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7일 정치
정장이 국회 유니폼인가요?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4일 원피스를 입고 국회 본회의장에 출석한 것을 두고 ‘복장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류호정 의원은 인터뷰에서 어두운색 정장과 넥타이로 상징되는 50대 중년 남성 중심의 관행을 깨고 싶었다고 밝혔다. 6일 류 의원은 청바지를 입고 출근했다.

핵심 요약: 의원의 품위를 유지하지 못했다는 의견과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붙고 있다. 문제는 성차별, 성희롱 발언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의당은 의정 활동에 대한 평가가 아닌 여성 정치인의 외모, 이미지를 평가함으로써 정치인의 ‘자격 없음’을 말해서는 안 된다고 논평했다.
빽바지와 원피스: 국회의원 복장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은 없다. 국회법 25조에 따라 의원은 ‘의원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포괄적인 제약만 있다.
  • 2003년 유시민 당시 국회의원은 흰 면바지를 입고 국회에 나타나 이른바 ‘빽바지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동료 의원들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없다”고 비난했다. 유 전 의원은 “모두가 똑같은 단색 옷을 입는 것보다는 다채로운 것이 민주주의에 걸맞지 않으냐”고 했다. 
  •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류 의원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글이 올라왔다. 류 의원이 입은 원피스는 전날 청년 국회의원 포럼에서 입었던 옷이다. 류 의원은 동료 의원과 ‘오늘 입은 옷을 다음 날 본회의에도 입고 가자’고 약속했다고 한다. 류 의원은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피스에 성희롱 발언이 쏟아진 것은, 보통의 여성을 우리 사회가 그동안 어떻게 보았는지를 보여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 여성 의원들은 응원을 보내고 있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의 과도한 엄숙주의와 권위주의를 깬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밝혔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원피스는 수많은 직장인 여성들이 사랑하는 출근 룩”이라며 “다양한 시민의 모습을 닮은 국회가 더 많은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소매와 오프숄더: 여성 정치인의 옷차림이 성희롱과 성차별의 대상이 되는 건 서구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 지난 2월 영국 제1야당인 노동당의 트레이시 브레이빈 의원은 한쪽 어깨가 드러난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하원에서 질의를 했다. 그는 심한 욕설과 ‘더 벗지 그러냐’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브레이빈 의원은 “권력을 가진 여성에게 남성들이 도전하는 유일한 방법이 외모를 평가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 2017년에는 미국 민주당 여성 하원의원 20여 명이 국회 의사당 앞에서 민소매 차림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앞서 폴 라이언 당시 하원의장이 민소매 차림으로 의장실 로비로 가려던 여기자를 막아섰기 때문이다. 기자가 심지어 공책을 찢어 어깨를 가렸지만 제지당했다.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여성은 팔을 드러낼 권리가 있다’며 하원 의복 규정을 바꾸기 위한 ‘소매 없는 날’ 캠페인을 벌였다.

옷 말고, 일을 평가해 주세요: 빨간 립스틱, 레게 머리, 캐주얼한 셔츠. 젊은 여성의 정계 진출이 많아지고 있는 미국에서 볼 수 있는 ‘의회 오피스룩’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같은 흐름을 ‘파워 슈트’로 대변되는 남성 위주 문화에서의 해방이라고 해석했다. 옷차림이 아니라, 의정 활동이 평가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2020년 7월 27일 정치
나도 누군가의 딸입니다
“테드 요호 의원은 저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A fucking bitch.’” 23일 30대 미국 여성 의원이 자신에게 폭언한 남성 의원을 비판한 의회 연설 영상이 1000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주인공은 역사상 최연소 미국 하원의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다.

핵심 요약: 성차별 발언에 여성 정치인이 직접적으로 맞서는 경우는 많지 않다. 코르테즈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받아들이는 문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권력 구조를 지적했다. ‘이 시대 가장 중요한 페미니스트 연설’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내와 딸은 방패가 아닙니다: 코르테즈는 성차별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남성들의 ‘핑계’와 ‘변명’을 꼬집었다.
  • 지난 20일 국회 의사당 앞에서 테드 요호 공화당 하원의원이 범죄가 늘어난 원인에 실업과 빈곤층 급증이 있을 것이라는 코르테즈에게 성차별적인 욕설을 했다. 요호는 이후 그런 말을 한 적 없다며 “나도 딸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명했다.
  • 코르테즈는 의회 연설에서 “딸이 있다고 해서 좋은 남성이 되는 건 아니다. 사람을 존중할 때 좋은 남성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형편없는 행동을 변명하기 위해 여성, 아내, 딸을 방패 삼는 것에 분노한다”고 성토했다. 또 “나 또한 누군가의 딸이다. ‘다행히’ 우리 아버지는 돌아가셔서 내가 무례한 일을 겪은 것을 보지 못했지만, 부모님께 내가 남성들의 모욕을 그냥 넘기는 사람으로 자라지 않았다는 걸 보여 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 그는 또 과거 식당, 지하철, 거리에서 성차별 발언을 들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이번 일이 “새롭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문제라고 덧붙였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권력 구조로 뒷받침되는 문화”가 됐고, 특히 국민을 대변하는 의회가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AOC 신드롬: 남미 이민자 2세인 코르테즈는 2018년 29살의 나이로 의회에 입성했다. 이니셜인 ‘AOC’로 불리는 그는 극적인 선거 승리와 함께 스타덤에 올랐다.
  • ‘변화의 정치’를 강조한 그는 10선의 백인 남성 현역 의원, 조 크로울리를 꺾고 2018년 중간 선거 민주당 하원의원 후보로 선출됐다. CNN은 “올해 정치 시즌 가장 충격적인 결과”라고 했고, 《타임》은 “코르테즈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이후 민주당 내 가장 훌륭한 이야기꾼”이라고 평했다.
  • 여성, 유색 인종, 노동자. 코르테즈가 말하는 자신의 정체성이다. 그는 바텐더로 일하면서 미국 민주 사회주의자 단체 회원으로 활동해 왔다. 건강 보험 확대, 부유세 신설, 대학 무상 등록금 도입 등 진보적 개혁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 코르테즈는 밀레니얼 세대의 ‘정치 아이돌’이다. 코르테즈의 트위터 팔로워는 780만여 명으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 바이든보다 많다. 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이들에게도 SNS로 맞대응한다. 음식을 요리하며 실시간으로 정치 질문에 답하는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도 밀레니얼 세대에게 인기를 끌었다.

정치의 변화: 《뉴욕타임스》는 과거 많은 여성 정치인이 평판에 해가 될까 봐 모욕을 참아야 했다며, 코르테즈의 연설은 ‘정치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코르테즈는 요호 의원과의 사이에서 벌어진 하나의 사건에 대응한 것이 아니라, 권력과 성차별의 뿌리 깊은 연대에 맞서 오랜 침묵에 균열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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