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써서 돈 버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
4015만 4371달러. 2016년 6월부터 2018년 7월까지 스팀잇(Steemit)이 사용자에게 지급한 활동비의 규모다. 블록체인
[1] 기반 소셜 미디어 플랫폼 스팀잇은 글을 써서 암호 화폐를 벌 수 있다는 콘셉트로 서비스 초기부터 관심을 끌었다. 스팀잇은 재무분석가 출신의 네드 스콧(Ned Scott)과 개발자 댄 라리머(Dan Larimer)가 2016년 1월 설립했다.
나는 2018년 초 스팀잇 계정을 만들었다. 그전에는 카카오의 브런치를 이용했는데, 스팀잇을 시작한 후 브런치는 휴면 상태다. 브런치는 모바일에서도 편집이 쉽고 트래픽을 집계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구독자 수를 세는 것보다 업보트(upvote, 페이스북의 ‘좋아요’와 비슷한 개념)와 스팀(Steem, 이용자에게 지급되는 암호 화폐)이 쌓이는 걸 지켜보는 재미가 더 컸기 때문이다.
나의 스팀잇 첫 글은 고작 업보트 4개와 댓글 2개를 기록하고, 그 대가로 32원을 벌었다. 게시물을 꾸준히 올린 건 아니지만, 스팀잇을 사용하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글 써서 돈 벌기 참 어렵다’였다.
스팀잇의 보상은 저자 보상과 큐레이션 보상으로 나뉜다. 저자 보상은 내가 올린 글이 업보트를 받으면 얻을 수 있다. 큐레이션 보상은 다른 이용자의 게시물에 업보트를 누르고 댓글을 남기거나 리스팀(공유하기)을 하면 주어진다. 업보트를 받으면 암호 화폐 스팀이 쌓이는데 7일 후 75퍼센트를 받을 수 있다. 이때 보상은 스팀이 아닌, 다른 암호 화폐 스팀파워(Steem Power·SP) 또는 스팀달러(Steem Dollar·SBD)로 제공된다. 나머지 25퍼센트는 업보트를 누른 이용자들이 나눠 갖는다.
스팀잇에서 통용되는 암호 화폐는 스팀, 스팀파워, 스팀달러, 세 가지다. 기본 화폐 단위는 스팀이다. 스팀은 암호 화폐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코인으로 언제든 송금과 거래가 가능하다. 2018년 8월 13일 기준 1스팀의 시세는 4304원이다. 스팀은 증인(witness)으로 불리는 채굴자 20여 명이 일정량을 주기적으로 발행한다. 증인은 네트워크 보안과 정책을 이끈다.
스팀파워는 지분과 비슷한 개념이다. 스팀파워를 많이 보유하면 업보트의 힘이 세진다. 예컨대 스팀파워가 10인 계정과 1000인 계정이 똑같이 업보트를 했을 때, 스팀파워 1000인 계정의 업보트가 작성자에게 더 높은 보상을 가져다준다. 스팀파워 보유자는 스팀파워 보유액에 대한 이자를 지급받는다. 연간 발행량의 15퍼센트는 스팀파워 보유자에게 이자로 지급된다.
스팀달러는 스팀 가치 변동에 대한 불안을 줄이고 포스팅의 최소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보조 화폐다. 예를 들어 업보트 30개를 받은 게시물의 보상액이 일주일 사이에 스팀 시세가 하락해 10만 원에서 1만 원으로 줄어든다면 이용자들이 스팀잇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스팀달러의 가치는 실물 화폐인 미국 달러 1달러에 고정되어 있어 스팀의 가치를 유지해 준다. 1스팀달러는 1스팀의 가격이 아무리 많이 떨어져도 미화 1달러 가치의 스팀을 받도록 해준다. 가령 1달러가 1000원이라고 가정할 때 1스팀이 500원이면, 1스팀달러는 2스팀으로 교환 가능하다. 보상으로 얻은 스팀달러와 스팀파워는 스팀으로 교환한 뒤 거래소에서 현금으로 환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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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잇이 암호 화폐를 세 개씩이나 운영하는 이유는 안정적인 시장 가격을 형성하기 위해서다. 대부분의 암호 화폐는 외부 거래소에서 가격이 형성된다. 스팀잇은 내부에서 스팀과 스팀달러의 거래를 가능하게 해 외부 거래소의 특정 세력에 의한 시장 가격 조작을 어렵게 했다.
스팀잇은 론칭 2년이 조금 넘은 2018년 5월, 가입자 수 100만 명을 돌파했다. 암호 화폐 통계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스팀의 시가 총액은 2018년 8월 13일 기준 2984억 원으로 전체 암호 화폐 중 35번째로 규모가 크다.
한국의 스팀잇 방문자 수는 미국에 이어 2위다. 스팀잇의 첫 화면 왼쪽에는 ‘전체 태그’ 목록이 있다. 스팀잇은 사용자가 많이 사용하는 태그를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보여 주는데, 한국을 나타내는 태그인 ‘kr’은 2018년 8월 기준 3위다. 한국 사용자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많이 사용되는 태그 1위는 ‘life’, 2위는 ‘photography’다.
스팀잇으로 하루 수백 달러를 버는 이용자가 수두룩하고, 스팀을 환전해 세계 여행 경비를 마련한 사례도 많다. 그럼, 스팀잇에서는 어떤 글이 돈이 될까. 보상금이 1000달러가 넘는 게시물 중에는 암호 화폐, 블록체인에 관한 글이 많았다. kr 태그가 달린 글 중에는 IT 기기 사용기, 블록체인 강의, 여행기가 많았다. 열성 스티미언(Steemian, 스팀잇 이용자)들은 신입 회원에게 스팀잇으로 돈을 벌려면 팔로워를 늘리고, 댓글로 소통하고, 양질의 글쓰기에 집중하라고 권한다.
서비스 초기이다 보니 단점도 적지 않다. ‘권력을 쥔’ 일부 사용자가 시장을 좌우한다. 스팀파워를 많이 보유한 고래(Whale)
[3]의 입김이 굉장히 세다. 고래는 스팀잇 내에서 큰 영향력을 끼치는 사용자를 통칭하는 용어다. 고래가 업보트나 리스팀을 누르면 상당한 스팀달러가 게시물 작성자에게 돌아간다. 반대로 이들의 눈에 들지 못하면 스팀파워를 모으기가 어렵다. 고래끼리 서로 업보트를 누르는 담합이나, 자신의 글에 보팅하는 ‘셀프 업보트’도 문제다. 이런 시스템의 맹점으로 인해 글의 퀄리티가 낮아도 고래가 썼다는 이유만으로 보상금이 높은 경우가 잦다. 추천과 댓글 수가 콘텐츠의 질과 비례하지 않는다.
스팀잇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다른 소셜 미디어에 비해 사용이 어렵다. 가입 절차가 길고 까다롭다. 2018년 초에 가입한 나는 최종 승인까지 열흘이 걸렸다. 3주 이상 걸리는 경우가 태반이다. 숫자와 알파벳 대·소문자 52개로 이뤄진 스팀잇에서 제공하는 비밀번호를 잃어버리면 계정을 되찾을 수 없다. 실제로 스팀잇 웹사이트에는 ‘(신입 사용자가) 해야 할 일’의 첫 번째로 ‘비밀번호를 저장하세요’가 적혀 있다. 모든 사용자가 거래 장부를 공유하는 블록체인 기술의 특성상 글을 올리고 7일이 지나면 수정과 삭제가 불가능한 것도 단점으로 꼽힌다.
소셜 미디어 이용자에게 아무런 보상이 없는 것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스팀잇은 토큰 이코노미(Token Economics)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토큰과 이것이 사용될 경제 시스템의 규칙을 설계하는 것’으로 정의되는 토큰 이코노미가 제대로 구축되기 위해서는 네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토큰 사용자에게 충분한 혜택이 제공되어야 하고, 둘째 이들이 토큰 얼리어답터가 되도록 인센티브를 줘야 하고, 셋째 얼리어답터가 신규 사용자를 끌어모으도록 추가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하고, 넷째 토큰 프로젝트의 성장에 따른 혜택을 ICO(Initial Coin Offering, 암호 화폐 공개)
[4]에 참가한 투기적인(speculative) 토큰 구매자에게 어필해야 한다. 스팀잇은 네 가지 조건을 고루 갖춘 생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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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잇은 저자와 참여자에게 활동에 따른 금액을 지급하고, 지불의 불편함을 암호 화폐로 해결했다. 보상에만 그친 게 아니라 스팀파워 보유자에게 영향력(투표권)을 제공해 커뮤니티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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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잇을 필두로 디지털 콘텐츠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음원 플랫폼 스타트업 우조뮤직(Ujo Music)은 저작권 관리에 블록체인을 적용했다. 우조뮤직은 창작자가 등록한 음원에 저작권 코드를 부여하고, 소비자가 암호 화폐 이더(Ether)로 결제해 다운로드를 받으면 저작권자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그래미상 수상자인 영국 가수 이모젠 힙(Imogen Heap)은 2015년 10월 신곡 <Tiny Human>을 우조뮤직에 공개했다. 음원 배급사라는 중개자 없이 크리에이터가 직접 소비자에게 음악을 판매한 새로운 시도였다. 블록체인 기술은 디지털 콘텐츠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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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드 스콧 대표 인터뷰; “블록체인, 콘텐츠 배포의 미래”
스팀잇의 공동 창업자 겸 CEO 네드 스콧과의 인터뷰가 성사되기까지 꼬박 3개월이 걸렸다. 2018년 3월 초 스팀잇의 대표 계정으로 CEO 인터뷰를 요청했다. 임원 비서의 도움으로 홍보 대행사에 연락했고 질문지를 전송했다. 스무 통이 넘는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네드 스콧 CEO의 회신을 받는 데는 그로부터 두 달이 더 걸렸다. 동아시아 출장 등 바쁜 일정이 이어졌다는 게 관계자의 말이었다. 스팀잇의 빠른 성장을 엿볼 수 있었다. 스콧 CEO는 인터뷰에서 ‘양질의 콘텐츠’와 ‘적절한 보상’, ‘스마트 미디어 토큰(Smart Media Token·SMT)’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스팀잇이 개발 중인 SMT는 고래의 어뷰징과 권력 독점 문제를 해결하고, 스팀잇의 생태계를 외부로 확장하기 위한 시도다. SMT는 누구나 스팀과 비슷한 토큰을 스팀 블록체인에서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코인과 토큰은 둘 다 암호 화폐지만 성격이 다르다. 자체 블록체인을 갖고 있으면 코인, 다른 블록체인을 사용하는 암호 화폐는 토큰이다. 가령 암호 화폐 시가 총액 2위인 이더리움은 코인, 시총 19위의 베체인은 이더리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만든 토큰이다. 기존 스팀잇이 steemit.com 안에서 콘텐츠를 유통하는 구조였다면, SMT는 기업이나 개인 누구나 스팀잇의 플랫폼을 자신의 서비스에 접목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스콧 CEO는 2017년 9월 직접 SMT의 개념을 설명하고 개발 계획을 공개했다. SMT는 스팀잇 측의 주장대로 생태계를 확장하고, 소수의 권력 독점 문제를 말끔히 해결할까. SMT가 그저 스팀의 발행 총량을 늘리기 위한 꼼수라는 부정적인 시선도 있다.
네드 스콧 CEO는 미국 베이츠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심리학을 전공하고 2012~2015년 식품 수입업체 겔러트 글로벌 그룹(Gellert Global Group)에서 재무분석가로 일했다. 그는 2013년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기술의 가능성에 매료됐고, 개발자 댄 라리머를 만나 창업을 결심했다. 공동 창업자 라리머는 2017년 3월까지 스팀잇의 CTO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