 건강에 위협이 되지 않는 한 훈련이나 경주를 끝까지 하려 한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태국에 있는 동안 정신적으로 더 강해졌다. 현지 러너들과 달리며 나는 더 겸손하고 더 유능한 주자가 됐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