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T 아트 거래 플랫폼 슈퍼레어는 그 이름에서 정체성이 드러나듯, 플랫폼의 자체 심사를 통과한 소수의 아티스트만이 NFT를 발행할 수 있다. 엄격한 관리 덕분에 슈퍼레어에 업로드된 작품은 신뢰할 수 있다는 여론이 형성돼 고가에 거래되는 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소수의 중앙 집권식 큐레이션에 문제를 제기하는 여론이 일자, 슈퍼레어는 자유와 공정이라는 블록체인의 철학에 따라 2022년 DAO의 출범을 예고했다. 슈퍼레어의 CEO 존 크레인(John Crain)은 기존 중앙 집권화된 큐레이션에서 벗어나 슈퍼레어 위원회와 토큰 소유자, 커뮤니티 이용자 모두가 큐레이션에 참여할 수 있는 독립적인 갤러리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전한 것이다. 이처럼 전통 미술 시장이 가진 폐쇄성과 불평등의 갈증 속에서 탄생한 NFT 아트가 더욱 투명해질 날을 기대해 본다.
비단 미술 시장뿐 아니라, 여러 기업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며 그들의 문화를 흡수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주로 교류하는 소셜 미디어 디스코드, 트위터, 텔레그렘, 레딧 등에서 채널을 새로 오픈하고 DAO와 같은 조직을 구성하고자 한다.
다만 DAO의 법적 지위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미국의 생물학자 개릿 하딘(Garrett Hardin)은 《사이언스Science》에서 ‘공유지의 비극’ 이론을 소개한 바 있다. 물, 공기, 초지 등 공동체가 함께 사용하는 자원은 남용되고 고갈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 골자다. 공유지의 비극에서 ‘공유지’는 누구나 와서 이용할 수 있는 목초지를 지칭한다. 양치기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많은 양을 공유지로 데리고 와 풀을 뜯게 하지만 비용을 지불하거나 목초지에서 일어난 사건에 책임을 지지도 않는다. 결국 늘어난 양의 수로 아무런 풀도 자라지 못하는 비극에 이르고, 이것이 현실화되면 시장 실패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가 DAO에서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딘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무엇일까? 자원을 사유화하거나 국가가 적극 개입하는 것이다. DAO도 마찬가지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개념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블록체인 기술로서 자유를 지향하고자 한다면 DAO는 여러 시도를 통해 문제를 직면하고 이를 해결하며 규제를 다져가야 한다. 이상적인 가치를 현실화하는 것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DAO가 주목받는 이유는 해당 개념이 기업을 넘어 교육, 정치 등 사회 여러 분야로 확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처럼 큰 비용이 움직이는 경우 DAO가 적용된다면 사회와 조직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다. 일부 자본가와 권력자에게 집중돼 있던 의사 결정이 다수에게 기회를 주고, 투명한 사회 혁신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4. 예술가, 지위를 되찾다
예술가에게 독창성,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는 그들의 지위와 권리를 보장하는 단초가 된다. 앞서 1장에서 크리에이티브 산업이 확장되며 독창성을 기반으로 한 지적 재산권이 주목받는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지적 재산권의 개념과 중요성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소셜 미디어가 성장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과거엔 지금과 다르게 지적 재산권을 보호받는 것이 녹록지 않았다. 지난 2011년, 삼성전자가 제작한 김치 냉장고가 논란이 된 적 있다. 삼성전자 측은 해당 냉장고의 디자인을 해외 유명 디자이너가 담당한 것처럼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한 미술대학원생의 것이었다. 2009년 12월 삼성전자가 학생과 계약을 진행했으나, 실제 카탈로그는 해외 디자이너의 이름으로 제작 및 배포한 것이다. 이에 학생이 소송을 걸어 원고의 승소로 마무리됐지만, 손해 배상 청구액은 3000만 원에 그쳤다.
대한민국 최대의 다국적 기업 삼성전자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과거 지적 재산권에 대한 인식과 그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매우 낮았음을 보여 준다. 다행스럽게도 해당 사건의 원고는 정식 계약을 진행했기에 논란이 된 제품을 본인이 디자인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었으나, 지적 재산권의 피해 사건 중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은 건들은 무수하다. 대한민국 법원 종합 법률 정보 사이트에서 지적 재산권 침해에 대한 판례는 2022년 기준 85건, 유사한 라이선스 판례는 59건이다. 또한 해당 건수에 대한 기간이 명시돼 있지 않아 어느 정도 규모의 분쟁이었는지 정확한 판단이 어렵다. 지적 재산권에 대한 판례 자체가 많지 않고 크게 쟁점화된 판례도 드물다는 점에서, 지적 재산권의 법률 해석상의 기준을 제시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한 현재는 지적 재산권 분쟁이 일어날 경우 피해자가 직접 증거를 수집하고 입증해야 하는 구조다. 이때 많은 경우 피해자는 개인인데, 소송을 준비하는 비용과 시간이 부담스러워 피의자와의 협의 하에 소송을 취하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지적 재산권 분쟁은 특히 미술계의 케케묵은 문제였다. 같은 창작 분야에서도 음원 저작물의 경우 음원 제작에 참여한 가수, 작곡가, 편곡가, 연주가 등에게 수익이 분배되는 구조다. 그러나 미술 분야엔 이러한 구조조차 자리 잡지 않았다. 미술품 경매에 출품된 작품이 최고가를 달성해도, 작품을 만든 아티스트에게 수익이 분배되지 않는다. 일회성 수익 외에 추가 수익이 존재하지 않고, 작품의 소장자와 경매 회사가 그 몫을 나눠 갖는 기이한 현상이 계속됐다. 아티스트 입장에선 작품이 유명세를 타면 작가로서의 네임 밸류를 높여, 그 이후 제작하는 작품을 더 고가에 판매하는 것이 경제적 수익을 창출하는 유일한 창구였다.
블록체인 기술의 등장은 이러한 지적 재산권 분쟁의 해결책으로 부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미술 작품이 경매 시장이나 화랑에서 중개인을 통해 판매되면 정산까지 대략 한 달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NFT 아트의 경우 판매 즉시 수익 정산이 이뤄진다. 전통 미술 시장에서는 작품 판매 이후 회계 처리 등을 이유로 작가가 갤러리의 정해진 일정에 맞춰 정산을 기다려야 했지만, NFT 시장에서는 효율적이고 즉각적으로 정산이 진행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작품의 첫 판매뿐 아니라 n차 판매가 이뤄질 경우에도 판매금 일부를 원작자에게 지급하는 추급권 시스템이다. 전통 미술 시장에서는 작가의 작품이 주목받아 고가의 재거래가 이뤄져도 작가에게 이익이 돌아가진 않았다. 그러나 NFT 아트의 경우 원작자가 n차 판매 수수료를 결정하며, 대부분 작품가의 5~10퍼센트 내외로 설정된다. 작가는 유명세만 얻을 뿐 추가적인 수익은 발생하지 않고, 경매 회사가 고스란히 재판매 수익을 취하던 고질적인 문제가 NFT 시장에서는 해결된 것이다.
다음은 NFT 아트 작가 ‘
파코망(Pacomang)’과의 인터뷰다. 파코망은 NFT가 국내에서 활발히 논의되지 않던 2021년 1월부터 파운데이션에서 활동 중인 일러스트레이터다. NFT 시장의 장단점과 전망에 대한 그의 의견을 들어 보았다.
NFT 시장을 언제, 어떤 경로로 처음 알게 됐나.
가장 처음 ‘NFT’라는 단어를 들었던 것은 2021년 1월에 세계 각국의 프리랜서 디자이너들이 모인 단톡방에서였다. 그 당시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런게 있나 보다’ 하고 별로 관심 있게 보지 않았다. 그러다 몇 달 후 같이 작업실을 쓰고 있던 남대현 그래픽 아티스트로부터 “NFT 아트라는 것을 해보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NFT 아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처음 제대로 들은 것은 이때다.
어떤 이유로 시장에 참여하게 됐나.
2021년 당시 꽤 많은 NFT 작품들이 거래되는 과정을 직접 목격했다. 예술 작품을 거래한다는 것이 갤러리 경매나 전시장 구매의 이미지로 굳어져 있던 내가, 그 과정을 실제로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뭔가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당시 암호 화폐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긴 했다. 초대권이 필요하고, 민팅과 리스팅을 하는 수수료가 꽤 비쌌기 때문이다. 그런데 함께 작업실을 쓰는 남대현 작가가 내게 암호 화폐를 구입하는 방법이나 월렛을 만드는 방법 등을 상세하게 공유해 줬다. ‘일단 한 번 도전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됐다.
처음 시장의 반응이 온 것은 언제인가.
첫 작품을 리스팅한 후 세네 달 정도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사기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 내 작품을 돈 주고 사기에는 아직 내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비슷한 시기에 디지털 아트 외주 의뢰가 왔었는데, 수천 개 가량의 캐릭터 옵션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페이를 이더리움으로, 50퍼센트를 선지급 받기로 한 터였다. 어느 정도 가이드 라인이 완성되고 꽤 열심히 작업을 하다 나중에서야 그게 PFP 프로젝트였단 걸 알게 됐다. 그 프로젝트를 의뢰한 분이 내게 NFT를 아는지, 작품을 올려 본 적이 있는지 물어봤다. 몇 달 전에 올린 작품을 보여 드리며 별 반응이 없어서 포기하고 있는 상태라고 답하자, 그 작품이 너무 마음에 들어 본인이 구매하고 싶다고 했다. 그때 바로 경매가 시작됐고, 시작 직후 두세 명의 유저가 연달아 비딩을 했다. 결국 처음 경매에 참여했던 분이 작품을 가져가시진 못했으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높은 금액에서 작품이 판매됐다.
컬렉터들과 자주 소통하는 편인지 궁금하다.
작품이 판매될 때마다 연동된 트위터 계정으로 내가 먼저 연락을 하기도 하고 구매자로부터 먼저 연락이 올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내 작품을 구매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봤다. 내 기준에선 내 작품이 그렇게 고가에 팔리는 게 잘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컬렉터는 “그냥 멋있어서 갖고 싶었다”라고 답하더라. 판매 이후에도 작품의 스토리나 NFT 아트 시장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며 꽤 자주 소통하는 편이다.
한 번 판매된 NFT 작품 중 n차 판매가 이뤄진 작품이 있나.
재판매로 플랫폼에 올라와 있는 작품이 한 점 있으나 아직 판매되진 않은 상태다.
NFT 아트의 등장이 작가님 개인의 작품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하다.
예전부터 아이디어가 떠올라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면 비슷한 시리즈로 두세 점을 더 그리는 편이었다. 캐릭터성을 부여하고 작품의 세계관에 깊이를 더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한 작품을 팔면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판매가 가능하고, 이후에도 컬렉터와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NFT 아트의 성격과 내 가치관이 잘 부합한다 느꼈다.
당신이 생각하는 NFT 아트의 의미는 무엇인가.
작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작가의 입장에서 NFT 아트 시장은 기회다. 수십 년 동안 작가들이 자신을 세상에 알리는 방법은 개인전을 열거나 소셜 미디어 계정으로 소통하는 방법뿐이었다. NFT 아트 시장이 활발해질수록, 신진 작가들은 훨씬 수월하게 작품을 홍보하고 커리어를 쌓아갈 수 있다. 앞으로도 이런 NFT 아트의 장점을 잘 활용해 보고 싶다.
이처럼 NFT 아트는 정적이고 폐쇄적이던 예술 시장에서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다만 NFT 아트 시장엔 전 세계적으로 통일된 제도와 규범이 필요하다. 충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다면, NFT 아트는 창작자에게도 팬덤에게도 분명 새로운 길을 열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