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왕좌의 게임
2화

미국의 제재 폭탄이 달러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위기의 달러

달러가 세계를 지배하는 통화로서의 역할을 강화한 1950년대 이후, 세계 유일의 금융 패권국이라는 미국의 위치는 다른 국가들의 경제적 운명에 엄청난 영향을 미쳐 왔다. 그러나 미국이 금융 전쟁을 벌이면서 반복적으로, 최대치까지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통치하에서 처음 벌어지는 일이다. 그 결과는 경외와 충격이었다. 다른 나라들은 미국의 금융 패권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2018년 미국 재무부는 러시아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알루미늄 기업 루살(Rusal)에 대해 달러 기반 금융 시스템의 자유로운 접근을 막는 법적 조치를 취했다. 이는 파괴적인 효과를 일으켰다. 루살은 밤새 많은 거래처와 거래를 할 수 없었다. 서구권 청산 거래소는 루살의 채무 증권 청산 결제를 거부했다. 회사채의 가격은 폭락했다. (거래 제한 조치는 이후 해제됐다.) 미국은 현재 30개 이상의 금융 및 무역 제재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1월 10일, 미국의 재무장관 스티븐 므누신(Steven Mnuchin)은 “이란 정권에 대한 수십억 달러의 지원을 삭감할 것”이라며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한편 국무부는 이라크가 뉴욕 연방준비은행(FRB)의 정부 계좌에 접근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렇게 되면, 이라크는 석유 판매 대금의 사용을 제한당하게 되고, 자금난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이라크의 경제는 침체될 것이다.

미국은 금융 전쟁을 외교 정책으로 활용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달러는 전 세계의 장부상 화폐 단위이자 가치 저장 및 교환의 매개로 사용된다. 국경을 넘는 무역 송장의 적어도 절반은 달러로 표시된다. 이 규모는 미국이 전 세계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다섯 배,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세 배에 달한다. 달러는 중앙은행과 자본 시장이 선호하는 통화로, 글로벌 증권 발행 규모와 외환 보유액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금융 시장의 리듬은 미국이 만든다. 미국의 금리가 요동치거나 월스트리트의 위험 성향 지수가 바뀌면, 세계 시장은 반응한다. 세계의 금융이 이동하는 배관에는 ‘엉클 샘(Uncle Sam, 미국 정부 또는 전형적인 미국인을 상징하는 표현)’의 직인이 찍혀 있다. 대부분의 국제 거래는 종국에는 미국 뉴욕의 “환 거래(Correspondent)” 은행들에서 달러로 청산된다. 미국은 은행들이 사용하는 국경 횡단 통신 시스템, 스위프트(SWIFT)를 철저히 장악하고 있다. 스위프트 회원사들은 하루에 3000만 회의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또 다른 미국 중심 네트워크는 매일 1조 5000억 달러 상당의 지불을 처리하는 청산소 칩스(chips)다. 미국은 자금 활동을 감시하기 위해 이 시스템을 이용한다. 인프라에 대한 접근이 거부되면, 조직은 고립되고, 보통은 재정적으로 기능하지 못한다. 따라서 지구상의 개인과 기관들은 미국의 관할권에 속하며 미국의 처벌에 취약하다.

미국은 2001년 9월 11일 테러 공격 이후 금융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돈세탁 혐의로 해외 은행에 엄청난 벌금을 부과하고, 무더기로 제재를 적용했다. 2014년에는 BNP파리바에 90억 달러의 벌금을 매겨 프랑스 금융의 근간을 흔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금융 무기화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표 참조) 그는 이란, 북한, 러시아, 터키, 베네수엘라 등에 제재를 가했다. (터키의 경우에는 기간이 짧았다.) 그의 무기고에는 기업에 대한 관세와 법적인 압박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스파이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중국 기업 화웨이에 대한 제재가 대표적이다. “세컨더리” 제재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국가들과 거래하는 다른 나라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다. 미국이 2018년 이란과의 핵 협상에서 손을 뗀 뒤 유럽 기업들은 유럽 연합(EU)의 잔류 권유에도 불구하고, 이란을 탈출했다. 스위프트 역시 2018년 미국이 이란에 대한 제재를 다시 단행하면서 이란의 은행들을 차단하지 않으면 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하자 속수무책으로 넘어갔다.
그린백에 대한 도전/ 왼쪽 상단: 달러 점유율(%), 국가 간 대출, 외환 보유고, 국제 대출, 스위프트 지불/ 오른쪽 상단: 외환 보유고 통화 비율(%), 달러(파란색), 유로(하늘색), 엔(노란색), 파운드(청록색), 위안(빨간색), 기타(회색)/ 왼쪽 하단: 러시아 내 달러 사용 규모(10억 달러), 2013년(파란색), 2019년(하늘색)/ 오른쪽 하단: 미국의 제재 건수(개인, 기업, 조직 대상)/ 출처: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헤이버 애널리틱스, ING, IMF, 깁슨 던.
미국의 법과 정책이 적용되는 범위를 확장하기 위해 달러를 활용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신조에 부합한다. 다른 나라들은 그것을 권력의 남용이라고 본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라들에는 중국과 러시아 같은 미국의 적대국들이 포함된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달러가 “정치적 무기”로 이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가진 나라들 가운데에는 영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미국의 동맹국들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무역 시장에서 질서의 보증인으로서 기능해 온 미국의 역할을 손상시킬 위험을 우려하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미국의 금융 헤게모니가 종말을 맞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른 나라들은 미국의 강력한 통화를 왕좌에서 밀어내려 하게 될 것이다.

국제 통화 실험이 일어나는 새로운 시대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자산의 탈달러화(de-dollarisation), 지역 통화와 스와프 협정을 이용한 무역 해결책, 그리고 새로운 은행 간 지불 메커니즘과 디지털 화폐다. (관련 콘텐츠 읽기) 지난 6월 중국과 러시아의 리더들은 자국 통화를 바탕으로 한 상호 무역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최근의 정상 회담과는 별개로 이란, 말레이시아, 터키, 카타르의 지도자들은 무역에 암호 화폐와 자국 통화, 금과 물물 교환을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영국의 싱크탱크인 왕립국방연구소(RUSI)의 톰 키팅(Tom Keatinge)은 이러한 활동들이 “변곡점”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미국의 금융 권력에 대해 불평만 하던 나라들이 이제 반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러시아는 가장 멀리 나갔다. 러시아는 자국의 주요 은행과 기업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선에서 미국이 불량하다고 여기는 국가들과 거래를 할 수 있는 임시 법인을 지정했다. 국가가 지원하는 민영 은행 프롬스비야즈방크(Promsvyazbank pjsc)는 무기 거래를 하면서, 스베르방크(Sberbank), VTB와 같은 러시아 대형 은행들을 보호하는 방패막 역할을 하고 있다.

러시아는 금융 시스템의 일부에서도 탈달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3년 이후 러시아 중앙은행은 40퍼센트가 넘었던 외환 보유고의 달러 비중을 24퍼센트로 줄였다. 2018년 이후 러시아 중앙은행의 미국 재무부 부채는 거의 1000억 달러에서 100억 달러 미만으로 떨어졌다. 러시아 재무부는 최근 1250억 달러 규모의 국부펀드에서 달러화 점유율을 낮추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달러를 버리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달러가 우리를 버리고 있는 겁니다.”

엘비라 나비울리나(Elvira Nabiullina)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는 이 같은 조치가 미국의 제재(2014년 크림 반도 합병 이후 시행된 것)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통화를 다변화해 리스크를 줄이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나비울리나 총재는 “세계적으로 분위기가 변화하고 있다고 본다”며 “우리는 점점 다통화 체제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나비울리나 총재는 달러 중심 시스템이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마크 카니(Mark Carney) 영국은행 총재의 지난 8월 발언을 상기시키고 있다.

러시아의 부채 역시 탈달러화되고 있다. 새로운 부채는 종종 루블이나 유로로 발행된다. 러시아 정부는 위안화 표시 채권의 판매를 모색하고 있다. 러시아 기업들은 2014년 이후 외채를 2600억 달러나 줄였다. 그중 2000억 달러가 달러 표시 채권이었다. 반면, 러시아 기업과 가계는 보유 목적의 국제 자산으로 달러를 선호한다. 이 부문에서 달러는 2014년보다 800억 달러 늘었다. ING 은행의 드미트리 돌긴(Dmitry Dolgin)은 이런 경향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유로에 비해 금리가 높은 달러 자산의 가치가 미국의 제재로 감내해야 하는 리스크 수준보다 더 크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달러여, 안녕


ING는 2019년 러시아 상품과 서비스 수출의 62퍼센트가 달러로 결제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2013년의 80퍼센트에 비해 낮아진 비중이다. 2013년, 러시아의 대중국 무역은 거의 전부 달러로 결제됐다. 2019년 기준으로는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제재에 민감한 국방 부문의 비중이 높은 인도와의 무역은 2013년에는 거의 달러로 이뤄졌지만, 지금은 거의 루블로 이뤄진다. 러시아 정부 관계자는 이러한 변화의 한 가지 이유로 무역의 속도를 든다. 속도를 높이려고 하는 러시아 정부로서는 제재 대상 여부를 확인하는 중개 기관을 거치면서 몇 주 동안 결제가 지연되는 달러를 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에너지와 원자재 회사들은 러시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탈달러’를 추진하고 있다. 에너지 기업이 석유 거래의 글로벌 기준 통화인 그린백(greenback·글로벌 기준 통화)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한 글로벌 에너지 기업의 대표는 “문제는 리스크 관리, 복합적인 파생 상품 구조 전체가 달러로 되어 있다는 것”이라면서 “석유 거래, 판매, 생산을 하면서 리스크를 관리하고 싶다면, 달러 시스템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원유 생산량의 4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국영 생산 업체인 로즈네프트(Rosneft)는 입찰 계약을 유로로 표시했다. 또 다른 기업인 수르구트네프테 가스(Surgutneftegas)는 여전히 달러 단위로 가격을 책정하고 있지만, 회사의 요청에 따라 유로로 전환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한 트레이더는 이를 “트럼프가 일을 망쳐 버릴 경우에 대비한 예방책”이라고 설명한다. 지난 3월 가즈프롬(Gazprom)은 처음으로 서유럽으로 배송되는 천연가스의 가격을 루블로 책정했다. 국제 석유 거래 회사의 한 임원은 달러에서 벗어나는 데 드는 비용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 말한다. “금융 부문의 추가 인력과 약간의 통화 리스크를 부담하면 됩니다.”

중국이 러시아가 개척한 새로운 길을 따를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으로 인해 달러 중심 금융 시스템에 대한 중국의 엄청난 취약성이 드러난 상태다. 화웨이와 같은 중국 기술 회사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리거나 괴롭히는 미국의 능력은 결국 달러 기반의 은행과 결제 시스템을 통해 사업을 하는 공급자와 거래 상대들을 처벌하는 데에서 나온다.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송환되지 않기 위해 싸우고 있는 화웨이 고위 간부를 상대로 한 미국의 소송은 런던에서 운영되는 아시아 중심 은행인 HSBC의 미국이 임명한 감독관이 제공하는 증거에 부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0월에 미국은 중국의 신장(新疆)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혐의로 여덟 곳의 첨단 기술 회사에 제재를 가했다. 미 행정부는 중국 회사들의 뉴욕 증시 상장을 차단하고, 미국 투자자들의 중국 주식 구매를 제한하겠다고 위협했다.

중국의 첫 번째 달러 역전 시도는 실패했다. 2007~2009년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위안화의 국제적 사용을 추진하면서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 인출권(Special Drawing Rights)”에 위안화를 편입할 것을 요구해 IMF의 준비 통화로 승인받았다. 중국은 외국 중앙은행과 35개 이상의 통화 스와프 거래를 체결했다. 2020년까지 위안화가 달러의 세계 1위 자리를 빼앗으려 한다는 이야기가 무성했다. 이후 2015년 주식 시장 공황 사태가 발생했고 중국 정부는 어설프게 자본 통제를 강화했다. 위안화의 가치 기준 국제 결제 비중은 몇 년째 2퍼센트대에 머물고 있다. 저우샤오촨(周小川) 전 중국 중앙은행 총재는 자신이 재임 중 추진한 위안화 국제화 정책을 ‘조산아’라고 평가해 왔다.

미국이 금융 부문의 화력과 신기술을 과시하면서 지형은 달라지고 있다. 중국은 더 큰 자율성을 위한 몇 가지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CIPS라고 불리는 자체적인 국내 결제 및 지불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CIPS는 2015년 출시돼 현재까지 SWIFT를 보완했다. 규모는 굉장히 작다. 2018년 1년간 CIPS가 처리한 거래량은 SWIFT의 하루 처리량보다도 적었다. 그러나 CIPS는 위안화의 국제 거래를 단순화하고, 은행들이 결제할 수 있는 수많은 접속 지점을 제공한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 인도 그리고 몇몇 다른 나라들은 SWIFT를 대체할 수 있는 공동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화웨이


중국에서 전통적인 은행보다 빠르게 세계화에 성공한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은 세계 소비자 금융 시스템의 일부를 중국의 지배하로 빠르게 끌어들이고 있다. 소비자들은 알리바바(및 그 계열사인 앤트 파이낸셜)를 통해 56개국의 상점에서 지불할 수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알리페이 로고가 글로벌 카드사 비자처럼 흔하다. 자본 시장에서는 2018년 상하이 거래소에 위안화 표시 원유 선물 계약이 도입됐다. 이 “페트로위안(petroyuan)”은 석유 가격 영역에서 달러의 잠재적인 경쟁자로 보인다. 중국은 미국 증시에 상장된 주요 기업들에게 중국과 가까운 거래소에 상장할 것을 독려했다. 홍콩이나 상하이가 아닌 뉴욕에서 2014년 상장한 중국의 가장 가치 있는 기업 알리바바는 지난해 11월 26일 홍콩에서 134억 달러 규모의 추가 상장을 마쳤다. (이 자금은 홍콩 달러로 조달했다.) 알리바바의 최고 경영자인 장융(张勇)은 “홍콩 자본 시장의 지속적인 혁신과 변화의 결과로 우리는 5년 전에 유감스럽게 놓쳤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세부 사항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 중앙은행은 새로운 디지털 화폐를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향후 각국 중앙은행이 발행할 가능성이 있는 디지털 화폐의 지불 관리 국제 시스템을 선점하려 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은 최근 정상 회담에서 중국 이외의 브릭스 국가(브라질, 러시아,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와 공통의 암호 화폐를 만드는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중국이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왜곡된 버전의 비트코인을 만들 가능성도 있다. 즉 비트코인의 익명성 대신, 모든 데이터를 추적해 중앙 집중 방식으로 저장하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관련 콘텐츠 읽기)

미국의 지정학적 경쟁자들이 달러의 지배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놀라운 것은 동맹국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EU 집행위원회 위원장은 2019~2024년을 전망하는 선언문에서 “유로화의 국제적 역할을 강화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녀의 전임자인 장 클로드 융커(Jean-Claude Juncker)는 유럽의 에너지 거래 시장을 달러가 지배하는 상황을 “일탈”이라고 지칭했다. (유럽의 에너지 수입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단 2퍼센트에 불과하다.) EU 집행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위원회는 새로운 실행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중 일부는 EU 국가들이 지불과 무역 송장을 발행할 때 달러화를 “지나치게 표시하는 것”을 생략하도록 장려하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EU의 주요 이니셔티브는 이란과 관련되어 있었다. EU는 이란과 거래하려는 은행과 회사들을 미국의 분노로부터 보호하는 방법을 찾고자 노력해 왔다. 그러나 이런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영국, 프랑스, 독일이 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만든 청산 거래소 인스텍스(Instex)는 조잡하고 제한적이다. 인스텍스는 본질적으로 물물교환 메커니즘이며 석유 판매를 다루지 않는다. (제재의 대상이 아닌 인도적인 거래만을 다루고 있다.) 인스텍스는 기업들이 달러나 SWIFT 없이 거래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었다. 그러나 세컨더리 보이콧(미국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어떤 나라와 거래하는 대상도 제재하는 것)에 적용될 우려로 인해 거래 범위를 확대할 수 없었다.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인스텍스는 미국이 어디까지 힘을 뻗치고 있는지를 반증한다. 법무법인 깁슨 던(Gibson Dunn)의 제재 전문가인 애덤 M. 스미스(Adam M. Smith)는 달러로 표시되지 않은 거래라도 미국이 “관계되어” 있다면 미국의 권할권을 주장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에는 미국 관할의 은행에 의존하는 거래, 또는 외국의 거래 상대방이 거래를 승인, 촉진 또는 처리하기 위해 미국 국적자에게 의존하는 거래, 또는 거래 당사자 한 쪽이 미국의 서버에 저장된 회계 또는 이메일 시스템을 사용하는 지불이 포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관계자들 일부는 여전히 낙관하고 있다. 11월 29일, EU의 6개국이 추가로 인스텍스에 가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프랑스의 한 관료는 이렇게 말한다. “이는 10년에서 20년 정도 걸리는 일이고, 희망컨대 이란과의 거래만 다루는 것이 아니다. 1년 안에 수십 년 동안의 정책을 되돌릴 수는 없다.” 유럽이 유로화의 내부 작동 구조를 개혁하는 데 성공한다면, 유로의 재정적인 활용 범위는 확대될 것이다. 또 다른 프랑스 관료는 “우리는 우선 은행의 연합, 재정 통합, 자본 시장 연합 등의 사업을 먼저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럽 강대국들은 글로벌 전자 화폐를 만들기 위한 중앙은행의 노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영국은행의 마크 카니 총재는 전 세계 송장에서 화폐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앙은행의 디지털 화폐망에 대한 아이디어를 발표했다. 만약 현실화된다면, 미국은 초대받지 못할지도 모른다.[1]

 

안식처는 저 너머에


모든 화폐의 진정한 시험대는 금융 위기다. 《달러 트랩》의 저자인 코넬대의 에스와르 프라사드(Eswar Prasad)는 그린백(greenback)은 혼란의 시기에 이득을 누린다고 지적한다. 미국에서 발원한 2007~2009년 위기는 역설적으로 미국의 안전지대로서의 위상을 강화했다. 세계 무역, 저축, 차입, 적립금이 대부분 한 통화로 되어 있을 때, 이 통화가 가진 이점은 상호 강화된다. 다른 어떤 자본 시장도 상업용 통화를 선택하는 핵심 요소인 깊이와 유동성 측면에서 미국의 수준에 근접하지 못한다.

그러나 금융의 패권은 경제적 영향력, 힘을 발휘한 기간, 합법성이 뒤섞인 결과다. 그리고 하버드대의 제프리 프랜켈(Jeffrey Frankel)은 미국이 채택한 군사적인 접근 방식이 달러의 지배를 위협한다고 분석한다. 미국의 전직 재무장관도 이런 생각에 동의한다. 잭 루(Jack Lew)는 2016년 재임 중 워싱턴에서 청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재가 저비용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수다. 만약 제재가 비즈니스 환경을 너무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게 만들거나, 전 세계 자금의 흐름을 과도하게 방해한다면, 금융 거래는 미국 밖으로 완전히 이동하기 시작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향후 미국의 제재가 발휘하는 효과가 떨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서 미국의 중심적 역할이 위협당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제재라는 수단을 공격적으로 활용하면 할수록, 이를 회피하려는 노력도 가속화될 것이다. 금융 부문의 독창적 아이디어를 미국이 독점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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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세계경제 #금융 #세계 #미국 #중국 #유럽 #마켓 #이코노미스트
[1]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2일 일본은행과 유럽중앙은행(ECB), 영국 영란은행, 스웨덴 락스방크, 스위스 중앙은행, 캐나다은행 등 6개 중앙은행 등이 중앙은행에 의한 디지털통화(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발행을 염두에 둔 새로운 조직을 만들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와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참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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