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추럴 와인의 열풍이 거세지던 2011년 초, 마스터 소믈리에 로난 세이번은 영국 최대의 내추럴 와인 수입사 르 까브 드 피렌(Les Caves de Pyrene)의 더그 레그(Doug Wregg)를 웨스트 런던의 작은 바 배가본드(Vagabond)로 초청해 영국 와인 전문가들을 상대로 내추럴 와인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12명 중에는 셰프 헤스턴 블루멘털(Heston Blumenthal)이 이끄는 레스토랑 더 팻 덕(The Fat Duck)의 소믈리에 이사 발(Isa Bal), 영국 여왕의 와인 셀러를 책임지는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의 와인 비평가 잰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이 있었다. 당시 전 세계에 170명뿐이던 마스터 소믈리에 중 8명과 마스터 오브 와인 289명 중 3명이 있었다. 마스터 오브 와인은 수십 년이 걸리는 어려운 전문 과정을 졸업한 사람들로, 와인 세계의 대가다.
“설명회 자리에서 강한 적대감이 느껴졌다”고 레그는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와인 비평가 로빈슨은 그 자리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못 미더움’이라고 표현했다. 그래도 몇 종은 인기가 있었다. 쥐라 지역 쟝 프랑수아 갸네바(Jean-François Ganevat)의 가볍고 신선한 샤르도네(Chardonnay) 와인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또 그만큼은 아니지만 루아르 남동쪽 지역의 가메 품종으로 유황을 사용하지 않고 만들었으며 톡 쏘는 맛과 후추 향, 약한 땀 냄새가 특징인 와인도 평이 괜찮았는데, 참석자 중 한 사람 이상이 휘발성 산(VA)의 악취를 느꼈다. VA는 식초 냄새가 나는 다양한 산 성분을 가리키는 약칭이다.
그보다 더 논쟁적이었던 시음 자리도 있었다. 《옵저버》의 레스토랑 비평가 제이 레이너(Jay Rayner)의 말이다. “그해 겨울, 런던의 레스토랑 갤빈(Galvin)에서 레그와 점심을 함께한 적이 있는데, 그 자리에서 마신 탁한 와인은 농장 마당 구석에서나 날 법한 냄새가 나더군요.” 회의론자들이 품고 있는 가장 큰 의혹, 즉 내추럴 와인은 일관성이 크게 떨어지고 규정하기 어려우며 전통적인 와인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세이번은 “내추럴 와인은 여전히 종잡을 수 없어요. 어떤 와인은 훌륭했는데 또 어떤 와인은 끔찍했거든요”라고 말했다.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내추럴 와인이 팔레오 다이어트(paleo diet, 원시 인류의 식단을 따르는 다이어트 방식)나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 유산균 등 인체에 유익한 미생물)와 같이 기껏해야 트렌드, 최악의 경우에는 컬트에 불과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다. 추종자들이 열광적으로 전도에 나서려 했던 컬트 말이다. 그 자신도 열성적인 추종자인 레그는 다른 이들을 설득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다. 한 참석자는 “레그와 내추럴 와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모르몬교도와 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다른 두 참석자는 내추럴 와인을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 비유했다.
그러나 비평가들이 불만을 갖는 내추럴 와인의 요소들은 지금 내추럴 와인의 성공을 보장하는 요소가 되었다. 2007년 토론토대학의 사회학자 호세 존스턴(Josée Johnston)과 샤이언 바우만(Shyon Baumann)은 획기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20세기를 거치며 고급 프랑스 요리를 의미하는 오뜨 뀌진(haute cuisine)의 영향력이 감소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실용적이고 평등주의적인 미국에 뿌리를 둔 전통이 부상했다. 두 사람은 수천 건에 달하는 언론 기사를 분석한 결과 지리적 특이성, 단순함, 인간적인 관계 등과 같은 ‘진실성’의 특징들이 현대 음식 관련 기사에서 가장 두드러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진실성이라는 단어는 노골적인 속물근성과 구별할 때 사용된다”고 그들은 논문에서 밝혔다.
비일관성, 불순물, 강한 향, 병 속으로 들어가곤 하는 포도 줄기 조각과 이스트, 이 모든 것이 내추럴 와인이 상업 제품의 특색 없고 단조로운 ‘완벽함’의 대안임을 소비자에게 시사한다. 미세한 비대칭이 수제 가구의 차별화 요소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추럴 와인은 전통적인 와인 세계의 고루한 문화와는 달리 ‘숨길 것 하나 없다’는 인상을 준다. 레스토랑 와인 리스트를 마치 자신을 멍청해 보이게 할 작정으로 지리와 역사, 화학을 합쳐 놓은 끔찍한 시험 같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와인 업계의 위계질서를 뒤집거나, 적어도 그것을 무시해도 좋다는 이야기는 무척 매력적이다.
“와인의 일관성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마음먹는 순간 더 자유롭게 와인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와인의 결점을 찾으려 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죠”라고 레그가 최근 내게 말했다. 우리는 영국 최대의 내추럴 와인 수입사 르 까브 드 피렌이 2008년에 문을 열은 트래펄가 광장의 와인 바 떼루아(Terroirs)에 앉아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옥스퍼드 셔츠나 정장 차림의 나이 지긋한 손님이 대부분이었고, 거의 모두가 10년 전만 해도 와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무언가를 잔이나 병으로 즐기고 있었다.
레그는 토양 유형이나 와인 제조법을 설명할 때는 꼼꼼한 사람이지만 완성된 와인을 설명할 때는 느슨하고 자유분방한 편이다. 마치 교육 과정은 잘 알고 있지만, 학생들에게는 그 교육 과정을 만든 교육 제도의 타당성에 의심을 품도록 장려하는 선동적인 교사처럼 말이다. “만약 고객이 ‘오, 2015년산은 2014년산과 다르네요’라고 말하면 저는 ‘잘됐네요’라고 답합니다. 왜냐하면 두 해는 엄연히 다른 해이니까요. 와인 제조자가 정직하게 경작했고 인위적으로 와인의 품질을 조작하려 하지 않는다면 와인의 맛은 항상 다를 수밖에 없거든요”라고 그는 말했다. 누군가 그의 얘기를 듣고 내추럴 와인의 전제를 받아들이면 그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떻게 보면 원점으로 되돌아간 겁니다. 모든 것이 타당해지고 모든 것이 나머지 다른 것들만큼 좋아진 거예요.”
저는 여기서 만든 와인이 자랑스럽습니다. 포도 외에는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았지요. 이 와인은 자유롭습니다.
경직된 경계는 시간이 지나면 점차 유연해지기 마련이다. 내추럴 와인도 언제까지 독자적인 시장 내에만 머물 순 없다. 시장을 넓히고 싶어 하는 내추럴 와인 제조자들도 있고, 2016년도 업계 보고서에서 지적한 ‘장기적인 청년 시장 축소’로 고전하는 주류 와인 제조자들은 크래프트 맥주(craft beer, 소규모 양조업체가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맥주)와 증류주에 관심이 많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인 내추럴 와인으로부터 교훈을 얻고 싶어 한다.
영향력 있는 소믈리에 겸 작가인 이사벨 레제롱(Isabelle Legeron)은 내게 내추럴 와인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말해 주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샌들 차림의 비트족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레제롱은 제품에 들어가는 것들의 기준을 보다 명확히 하고 투명성을 높이기를 주문한다. 화학 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내추럴 와인 제조 과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또한 보이 클럽 시절의 불쾌한 유물인 ‘여성의 알몸 사진이 붙은 병’이 사라지기를 바란다(편집자 주: 포도밭 풍경이 담긴 일반 와인의 라벨과 달리, 내추럴 와인의 라벨에는 성적인 그림이 많다).
내가 제이 레이너(조심스럽게 말하자면 그는 내추럴 와인의 팬이 아니다)와 이야기를 나눴을 때 그는 내추럴 와인과 유기농 식품 운동의 성공을 비교했다. 유기농 식품은 눈에는 잘 띄지만 여전히 식품 시장의 일부만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유기농 식품의 부상은 주류 식품 업계가 무시할 수 없는 대조와 비평을 불러왔고, 그 결과 주류가 조금 더 유기농 성향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 과정을 나는 2017년 말 세계적인 와이너리 샤토 팔머(Château Palmer)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내추럴 와인 제조자들은 즉시 마실 수 있도록 비교적 가볍고 밝은 느낌의 와인을 만드는 경향이 있지만, 샤토 팔머에서는 밀도가 높고 무거운 바디에 그 잠재력을 충분히 끌어내려면 수십 년 이상 숙성해야 하는 와인을 만든다. 샤토 팔머는 요트, 자가용 항공기, 선물(先物) 시장에 어울리는 와인이다.
이런 와인 산업의 상층부로 내추럴 와인의 철학이 스며들고 있었다. 샤토 팔머의 CEO 토마스 뒤루(Thomas Duroux)는 보르도에 위치한 와이너리를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으로 전환했다. 이를 위해 화학 비료와 농약의 사용을 중단하고 슈타이너의 생물학적 다양성 이론과 허브 치료로 대체했다. 2014년 뒤루는 “10년 내로 (보르도의) 주요 포도밭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내가 그곳을 찾았을 때 맨땅 위에 포도나무 수천 그루가 늘어선 평상시의 삭막한 광경 대신, 건강해 보이는 초록색 풀이 포도나무 아래를 뒤덮은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젖소들은 풍부한 양의 천연 비료를 제공했고 양들은 포도나무 사이의 풀을 뜯어먹기 위해 인근 헛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와인 제조 책임자인 사브리나 페르네(Sabrina Pernet)는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으로의 전환이 단순한 마케팅 목적이 아니었음을 확인해 주었다. “소비자들은 더욱 자연적인 와인을 마시고 싶어 해요.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트렌드에 국한되지는 않아요. 지구를 훼손시키는 한 미래는 없으니까요.” 지난 수년간 샤토 팔머는 와인에 첨가되는 이산화황의 양을 줄이는 실험을 해왔다. “토마스와 제가 처음으로 이산화황을 사용하지 않고 와인을 제조했을 때 그 결과는 놀라웠어요. 와인이 활짝 열려 있었고 풍부한 맛이 느껴졌거든요. 이산화황을 사용하면 닫힌 와인이 만들어지죠”라고 페르네가 말했다.
만약 이런 사례가 시장이 비판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수익 모델로(내추럴 와인으로) 전환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내추럴 와인은 몇 가지 핵심 요소 때문에 대량으로 생산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샤토 팔머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100퍼센트 내추럴 와인 농법으로 전환하려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첨가물 사용을 줄이려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산화황을 일체 사용하지 않으면 와인을 만들 수 없습니다. 저는 와인에 거품이 생기는 걸 바라지 않아요. 깔끔한 와인이 좋거든요”라고 뒤루 CEO는 말했다. 게다가 소규모의 내추럴 와인 생산자들과 달리 상자당 2000유로 이상의 가격을 받고 1만 상자를 팔기 때문에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그게 바로 대형 와이너리의 문제죠.” 샤토 팔머 남쪽으로 50킬로미터 떨어진 마르띠약(Martillac) 마을의 와인 제조자 시릴 두브레이(Cyril Dubrey)는 말한다. “와인 몇 통을 잃더라도 별문제 없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만든 와인을 그냥 받아들여야 합니다”라고 그는 덧붙인다. 두브레이가 만든 와인은 신선하고 풍부하며 약간의 흙냄새가 난다. 샤토 팔머 와인이 지닌 밀도와 힘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그래도 맛이 매우 훌륭하고, 그의 DIY 농법에 충실하다. 두브레이의 작은 포도밭은 이웃집 마당의 농구 골대와 수영장과 맞닿아 있다.
“머리와 가슴 모두 자유로워야 합니다.” 차분한 만족감 속에서 두브레이가 말했다. 그는 주류 와인 가문 출신이며 인근에서 양조학을 전공했다. 그는 전통을 버린 것을 결코 후회한 적이 없다. “저는 여기서 만든 와인이 자랑스럽습니다. 포도 외에는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았지요. 이 와인은 자유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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