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와 ‘슬럼프’, 두 단어는 굉장히 이질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자기 분야에서 레전드가 되기를 바란다. 슬럼프에 빠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어떤 분야에서든 레전드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슬럼프와는 관련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야구팬들은 레전드에 열광하고 존경의 눈빛을 보내지만, 슬럼프에 빠진 선수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레전드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것이 슬럼프다.
경쟁이 치열한 프로 야구 세계에서 선수들이 맞닥뜨리는 가장 혼란스럽고 절망적인 경험 중 하나가 바로 슬럼프다. 선수들은 분명한 원인 없이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고 분명한 이유 없이 여기에서 빠져나오기도 한다. 선수들과 코치들에게 슬럼프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자 불안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슬럼프를 유발하는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슬럼프는 전적으로 선수 머릿속의 문제이며 거기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반면, 슬럼프가 신체적인 문제에서 유발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슬럼프 극복 방안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어떤 사람들은 ‘노즈 투 그라인드 어프로치(nose to grind approach)’, 즉 혹독한 훈련을 통해 슬럼프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오히려 잠시 쉬면서 운동에서 한 발짝 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듯 슬럼프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지만 다음의 두 가지 특성만은 논쟁의 여지없이 분명하다. 첫째, 슬럼프는 누구에게나 온다. 즉 슬럼프는 자연스럽고 피할 수 없는 스포츠 경쟁의 일부이다. 둘째, 슬럼프는 언젠가는 지나간다.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선수들의 기량이 다시 예전 수준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1]그러나 불행하게도 프로 선수들은 슬럼프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슬럼프에 대한 높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슬럼프에 관한 체계적인 이론이나 경험적인 연구는 거의 없었다. 또한 무엇이 슬럼프이며 무엇이 이를 유발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이해가 없다. 사전적으로 슬럼프는 ‘개인 혹은 팀이 경기에서 지거나 자기 실력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하는 상태(a period of poor or losing play by a team or individual)’
[2]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만으로는 의미가 모호하다. 예컨대 선수 개인이나 팀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그들의 낮은 수행 결과를 슬럼프라고 하지는 않는다. 슬럼프는 현재의 수행 수준과 기존의 수행 수준을 비교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슬럼프를 말할 때는 반드시 슬럼프 기간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3타수 무안타인 타자를 슬럼프라고 하진 않지만 15타수 무안타가 되면 슬럼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로 저조한 결과가 이어져야 슬럼프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은 없다.
[3] 마지막으로 슬럼프인지 아닌지의 판단은 선수들의 수준에 따라 상대적으로 결정된다. 어떤 선수에게는 슬럼프 상황인 것이 다른 선수에게는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스포츠에서 수행 수준에 대한 일반적인 기준은 슬럼프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는 적용할 수 없다.
따라서 스포츠 심리학자인 짐 테일러(Jim Taylor)의 슬럼프에 대한 정의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는 슬럼프를 ‘이전의 자기 수준에 비해 현저하게 수행 능력이 떨어지면서 이러한 상태가 평소 수행의 일반적 하락-상승 주기보다 길어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롯데 자이언츠의 외야수로 활약하고 있는 손아섭 선수의 사례다. 그는 데뷔 2년 차이던 2008년 타자로서 최고의 기량을 선보였다. 80경기에 출전해 3할3리를 쳤다. 몸값은 뛰고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런데 이듬해 그는 추락했다. 타율이 1할8푼까지 곤두박질쳤다. 하반기엔 2군으로 내려가야 할 정도였다.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갑자기 공이 잘 맞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더라고요. 이전 성적에 자만하지 않았고, 자신도 있었고, 무엇보다 열심히 했거든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오만 가지 방법을 다 동원해도 안 되더라고요. 정말 힘들었어요. 불안했고. 길이 안 보이는 거예요. 혼란스러웠어요.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정말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그때는 머릿속으로 ‘뭐가 문제지? 어떡하지? 뭘 해야 하지? 왜 그런 거지?’ 계속 질문만 해댔어요. 나중에는 내 실력이 정말 이거밖에 안 되는 게 아닐까 자책하게 되고 무기력해졌어요.”
손아섭의 사례처럼, 선수가 경기를 하면서 항상 최상의 수행을 보일 수는 없다. 선수들은 항상 역경 상황과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으며 이로 인한 수행의 하락, 즉 슬럼프에 빠질 위험 역시 늘 존재한다. 제아무리 뛰어난 선수라 한들 슬럼프에 한 번도 빠지지 않은 선수는 없다.
이런 이유에서 많은 스포츠 심리학자가 최상의 경기력을 가진 선수들이 자신의 평소 수행 수준에서 벗어나는 현상인 슬럼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어떻게 하면 최상의 수행을 보일 것인가?’에서 ‘어떻게 하면 슬럼프를 빨리 극복하고 수행을 다시 이전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인가?’로 관심의 초점이 바뀌면서 슬럼프의 원인과 극복 방안에 대한 연구들이 이뤄졌다.
나 역시 테일러가 제안한 슬럼프의 정의와 특성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프로 야구 선수들의 슬럼프 극복 경험을 살펴보았다. 특히 타자와 투수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슬럼프가 타자와 투수에게 미치는 차별적 의미를 탐색했다. 군 복무나 부상, 혹은 기타 이유 등으로 시즌을 접은 해를 제외하고 6시즌 이상을 뛴 프로 야구 선수 175명(타자 104명, 투수 71명)의 매 시즌 성적을 분석했다. 또한 염종석(전 롯데 코치), 이호준(NC 다이노스 선수) 등 전·현직 선수 12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분석 결과, 슬럼프 횟수나 기간은 선수들의 성적과는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타급 선수라고 슬럼프를 덜 겪거나 무명 선수라고 해서 슬럼프를 더 자주 겪는 것은 아니었다. 잘 치고 잘 던지는 선수들이라 하더라도 슬럼프를 많이 경험할 수 있다. 즉 기복 없이 꾸준한 성적을 보여 준다고 해서 반드시 슬럼프에 덜 빠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선수 생활을 오래 하면 할수록 그만큼 슬럼프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은 커진다. 단, 타자냐 투수냐에 따라 슬럼프 횟수와 수행 간의 관계 양상에는 차이가 있었다. 타자의 경우 선수 생활을 오래 할수록 통산 성적과 성적의 기복, 슬럼프 횟수 모두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투수의 경우는 통산 성적과 성적의 기복은 선수 생활을 한 기간과 관계가 없었고, 슬럼프 횟수만 선수 생활 기간과 비례해서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뛰어난 타자들은 그만큼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한다. 이는 곧, 타자는 현역에서 최대한 오래 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1995년 19세의 나이로 삼성에 입단해 41세인 지금까지 최고의 현역으로 뛰고 있는 이승엽 선수, 그는 통산 최다 득점과 최다 루타, 그리고 최다 홈런의 신기록을 세우면서 한국 야구의 새 역사를 작성하고 있다.
그러나 투수의 경우에는 뛰어난 투수라고 해서 반드시 오랫동안 현역으로 뛰는 것은 아니었다. 부상 같은 치명적인 슬럼프로 인해 투수의 선수 생명이 한순간에 끝나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분석 결과를 보면서 한 투수가 떠올랐다. ‘자신의 어깨와 롯데의 우승을 맞바꾼 선수’ 염종석. 1992년 롯데에 입단한 그는 프로 첫해 골든 글러브와 신인왕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팀 우승이라는 최고의 열매를 수확했다. 그러나 야구 인생의 가장 짜릿한 순간에 가장 치명적인 팔꿈치 부상을 당했다. 결국 1995년에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받기 위해 혼자서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야 했고, 수술을 받을 때 그의 옆에 있어 준 사람은 통역을 도와준 한국인 한 사람뿐이었다. 머나먼 미국 땅에서 가족도 없이 외롭게 수술대에 오르며 그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몸도 마음도 절망 그 자체인 상태였다. 우울증에 걸려 자살하는 사람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할 만큼, 그는 상상하기 어려운 밑바닥을 경험했다. 만으로 스물두 살의 나이, 그는 ‘다시는 내 몸을 혹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에겐 야구가 인생의 전부였다. 굳은 다짐은 이내 ‘내가 살길은 야구밖에 없다’로 바뀌었다. 그는 다시 미친 듯이 뛰었고 미친 듯이 던졌다. 주변에서는 아무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 “열심히 잘하고 있다. 너는 성공할 거다. 계속 이렇게 해라.” 그저 칭찬만 해줬다. 재활, 복귀, 부상, 수술, 그리고 다시 재활의 연속. 그는 17년 동안 롯데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데뷔 첫해에 너무나 빛나는 모습을 보여 줬기에 나머지 16년의 세월이 더욱 안타까웠다. 그는 그렇게 평생을 ‘야구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운동을 했다.
그러나 그는 이제 후배들에게서는 자신과 같은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절제는 하되 즐길 줄은 알아야 한다. 처절함과 애절함은 갖되, 너무 거기에 올인 하지는 마라.” 5년 전 인터뷰에서 그가 후배들에게 남긴 메시지는 아직도 잊히지 않고 또렷하게 남아 있다.
타자와 달리 투수들은 통산 성적이 좋을 경우, 성적의 기복이 작았다. 왜 투수에게서만 이러한 결과가 나타나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야구는 투수 중심의 스포츠다. 팀이 보유한 투수층은 팀 전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시즌의 우승 후보를 예측할 때 ‘탄탄한 5선발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가’는 팀의 우승 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변인으로 작용한다. 그만큼 투수들은 장기전으로 승부를 가리는 프로 야구 경쟁에서 이를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뿐만 아니라 매 경기의 승부를 결정짓는데도 투수는 타자보다 상대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 타자는 타석에서 자신이 삼진으로 물러나더라도 다음 타자가 이를 메워 줄 수 있으나 투수는 적어도 일정 이닝은 본인 혼자 책임져야 한다. 타율과 평균자책점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타자는 한 선수의 타율이 승패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으나 투수의 경우 평균자책점 자체가 경기의 승패와 직결된다. 따라서 팀의 승리에 기여하는 뛰어난 투수들은 그만큼 성적의 기복도 없어야 한다.
선수들의 슬럼프와 관련한 사건을 파악하기 위해 언론 보도 기사 등 문헌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우선 타자와 투수 모두 슬럼프가 있던 해의 발생 사건으로 ‘부상’을 가장 많이 경험했다. 특히 투수의 경우에는 부상이 슬럼프를 겪은 해에 발생한 사건의 절반을 차지하였으며, 문헌 자료상에서도 부상이 슬럼프를 유발하는 원인으로 분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타자에 비해 투수는 부상 가능성이 높으며 부상이 슬럼프와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투수의 부상은 타자에 비해 그 정도가 심각하고 장기 슬럼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고교 시절 최고 시속 154킬로미터를 던지며 프로 야구 사상 최초로 계약금 10억 원 시대를 연 특급 루키(신인 선수), 2006년 프로 야구 데뷔 첫해에 10승을 거두었던 한기주 선수.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팔꿈치 부상이었다. 이 부상은 그가 프로에 입단하기 전인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 중·고교 야구 에이스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한기주도 중요한 경기에는 선발과 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마운드에 올랐다. 그의 오른팔에 동료 선수들의 진학, 감독과 코치의 보너스, 학교와 지역 사회의 명예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아 타이거즈 입단이 결정된 후 열린 2005년 아시아 청소년 야구 대회의 결승전에서 한국과 일본이 맞붙으면서 발생했다. 숙적 일본과 만나면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 야구팬들의 정서였고 당시 팀의 에이스였던 한기주는 9회까지 역투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두 명의 타자를 잡지 못하고 일본에게 역전을 허용하면서 일본에 패한 죄인의 멍에를 뒤집어쓰고 만다. 그러나 패배의 멍에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부상이었다. 기아 입단 후 실시한 팔꿈치 정밀 검사에서 한기주는 팔꿈치 인대 세 가닥 중 두 가닥이 90퍼센트 이상 손상됐다는 판정을 받았다. 수술과 재활의 기로에서 그는 재활을 택했다. 심각한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데뷔 첫해 10승을 올렸고 ‘제2의 선동열’이라 불렸다. 그러나 이러한 놀라운 기록과 찬사는 한기주에게는 독이 든 성배나 다름없었다. 악화된 몸 상태로 인해 선발 출장이 어려웠던 그는 마무리로 전환해 2007년 25세이브, 2008년 26세이브를 올렸다. 나름 성공적으로 보직을 전환한 듯했지만 몸을 돌볼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돼 최악의 피칭을 보여 주었던 그는 2009년 11월 2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오른쪽 팔꿈치 내측 인대 재건술과 팔꿈치 뒤편에서 뼛조각 두 개를 제거하는 골편 제거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기나긴 재활 끝에 2016 시즌 복귀했다. 그러나 더 이상 예전의 기량을 보여 주지는 못했다. 그를 비난하는 야구팬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받은 고통과 그가 기울인 노력을 안다면 절대로 그를 비난할 수 없다. 한기주는 팔꿈치가 망가진 상황에서도 팀을 위해 마운드에 올랐고, 팔꿈치로 공을 던질 수 없게 되자 옆구리 근육을 단련시켜서 공을 던질 정도로 최선을 다했던 선수였다.
타자의 경우, 슬럼프를 겪은 해에 발생한 사건의 빈도는 부상이 가장 많았으나, 성적의 하락 폭이 가장 컸던 원인은 기술적인 문제에 있었다. 문헌 자료에 따르면 타자들은 경기를 하면서 나타나는 기술적 문제가 슬럼프와 직결될 가능성이 높으며, 슬럼프의 정도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콘택트(공을 맞추는 능력) 위주의 교타자를 감독이 장타자로 개조하려다 실패하거나, 타격 시 몸이 너무 앞으로 쏠리는 등 타격 폼에 문제가 있거나, 잦은 수비 실책과 같은 기술적 문제가 슬럼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기술적 문제는 주전 경쟁과도 연관이 있다. 선수 본인에게 특별히 기술적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나보다 더 뛰어난 동료가 있다면 주전 자리에서 밀려날 수 있다. 내야수로 뛰고 있던 모 선수의 경우, 타 팀에서 같은 포지션의 선수가 영입되고 군에서 전역한 동료, 그리고 같은 포지션에서 경쟁을 벌이던 동료들의 기량이 상승하면서 치열한 내야수 경쟁에서 밀리게 되었고, 이는 결국 타격 슬럼프로 이어졌다. 문헌 조사에서도 타격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슬럼프가 왔다거나 수비 실책이 타격 슬럼프로 이어지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등의 자료가 다수 발견되었다. 타자들의 경우 끊임없는 자기 개발, 상대방에 대한 기술 분석이 슬럼프를 예방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다음으로 슬럼프를 극복한 해에 타자와 투수에게 어떠한 사건들이 일어났는지 살펴본 결과, 타자는 ‘경기 기술의 향상’을 통해, 투수는 ‘성공적 재활’을 통해 슬럼프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이러한 결과는 타자의 경우, 끊임없는 분석을 통해 자신의 기술적 약점을 보완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슬럼프를 극복하고 최상의 수행을 보이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실제로 내가 인터뷰한 타자들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슬럼프를 극복하고 결과를 최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선택의 기로에 선 순간, 성공이 보장되지 않은 모험을 해야 하는 순간, 선수들은 굳은 결심으로 기꺼이 위험을 감수했다.
롯데 자이언츠의 손아섭 선수는 내야수로 프로에 데뷔했다. 그는 방망이 하나는 자신이 있었지만 스스로 수비를 잘하는 선수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2군 감독을 찾아가 외야수로 전향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갓 들어온 스무 살 신인이 호기롭게 그러한 부탁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감독은 “이 정도로 타격에 소질이 있으면 내야수 중에는 ‘대어급’이니 수비 능력을 좀 더 향상시켜 내야수로 자리를 잡으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당시 그에게 수비에 대한 스트레스는 너무 컸다. 그는 스트레스가 타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반쪽짜리 선수는 되기 싫었다. 한 번뿐인 내 인생, 실패를 해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서 실패를 해야 후회가 없을 거라고 믿었다. 그는 결국 외야수로 전향했고 성공적으로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다.
LG 트윈스의 이종열 선수는 1991년 프로에 데뷔한 후 빛을 보지 못하고 무명 선수로 꽤 오랜 세월을 보냈다. 2군에서는 가장 잘하는 선수였지만, 1군에서는 크게 활약하지 못했다. 1992년 새 감독이 부임하고 코치가 그를 1군에 추천했을 때, 그는 감독으로부터 “너처럼 스윙 못하는 애는 없다”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그런 말은 야구 인생을 통틀어 처음 들었다. 그는 공포에 가까운 불안을 느꼈다. 잘하다가도 감독 앞에만 가면 위축되고 무서웠다. 너무나 무기력해졌다. 2군 스태프들은 2군에서 펄펄 날던 그가 주눅 든 모습을 보고 “바보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도 바보 같은 자신의 모습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볼 도리도 없이 슬럼프에 빠졌다. 그를 구원해 준 것은 김용달 타격 코치였다. 김 코치는 그에게 스위치 타자(왼손과 오른손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타자)로 전환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는 고민 끝에 도전했다. 소심하리만치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인생에 승부를 걸어 보기로 했다. 쉽지 않을 거라는 주변의 우려에도 과감히 모험을 결행했다. 갈등의 기로에서 그가 내린 도전적인 선택은 3할대에 가까운 타율이라는 놀라운 결과로 이어졌다. 이종열은 스위치 타자로 변신한 이후 새로운 야구 인생을 열 수 있었다.
반면 투수는 ‘긍정적인 심리적 변화’를 통한 수행 향상의 폭이 컸다. 즉 투수들은 다양한 사건을 계기로 스스로 동기를 부여한다. 결정적 순간에 삼진을 잡거나 1점 차이의 위기를 세이브로 막아 내면서 자신감을 얻고, 심리 상담을 통해 불안감을 해소하며 반등의 계기를 마련한다. 이러한 결과는 투수들이 경기에서 위기를 관리하고 슬럼프에서 벗어나 궁극적으로 최상의 수행을 보이는 데 심리 기술 훈련이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내가 만난 선수들 역시 심리 기술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도를 받은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전략적으로 심리 기술을 활용하고 있었다. 이들은 마운드와 타석에서 긍정적 상상을 하거나 자기 최면을 걸거나 고도의 집중을 하는 등 자기만의 인지적 책략을 통해 위기 상황을 극복했다. 롯데 자이언츠의 이용훈 투수는 긍정적인 ‘자기 대화(self-talk)’를 성공적으로 활용한 선수 중 하나다. 그는 마운드에서 위기 상황이 닥칠 때마다 혼자서 중얼거렸다. 무사 만루 상황에서 4번 타자를 상대할 때 그는 ‘야, ○○○, 너 ○○○이지. 내 공 한번 쳐봐. 만만치 않을 거다. 내가 네 방망이를 반드시 이길 거다’라고 되뇌었다.
타자의 방망이가 침묵하고 투수의 공 끝이 무뎌지는 순간, 야구팬과 언론은 선수가 슬럼프에 빠졌다며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 낸다. 그러나 슬럼프는 수행이 떨어지는 그 시점 훨씬 이전에 시작된다. 치명적인 부상, 끝없는 재활, 자신의 신체적 약점, 경제적 어려움, 지도자와의 갈등, 갑작스러운 트레이드 등 다양한 사건들을 선수들은 ‘정말 힘들었던 시련의 순간’으로 떠올린다. 이러한 역경은 슬럼프를 낳고 동시에 선수들의 심리적 고통을 유발한다. 선수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부정하기도 하고 야구 인생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성적에 대한 강박 관념으로 인해 야구가 더 이상 재미있지 않다고 말하는 선수들도 있다. 악몽을 꾸고 원형 탈모증이 올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선수들이 받는 심리적 고통으로 인한 자아의 손상이다. 선수들은 다른 사람을 탓하기보다는 스스로를 자책한다. 자존심이 상하고 무기력해지며 절망감과 패배감에 젖는다. 그러나 슬럼프는 결코 야구 인생의 끝이 아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전설적 우완 투수이자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처음으로 입성한 5인 ‘퍼스트 파이브’ 중 한 명인 크리스티 매튜슨(Christy Mathewso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승리하면 조금 배울 수 있다. 하지만 패배하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You can learn a little from victory. You can learn everything from defeat).”
이긴 경기에서는 승리 자체에 도취되기 쉽지만, 진 경기에서 오히려 더 많은 생각과 분석을 하게 된다.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패배는 끝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시 배우고 시작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누구나 인생에서 슬럼프를 겪는다. 슬럼프에 빠지지 않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어떠한 종류의 슬럼프든 빠지자마자 벗어날 수는 없다. 다만 슬럼프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조금 빨리 빠져나올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고통스러워도 언젠가는 벗어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슬럼프에 빠졌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길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내가 만난 야구 레전드들은 그랬다.
앞으로 등장하는 네 명의 선수는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아는, 한국 프로 야구 30년 역사에서 탁월한 수행과 야구계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은 전설적인 선수, ‘레전드’다. 네 명의 레전드는 결코 나의 개인적인 존경심을 기준으로 선정한 것이 아니다. 타이틀 획득 횟수, 올스타전 출전 여부, 골든 글러브 수상 경력 등을 종합한 한국 야구 위원회(KBO)의 레전드 선정 기준
[4]에 따른 것이다.
박정태 2루수. 1991년 프로에 입단했으며 롯데 자이언츠에서 13년 동안 선수 생활을 했다. 통산 타율 2할9푼6리, 1141안타, 85홈런, 638타점을 기록했다. 프로 2년 차이던 1992년, 43개의 2루타를 날려 2016년 최형우(46개)에 의해 경신되기 전까지 한 시즌 최다 2루타 기록을 보유했다. 1991년, 1992년, 1996년, 1998년, 1999년 총 5회 2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해, 이 부문 최다 수상자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선수 시절 숱한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뚝이처럼 일어나 재기에 성공했다. 그 때문에 붙은 별명이 ‘탱크’다. 지금도 그는 ‘악바리 근성’, ‘끈기’의 아이콘으로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김종모 외야수. 1982년 프로에 입단했으며 해태 타이거즈에서 11년 동안 선수 생활을 했다. 통산 기록은 타율 2할9푼8리, 815안타, 82홈런, 395타점 등이다. 해태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 무려 6회의 한국 시리즈 우승을 함께했다. 1983년, 1984년, 1986년, 1987년 총 4회 외야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으며, 1987년에는 올스타전 MVP에 선정되었다. 265경기 연속 무실책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해태 타이거즈의 창단 멤버로 초창기 해태 타이거즈의 타선을 이끌었던 KKK포(김성한, 김봉연, 김종모)의 한 축을 형성했다.
송진우 투수. 1989년 프로에 입단했으며 한화 이글스에서 21년 동안 선수 생활을 했다. 통산 평균자책점 3.51, 210승, 3003이닝, 2048탈삼진을 기록했다. 통산 다승, 탈삼진, 이닝 역대 1위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002년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송진우의 등번호인 21번은 KBO 리그의 여덟 번째 영구 결번이다. 빙그레 이글스가 한화 이글스로 바뀐 후를 포함해서 은퇴할 때까지 21년간 한화에서만 활동한 한화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김용수 투수. 1985년 프로에 입단했으며 LG 트윈스의 전신인 MBC 청룡 시절부터 LG 트윈스에서 16년 동안 선수 생활을 했다. 통산 평균자책점 2.98, 126승 227세이브, 1146탈삼진을 기록했다. KBO 리그에서 최초로 100승-200세이브를 달성했다. 1998년 다승왕과 승률왕, 1986년, 1987년, 1989년 세이브왕, 그리고 1990년, 1994년 한국 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김용수의 등번호인 41번은 KBO 리그의 세 번째 영구 결번이자 LG 트윈스 최초의 영구 결번이다. 1994년 LG 우승 당시 투수 앞 땅볼을 잡고 양팔을 들어 올리며 환호하던 그의 모습이 많은 LG팬들에게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