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증가 추세/ 중국, 단위: 1000건/ 소송건수, 행정(파란색), 지적 재산권 관련(하늘색), 파산(빨간색)/ 파산 소송/ 출처: 중국 최고 인민 법원
지방 관리들은 지금까지 법원의 판결을 무시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갖고 있었다. 한 의료 서비스 업체의 대표는 자사 명칭을 도용해 법원의 금지 판결을 받은 기업이 판결 후 3년이 지난 후에도 도용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내륙의 작은 도시에서 이 기업이 저지른 공공 의료 스캔들로 본인이 추궁을 당했다고 호소했다. 부분적으로는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사회 신용(social credit)” 체계를 개발하고 있다. 법원은 개인을 신용 블랙리스트에 올릴 수 있는데, 사실상 자동화된 국가의 대리인을 고용해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법원은 블랙리스트 체계를 통해 채무자가 비행기 표를 사거나 돈을 빌리지 못하게 할 수 있다. 2018년 말 기준 29만 명의 기업 간부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 체계가 완전히 디스토피아적인 형태로 변모하는 미래를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사회 신용 체계가 개인의 금융 신용을 넘어 소셜 미디어 활동이나 정치적인 신뢰도와 같은 개인의 역사를 포함해 생활전반을 다루게 되고, 그 조건으로 사회 내 모든 자원에 대한 접근이 제한될 수 있다면 그렇다. 그러나 중국의 많은 이들은 이 시스템을 지지한다. 기업 범죄 전문 변호사 얀이밍(Yan Yiming)은 “건강한 사업 환경을 가꾸기 위해서는 반드시 치러야 할 대가”라고 말한다.
법에 대한 신뢰가 커질수록 행정은 간소화될 수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중국에서 창업에 걸리는 평균 기간은 2017년 23일에서 현재 9일로 줄었다. 일본보다 조금 빠르고 미국보다 조금 느린 셈이다. 건설 허가에는 247일이 걸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111일이 걸린다. 디지털화로 세금 처리도 훨씬 간단해졌다. 기업이 송장을 발행하면 사본이 세무 당국에 직접 전달된다. 물론 혹자는 이런 변화가 지나치게 간편하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정부가 의무화한 소프트웨어의 허점을 겨냥하는 해커들이 기업의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의 시장 질서 개혁 중 마지막 핵심은 금융 체계다. 은행 규제가 지루한 서류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시 주석의 은행, 중개업, 그리고 투자 기업에 대한 통제 강화는 주의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했다. 2017년 한때 막강한 금융업자였던 샤오젠화(肖建華)를 홍콩의 한 호화로운 호텔에서 납치한 사례도 있다. 몇 명의 다른 거물들도 실종됐다가 결국 처벌받거나 재판에 회부되었다. 은행가들에게 던져진 메시지는 섬뜩하다. 새로운 질서에 발맞춰라, 그렇지 않으면 혼쭐이 날 것이다.
개혁이 일부 개인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다. 진정한 구조적 변화도 있다. 2008년과 2016년 사이 중국의 국내 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매년 10퍼센트포인트가량 올랐지만,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평균 상승 폭은 4퍼센트포인트로 줄었다.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부채는 급증할 예정이다. 그러나 관료들은 일시적 상승이라고 강조한다. 성장률이 반등하며 중국 정부는 이미 통화 부양책을 축소시키고 있다.
짜릿한 성공의 경험
이 체제의 기반이 되는 정책 수단은 상당히 안전해 보인다. 2010년대 중국의 은행들은 앞다퉈 자산을 미래가 불투명한 투자 상품으로 전환하며 수익성이 큰 사업에 뛰어들었다. 2010년부터 2017년 말까지 금융 상품이 꼬리를 물고 연결되면서 은행들의 여타 금융 기관에 대한 청구권은 20배 늘었다. 지난 2년간 새로운 법규가 적용되면서 은행들은 긴축에 나서야 했다. 규제가 약한 대출·투자 기업들의 혼란스러운 그림자 금융 부문은 축소되기 시작했다.
반면 채권 시장은 2012년 GDP의 50퍼센트에서 현재 GDP의 100퍼센트 이상으로 증가하며 호황을 누리고 있다. 개정된 법규로 기업들은 주식을 발행해 자본을 조달하기가 다소 용이해졌다. 많은 부분에서 중국의 금융 체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확실히 정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은행들은 정부가 국유 기업을 거의 항상 구제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민간 기업은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 은행들은 허덕이고 있는 소규모 기업에 도움을 제공하라는 공식적인 요구를 무시하는 데 능하다. 대부분의 대출 자금은 국유 기업으로 유입된다. 여전히 왜곡된 시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는 시 주석이 내건 개혁 의제의 또 다른 측면을 시사하고 있다. 바로 ‘중국 주식회사’의 재구축이다.
2019년 1월 이래 중국의 작은 탐사선 한 대가 달의 저편을 떠돌아다니며 그 어떤 국가도 다다르지 못했던 오지의 선명한 파노라마 이미지를 전송하고 있다. 반면 경제계에 가장 중요했던 것은 인민 대회당에서 시 주석이 달 탐사 사업에 참여한 수백 명의 과학자와 관료를 만나는 장면이었다. 이 행사에서 시 주석은 프로젝트의 성공을 “새로운 형태의 거국적 체제”의 전형으로 치하했다.
중국의 지지자들과 피해자를 자칭하는 이들은 모두 오랫동안 중국의 산업 정책에 대해 매우 정형화된 시각을 견지해 왔다. 고위 공직자들이 국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결정하고 저렴한 자본, 구체화된 연구 우선순위, 지적 재산권 절도, 보호주의, 그리고 불가항력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방안을 실행한다는 것이다.
사실 중국의 산업 정책은 거의, 또는 단 한 번도, 위와 같은 일관성을 갖춘 적이 없었다. 중국은 거의 모든 종류의 산업화 정책을 추구했다. 도시는 기업 유치를 위해 서로 경쟁한다. 기업은 호황기로 접어드는 분야에 몰려든다. 홍콩과기대 카스텐 홀츠(Carsten Holz)의 상세한 연구가 보여 주듯 이러한 투자 패턴은 공식적인 산업 정책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다. 산업 정책이 시장의 현실을 따라잡으려 했던 것이다. 가끔은 이 방식이 잘 풀리기도 한다. 고속 열차와 겉으로는 안전해 보이는 원전이 건설된 것이 그 예다. 반면 수십 년간 반도체와 내연 기관 자동차를 강조한 당국의 노력에도 중국을 ‘프리미어 리그’로 올려놓겠다는 목표는 실패했다. 태양열, 조선 등의 분야에서 이뤄진 엄청난 성장은 과다 생산, 막대한 손실, 그리고 잔혹한 합병으로 이어졌고 투자 낭비라는 비용을 치러야 했다.
저렴한 토지와 자본, 우수한 인프라, 값싼 노동력, 그리고 평가 절하된 통화는 오랜 기간 빈약한 전략과는 무관한 눈부신 발전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인구는 노령화되고 있고 채무 부담이 증가했으며 무분별한 산업화로 인한 환경 파괴가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새롭게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필요로 하고 있다. 시 주석의 ‘새로운 형태의 거국적 체제’는 신화로만 존재했던, 탄탄한 토대 위의 주안점이 뚜렷한 산업 정책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2015년에 발표된 새로운 산업 전략인 ‘중국 제조 2025’는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제조업의 거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이 전략에 특별한 초점은 없다. 중국의 5개년 계획 일부를 개발하는 데 참여하고 있는 경제학자 유융딩(余永定)은 “기본적으로 상무부의 모든 부서에서 각자 선호하는 사업을 제안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실행 전략은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정책에 드러난 포부는 중국의 불투명한 산업 정책, 습관적인 첩보 활동과 더불어 미국이 맞설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됐다. 시 주석은 미국의 반응을 통해 우선순위 설정의 기준을 파악할 수 있었다.
중국이 육성해야 할 산업은 미국이 수출 거부를 통해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분야다. 중국에서는 “목 조르기 기술(stranglehold technology)”이라는 용어가 유행하고 있다. 관료들은 산업 전체 부문을 목표로 삼기보다 제트 터빈, 반도체용 정밀 광석학, 전동 공구에 쓰이는 고속 베어링, 그리고 다른 핵심 기술을 우선할 것을 논하고 있다.
국유 기업은 이런 계획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민간 주주가 있는 기업도 많지만, 대체로 정부의 지배 지분을 통해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의 역량이 닿지 않는다면 정부 지분은 별다른 이점이 되지 못한다. 국유 기업들은 생산성 측면에서 민간 경쟁 업체에 지속적으로 뒤처지고 있다. 정치적으로 임명된 대표들은 리스크를 감수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 공직 업무를 함께 수행해야 하는 부담도 안고 있다. 코로나19 대처 국면에서 관료들은 석유 기업인 페트로차이나와 같은 국유 기업들이 일자리를 추가 창출했다며 치하하기도 했다.
기업을 뒤섞어라
시 주석은 국유 기업을 근본적으로 개편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1990년대에 경험한 기업의 잇따른 폐쇄와 민영화는 없을 것이다. 연약한 기업을 도태시키는 당시의 개혁은 높아진 실업률로 값비싼 사회적 대가를 치렀으나 모험적인 사업가들에게 길을 열어 주는 데에는 일조했다. 그러나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옳지 않다. 중국은 국유 기업에서 최대의 이득을 취하는 동시에 국유 기업이 민간 영역에서 더 많은 이익을 취할 수 있도록 양면으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중국 정부는 총이익이 아닌 순이익이 국유 기업의 성공을 가늠하는 주요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기업들이 운영 자금에 대해 좀 더 냉철한 태도를 취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중국 최고 규모 헤지펀드의 한 분석가는 “국유 기업들이 주주 가치에 대해 전보다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다는 점은 낙관적”이라고 말한다. 분명히 경영을 더 잘하고 있는 국유 기업도 있다. 중국 초상은행의 주식은 장부 가치의 1.5배로 거래되지만, 교통은행 주식은 0.5배의 가격으로 거래된다.
잠재적으로 더 중요하지만 확실히 많은 오해를 사고 있는 문제는 정부가 새롭게 추진하고 있는 “혼합 소유제”다. 당국은 국유 기업에 대한 민간 부문의 투자를 유치하고 민간 기업들이 국유 기업 파트너를 찾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러한 ‘교차 수분’은 이미 선례가 있다(대표적인 사례는 2000년대 초반 주요 국유 기업들이 증시에 상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전문 연구 기관인 플레넘(Plenum)의 첸롱(Chen Long)에 따르면, 이번 개혁은 앞선 개혁보다 더 폭넓은 분야의 기업들을 통합하게 될 것이다. 지난 몇 해 동안 국유 기업들은 1조 위안(171조 1500억 원) 이상의 민간 자본을 끌어들였다. 또한 2020년 상반기 50개에 가까운 중국 민간 부문의 기업들이 국유 기업으로부터 막대한 투자를 유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