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하고, 장악하라
트위치(Twitch)는 게임 방송 전문 플랫폼이다. 게임을 매개로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싶어 하는 게임 팬덤을 타깃 고객으로 삼고 있다. 트위치에 접속하면 내가 즐겨 하는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전 세계의 스트리머(streamer)를 만날 수 있다. 시청자들은 스트리머의 방송을 보면서 그들의 플레이와 게임에 관해서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눈다.
트위치의 모태는 창업자 저스틴 칸(Justin Kan)과 에멧 쉬어(Emmett Shear)의 라이프 로깅(life-logging) 프로젝트였다. 칸은 자신의 모자에 웹캠과 마이크를 부착하고 가방에는 온라인 생중계가 가능한 송신 장비를 넣어 신체 일부처럼 지니고 다녔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머리에 단 카메라를 떼지 않을 것이며, 화장실과 침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포함해 모든 사생활을 생중계하겠다”고 공언했다. 두 사람이 만든 저스틴TV 웹사이트는 칸의 웹캠에서 전송되는 라이브 영상이 나오는 플레이어와 실시간 대화가 가능한 채팅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시청자가 특정 일정만 관람할 수 있도록 칸의 일일 일정도 공개했다.
라이프 로깅은 개인의 신체에 관한 데이터나 사진 등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개념이다. 라이프 로거들은 초소형 카메라로 자신의 일상을 중계하고, 모든 기록을 데이터로 남기고자 했다. 1990년대부터 라이프 로깅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관측이 쏟아졌다. 개인의 일상 데이터가 축적된 거대한 아카이브가 만들어지면 이 데이터가 엄청난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전망이었다. 그러나 라이프 로깅은 유의미한 결과를 남기지 못했다. 촬영된 영상은 지루했고 사람들은 타인의 영상에서 가치 있는 정보를 발굴하기 위해 시간을 쓸 정도로 여유롭지 않았다.
칸과 쉬어는 이 지점에서 운명을 바꿀 결정을 내렸다. 저스틴TV에서 게임 방송만을 보여 주는 채널을 분리하기로 한 것이다. 칸은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으나, 쉬어는 당시 막 출시됐던 게임 스타크래프트2의 인기에 주목했다. 신작 게임 영상을 보기 위해 게임 팬들이 플랫폼에 몰릴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2011년 6월 두 사람은 트위치TV라는 이름으로 게임 방송만을 송출하는 플랫폼을 론칭했다. 트위치라는 이름은 비디오 게임을 만들 때 게이머들의 반응을 테스트하는 기법인 트위치 게임 플레이에서 따왔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트위치는 베타 버전 론칭 1개월 만에 전 세계에서 800만 명의 시청자를 모았고, 세계 최대의 실시간 방송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2014년 트위치가 아마존에 인수될 무렵, 저스틴TV는 문을 닫았다.
트위치의 성공이 증명한 것은 게임 방송을 보는 팬들의 욕구였다. 게임을 즐기는 이들은 누구나 게임을 잘하고 싶어 하고 실력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많은 게임은 게이머가 탁월한 플레이를 선보였을 때, 이 소식을 공유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는 유저가 일정 시간 내에 상대 팀 모두를 죽였을 경우 모든 이들의 화면에 ‘펜타 킬(Penta Kill)’이라는 자막을 띄우고, 오버워치(Overwatch)는 게임이 끝날 때 가장 멋진 플레이를 보여 준 한 사람의 게임 영상을 ‘최고의 플레이’로 선정해 재생한다.
게이머의 인정 욕구는 타인의 뛰어난 스킬을 배우고 모방하려는 욕구를 넘어, 자신의 게임 실력을 커뮤니티 내에서 자랑하고 싶다는 욕구로 이어진다. 트위치는 게이머의 인정 욕구를 실시간으로 충족해 주는 플랫폼이다. 스트리머가 훌륭한 플레이를 선보이면 시청자들이 실시간으로 무수한 칭찬 세례를 남긴다. 스트리머의 플레이가 부족하다고 느끼면, 조언을 해준다. 게임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싶은 시청자들은 채팅창에서 경쟁을 벌인다. 시청자는 일방적으로 방송을 보는 것이 아니라, 스트리머의 플레이에 참여하게 된다.
트위치가 게임 채널을 분리하고 단기간에 많은 유저를 끌어모은 것은 이런 욕구를 반영한 플랫폼이 기존에 없었기 때문이다. 트위치의 성공은 파괴적 혁신의 사례라고 부를 만하다. 파괴적 혁신은 기존 기업이 간과한 시장에서 출발한다.
[1] 지배 기업이 수익성이 큰 고객에게 집중할 때, 상대적으로 소수인 고객에게 집중해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트위치는 누구나 보면서 즐거워할 만한 영상을 제공하지 않았다. 게임 영상만을 열광적으로 소비하는 슈퍼 팬덤을 노렸다. 게임을 위해서만 설정된 플랫폼을 만들었다. 그리고 전 세계의 게임 팬덤을 장악해 버렸다.
게임 팬덤이 원하는 것
파괴적 혁신 기업은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시해 시장 지배력을 확보한다.
[2] 트위치는 게임 팬덤을 위해 다양한 기능을 고도화했다. 우선 좋은 화질을 무료로 제공한다. 게임 방송에서 화질이 중요한 이유는 게임 안에 포함된 영상, 문자, 채팅 등이 모두 게임 진행을 위해서 습득해야 할 정보이기 때문이다. 스트리머가 끊임없이 진행 상황을 해설하지만, 시청자는 눈으로도 게임의 정보를 이해해야 한다. 시청자가 방송 화면만 보고도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좋은 화질은 필수적이다.
두 번째로, 고화질 게임을 손쉽게 송출, 관전할 수 있게 만들었다. 스트리머는 게임 콘솔이 있다면 언제든 방송을 시작할 수 있다. 시청자는 로그인하지 않고도 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
세 번째로, 게임 방송 카테고리를 세분화했다. 종합 영상 플랫폼에서 게임 방송은 게임의 종류와 관계없이 전체가 하나의 카테고리다. 그러나 트위치는 개별 게임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만들었다. 예를 들어,
배틀그라운드(Battlegrounds) 카테고리에 접속하면 지금 그 게임을 송출하고 있는 전 세계의 스트리머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기능은 대중적으로 인기가 없는 게임을 좋아하는 마니아에게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많은 사람에게 인기 있는 소재가 상단에 노출되는 종합 영상 플랫폼에서는 게임 방송 카테고리가 있다고 해도 인기 있는 게임만 다루는 경우가 많다. 트위치는 다양한 게임의 발견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에 소수 취향의 게임도 꾸준히 소개할 수 있다.
딜레이(delay) 기능을 추가한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트위치를 포함한 실시간 인터넷 방송의 핵심은 방송인과 시청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시간 지연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실시간 방송에서 소통 지연은 사용자 경험을 저해하는 요소다. 그런데 트위치는 의도적으로 송출 지연 시간을 15분까지 연장할 수 있는 기능을 도입했다. 게임 경기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게임 경기가 지연 없이 중계되면 시청자들이 상대의 게임 방송을 보면서 내가 응원하고 있는 스트리머에게 상대의 전략을 알려 주는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딜레이 기능은 일반 채널에서는 불필요하거나 고객 경험을 악화시킬 수 있는 문제점이지만, 트위치의 게임 팬덤에게는 게임을 더 잘 즐기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콘텐츠 플랫폼이 시청자를 붙잡기 위해 택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전략은 잠재적 시청자를 위해 더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거나, 저렴한 구독료를 내세워 금전적인 이익을 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트위치는 기존 시장이 주목하지 않은 충성 고객을 발견하고 이들만을 겨냥한 서비스를 만드는 방식을 택했다. 이를 통해 세계의 게임 팬덤을 하나로 모으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2014년 아마존은 9억 7000만 달러(1조 1600억 원)에 트위치를 인수했다.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인수한 이래 콘텐츠 업계의 최고가 인수였다. 당시 트위치는 막대한 트래픽을 처리할 수 있는 파트너가 필요했다. 아마존은 트위치의 이용자 수를 감당할 수 있는 데이터 센터를 보유하고 있었고, 인터넷 서비스 시장을 잘 이해하고 있는 파트너였다.
제프 베조스(Jeff Bezos) 아마존 CEO는 당시 공식 성명을 통해 “트위치는 매달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수백만 분의 시간을 게임 방송을 즐기며 보내는 플랫폼을 구축했다”며 “게임 커뮤니티를 위한 새로운 서비스를 빠르게 구축하기 위해 트위치로부터 배우겠다”
[3]고 밝혔다. 그의 말처럼 2019년 트위치는 실시간 게임 방송 시장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제치고 점유율 1위에 올랐다. 실시간 게임 방송 시청 시간의 75퍼센트에 해당하는 27억 2000만 시간을 트위치가 점유하고 있다.
[4] 아마존은 아마존 프라임 가입자에게 트위치 프라임이라는 이름으로 광고 없는 스트리밍, 무료 게임과 아이템 제공 등의 혜택을 주는 등 트위치 결합 상품을 확대하고 있다.
[5]
소속감을 느끼는 플랫폼
한국은 아시아에서 트위치의 성장세가 가장 가파른 나라다. 2016년 15만 명에 불과했던 한국의 트위치 월간 실사용자(MAU)는 2018년 121만 명으로 늘었다.
[6] 국내 게임 방송 분야의 대표 스트리머인 대도서관도 2018년 12월 유튜브에서 트위치로 플랫폼을 옮겼다. 대도서관은 아프리카TV에서 유튜브로 이적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팬들은 2년 만에 또 다시 플랫폼을 옮기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도서관의 트위치 첫 방송에서 ‘트수(트위치 백수)’라고 불리는 트위치 시청자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대도서관이 트위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그의 방송에 찾아가 트위치를 홍보했다. 대도서관은 “트위치 시청자의 적극적인 태도가 트위치를 성공으로 이끈다고 생각한다”며 “트위치 시청자는 스트리머 구독 시스템, 수수료 정책, 트위치 프라임 등 트위치의 특징과 상품에 대해 매우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감탄했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