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사일로(Silo)가 아니라,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스타트업은 직원 수로 정의되지 않는다. 스타트업을 정의하는 건 루프(loop)다. 매출의 루프, 제품의 루프, 피드백의 루프. 작은 팀이 이기는 이유는, 모든 행동이 다음 행동을 먹여 살리는 촘촘한 루프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부서 간 협곡을 건너느라 에너지를 잃지 않는다.
마케팅팀이 데이터팀의 리포트를 기다리느라 2주 동안 멈춰 버리면, 속도는 이미 사라진다. 고객 피드백이 다섯 번의 미팅을 거쳐서야 제품 리드에게 도달한다면, 그 진실성은 희석된다. 구조는 신호를 증폭해야지, 감쇠해선 안 된다.
이상적인 모델을 재현하기 위한 조건은 다음과 같다.
- 자율적인 조직(Autonomous pods)을 만들라: 그리고 각 조직에 명확한 미션과 책임 범위, 그리고 출시 권한을 준다.
- 지표를 공유하라: 그래서 각 팀이 단일한 목표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볼 수 있게 한다.
- 의사결정 주기를 줄여라: 6주 단위 스프린트로 일한다. 비동기 체크인을 기본값으로 둔다. 잘된 것과 안된 것을 한 장짜리 리뷰로 간단히 기록한다.
구조가 군더더기 없이 명확하면 사람들은 혼란에 발목 잡히지 않는다. 오히려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마지막으로, 문화를 우선시해야 한다. 구조는 그다음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구조 설계가 단순히 운영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체성의 문제다. 일을 조직하는 방식은 팀에게 당신이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는지 말해 준다. 자율성, 오너십, 속도 같은 것들은 우연히 생겨나지 않는다. 설계되는 것이다. 창업자들은 이 사실을 자주 잊는다. 취약한 스타트업은 묻는다. “이걸 윗선 누구에게 보고해야 하지?” 반면 단단한 스타트업은 이렇게 묻는다. “이걸 고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뭐지?”
이렇게 회사를 설계하라.
4. 도구가 아닌, 시스템이 경쟁력이다.
많은 창업자가 흔히 빠지는 함정이 있다. 도구가 속도를 끌어 올릴 핵심 수단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동화 소프트웨어를 잔뜩 사들이고, 최신 AI 코파일럿을 구매하고, 수십 개의 SaaS 플랫폼을 연동해 놓고는, 왜 일 처리가 여전히 더딘지 의아해한다.
문제는 도구가 아니다. 시스템의 부재다. 효율성은 소프트웨어를 겹겹이 쌓아 올린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노력이 희소하고, 의도적이며, 존중받는 워크플로를 설계할 때 생긴다. 어떤 작업을 자동화하기 훨씬 이전에, ‘애초에 이 작업이 존재해야 하는지’ 질문하고 검증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도구는 망가진 프로세스도 가속한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 그저 시간을 더 빠르게 낭비하게 만들 뿐이다.
피터 레벨스(Pieter Levels)의 플레이북을 보면, 자동화보다 중요한 것은 조율이란 것을 알 수 있다. 피터 레벨스가 유명한 이유는 ‘괴짜 1인 창업자’라서가 아니다. 팀 없이도 혼자 수백만 달러 규모의 비즈니스를 포트폴리오로 만들어 낸 인물이고, 그 핵심이 시스템 설계에 있기 때문이다. 노마드 리스트(Nomad List), 리모트 OK(Remote OK), 리베이스(Rebase)까지. 단순한 웹사이트들이 아니다. 사용자 행동이 비즈니스를 움직이도록 촘촘하게 설계된 기계다. 레벨스는 더 많은 기능을 코딩해서 확장하지 않았다. 제품이 사실상 스스로 굴러가도록, 마찰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확장했다.
노마드 리스트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 사용자가 도시 정보를 기록하고, 피드백을 공유하고, 생활비 데이터를 업데이트하며 콘텐츠를 생성한다.
- 그 콘텐츠가 롱테일(Long-tail) SEO를 견인한다. 수십만 개의 페이지가 유기적으로 검색 엔진에 색인 된다.
- SEO는 트래픽을 불러오고, 유료 구독으로 이어진다.
- 유료 회원들이 커뮤니티를 직접 관리하며 품질을 유지한다.
지원팀도 없다. 영업팀도 없다. 마케팅 부서도 없다. 루프만 있다. 이미지 생성, 이메일 초안, 모더레이션 필터 등 그가 쓰는 AI 도구들은 핵심 엔진이 아니다. 보조 장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자동화가 아니라 조율이다.
마르쿠스 페르손(Markus Persson)이 만든 마인크래프트(Minecraft)의 초기 시절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있었다. 마케팅팀도, 영업 조직도 없었고, 커뮤니티와 다운로드 버튼 외에는 아무런 인프라도 없었다. 제품의 완성도가 팬의 참여를 만들고, 그 참여가 매출을 만들고, 그 매출이 더 나은 개발을 가능하게 하는 자기 강화 루프(Self-reinforcing loop)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시작점은 시스템이다. 도구 스택(Stack)이 아니다. 너무나 많은 창업자가 어떤 도구를 도입해야 할지부터 고민한다. 하지만 진짜 던져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내가 아직도 손으로 직접 처리하고 있는 가장 반복적인 일은 무엇인가?”
“이 일이 애초에 존재할 필요가 있는가?”
이 질문에 답을 찾은 다음에 자동화를 고민해야 한다. 시스템 자체가 비대하다면, AI는 결코 상황을 개선해 주지 않는다. 그저 그 비효율적인 과정을 더 빠르게 돌리게 만들고, 운영 비용만 더 비싸게 만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