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리를 간략히 소개해 달라.
퍼블리는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콘텐츠 플랫폼’이다. 유료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한다. 사업 모델은 월 2만 1900원의 멤버십과 크라우드 펀딩 방식의 예약 구매 두 가지가 있다. 멤버십이 핵심이고, 예약 구매는 멤버십 고객으로 유도하기 위한 유입 경로로 삼고 있다. 예약 구매는 ‘우리가 이런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기획안을 올리고 선주문을 받는다. 기획안에는 리포트의 대략적인 내용과 저자 소개, 프로젝트 취지 등이 소개된다. 목표 금액을 달성해야 발행한다.
퍼블리 사업은 어떻게, 왜 시작했나?
인간에게는 여러 욕구가 있는데 향상심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향상심이 강한 사람은 자기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뭔가를 찾아 나선다. 그런데 국내에는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가 양적, 질적 측면에서 부족하다. 많은 사람이 영어권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영어권 콘텐츠 환경을 부러워한다. 나는 단순히 영어권 콘텐츠를 부러워하는 데 머물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한국 사람이고 내 뿌리는 한국이니까. 우리 세대는 해외 콘텐츠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지만, 내 다음 세대가 여전히 눈을 밖으로 돌리면서 콘텐츠를 찾아 헤매지 않았으면 좋겠다.
창업 후 3년이 지났다. 퍼블리의 현재를 평가한다면.
2015년 4월 법인 등록을 하고, 2016년 1월 웹사이트를 열었다. 최근 1년 사이 비즈니스 차원에서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주력 비즈니스 모델이 더 이상 개별 콘텐츠의 예약 판매가 아니라, 멤버십 기반의 상품 판매가 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매출 포트폴리오에서 멤버십의 비중이 75퍼센트가 넘는다. 일종의 피벗팅(pivoting, 방향 전환)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비즈니스 모델을 멤버십으로 전환한 이유는 뭔가?
흥행 비즈니스의 속성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박 또는 쪽박으로 갈리는, 그리고 언제 나올지 모르는 대박을 기대하는 그런 구조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이미 예약 구매 프로젝트를 100개 넘게 하면서 경험을 많이 쌓았다. 우리는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등 유료 멤버십 콘텐츠 비즈니스를 연구하고, 열심히 벤치마킹한다.
2017년에는 투자 유치 소식이 있었다.
2017년 8월 캡스톤 파트너스, 퓨처플레이, 이노베이스로부터, 2017년 12월에는 미국 실리콘밸리 VC인 500스타트업으로부터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우리에게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VC 투자를 받은 유료 콘텐츠 비즈니스 기업은 거의 없다. 우리를 지지해 주는 VC들을 주주로 모시게 되었고, 이 점이 시장에 주는 메시지가 분명 있었다고 생각한다. 올해 하반기에도 다음 IR(Investor Relations, 투자 유치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라 기대된다.
타깃 독자의 연령대와 직업군은?
30대 중반인 내 나이를 기준으로 위아래 열 살 정도인 20~40대 초반으로, 모바일과 인터넷에 굉장히 익숙하고 유료 지적 콘텐츠에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독자다.
오프라인 모임 후기를 보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콘텐츠라는 평이 있다. 퍼블리 독자들의 구매 동기는 무엇일까?
통상 100명의 유료 결제자 중 80명 정도가 리포트만 사고, 20명은 오프라인 티켓도 구매한다. 저자의 생생한 경험을 원하는 독자가 많다. 그게 오프라인 모임 참가자가 꾸준히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본다.
가입자 수와 유료 회원 비율은?
사이트 가입자 수는 3만여 명이다. 월 멤버십 유료 고객 수는 2017년 8월 300여 명에서, 2018년 8월 3500여 명으로 늘었다.
크라우드 펀딩 개수와 성공 횟수는 얼마나 되나?
프로젝트 개수는 2018년 8월 기준으로 120개다. 목표액이 달성되지 않았거나 저자의 개인 사정으로 실패 또는 포기한 것은 6개, 콘텐츠로 발행된 것은 102개다. 나머지는 곧 발행 예정이거나,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다.
콘텐츠 가격은 어떻게 설정하나?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을 산정해서 계산한다. 비슷한 주제의 다른 콘텐츠를 만들었을 때와 비교하고, 분량과 희소성, 저자의 명성 등을 다각도로 고려한다. 리포트와 오프라인 티켓을 합한 평균 단가는 5~10만 원이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저자가 들려주는 ‘경험 콘텐츠’에 고객들이 어느 정도까지 지불하는지를 계속 실험하고 있다.
반응이 가장 좋았던 프로젝트는?
예약 구매 기간인 약 2개월 동안 1000만 원이 넘은 프로젝트가 15개다. 칸 광고제,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브랜드 마케터, 음악 산업 등을 다룬 콘텐츠다.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 두 개를 고르자면?
펀딩 금액이 1000만 원을 넘은 첫 프로젝트인 〈2016 칸 국제광고제〉를 우선 꼽고 싶다. 기획안만으로 1700만 원 넘게 모금했다. 〈한국 조선업 40년 역사로 읽는 글로벌 경제〉도 기억에 남는다. 펀드 매니저와 주식 애널리스트가 리포트를 쓰고 강연도 했다. 두 저자는 현재 조선업의 위기와 함께 조선업의 40년 역사를 설명해, 기존 언론 보도와 차별화했다.
대부분이 ‘일(work)’을 다룬 콘텐츠다.
2017년 하반기부터 일 콘텐츠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는 ‘일을 더 잘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자기 계발에 갈증이 있는 2030세대에 꾸준히 관심을 두고 있다. 산업·기업·경제 분야의 콘텐츠에 대한 소비자 반응이 확실히 좋은 편이다. 반면 여가·취미·교양 분야의 디지털 콘텐츠는 아직 유료화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프로젝트별로 돈이 모이는 규모나 속도를 보면 판단할 수 있다. 여가·취미·교양의 영역인 것 같으면서도 일하는 태도와 삶의 방식에 대한 통찰을 보여 주는 콘텐츠는 계속 만들고 있다. 일종의 ‘일하는 스타일(workstyle)’이라는 관점이다. 우리가 좋아하기도 하고, 동시에 멤버십 소비자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케냐 마라톤’ 콘텐츠가 한 예다.
초반에는 해외 취재형 콘텐츠를 만드는 데 주력을 했다. 각 산업과 영역에서 가장 유명한 해외 콘퍼런스에 우리와 계약한 저자가 직접 가서, 현장에서 무슨 이야기가 벌어지는지를 ‘지면의 제한 없이 충분하게’, ‘제너럴리스트가 아닌 업계 전문가가 바라보는 주관을 담아 핵심을 정제해서’ 만드는 유료 콘텐츠라면 시장성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 가설은 적중률이 꽤 높았다.
스톡홀름 소재 대학원의 한국인 유학생이 쓴 스웨덴 스타트업 보고서, 아마추어 러너의 케냐 현지 마라토너 취재기를 인상 깊게 봤다. 기존에 접하지 못한 유의 콘텐츠였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 중 하나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가지는 아쉬움이었다. 지정학적으로 동북아에 고립돼 있고 언어조차 고립된 한국어를 사용하다 보니, 여기에서 발생하는 폐쇄성이라는 지점이 콘텐츠, 미디어 업계에서 큰 단점으로 부각된다고 생각했다.
프로젝트를 여러 건 진행하면서 발견한 구독자의 구매 패턴이 있다면.
본인이 관심 있는 주제의 예약 구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재구매율이 높아진다. 동시에 우리가 유도하기도 한다. 고객의 구매 이력 데이터가 있기 때문에, 기존 고객들에게 ‘당신의 관심을 끌 것 같은 이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라고 알림 메일을 보내 드린다. 페이스북 리타기팅(retargeting, 특정 사이트 방문자에게만 광고를 노출하는 방식) 광고도 한다.
저자 섭외의 기준은?
퍼블리가 최근 출간한 종이책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의 프롤로그에 쓴 내용을 참고하겠다. 우리가 협업하고 싶은 저자는 축구로 비유하면 경기장에서 한참 열심히 뛰고 있는 선수들, 그리고 탁월한 성과를 내고 목표 달성을 할 수 있도록 이끄는 감독과 코칭스태프, 구단이다. 관객이나 비평가가 아니다. 현장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생각, 경험, 통찰이 고객의 성장을 위한 매력적인 상품이자 우리 사회의 지적 자본이 될 수 있도록 콘텐츠로 만든다.
저자와 독자의 공감대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가능한 한 저자와 독자의 연령대를 맞추려고 한다. 우리는 독자들이 ‘자신이 모르는 분야에 대한 같은 세대의 지식과 경험’에 돈을 지불한다고 판단한다. 멤버십 유료 고객의 50퍼센트가 30대다. 전체 사용자도 비슷할 것으로 추정한다.
저자들은 주로 어떤 연유로 지원하나?
다수가 세 가지를 꼽는다. 본인의 커리어와 평판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자신의 경험을 유의미한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그리고 퍼블리가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해서.
퍼블리의 리포트는 디지털 콘텐츠인데도 구성이 종이책과 비슷하다.
상품으로서의 완결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나는 조선일보의 ‘위클리비즈’, ‘Why’ 지면을 다 본다. 이에 대한 대조군으로 매거진 B를 떠올리게 된다. 위클리비즈를 정독하는 데 한 시간이 조금 안 걸리고, B를 텍스트 중심으로 보면 비슷한 시간이 걸린다. 다만 B는 책꽂이에 꽂아 두고 가방에 넣어 다닐 수도 있는 ‘완결된 상품’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위클리비즈는 귀한 콘텐츠가 담기는 그릇이 신문이다 보니 값어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져 보이는 게 아닌가 하고 종종 생각한다. 디지털도 마찬가지다. 디지털이더라도 소비자가 완결된 상품으로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부터 여러 링크가 합쳐진 ‘하나의 콘텐츠’로 보이는 데 주력했다.
그런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었나?
출판물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큐레이션을 잘하기로 유명한 강원도 속초의 동아서점, 서울 강남의 최인아책방에서 여러 아이디어를 얻었다. 퍼블리는 초기부터 ‘디지털 콘텐츠는 왜 수익을 내기 어려운가’라는 고민을 해왔고, URL 형태로 돌아다니는 온라인 기사는 완성품이라는 생각이 덜 들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퍼블리는 인쇄물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온라인 콘텐츠에 종이 느낌이 나도록 목차도 넣고, 그래픽 제작에 공을 들인다.
다독가로 알려져 있다. 어떤 콘텐츠를 자주 읽나?
매거진은 모노클, 매거진 B, LS네트웍스가 발행하는 계간지 보보담(步步譚), 에스콰이어, 아레나를 즐겨 본다. 해외 유료 디지털 콘텐츠 서비스도 다양하게 써보고 있다. 디 인포메이션(The Information)이나 디지데이(Digiday), 뉴스픽스 등을 본다. 해외 이메일 뉴스레터 중에서는 더 허슬(The Hustle), 뉴욕타임스 딜북(DealBook), 골드만삭스 뉴스레터를 꼽을 수 있다.
2018년 선보일 새로운 서비스와 프로젝트, 행사를 소개해 달라.
올해 새로 선보일 서비스가 따로 있다기보다는 우리의 모든 자원과 팀의 업무 최우선 순위는 멤버십 고객을 늘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목표 달성에 직결되는 중요한 일들을 똑똑하고 효율적으로 잘 해낸다’에 초점을 맞췄다. 콘텐츠의 주제는 분기 정도 계획을 잡고 움직이는 편이긴 한데, 아직 잘 모르겠다. 계속 ‘일’과 ‘일하는 스타일’에 집중한 콘텐츠를 만들 것 같다. 덧붙여, 파이낸셜타임스와 같은 해외 매체를 번역하는 콘텐츠, 국내 출판사와 언론사와의 제휴를 통한 리패키징(re-packaging) 콘텐츠처럼 기존 미디어 업체와 경쟁하는 게 아니라 협업해, 우리 플랫폼에서 이들이 독자들과 잘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싶다.
멤버십 고객 간의 네트워크와 커뮤니티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잘 만들어 보고 싶다. 멤버십 고객만 구입할 수 있는 상품들이 있고 앞으로도 늘려 나갈 생각이다. 리퍼럴(referral, 추천형 비즈니스 모델)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도 그 일환이다. 항상 한 치 앞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계획은 세우지만 유연하게 성장하려고 한다. 올해 미래엔 출판사와 ‘book by PUBLY’라는 이름으로 여섯 권의 책을 출시할 계획이다. 다른 출판사들과의 협업도 계속될 예정이니 기대해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