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이직 시대의 증거
1997년생 나일해 씨는 요즘 한창 이직 준비 중이다. 신입으로 입사한 후 4년이 지난 지금이야말로 이직할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함께 입사한 동기들은 이미 절반 이상 다른 곳으로 일터를 옮겼고, 일찍 커리어를 시작한 대학 동기는 벌써 세 번째 직장에 다니고 있다. 더 좋은 조건의 직장을 찾아 망설임 없이 떠나는 동료들을 보며, 나일해 씨는 조급한 마음에 포트폴리오 정리를 서두른다.
나일해 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최근 이직은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단순히 사람들이 이전보다 이직을 더 많이 한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이직에 대한 인식과 이직하는 방식 모두 확연히 달라졌다. 그 증거를 기업과 구직자 사이의 데이터에서 찾아보았다.
직장인들의 ‘이직할 결심’
첫 번째 증거는 커져 가는 직장인들의 이직 욕구다. 우선 이직과 퇴사에 대한 관심도를 간단히 살펴보자.
빅데이터 콘텐츠 구독 플랫폼 ‘KPR 인사이트 트리’가 이직과 퇴사에 관한 온라인상의 언급량을 분석한 결과[1], 2022년 전체 언급량은 13만 2000건으로 2020년(6만 4000건)의 두 배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3년 사이 이직과 퇴사에 대한 관심이 두 배 수준으로 커진 것이다.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이직 의향 조사에서는 더욱 직접적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시장 조사 전문 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2023년 1월 발표한 자료[2]에 따르면, 전국 만 19~59세 직장인 1000명 중 약 55퍼센트가 현재 이직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30 세대의 이직 의향이 강한 편(20대 66.4퍼센트, 30대 61.6퍼센트, 40대 53.2퍼센트, 50대 39.6퍼센트)이었다.
이직을 고려하는 사람이 이토록 많다면, 이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원티드의 채용 지표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 원티드 유저들의 전체 지원 건수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더 적극적으로 이직을 시도하고 있다는 의미다.
기업과 구직자는 밀당 중
대이직 시대의 증거는 기업과 구직자 사이의 관계 변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경영 환경이 변함에 따라 기업들은 예전처럼 신입 사원을 대규모로 뽑아 자원을 투입하며 교육할 시간이 없어졌다. 대신 상황에 맞게 그때그때 필요한 인재를 채용해 실무에 바로 투입하는 것을 선호하게 됐다. 최근 몇 년 사이 주요 대기업이 줄줄이 공채를 폐지하며 채용 시장의 흐름은 경력직 수시 채용 중심으로 방향을 굳혔다.
이런 변화에 따라 구직자 입장에서는 역량이 충분하다면 자신이 원하는 조건에 따라 짧은 주기로 직장을 이곳 저곳 옮겨 다니는 ‘잡 호핑(Job-Hopping)’이 가능해졌다. 인재들의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기업들은 지원자가 제 발로 찾아오길 기다리기보다, 조직에 필요한 사람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기 시작했다. 기업 쪽에만 선택권이 있는 일방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수평적인 관계에 가까워진 것이다.
진화하는 채용 시장
기업과 구직자의 관계 변화에 발맞추어 이들을 대상으로 한 채용 서비스 또한 변화했다. 단순히 기업의 채용 공고를 광고해 주는 데서 나아가, 구직자들이 원하는 직장을 탐색할 수 있는 기반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변화가 바로 ‘채용 매칭 모델’의 등장이다. 구직자들에게는 잘 맞는 회사를, 기업에는 조직에 적합한 인재를 효율적으로 찾아주는 방식을 말한다.
채용 플랫폼 원티드는 지난 2015년 ‘지인 추천’으로 시작해 2017년에는 ‘AI 매칭’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으로 채용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AI 매칭은 매칭 데이터와 합격 데이터 등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구직자의 이력서와 기업의 채용 공고 사이에서 합격률을 예측해 준다. 원티드랩은 지원부터 합격까지 채용 전 과정에 이르는 데이터 600만 건을 수집해 AI 매칭 기술을 고도화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 결과 일반 지원보다 약 네 배 이상 높은 합격률을 달성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원티드를 필두로 여러 채용 플랫폼이 서로 잘 맞는 회사와 인재를 찾아 매칭해 주는 맞춤형 솔루션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국내 채용 매칭 시장은 2025년까지 연평균 7.6퍼센트 성장할 것으로 분석된다.[3] 직장인들의 이직 욕구와 기업들의 수시 채용 기조가 이어지는 한, 채용 매칭 시장은 성장을 거듭할 전망이다.
한편 다양한 역량을 지닌 인재가 이직 시장에 나옴에 따라 이들을 겨냥한 채용 플랫폼 또한 진화하고 있다. 개발자, 긱워커(프리랜서), 고액 연봉자 등 타깃을 세분화한 채용 서비스가 다수 등장하는 상황이다. 프리랜서 매칭 플랫폼 ‘원티드긱스’, 생산・기능직 전문 채용 플랫폼 ‘고초대졸닷컴’, 억대 연봉 전용 채용 서비스 ‘리멤버 블랙’ 등이 각자 타깃별 수요를 촘촘하게 공략하며 대이직 시대의 흐름에 기여하고 있다.
대이직 시대의 주인공
2030은 10년째 이직 중
그렇다면 대이직 시대를 주도하는 것은 누구일까? 앞서서 우리는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조사를 통해 2030 세대 사이에서 이직 의향이 강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실제로도 이들이 이직을 가장 많이 하고 있을까?
대답은 ‘그렇다’다. 사실 10년 전에도 이미 2030 세대에게 이직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0년 동안의 고용노동부의 근속 기간 통계를 살펴보면, 20대[4]는 약 2년, 30대는 약 5년, 40대는 약 8년간 한 직장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적으로 이 기간이 지나면 다른 직장을 찾아 나선다고 볼 수 있으며, 연령이 높아질수록 이직이 줄어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원티드의 채용 지표도 이를 뒷받침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원티드의 전체 지원 건수는 2021년부터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이렇게 증가하는 지원 수 속에서도 10년 차 미만의 유저들이 특히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인다. 2022년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의 원티드 입사 지원 건수 중 특정 연차가 차지하는 비율은 다음과 같다. 1~3년 차와 4~6년 차가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그다음으로 7~9년 차가 뒤따른다. 10년 차 미만의 2030 직장인들이 활발하게 이직을 시도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6년 차 이하가 더욱 적극적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23년 5월 기준 20~34세 직장인의 첫 직장 평균 근속 기간은 26개월로 나타났다. 이는 첫 직장을 그만둔 경우와 재직 중인 경우를 모두 포함하는데, 첫 직장을 그만둔 경우만 살펴본다면 평균 근속 기간은 19개월[5]에 불과하다. 입사 후 약 2년이 되면, 대이직 시대의 주인공으로서 이직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다.
직장인 소셜 플랫폼 ‘블라인드’의 조사[6]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직장인 5만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한 결과, 응답자의 51퍼센트가 지난 한 해 동안 이직을 시도한 바 있다고 답했다. 연차별로는 1년 이상~5년 미만 사원급 직원의 이직 시도율이 55퍼센트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는 대리급(5년 이상~9년 미만) 54퍼센트, 신입급(1년 미만) 49퍼센트, 과장급(9년 이상~14년 미만) 48퍼센트 순이었다.
“거 이직하기 좋은 딱 연차네”
10년 차 미만의 직장인들이 이직 시도를 가장 많이 한다면 기업이 선호하는, 즉 이직하기 좋은 연차는 언제일까? 보통 이직하기 좋은 연차로는 3~8년 차가 꼽힌다. 이는 기업이 경력직을 채용하는 이유와 연결된다. 기업은 실무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숙련된 인력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경력직을 채용하는데, 그 숙련도를 갖추는 데 최소 2년 이상의 기간이 걸린다고 보는 것이다.
3년 차가 되면 일정한 수준의 비즈니스 매너와 업무에 필요한 최소한의 역량을 습득한 것으로 간주되며, 5년 차부터는 실무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연차가 올라갈수록 실무 능력과 함께 연봉도 높아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10년 이상의 고연차에 비해 해당 연차의 연봉은 기업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적당한 수준으로 받아들여진다.
3년 차가 되면 일정한 수준의 비즈니스 매너와 업무에 필요한 최소한의 역량을 습득한 것으로 간주되며, 5년 차부터는 실무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연차가 올라갈수록 실무 능력과 함께 연봉도 높아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10년 이상의 고연차에 비해 해당 연차의 연봉은 기업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적당한 수준으로 받아들여진다.
기업 정보 플랫폼 ‘잡플래닛’이 헤드헌터를 대상으로 이직에 유리한 연차를 조사한 결과[7], 헤드헌터들 또한 이직 시장에서 가장 선호하는 연차를 5~7년 차로 꼽았다.
비슷한 맥락에서 종합 비즈니스 플랫폼 ‘리멤버’가 경력직 스카우트 제안 정보 누적치 200만 건을 분석해 발표한 내용[8]에 따르면, 이직 제안을 가장 많이 받는 연차는 5~8년 차(38.3퍼센트)로 나타났다. 이는 보통 기업에서 대리급으로 분류되는 연차다. 그다음은 과장급에 해당하는 9~12년 차(28.9퍼센트)였으며, 13~16년 차(13.1퍼센트), 1~4년 차(9.8퍼센트), 17년 차 이상(9.6퍼센트) 순이었다.
TREND ; 이직도 제철이 있다?
성공적인 이직을 위해서는 언제부터 이직을 준비해야 할까? 월별로 원티드에 등록된 공고 수와 합격자 수를 분석한 결과, 봄이 시작되는 3월부터 한여름인 8월까지가 이직 시즌으로 나타났다.
통상적으로 채용 과정에 약 3개월이 소요됨을 고려할 때, 이 중에서 실질적으로 채용 공고가 몰리는 시기는 3~6월로 볼 수 있다. 기업들이 3월부터 채용을 위해 본격적으로 공고를 올리고 서류 전형, 면접 전형 등 각종 채용 전형을 진행, 8월이 되면 채용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공적인 이직을 위해서는 이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좋다.
잡플래닛의 조사[9]에 따르면, 헤드헌터들 또한 사계절 중 봄(3~6월)이 이직하기 가장 좋은 시즌이라고 답했다. 그다음으로는 중견기업의 채용 선호도가 높은 시기이자 휴가를 활용해 면접 일정을 잡기 쉬운 한여름(7~8월)을 꼽았다. 가을은 경력직보다는 신입 공채 시즌이며, 겨울은 한 해 결산 및 내년을 준비하는 시기라 이직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시즌이다.
이처럼 기업의 경력직 채용이 봄에 몰리는 이유는 이때가 많은 기업이 지난해 이탈한 인력과 올해 추가로 충원해야 하는 인력을 찾는 시기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연말까지 인력 충원을 비롯한 한 해 계획을 세우고, 1~2월에 유관 부서와 논의한 후 채용 공고를 내는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직을 희망한다면, 연말 성과 평가 이후 연초까지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를 미리 업데이트해 두기를 권한다. 본격적인 이직 시즌이 시작되는 3월부터는 채용 플랫폼을 통해 원하는 기업의 공고가 올라오는지 틈틈이 체크해 보자. 또한 여름 휴가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연차를 아껴 두는 것이 좋다.
다음 챕터에서는 2030 직장인들의 퇴사 이유와 함께, 이직 트렌드에 반영된 이들의 가치관을 알아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