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숫자에 사로잡힌 삶
측정 분야는 땅콩버터 병의 바닥을 긁기 이전부터 이미 수천 년 동안이나 발전을 거듭해 왔다. 약 6000년 전 강을 따라 형성된 고대 이집트와 같은 문명에서는 인류 최초의 표준화된 단위들이 이미 도입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서 이집트에서는 큐빗(cubit)이라는 단위를 사용했는데, 이는 사람의 팔꿈치에서부터 중지 끝까지의 길이로써 피라미드의 크기를 측정하는 데 사용되었다. 중세 시대에는 교역을 촉진하기 위하여 측정을 규제하는 업무가 통치자들에게는 일종의 특권이자 부담이기도 했다. 그것은 시민들을 상대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이었지만, 만약에 그러한 임무를 방치하면 폭동을 촉발할 수도 있었다. 이후 몇 세기가 지나면서 단위들은 점점 늘어났는데, 18세기의 프랑스에서는 약 25만 종류의 단위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엔 “한 명의 국왕, 하나의 법률, 하나의 무게, 하나의 척도”라는 혁명적인 요구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수많은 기준이 넘쳐나면서 결국 프랑스의 석학들은 미터법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1미터는 원래 적도에서부터 북극점까지 거리의 1000만분의 1로 정의되어 있었다. 그런데 미터와 같은 단위는 단지 측정 작업을 간단하게 만들려는 것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한 기준의 가치와 권위는 국왕의 신체를 측정해서 얻은 값이 아니라 과학적인 계산에 의해 도출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었고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시간과 공간, 문화권을 뛰어넘어 균일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다양한 척도들이 만들어져 있다. 이러한 기준을 통해서 우리는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고, 낯선 사람들끼리도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있다. 피라미드를 건설하던 시대와 달라진 점이라면 지금은 그러한 기준들이 지구촌 전체에 퍼져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척도가 존재하지만, NIST나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주관하는 국제적인 표준들은 대부분 우리들의 일상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이러한 표준들은 특히 교육이나 일터에서처럼 다양한 형태의 관료주의를 통해 일상에 스며들어있다. 우리는 대부분 학교에서 수치화의 냉혹한 사례를 처음으로 경험하게 된다. 그곳에서 우리는 성적과 등수와 숫자에 의해 분류된다. 그리고 이러한 수치들을 통해서 미래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시작하게 되면, 이번에는 핵심성과지표(KPI)나 목표 및 핵심결과(OKR)과 같은 형태로 우리의 일상에 다시 평가가 등장한다. 저널리스트로 처음 일하기 시작했을 때, 나의 업무 성과는 주로 내가 작성한 기사의 수나 그것을 통해 유입된 온라인 페이지뷰와 같은 두 가지의 핵심적인 지표들로 평가되었다. 나와 동료들은 질보다 양을 중시해야 한다고 배웠다. 제목만으로도 수많은 클릭을 유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지표들이 가르쳐 준 ‘교훈’을 잊어버리기 위해 적지 않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인간의 모든 활동을 일련의 통계수치들로 요약할 수 있다는 기본 원칙은 21세기의 지배적인 패러다임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자본주의를 연구하는 역사학자인 제리 멀러(Jerry Muller)는 이를 “수치화 집착(metric fixation)”이라고 칭했는데, 이는 민간 부문에서만 팽배한 개념이 아니라 보건이나 치안처럼 수량화하기 쉽지 않은 국가의 역할에도 널리 퍼져 있는 문화이다.
멀러는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는 수치로 책임을 측정하는 시대에, 측정된 성과에 대하여 보상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수치들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믿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멀러 역시도 수치화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과도하고 무분별한 수치화”는 결국 우리가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왜곡하고 파괴할 것이며, 중요하지도 않은 부분에 집중하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수치화 집착의 근원은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당시에 관리(management)라는 것이 현장에서 직접 일하면서 체득하는 능력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하나의 직업군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관리자들의 업무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려는 움직임은 산업 생산 방식의 변화와 관련이 있었다. 미국은 제조 분야에서 스스로 “미국식 시스템”을 개척했으며, 표준화, 정확성, 효율성이라는 가치에 중점을 두었다. 그전에는 소비재 상품에 대한 주문이 들어오면 처음부터 끝까지 장인들이 그것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들어냈다. 그러나 수많은 부품을 찍어내고 잘라내고 주조할 수 있는 기계들이 발전하면서 기존의 제조 방식은 저숙련 노동자들이 부품을 하나하나 조립하는 일련의 기계적 업무들로 바뀌었다. 1850년대에 미국의 공장들을 견학했던 영국의 어느 엔지니어는 기계들이 육체노동을 대체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이렇게 썼다. “미국은 어디에서나 기꺼이 기계들에 의지하고 있다.”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이런 방식의 시스템은 과학적 경영과 대량 생산이라는 두 가지 현대적 개념들로 더욱 강화했다. 대량 생산의 대표적인 사례는 자동차 업계에서 헨리 포드(Henry Ford)가 거둔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생산한 저가형 자동차 ‘모델 T’는 단지 업계의 관행뿐만이 아니라 미국의 문화에서도 변화를 일으키면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중산층이 형성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중산층은 대량 소비의 계층이라고 정의할 수 있었다. 포드가 만든 생산라인의 특징은 노동자들을 각자의 자리에 고정시켜 두고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서 부품들을 각각의 지점으로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시카고에 있는 어느 도축장을 방문했던 부하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이러한 시스템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부하직원이 그곳에서 목격한 것은 자동차 조립과는 정반대되는 ‘해체 라인’이었다. 일렬로 죽 늘어선 도축업자들이 돼지의 관절을 하나하나 떼어내면서 사체를 해체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각자 자신이 맡은 하나의 단순 작업만 집중해서 반복하고 있었다.
이러한 분업화는 과학적 경영의 움직임으로 이어졌는데, 이 분야의 선구자는 효율성에 집착했던 프레드릭 윌리엄 테일러(Frederick Winslow Taylor)라는 엔지니어였다. 그는 테일러리즘(Taylorism)이라고 알려지게 되는 작업방식을 내세웠다. 테일러를 비롯한 그의 추종자들은 사람들의 작업을 자세히 관찰한 후에 그들의 업무를 여러 단계의 부분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그렇게 분리한 작업들은 표준화를 할 수 있었다. 테일러는 이런 방식의 목표를 두고 “일꾼들의 주먹구구식 낡은 관행을 대체할 수 있는 과학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정에서 실제로 작업을 수행하는 노동자들로부터 그것을 감독하는 관리자들에게로 관련 지식이 이전되고 그에 상응하는 권한도 함께 넘어갔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식의 통제는 단지 일터에서만이 아니라 교도소, 군대, 학교와 같은 기관들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규율 사회(disciplinary society)’에 관한 글을 썼는데, 이는 엄격하게 정한 기준들을 통해 규율의 준수가 강요되는 세상을 의미한다. 죄수들에게는 똑같은 옷과 수감번호가 부여되고, 언제 어디서 식사를 하고 잠을 자야 하는지에 대해서 명령을 듣게 되며, 당장 눈에 보이진 않더라도 언제나 교도관들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점을 의식하며 생활한다. 결국 그들은 이러한 권위를 내재화하여 스스로의 행위를 감시하게 된다고 푸코는 말한다. 명시적인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도 규정을 준수하게 만드는 것이지만, 그것의 목표는 “처벌을 덜 하는 것이 아니라, 처벌을 더 잘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통제를 위해서는 수치화와 표준화 작업이 필수적이다.
3. 수치화된 자아의 함정
기술 전문 저널리스트인 게리 울프(Gary Wolf)는 2010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서 정량화(quantification)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는 데이터를 활용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방식이 이제는 우리 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일반화되었다고 썼다. “숫자에 대한 병적인 집착은 현대의 관리자들을 규정하는 대표적인 특징이다. 적대적인 주주들을 상대하는 기업의 임원들은 온갖 수치들로 무장하고 있다. 선거운동에 나선 정치인들, 환자들을 상담하는 의사들, 라디오 프로그램에 전화해서 지역의 유명 스포츠팀을 비난하는 팬들도 마찬가지이다.” 비즈니스, 정치, 과학은 모두 수치화 가능한 지식에 의해 움직인다고 울프는 말하는데, 그 이유는 명백하다. 숫자는 결과를 얻을 수 있으며,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더욱 지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다룰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량화의 유혹에 저항하고 있는 분야는 오직 “은밀한 사생활의 영역”뿐이다. 그러나 울프는 그 영역 역시 머지않아 변화할 것이라고 말한다.
정보의 디지털화, 스마트폰의 보급, 저렴한 센서의 확산 등 새로운 기술들 덕분에 인류는 이제 역사적으로 전례 없었던 수준으로 자체 측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17세기로 넘어가던 무렵에 이탈리아의 의사였던 산토리오 산토리오(Santorio Santorio)는 자신의 신진대사를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하여 자신이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저울 장치를 만들었다. 이를 이용해서 산토리오는 꾸준히 자신의 체중을 측정했는데, 특히 식사와 배변 전후에는 반드시 몸무게를 쟀다. 요즘에는 아주 적은 노력만으로도 우리의 신체에 대한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다양한 앱과 도구를 이용해서 우리의 수면, 운동, 식단, 생산성을 추적할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가 보이지 않는 측정 자료의 송출원이 되어서. 마치 방사선을 방출하는 우라늄처럼 수치화된 데이터를 마구잡이로 쏟아내고 있다.
울프가 보기에 이러한 정보가 가진 잠재력은 어마어마하다. 그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자동차를 정비하거나, 화학반응을 분석하거나, 선거 결과를 예측할 때면 수치 자료를 이용한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도 이런 수치 자료들을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의 기고문은 거의 ‘수치화된 자아(quantified self)’ 운동을 위한 선언문에 가까운데, “수치를 통한 자기 인식”을 추구하는 개인들을 통해서 우리가 수치화의 논리를 스스로 어느 정도까지 내재화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운동의 기원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당시 이러한 운동에 심취했던 사람들은 현대적인 웨어러블 기기의 투박한 선조라고 할 수 있는 장치들을 함께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아이디어가 대중적으로 크게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게리 울프와 그의 동료 저널리스트인 케빈 켈리(Kevin Kelly)가 2007년에 ‘수치화된 자아’라는 용어를 만들고 이러한 생각을 전파하기 위하여 비영리 단체를 설립한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수치화된 자아는 모든 걸 숫자로 설명하면서 최적화된 삶을 강박적으로 추구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영혼은 서서히 시들어가는 괴짜의 이미지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수치화된 자아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은 잘 알려진 대로 굳이 이러한 이미지를 떨쳐내기 위해서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엄격한 자기 감시를 통해서 하루에 불과 몇 분이라도 절약했거나, 또는 정교한 분석을 통해서 잠을 잘 자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고 자랑한다. 기술 비평가인 에브게니 모로조프(Evgeny Morozov)는 수치화된 자아가 그냥 “테일러리즘 안에 포함되는 개념”이며, “특이함과 예외성에 대한 현대의 자기도취적 탐구”의 또 다른 사례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수치화된 자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움직임이 “공식적인 지식만을 강요하는 문화”에 대한 대응이라고 변호한다. 만약 세상을 수치화해서 만든 획일적인 규칙들이 정작 개인들에게는 잘 맞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각자 자신에게 더 잘 맞는 수치들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그들은 수면 무호흡증이나 알레르기, 편두통과 같은 만성 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주류 의학의 치료법을 거부하고 결국엔 스스로 어떤 패턴을 찾아내는 능력을 갖게 되는 사례를 제시한다. 그들은 몇 달에서 몇 년에 이르기까지 스스로를 꾸준히 추적하면서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어떤 음식이나 습관 등 그들의 삶에서 그전까지는 숨겨져 있었던 어떤 메커니즘을 찾아내고 이후로는 인생을 더욱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낸다. 이런 사례를 보자면 수치화된 자아는 마치 측정이라는 분야에서 개인적인 차원을 되찾기 위한 시도이거나, 또는 통계라는 추상적 관념에 저항하고 그러한 계산을 우리 삶의 윤곽에 맞게 맞춤형으로 재단하려는 노력처럼 보이기도 한다.
울프는 2010년에 쓴 글에서 인류가 정신분석을 활용하여 자아의 미스터리를 풀어내고자 했던 것은 한 세기 전의 일이며, 당시에 그들이 의지했던 것은 “장황한 문학 같은 인문주의”의 언어와 문화였다고 말한다. 그는 당시의 상황과 오늘날의 현실이 같지 않은데 왜 우리가 시대에 뒤처진 기법들에 의존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렇게 정밀한 수치들이 과연 우리가 자기 탐구를 위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언어로서의 복잡한 체계를 갖추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도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오류가 아니라 특징일 수도 있다. 자체 조사의 범위를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것으로 한정 지으면 그에 맞는 답변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는 사람들은 매주 상담을 위해 병원을 방문하지만, 정작 효과도 없는 난해한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