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깊이 읽어야 하는 이유
네덜란드의 안락사와 죽을 권리.
치매와 죽음을 둘러싼 딜레마.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나라, 세계 최초로 동성 결혼을 인정하고 매춘과 일부 마약이 합법인 나라, 고통 없는 죽음을 환불 보장처럼 가볍게 말하는 나라 네덜란드는 지금 치매와 죽음을 둘러싼 딜레마와 싸우고 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존엄한 죽음을 이야기한다. 머지않아 한국에서도 전개될 적극적 안락사와 인간다운 죽음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 본다.
* 14분이면 끝까지 읽을 수 있습니다(A4 8장 분량).
The Guardian × BOOK JOURNALISM
북저널리즘이 영국 《가디언》과 파트너십을 맺고 〈The Long Read〉를 소개합니다. 〈The Long Read〉는 기사 한 편이 단편소설 분량이라 깊이 있는 정보 습득이 가능하고, 내러티브가 풍성해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정치, 경제부터 패션, 테크까지 세계적인 필진들의 고유한 관점과 통찰을 전달합니다.
저자 소개
저자 행크 블랑큰(Henk Blanken)은 네덜란드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다. 네덜란드 주요 일간지인 《폴크스크란트(de Volkskrant)》 등에서 40년 동안 신문 기자로 일했다. 파킨슨병과 치매를 다룬 《Je Gaat Er Niet Dood Aan(죽지는 않을 거야)》 등의 저서가 있다.
역자 주지형은 미국 듀크대학교에서 환경경영 석사를 마치고 환경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 연구원과 아셈중소기업친환경혁신센터 선임 연구원으로 일했다. 현재 영국 리즈대학교 환경대학원 박사 과정에 있으며 국제 탄소 시장을 연구하고 있다.
키노트
이렇게 구성했습니다
1. 반쪽짜리 인간이 되다
파킨슨병에 걸리다
요양원을 체험하다
2. 내 죽음은 나의 것
네덜란드의 안락사법 논의
치매와 죽음을 둘러싼 딜레마
3.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거나
안락사를 결정한 친구 욥
안락사는 합법이지만 권리는 아니다
4. 죽음은 산 자의 문제다
네덜란드 전역을 충격에 빠트린 안락사 다큐멘터리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내 죽음보다 더 두렵다
5. 삶을 끝낼 권리
아내에게 안락사 사전 지시서를 건네다
나를 대신해 나의 죽음을 결정할 사람
먼저 읽어 보세요
2018년 2월 국내에서 존엄사법(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었다. 시행 8개월 만에 연명 의료를 사전 거부하거나 중단한 말기 환자가 2만 명을 넘었다. 기계적으로 생명을 연장하기보다 마지막 순간을 존엄하게 맞이하기를 바란 것이다. 국내에서 ‘소극적 안락사’의 길은 열렸지만, 생명을 단축시키는 ‘적극적 안락사’는 여전히 허용되지 않는다. 네덜란드, 스위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콜롬비아, 캐나다는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한다. 네덜란드에서는 2017년 한 해에만 공식적인 안락사가 6585건이었다. 그러나 중증 치매 환자는 2012년 이래 단 일곱 명만 안락사했다. 네덜란드 국민은 ‘내 죽음은 나의 것’이라 믿지만, 치매 환자만은 예외다. 의사 표시 능력이 있을 때는 죽기에 ‘너무 이르고’, 치매가 악화되어 의사 표시 능력을 잃으면 죽기에 ‘너무 늦기’ 때문이다.
에디터의 밑줄
“나는 반쪽짜리 인간이 되었다. 내 몸의 절반에선 경련이 일어난다. 소변을 볼 때 침을 흘리고, 눈이 내려 자작나무의 작은 가지 하나가 부러진 것만 봐도 눈물이 난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바보 같은 내 왼손이 어깨 위로 물을 엎지르기도 한다. 2011년 나는 51세의 나이에 파킨슨병을 진단받았다.”
“죽음을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정신적으로 건강한 치매 초기라면 죽기에는 ‘너무 이르다’. 아직 좋은 시절이 몇 년 남아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가고 치매가 악화되어 죽음을 원할 때가 오면 더 이상 죽음이 허락되지 않는다.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정신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죽기에는 ‘너무 늦은 것이다’.”
“그는 아내에게 팔을 두르고 아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마치 아내에게서 평안을 구하는 것처럼. 해니는 남편이 하는 대로 뒀다. 남편이 그녀를 안았다. 해니의 왼손에 꽂혀 있는 주삿바늘과 투명한 링거줄은 의사가 들고 있는 주사기와 연결되어 있다. 의사는 다른 손으로 해니의 왼 손가락 두 개를 쥐었다. 그러고 나서 정맥에 용액을 주입했다. ‘무서워.’ 68세의 해니가 죽기 전에 말했다.”
“대중이 충격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의사가 한 여성의 생명을 끝내는 것을 실제로 봤기 때문이다. 막연하고 이론적인 안락사법에 의견을 표출하는 것과는 다르다. 커피를 마시는 거실에 죽음이 들어오는 것은 다른 경험이다.”
“바지에 처음 소변을 보는 순간 사라져 버린 나의 존엄성과 예의는 조금도 개의치 않아. 그러나 더 이상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가고,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끝내야 할 때가 된 거야.”
코멘트
레이먼드 카버풍의 건조하면서도 여운이 남는 글이다. 이 글에 만족했다면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소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읽어 봐도 좋겠다.
북저널리즘 CEO 이연대
네덜란드는 치매와 죽음을 둘러싼 딜레마와 싸우고 있다. 저자는 치매 환자의 안락사는 의사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죽음 뒤에 남겨져 슬픔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북저널리즘 에디터 김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