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를 만져야 알 수 있는 것 인간의 곁을 다정하게 지키는 지구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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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니키타 아로라
에디터 신아람
발행일 2022.11.16
리딩타임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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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3,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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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깊이 읽어야 하는 이유
메타버스를 이야기하는 시대, 인간의 오감 중 가장 외면받고 있는 것은 촉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져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끼가 머금고 있는 지구의 기억 같은 것들 말이다.

이끼를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끼는 존재하지만 인식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다분히 인간 중심적인 시선에 불과하다. 이끼는 지구의 시간 전체를 머금고 있다. 오만으로 가득한 인류의 시간에 비하면 억겁이다.

그런 이끼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었다. 콧대 높은 제국의 학자들 틈바구니 안에서 그는 이방인이었으며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끼는 스스럼없이 자신을 드러냈다. 허리를 굽혀 땅을 만지는 이방인에게 접촉을 허락했다.

보고 듣는 감각이 지나치게 예민하고 비대해진 시대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는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 감각을 멋대로 취사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촉각은 다르다. 촉각을 닫아버릴 방법은 없다. 만짐과 동시에 만져지는 경험은 우리를 또 다른 세계로 이끈다. 이끼의 존재를 제대로 감각하고 싶다면, 그리하여 스스로를 해체하고 새로운 나를 재구성하고 싶다면 지금 손을 뻗는 방법뿐이다. 다정한 손길로 이끼와의 접촉을 시도해 보는 것이다.

* 16분이면 끝까지 읽을 수 있습니다.

The Guardian × BOOK JOURNALISM
북저널리즘이 영국 《가디언》과 파트너십을 맺고 〈The Long Read〉를 소개합니다.〈The Long Read〉는 기사 한 편이 단편소설 분량입니다. 깊이 있는 정보 습득이 가능합니다. 내러티브가 풍성해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정치와 경제부터 패션과 테크까지 세계적인 필진들의 고유한 관점과 통찰을 전달합니다.

원문: 완결
저자 소개
니키타 아로라(Nikita Arora)는 옥스퍼드대학교 과학의료기술사 박사 과정 중에 있으며, 옥스퍼드대학교 여성학 및 과학의료기술사 석사다. 가디언, BBC, 인디펜던트 등에 젠더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저서로는 펀자브 및 인도 북부 지역에서 벌어지는 젠더 폭력에 대한 에세이를 담은 《다칼란다지(Dakhalandazi, 지금 시대)》(2022)가 있다.

역자 전리오는 서울대학교에서 원자핵공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총연극회 활동을 하며 글쓰기를 시작해 장편 소설과 단행본을 출간했다. 음악, 환경, 국제 이슈에 많은 관심이 있으며 현재 소설을 쓰면서 번역을 한다.
키노트
이렇게 구성했습니다.

1. 만져야 열리는 세계
2. 이방인과 이끼
3. 착취의 식물학
4. 접촉이라는 구원


에디터의 밑줄 

“그날 나는 마치 이 거대한 수목의 사촌들 사이에서 이끼가 자신의 근엄함과 아름다움에 주목하라며 나를 소환하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끼 앞에서의 그 순간이 사소하지는 않았지만, 그날 하루가 조금은 이상한 느낌으로 시작됐다고 기억한다. 그 당시에 이끼가 나에게 처음 가르쳐준 교훈은 바로 ‘우리는 시간을 만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궁금했다.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이민자였던 딜레니우스 같은 사람이 왜 모두가 그냥 지나치는 식물에게 자신의 에너지와 희망을 전부 쏟아부었던 것일까?”

“딜레니우스 사후 몇 세기 동안 다른 어딘가를 덮기 위해 전 세계에서 이끼가 뜯겨 나왔다. 과학과 문명화라는 미명하에, 식민주의자들은 원주민과 외국의 토지와 생태계를 뽑아내고 착취했다.”

“이끼와의 접촉에 대한 근대의 역사는 엘리트주의, 식민주의, 인종차별주의의 역사다. 옥스퍼드의 오래된 담벼락, 자갈이 깔린 길거리, 문 닫힌 대학에서 이끼를 만질 때면, 이끼와의 접촉은 의도가 아니라 접근성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영국의 식민지에서 식민주의는 접촉을 하나의 특권으로 바꿔 놓았다. 식민주의자는 자신들 대신에 원주민을 고용해 인간 너머의 세계와 이끼에 접촉했음에도, ‘현지인’이 접촉한 세계의 지식에 대한 권리는 그들이 가져갔다.”

“인간이 아닌 존재와 접촉하고 있으면 나는 몇 번이고 계속해서 그 세계로 내던져지고, 그 후에는 매번 접촉하기 전의 자신과 재결합해야 한다. 이처럼 지속적인 분리와 재결합의 과정에는 나 자신이 과거의 나인지, 혹은 미래의 나인지를 확신할 수 없는 생성적 순간이 존재한다. 나는 사람인가? 나는 이 세계의 일부인가? 나는 바뀔 수 있는가?”

“이끼는 우리 집 현관에 살고 있는 지구의 기억이다. 나는 그들을 안쪽으로 맞이해야 한다. 이끼를 만지고 나를 되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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