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의 브랜드
4화

블룸하우스; 경제적인 크리에이티브

신흥 호러 명가, 블룸하우스


2017년 5월, 영화 〈겟 아웃(Get Out)〉의 30초짜리 예고편 영상이 국내에 공개됐다. 공포물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장르가 아닌 데다가, 공포물 수요가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여름 시즌도 아니었지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한 시간 만에 30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고, 영상의 누적 조회 수는 6일 만에 1000만 회를 돌파했다. 네티즌들은 공포 장르를 표방하면서도 미국의 심각한 사회 문제인 인종 차별 문제를 조명한다는 점에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강성 보수 성향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여서 영화 내용은 시사적으로 해석됐다. 오락물인 동시에 미국 사회의 집단 공포를 반영한다는 점이 공포 영화의 열성 팬은 물론 일반 관객까지 사로잡았다.

〈겟 아웃〉은 국내 관객 213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역대 해외 공포 영화 2위에 해당하는 성적이었다. 영화의 성공은 북미 개봉 때부터 예견된 결과였다. 2017년 2월 북미 개봉 직후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미국의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에서 신선도 지수 99퍼센트를 기록했다.[1] 전 세계적으로 2억 5500만 달러의 수입을 거두며 제작비 대비 40배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2] 공포 장르로는 사상 최초로 2018년 90회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으면서 작품성 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얻었다.

〈겟 아웃〉의 성공 배경에는 프로덕션 블룸하우스(Blumhouse)가 있다. 블룸하우스는 프로듀서 제이슨 블룸(Jason Blum)이 2000년에 설립한 중소 영화 제작사다. 역사는 20년이 채 되지 않지만, 주요 작품들이 영화 흥행 정보 사이트인 〈박스 오피스 모조(Box Office Mojo)〉의 공포 영화 부문별 차트 상위권에 오르면서 ‘신흥 호러 명가’라는 타이틀을 얻고 있다. 먼저 〈겟 아웃〉은 미국 청소년 관람 불가에 준하는 R등급 공포 부문에서 3위를, 〈파라노말 액티비티(Paranomal Activity)〉 시리즈는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3] 공포 부문에서 2위부터 4위를 차례로 차지했다. 〈23 아이덴티티(Split)〉, 〈인시디어스(Insidious)〉 시리즈, 〈더 퍼지(The Purge)〉, 〈위자(Ouija)〉, 〈해피 데스데이(Happy Death Day)〉 등 블룸하우스의 다른 영화들도 대부분 박스오피스 1위로 데뷔했다. 2018년 5월 개봉한 〈트루스 오어 데어(Truth or Dare)〉의 메인 예고편은 국내에서 외화 공포물 가운데 최고 조회 수를 기록했다. 예고편에 따른 반응과 박스오피스 순위, 그리고 수익은 블룸하우스라는 브랜드가 전 세계 팬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블룸하우스 영화를 즐기는 관객들은 블룸하우스의 광고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높은 기대감을 갖는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극장 화면에 음산한 분위기의 집이 나타난다. 각종 물건이 공중을 떠다니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소녀가 집 안을 배회하는 동안 흔들리는 전구가 벽을 비춘다. 그리고 까만 바탕 위에 흰 글씨로 ‘BLUMHOUSE’ 로고가 나타난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관객들은 이미 블룸하우스라는 브랜드에 몰입한다. 블룸하우스의 인기는 단순히 스토리나 공포감을 조성하는 시각적 요소, 분위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블룸하우스의 성공 배경에는 뛰어난 브랜드 전략이 숨어 있다.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비즈니스 원칙, 목표 지향적인 CEO의 철학, 기존 관행과 문법을 따르지 않는 창조적인 시도가 만나 수많은 열성 팬을 만들어 내고 있다.

 

블룸하우스 터치


해외 언론들은 블룸하우스 영화에서 발견되는 특징적 요소를 아울러 블룸하우스 터치(Blumhouse Touch)라고 표현한다. 우리말로 옮기면 ‘블룸하우스풍의 공포’가 된다. 블룸하우스 터치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집으로 대표되는 한정된 공간에서 의외의 요소가 불어넣는 공포다. 집은 공포 영화의 단골 소재다. 우리가 가장 안전하다고 인식하는 공간, 어딘가로 도망칠 수 없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공포감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블룸하우스의 영화들은 집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블룸하우스 영화의 특징은 집 안에서 일어나는 공포를 독특한 방식과 관점으로 다루는 데 있다.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카메라 기법, 초자연적인 현상, 과거의 행동이 미래에 영향을 끼친다는 권선징악적 상황 설정이 대표적이다.

〈파라노말 액티비티〉는 파운드 푸티지 기법을 이용해 초자연적인 존재의 공포를 그려 낸다. 영화 속 주인공은 집 안에서 정체불명의 존재로 인해 고통을 겪는다. 집 안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한 그는 자신을 괴롭히던 존재의 흔적을 영상으로 확인하고는 충격에 휩싸인다. 파운드 푸티지는 누군가 찍은 캠코더 영상을 그대로 영화 화면으로 대체하는 촬영 기법이다. 관객이 실제 영상을 지켜보는 콘셉트로 진행되어 장면 전환이 없고, 중간에 필름이 끊어지는 듯한 현상도 발생한다. 이러한 특징들이 사실적인 느낌을 전달한다. 초자연적 존재가 마치 실재처럼 비쳐 공포감을 더욱 극대화한다.

〈인시디어스〉도 귀신 들린 집을 콘셉트로 한다. 극 중 가족이 새집으로 이사하고 얼마 뒤 맏아들이 혼수상태에 빠진다. 그때부터 가족들의 눈에 유령이 보이기 시작한다. 집 안의 물건들까지 제멋대로 움직이자 가족은 또 다른 집으로 이사한다. 그러나 두 번째 집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집을 방문한 퇴마사는 혼수상태에 놓인 맏아들이 유체 이탈을 하면서 악령의 눈에 띄었고, 그로 인해 머무는 집마다 이상한 일이 생긴 것이라고 진단한다. 〈컨저링(The Conjuring)〉과 〈쏘우(Saw)〉로도 유명한 감독 제임스 완(James Wan)은 〈인시디어스〉를 만든 배경에 대해 “무서운 집에 관한 영화를 만들되, 기존의 틀을 과감히 깨트리는 독창적인 스토리로 끌고 가고 싶었다. 유체 이탈을 다룬 영화를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바로 이거라는 생각이 들었다”[4]고 말했다.

〈더 기프트(The Gift)〉는 안정적인 삶을 위해 교외에 집을 마련한 부부에게 닥친 위험을 다룬다. 부부는 새집에 들일 가구를 사러 나왔다가 우연히 남자의 고등학교 동창을 만난다. 학창 시절 남자에게서 괴롭힘을 당했던 동창은 부부의 집 앞에 의문의 선물을 갖다 놓는다. 이를 알 리 없는 부부는 누가 선물을 보냈는지,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지 못해 불안하기만 하다. 〈더 기프트〉는 과거의 잘못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메시지를 공포 장르와 접목했다. 〈파라노말 액티비티〉와 〈인시디어스〉는 귀신 들린 집의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볕이 잘 들지 않는 이층집 구조를 택했지만, 〈더 기프트〉는 속이 들여다보이는 통유리 집을 활용한다. 사면이 훤히 보이는 집은 부부가 누군가의 감시 아래 놓여 있고, 그래서 더 공격당하기 쉬운 불안정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블룸하우스 터치의 두 번째 특징은 사회상을 반영한 공포다. 가장 큰 성공 사례는 단연 조던 필(Jordan Peele) 감독의 〈겟 아웃〉이다. 〈겟 아웃〉은 트럼프 시대에 흑인들이 느끼는 공포를 다룬다. 흑인 남성 크리스와 백인 여성 로즈의 로맨스로 그려지는가 싶던 영화의 분위기는 크리스가 로즈 가족의 집에 초대를 받는 순간, 돌변한다. 백인 가족이 조직적으로 움직여 능력이 좋거나 육체적으로 뛰어난 흑인을 납치하고, 백인 고객이 필요로 하는 흑인의 신체 부위를 이식한다.

트럼프는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흑인을 향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2016년 백인 경찰의 흑인 사살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자 이를 폭력 시위로 낙인찍고, 시위의 원인을 마약으로 지목했다. 시위대가 마약에 취해 과격한 시위를 벌인 것이라는 트럼프의 주장은 보다 공정한 사회를 원하는 흑인들의 열망을 범죄 조직의 폭력으로 격하시켰다. 2013년 위헌 판결을 받은 불심 검문을 확대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발언은 흑인 커뮤니티에 불안감을 조장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후에도 연설 때마다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면서 와스프(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 즉 앵글로색슨계 백인 프로테스탄트의 기득권 사수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와스프의 권력과 이익을 주장하는 트럼프의 존재는 흑인들에게 생사가 걸린 문제였다. 다양한 인종과 성 소수자의 인권 향상에 힘썼던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에서 트럼프 시대로의 변화, 그것이 주는 공포는 크리스가 초청받아 간 로즈의 집에서 폭발한다. 도시 외곽 깊숙한 곳에 자리한 집은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저택 앞으로 펼쳐진 넓은 정원은 흑인 노예를 채찍질해 가며 목화밭을 일구었던 미국의 남북 전쟁 이전 시대를 연상시킨다. 크리스는 백인 기득권에게는 영광의 시절이자 흑인에게는 치욕스러운 역사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곳에서 정신과 육체를 모두 백인에게 빼앗기는 공포를 경험한다.

〈더 퍼지〉는 1년에 단 하루 범죄를 합법화했을 때 벌어지는 풍경을 다룬다. 영화 배경인 가까운 미래의 미국은 사상 최저의 실업률에, 범죄율이 1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평화의 시대를 보내고 있다. 12시간 동안 살인을 포함해 모든 범죄를 허용하는 ‘퍼지 데이’가 있기에 가능한 결과다. 다소 황당하다고 할 수 있는 이 설정은 미국의 무기 소지 합법화가 가져올 수 있는 끔찍한 미래를 그린다. 주인공 제임스는 최첨단 보안 시스템 회사의 영업 사원으로 부를 일군 인물이다. 퍼지 데이가 없었다면 지금의 행복을 영위할 수 없었을 제임스 가족은 집 안에 설치한 보안 시스템이 뚫리면서 범죄의 희생양으로 몰릴 위기에 놓인다. 터무니없는 보안 장비 유지비에 불만을 품고 있던 이웃들까지 제임스의 가족을 숙청하려 한다. 애당초 퍼지 데이가 없었다면, 아니 무기 소지가 불법이었다면 이러한 상황에 놓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영화의 메시지는 총기 사고로 신음하는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블룸하우스 터치의 세 번째 특징은 게임의 속성을 이용한 공포다. 10대는 공포 영화에 적극적인 세대다. 새로운 문화와 감정을 받아들이는 데 큰 거부감이 없다. 그래서 블룸하우스는 10대에게 익숙한 배경과 문화를 영화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중 가장 크게 성공한 작품이 〈해피 데스데이〉다. 〈해피 데스데이〉는 생일을 맞은 여대생 트리가 악동처럼 생긴 인형 탈을 쓴 이에게 살해당하지만 다시 살아나 생일을 반복한다는 설정의 이야기이다. 대학 캠퍼스의 여대생 숙소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공포 버전의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로도 통한다. 1993년 개봉작인 〈사랑의 블랙홀〉은 기상 캐스터 코너스가 지역 촬영을 나갔다가 폭설로 고립된 후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어제가 반복된다는 내용의 영화다. 기상 캐스터로서 나태했던 마음가짐을 바로잡고, 짝사랑하던 여인과도 맺어진다는 교훈적인 성격은 〈해피 데스데이〉에서도 재현된다. 학업을 내팽개치고 파티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트리는 죽고 살아나기를 반복하는 동안 살인범을 찾아내고, 그 과정에서 진실한 사랑을 만나 모범적인 대학 생활을 다짐한다. 〈해피 데스데이〉의 핵심은 시간 반복이다. 어째서 트리에게 같은 날이 반복되는지 별다른 설명이 나오지 않지만, 10대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10대들은 시간이 반복되는 이유를 따져 가며 영화를 관람하기보다 캐릭터의 수명이 다하면 다시 리셋되는 게임처럼 영화의 설정을 받아들였다.

〈트루스 오어 데어〉에 등장하는 진실 게임은 국내 청춘들에게도 익숙하다. 미국에서는 조금 다르게 게임을 즐기는데, 트루스(truth)를 선택하면 진실만을 말해야 하고, 데어(dare)를 선택하면 주어지는 도전을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 단순히 게임일 때는 재미있지만, 생사와 관련되면 공포가 된다. 주인공 올리비아는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멕시코로 여행을 떠난다. 휴양지의 버려진 수도원에서 트루스 오어 데어 게임을 즐기던 올리비아는 머리채를 강제로 잡아 올린 듯 갑자기 일그러진 친구들의 얼굴에 놀란다. 그리고 일시적으로 친구들의 몸속으로 들어온 악령의 목소리가 트루스 오어 데어 게임을 강제하면서 공포가 시작된다. 트루스를 선택하면 친구들이 감추고 싶어 하는 비밀을 폭로해야 하고, 데어를 선택하면 어려운 도전을 이행해야 한다. 만약 도전에 실패하면 가까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저예산 크리에이티브 전략


〈트루스 오어 데어〉는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 혹평을 면치 못했다. 폭로해야 할 친구의 비밀이라는 것이 가장 친한 친구의 애인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 등으로 다소 유치했기 때문이다. 10대 팬들 사이에서도 유치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트루스 오어 데어〉는 블룸하우스 제작 영화 중 흥행 13위를 차지하며 쏠쏠한 수익을 올렸다. 평단과 대중의 혹평에도 〈트루스 오어 데어〉가 성공한 비결, 더 정확히는 손해를 보지 않은 배경은 무엇일까. 바로 여기에 블룸하우스의 제작 전략이 숨어 있다.

블룸하우스는 지난 10년간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 방식을 혁신했다. 블룸하우스는 하이 콘셉트(high concept), 즉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영화를 기획한다. 여기서 일반적인 할리우드 영화와 다른 점은 블록버스터급이 아닌 저예산 영화를 제작해 수익을 낸다는 점이다. 블룸하우스는 오리지널 영화의 경우 제작비 500만 달러(60억 원), 시퀄(sequel) 영화의 경우 1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초과하지 않는 선에서 영화를 제작한다. 어느 정도 수준인지 파악하기 위해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예로 들어 보자. 〈설국열차〉의 총제작비는 450억 원이다. 2013년 당시 한국 영화사상 최대 제작비가 투입됐지만, 수천억 원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만들어지는 미국에서는 저예산 SF 영화로 소개됐다. 〈설국열차〉가 저예산이라면 제작비 50억 원에서 100억 원 수준의 블룸하우스 영화는 그보다 더 낮은 저예산에 속하는 셈이다.

제작비에 큰돈을 들이지 않다 보니, 블룸하우스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을 때 막대한 수익을 올리게 된다.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박스오피스 순위를 차지하지 못해도 수익 면에서 크게 손해를 보지 않는다. 실제로 제작비 1만 5000달러(1800만 원)의 〈파라노말 액티비티〉는 전 세계적으로 1억 9000만 달러(2280억 원)를 벌어들여 무려 1만 2670배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저예산을 지향하는 블룸하우스에게 집과 같은 한정된 공간은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다. 집 한 채만 있으면 별도의 세트를 지을 필요 없이 영화 한 편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다. 굳이 야외 로케이션을 알아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제작비는 더 절감된다. 집은 저예산에 특화된 공간이면서, 저예산 영화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는 가능성의 장소이기도 하다. 〈인시디어스〉의 귀신 들린 집, 〈위자〉와 〈언프렌디드: 친구 삭제(Unfriended)〉 속 게임 공간으로서의 집, 〈겟 아웃〉, 〈23 아이덴티티〉, 〈더 비지트(The Visit)〉가 보여 주는 납치 공간으로서의 집 등 블룸하우스 영화에서 집은 무궁무진한 공포를 자아내는 장치로 활용된다. 파운드 푸티지 기법 또한 고사양 카메라나 특수 효과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므로 저예산 영화를 제작할 때 유용하다.

저예산 제작 외에 흥행을 견인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배우 이미지의 활용이다. 미국의 총기 합법화를 꼬집은 〈더 퍼지〉의 새로움은 다름 아닌 배우 에단 호크(Ethan Hawke)다. 에단 호크는 1995년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를 시작으로 ‘비포’ 시리즈에 출연하며 로맨틱한 남성상으로 대중의 호감을 얻었다. 〈더 퍼지〉에서는 퍼지 데이를 지지할 뿐 아니라, 이를 노려 가정용 보안 장비를 판매하는 등 타인의 목숨에는 관심이 없는 비윤리적 인물을 연기했다. 그러나 가족의 안전이 벼랑 끝에 몰리자 외부 침입자들과 사투를 벌이는 인물로 변모한다. 관객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에단 호크의 모습에 감정 이입하고, 비호감이던 주인공은 영화 말미에 호감형 캐릭터로 거듭난다. 블룸하우스는 에단 호크가 기존에 갖고 있던 호감 이미지를 비틀어 캐릭터에 입체적 변화를 주면서 관객들의 몰입을 유도한다. 극 중 배우가 과거의 잘못을 깨닫고 각성하는 모습은 미국 총기 합법의 위험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로 작동한다.

〈해피 데스데이〉를 흥미롭게 본 이들은 공포 장르에 코믹함을 접목한 시도가 좋았다고 평한다. 주인공이 앞으로 닥칠 위험을 알고 있어 여유 있게 대처하는 모습, 살인마의 불시 공격을 노련하게 피하는 모습이 코믹함과 안도감을 줬다고 말한다. 예측 가능한 미래와 코믹 요소는 그동안 공포 장르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요소로 의외의 재미를 선사한다.

저예산 제작과 배우 이미지의 활용, 그리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충족하는 블룸하우스도 단 하나 꺼리는 소재가 있다. 몬스터(monster), 혹은 크리처(creature)로 불리는 괴수의 등장이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블룸하우스가 2018년 개봉한 공포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A Quiet Place)〉를 제작한다는 소식이 할리우드 관계자들 사이에 퍼진 적이 있다. 이 영화에는 앞을 못 보는 대신 청각이 극도로 발달한 괴수가 등장한다. 이야기가 주로 집 안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당연히 블룸하우스가 제작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하지만 영화는 〈트랜스포머(Transformers)〉 시리즈를 연출한 마이클 베이(Michael Bay) 감독이 CEO로 있는 플래티넘 듄스(Platinum Dunes)가 제작을 맡았고, 블룸하우스는 처음부터 이 기획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블룸하우스의 설립자이자 대표인 제이슨 블룸은 “괴수물은 괴수가 펼치는 볼거리가 중요하다. 좋은 공포 영화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방식의 연출이 핵심이다. 괴수 출현으로 관객을 놀라게 하는 건 나의 관점에서 진정한 공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1700만 달러가 넘는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제작비에 대해서도 “우리에게는 너무 큰 영화”라고 덧붙였다.

 

제이슨 블룸의 제작 원칙


제이슨 블룸은 1993년 애로우 필름(Arrow Flims)에 입사해 처음 영화 업무를 시작했다. 그는 만듦새가 매끈하지 않아도 재미만큼은 보장하는 5만 달러 미만의 장르 영화를 사들여 부가 판권 회사에 판매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그 뒤 에단 호크가 세운 극단 말라파르테(Malaparte)에서 제작 총괄 감독으로 일했다.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였던 하비 와인스타인(Harvey Weinstein)과 그의 동생 밥 와인스타인(Bob Weinstein)이 운영하는 미라맥스(Miramax)에서 5년간 프로듀서를 맡으며, 〈디 아더스(The Others)〉 같은 영화들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블룸의 원칙은 제작비가 많이 들지 않으면서 흥행성과 예술성을 갖춘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됐다.

미라맥스는 할리우드 메이저와는 거리를 둔 독립 제작사였다. 메이저 제작사였다면 제작조차 힘들었을 작품들로 흥행에 크게 성공하면서 준메이저급 제작사로 성장했다.[5] 그러나 〈갱스 오브 뉴욕(Gangs of New York)〉, 〈콜드 마운틴(Cold Mountain)〉과 같은 대작에 손을 대고 흥행에 실패하면서 예전의 독립 영화 정신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블룸은 미라맥스에서 50여 편에 가까운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하면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제작사의 덩치가 너무 커지면 영화 제작에 거액의 비용을 들이고,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망설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감독의 창의적인 능력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크게 변별력이 없는 작품을 극장가에 내걸면서 그러그러한 제작사로 남고 만다.

블룸은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많이 들지 않는 공포물이야말로 독립 영화에 어울리는 장르라고 생각했다. 공포물은 관객의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연출이 중요하므로 역량 있고 가능성 있는 감독을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한된 예산 안에서 감독들이 창의적인 시도를 펼칠 수 있는 시스템을 유지한다면 미라맥스가 전성기에 보였던 새로운 소재와 감성의 공포 영화를 재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단, 배급은 메이저 회사와 손을 잡아야 유리했다. 대형 배급사가 단단하게 뒷받침을 해준다면 안정적으로 스크린 수를 확보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손해를 최소화하고 수익은 크게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겟 아웃〉과 〈파라노말 액티비티〉 시리즈의 배급은 각각 유니버설 픽처스(Universal Pictures)와 파라마운트 픽처스(Paramount Pictures)가 담당했다. 그렇게 블룸은 자신의 이름과 저예산 제작의 상징과도 같은 집의 영문 단어를 합쳐 블룸하우스를 설립한다.

블룸하우스의 성공에는 블룸의 직업적 배경과 뛰어난 사업 수완 외에도 변화된 할리우드 영화의 제작 환경이 자리한다. 2010년대에 들어서 할리우드 영화의 제작 방식은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먼저 영화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화질과 완성도를 갖춘 미국 드라마가 빠르게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넷플릭스와 같은 신생 매체들이 등장해 양질의 오리지널 드라마를 공격적으로 서비스했다. 할리우드는 그에 대항할 만한 전략이 필요했다. 할리우드가 취한 전략은 프리퀄(prequel), 시퀄, 스핀오프(spin-off) 등 속편 제작 횟수를 늘리면서 한 세계관의 팬덤을 키우는 것이었다. 시리즈물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장기적인 관점으로 콘텐츠를 기획하는 능력이 새로운 미디어 시대의 생존법이 되었다. 흥행 가능성이 있는 작품을 알아보고 시리즈로 이끌어 가는 안목을 갖춘 브레인, 프로듀서의 존재가 중요해졌다.

프로듀서 전성시대를 구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순수한 팬의 마음으로 자신이 다루는 장르에 애정을 쏟는 것, 그리고 시장성 제고에 탁월한 비즈니스 감각이다. 이 두 가지를 갖춘 대표적인 인물이 마블 스튜디오(Marvel Studios)의 총괄 프로듀서 케빈 파이기(Kevin Feige)다. 케빈 파이기는 일찍이 슈퍼 히어로가 대거 등장하는 영화의 가능성을 알아봤다. 〈엑스맨(X-Men)〉의 프로듀서로 참여했던 그는 영화계에서 인지도가 거의 없던 조스 웨던(Joss Whedon)을 2012년 〈어벤져스(Avengers)〉의 연출자로 강력히 밀어붙였다. 그는 조스 웨던이 마블 코믹스의 만화 〈어스토니싱 엑스맨(Astonishing X-Men)〉의 작가로 참여했던 점을 높이 샀다. 웨던의 경험이 다수의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는 영화에서 캐릭터의 균형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

마블 스튜디오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케빈 파이기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6]라는 큰 그림을 그리면서 세세한 부분까지 관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웨던의 사례처럼, 케빈 파이기는 잘 알려진 감독보다 스튜디오가 요구하는 바를 맞출 수 있는 감독을 선임한다. 그리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일관성과 연속성을 가질 수 있도록 세계관을 끌고 간다.

제이슨 블룸은 케빈 파이기에 이어 언론의 주목을 받는 스타 프로듀서다. 그래서 블룸하우스의 케빈 파이기로 통하지만, 케빈 파이기와 몇 가지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블룸의 프로듀싱 철칙은 다음과 같다.

① 감독의 창작권을 보장한다

저예산 영화에서 감독의 역량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막대한 투자를 받을 수 없어 부딪히게 되는 한계의 상당 부분을 창작자의 아이디어로 돌파해야 한다. 그러한 이유로 블룸은 감독 선정부터 공을 들인다. 영화를 기획한 후 면담을 통해 어떻게 장르적인 요소를 살려 내고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일 것인지 감독의 비전을 확인한다. 능력만 있다면 신인이든 경력자든 가리지 않는다. 감독으로 발탁한 뒤에는 영화 안에서 개성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창작권을 보장한다.

〈겟 아웃〉의 조던 필과 〈더 기프트〉의 조엘 에저튼(Joel Edgerton)은 블룸하우스를 통해 장편 연출가로 데뷔했다. 블룸은 두 감독을 선임한 이유에 대해 “연출 경력은 없지만, 현장 경험이 충분하고 해당 프로젝트의 비전이 확실해 영화를 맡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식스 센스(The Sixth Sense)〉의 반전으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지만 다음 작품들에서 그만한 성공을 거두지 못해 하락세에 있던 M. 나이트 샤말란(M. Night Shyamalan)은 블룸하우스의 〈더 비지트〉와 〈23 아이덴티티〉를 통해 다시 한번 주목받을 수 있었다.

조던 필 감독을 캐스팅한 일화는 제이슨 블룸만의 감독 선정 방식과 안목을 보여 준다. 〈겟 아웃〉의 시나리오를 읽고 흥미를 느낀 블룸은 필과의 만남을 먼저 요청했다. 필은 첫 만남에서 〈겟 아웃〉을 ‘트럼프 시대에 흑인이 느끼는 악몽에 관한 영화’라고 한 줄로 정리했다. 블룸은 주제 의식을 명료하게 꿰뚫고 있는 그의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장편 영화를 연출한 적은 없지만, 영화 현장의 스태프로 일한 경력도 감독 발탁에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블룸은 450만 달러를 투자하고 여자 주인공과 어머니 역의 캐스팅을 제안했다. 그 외의 모든 결정은 필 감독에게 맡겼다. 마블 스튜디오를 비롯해 대부분의 제작사가 투자자를 안심시키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감독의 개성을 최대한 자제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였다.[7]

② 저예산 원칙을 지킨다

블룸은 블룸하우스를 세우고 20년 동안 50편가량의 작품을 발표했다. 1년에 평균 두 편 이상을 제작한 셈인데, 자신이 세운 원칙을 충실히 따르지 않았다면 달성하기 어려운 성과다. 500만 달러에서 1000만 달러의 저예산 제작을 위해 그가 이행하는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대본의 양을 제한한다. 시나리오상의 대사가 한 줄 늘 때마다 배우의 추가 개런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둘째, 로케이션을 가능한 한 한군데로 정한다. 셋째, 배우 출연료는 법정 최소액으로 지급하되 수익 발생 시 러닝 개런티(흥행 수입에 따라 받는 금액) 지급을 제안한다. 넷째, 정해진 제작 예산을 반드시 준수한다. 예산을 초과하는 장면이 필요할 경우에는 창조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다섯째, 영화의 결말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도록 열어 둔다. 그래야 흥행에 성공했을 때 추가 수익을 낼 속편 제작을 고려할 수 있다.

③ 성공한 공포 영화의 문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블룸하우스의 작품 목록을 살펴보면 과거 영화 팬들이 열광했던 공포물의 특정 요소를 현대에 맞게 재창조한 경우가 많다. 〈파라노말 액티비티〉는 1999년 〈블레어 위치(The Blair Witch Project)〉의 파운드 푸티지 방식을 집 안으로 끌어와 기념비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겟 아웃〉의 신체 강탈 테마는 1962년 작품인 〈맨츄리안 켄디데이트(The Manchurian candidate)〉에서, 인간 개조 테마는 1978년 작품인 〈분노의 악령(The Fury)〉에서 먼저 활용해 주목받은 적이 있다. 조던 필은 이 테마에 흑인 차별이라는 현실을 반영해 호응을 얻었다. 〈해피 데스데이〉의 반복되는 죽음 설정은 〈사랑의 블랙홀〉의 테마를 공포 장르와 접목했고, 〈인시디어스〉 시리즈의 오컬트적인 요소는 1973년 작품 〈엑소시스트(The Exorcist)〉와 연결된다.

신인과 경력을 가리지 않고 적임자라고 판단되는 감독에게 전권 부여, 저예산 제작을 위한 원칙 이행, 흥행이 검증된 과거 사례의 현대적 재창조. 이 세 가지 프로듀싱 철칙이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과 블룸하우스의 시스템을 가르는 차이다.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시스템은 흥행에 성공한 요소를 답습하지만, 블룸하우스는 이를 재창조한다. 제이슨 블룸은 저예산과 검증된 흥행 요소라는 이중의 안전장치 안에서 감독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환경을 제공한다.

블룸은 공포 영화를 좋아하지만, 이 장르의 열광적인 팬은 아니다. 편식하지 않고 여러 장르의 작품을 즐겨 보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블룸하우스에는 코믹 호러 〈해피 데스데이〉, 10대들의 일상이 반영된 〈트루스 오어 데어〉, 스릴러 요소가 강한 〈23 아이덴티티〉, 사회 문제를 담은 〈겟 아웃〉 등 공포 장르만으로 묶을 수 없는 작품들이 다수 존재한다. 블룸의 개인적인 특성이 다양한 소재와 감성을 접목한 블룸하우스의 라인업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다.

그 가운데 〈위플래쉬(Whiplash)〉는 드럼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학생과 그를 최고의 드럼 연주자로 키우기 위해 스파르타식 교육을 하는 선생의 광기 어린 신경전을 다룬다. 일반적인 공포물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발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유지한다. 전통적인 공포물의 방식을 따르지 않음에도 제이슨 블룸이 〈위플래쉬〉를 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공포 영화는 사람들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공포를 의식하도록 한다. 사람들은 불편한 감정을 갖는 걸 즐긴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관객을 미치게 만들고 싶다.”[8]

블룸에게 영화는 단순한 돈벌이 대상이 아니다. 그는 이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블룸하우스 작품을 좋아하는 팬들과 영화라는 문화를 공유하고 싶어 한다. 영화와 직업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다음의 발언에서 더 분명히 드러난다. “투자자는 흥행 수익에 관심이 있다. 영화 작업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어떤 이들과 함께하는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저예산 영화를 좋아하는 건 나의 이익과 감독의 이익과 배우의 이익과 스태프의 이익을 사이좋게 나눠 가질 수 있어서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창조적인 결정과 관련된 사안이 아니라면, 영화 작업 이외의 수익에는 관심이 없다.” 블룸의 목표는 공포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아니다. 공포 영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그의 야망은 이제 공포 영화를 넘어, 다양한 매체와 장르로 향하고 있다.

 

블룸하우스의 브랜드 파워


블룸하우스는 앞선 영화들 외에도 꾸준히 신작을 내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더 퍼지〉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인 〈더 퍼스트 퍼지(The First Purge)〉는 2018년 7월 개봉일 하루에만 2만 5000달러의 극장 수익을 올리며, 공포 영화 시리즈 역사상 4위에 해당하는 전야 흥행을 기록했다.[9] 제작비는 1300만 달러인 반면, 전 세계 박스오피스 수익은 1억 3700만 달러에 달한다. 2020년 2월 개봉한 〈인비저블맨〉은 전 세계 박스오피스 수익이 1억 2500만 달러 규모로, 제작비의 17배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블룸하우스는 스크린을 넘어 TV 드라마 분야에서도 영향력을 높여 왔다. 영화 쪽으로는 제이슨 블룸이 가장 좋아하는 공포 영화로 알려진 〈핼러윈(Halloween)〉의 리부트[10]가 2018년 10월 개봉했다. M. 나이트 샤말란의 〈언브레이커블(Unbreakable)〉과 〈23 아이덴티티〉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글래스(Glass)〉도 2019년 1월 공개됐다. 작품의 평가는 떨어져도 젊은 관객의 호응을 받은 〈해피 데스데이〉는 속편을 2019년 2월 개봉했다. TV 쪽으로는 미니 시리즈 〈날카로운 것들(Sharp Objects)〉의 첫 번째 시즌이 2018년 7월 HBO에서 방영됐다. 〈더 퍼지〉 시리즈의 드라마 버전도 시즌 2까지 제작됐다.

제이슨 블룸의 야심은 단순히 다양한 장르의 영화와 드라마를 제작해 수익을 올리는 데에만 있지 않다. 블룸은 〈위플래쉬〉를 두고 ‘공포 영화의 선댄스 버전’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선댄스 영화제는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가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에서 자신이 연기했던 선댄스 키드의 이름을 가져와 1978년 독립 영화 활성화를 위해 만든 영화제다. 블룸은 2014년 〈위플래쉬〉를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했고,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까지 2관왕을 거머쥐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2018년 8월 미국에서 개봉한 〈블랙클랜스맨(BlacKkKlansman)〉은 ‘블룸하우스의 칸 영화제 버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매년 5월 열리는 칸 영화제는 영화를 잘 만드는, 세계적 인지도가 있는 유명 감독들의 화제작을 총집결한다. 〈블랙클랜스맨〉을 연출한 스파이크 리(Spike Lee) 감독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말콤 X(Malcolm X)〉, 〈정글 피버(Jungle Fever)〉, 〈똑바로 살아라(Do the Right Thing)〉 등 할리우드에서 가장 직설적이고 도발적이고 문제적인 영화들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침체를 겪던 그는 블룸하우스와 손잡고 백인 우월주의 단체 KKK단에 잠입한 흑인 형사의 실제 사연을 기초로 한 〈블랙클랜스맨〉으로 2018년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201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겟 아웃〉이 각본상을 받았다. 이로써 블룸하우스는 작품성, 화제성, 영향력을 모두 가진 독립 제작사로 자리매김했다.

할리우드에서는 스티븐 킹(Stephen King)의 원작으로 유명한 〈그것(It)〉, 시리즈물로 큰 사랑을 받은 〈컨저링〉 등을 제작한 뉴 라인 시네마(New Line Cinema)와 블룸하우스를 함께 묶어 호러 명가라 부른다. 두 제작사의 활약으로 저예산 호러 영화는 2016년 처음으로 1조 원대 매출을 넘겼다. 2017년에는 1조 3700억 원까지 성장했다. 블룸하우스의 약진을 통해 공포 영화계는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물론 마블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Avengers: Infinity War)〉 한 편으로 전 세계에서 2조 원이 넘는 수익을 기록한 것에 비하면 메이저 스튜디오와 독립 영화 제작사의 규모 차이는 현저하다. 그러나 1조 원의 제작비를 들인 영화와 다르게 저예산으로 장르의 경계를 넓혀 가는 블룸하우스의 행보는 여느 대형 제작사 부럽지 않을 정도다. 오히려 참신한 소재와 감성, 새로운 감독으로 무장한 영화를 앞세워 무시무시한 흥행 성적을 올리고,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블룸하우스가 손을 댄 영화는 재미있거나 완성도가 높거나 흥행과 작품성을 겸비한 영화라는 인식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블룸하우스의 브랜드 파워는 이러한 토대 위에서 만들어진다. 블룸하우스라는 브랜드가 공포물을 넘어 다양한 장르 위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1]
신선도 지수가 높을수록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로 평가된다.
[2]
본문의 박스오피스 총수익 및 순위는 영화 흥행 정보 사이트 〈박스 오피스 모조〉를 참조했다.
[3]
실제 기록이 담긴 영상을 관객에게 보여 준다는 설정으로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일종이다. 〈파운드 푸티지〉,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4]
국내 홍보사가 작성한 제작 노트를 참고했다.
[5]
대표작으로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Sex, Lies and Videotape)〉(1989), 〈펄프 픽션(Pulp Fiction)〉(1994), 〈스크림(Scream)〉 시리즈(1996~2011), 〈셰익스피어 인 러브(Shakespeare in Love)〉(1998) 등이 있다.
[6]
마블 코믹스의 만화 작품에 기초해, 마블 스튜디오가 제작하는 슈퍼 히어로 영화를 중심으로 드라마, 만화, 기타 단편 작품을 공유하는 가상 세계관이자 미디어 프랜차이즈. 마블 유니버스와 마찬가지로 플롯, 설정, 캐스팅, 캐릭터를 공유하며, 각 작품마다 다음 작품에 대한 복선 또는 지난 작품과 연관성을 갖는다.
[7]
할리우드는 스튜디오로 불리는 제작사의 입김이 세다. 영화 제작의 모든 분야를 세분화해 관리하는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감독 또한 고용인이다. 특히 컴퓨터 그래픽의 발달에 따라 제작비가 천문학적으로 늘고, 상당 부분이 스타의 출연료로 지급되는 상황에서 감독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개성을 발휘하기보다 대중에게 호응을 얻었던 상황이나 묘사를 답습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투자사의 입지가 절대적으로 커지고 있는 한국의 영화 산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가 시작되면 오프닝 크레디트에 영화를 만든 이들의 역할과 이름이 먼저 나오는 것이 관례지만, 한국 영화에는 투자사와 투자자의 이름이 맨 앞줄에 놓인다. 감독은 투자사와 제작사가 승인한 시나리오에 맞춰 영화를 만드는 기능인 정도로 취급되고, 창의적인 영화는 그에 비례해 급격히 사라지는 추세다.
[8]
제이슨 블룸의 인터뷰는 연예 매체 《할리우드 리포터(Hollywood Reporter)》와 《버라이어티(Variety)》를 참조했다.
[9]
제작비 1300만 달러가 투입된 〈더 퍼스트 퍼지〉는 개봉 첫 주에만 25만 달러의 수익을 내며 블룸하우스의 흥행작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10]
전작의 연속성을 거부하고 시리즈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새롭게 만드는 것, 〈리부트〉,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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