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토크하다
5화

미국의 토크 뉴스

정치 토론 1번지의 역사


미국은 우리와 비교하면 정치 토론의 역사가 길다. 우리나라는 1997년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TV 토론이 처음 도입됐다. 말 잘하는 정치인이었던 김대중 후보는 대선 TV 토론에서 경쟁자인 이회창 후보, 이인제 후보를 눌렀고, 최종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미국에서는 이보다 약 40년 앞선 1960년 첫 대통령 후보 TV 토론이 열렸다. 당시 TV 토론에서 맞붙은 사람은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부통령과 민주당의 샛별인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상원의원이었다. TV 토론에서 줄곧 세련되고 당당한 이미지를 선보인 케네디는 “미국은 훌륭한 나라지만 더 훌륭해질 수 있다. 미국은 강한 나라지만 더 강해질 수 있다.”라고 말해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토론에서도 이기고 대통령에도 당선됐다. 반면 현직 부통령이었던 닉슨은 땀을 흘리는 창백한 얼굴을 유권자들에게 노출하면서 표를 크게 잃고 낙선했다.
TV토론에서 만난 존 F.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 ⓒAP
케네디에 패했던 닉슨은 나중에 다시 대통령에 출마해 당선됐다. 하지만 재선 때까지 TV 토론을 줄곧 거부했다. 이후 미국 대선에서는 TV 토론에서 보여준 이미지 덕에 당선되고, 반대로 실언 때문에 낙선한 후보들이 적지 않다. 미국 선거 때마다 볼 수 있듯이 미국의 유력 대선 후보들은 토론에 능숙하고, 특히 위트가 넘친다. 학창 시절부터 토론과 연설로 단련이 된 까닭이다. 물론 말만 논리적으로 잘한다고 해서 토론에서 상대를 이기지는 못한다. 말하는 태도와 표정 등 많은 것들이 토론 결과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 모두 대선 TV 토론은 정책 대결이 되기보다는 이미지 정치를 부각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유권자들의 관심이 워낙 높아 선거 때마다 판세를 좌우하는 중요한 이벤트가 되고 있다.

일찌감치 대통령 선거에서 TV 토론을 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 사회에서는 오래전부터 정치 토론이 활발했고, 이벤트도 많았다. 가장 전설적인 정치 토론 가운데 하나는 진보 논객인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과 보수 논객인 윌리엄 버클리(William F. Buckley)가 1965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University of Cambridge)에서 맞붙었던 토론이다.

작가인 볼드윈은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와 동시대 인물로 활발한 저술 활동과 토론 및 강연을 통해 흑인 인권 운동에 앞장섰다. 역시 작가이자 평론가였던 버클리는 보수 잡지인 《내셔널 리뷰(National Review)》를 출판하며 미국의 보수주의 운동을 이끌던 인물이었다. 볼드윈과 버클리는 ‘아메리칸 드림이 미국 흑인들의 차별과 희생에 기반한 것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케임브리지대학교 학생들 앞에서 공개 토론을 벌였다.
(좌)제임스 볼드윈 ⓒCarl Van Vechten (우)윌리엄 F. 버클리 주니어
볼드윈은 “흑인은 선교사의 자선 대상이 아니라, 이 나라를 만든 사람”이라며 흑인 차별을 비판했다. 노예 제도와 백인 우월주의의 유산이 흑인들의 현실을 파괴했다고도 지적했다. 버클리는 흑인들이 미국에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은 삶을 살고 있다며 반박했다. 또한 인종 차별이 정당하지는 않지만, 흑인들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중들은 볼드윈의 주장에 손을 들어 줬다.

당시는 흑인 인권 운동이 미국과 유럽에서 큰 이슈였다. 케임브리지 토론이 있기 2년 전인 1963년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유명한 연설을 남기기도 했다. 흑인 인권이라는 가장 뜨거운 정치 이슈를 놓고, 미국의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두 명의 논객이 맞붙었으니 당시에도 큰 화제였다. 이 뜨거운 토론은 토론으로만 머물지 않았다. 몇 주 뒤, 흑인들은 참정권을 요구하며 미국 앨라배마주 셀마(Selma)에서 목숨을 건 행진을 벌였고, 대규모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해 8월 린든 존슨(Lyndon Johnson) 미국 대통령은 흑인의 투표권을 보장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볼드윈과 버클리의 대결은 지금까지도 전설로 남아 인용되는데, 정치 토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뉴스 쇼와 앵커들


사실 중심 vs 의견 중심

미국 미디어에서 정치 토론은 일상적이다. TV, 팟캐스트, OTT 등에서 방송되는 다양한 뉴스 프로그램들에서는 정치 이슈를 놓고 설전이 벌어진다. 2021년 미국의 여론 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의 〈뉴스 플랫폼 선호도 조사(News Platform Fact Sheet)〉에 따르면, 미국인들이 뉴스를 주로 보고 듣는 곳은 웹사이트나 SNS 같은 디지털 매체, TV, 라디오, 신문, 등이다. 우리나라와 대체로 비슷한 흐름이다.
방송 뉴스의 경우 지상파 TV는 ABC, NBC, CBS 등이 있고, 케이블 TV 뉴스에는 폭스뉴스(FNC·Fox News Channel), MSNBC, CNN이 대표적이다. 지상파와 케이블 TV 모두 프라임타임 시간대에 뉴스를 편성해 경쟁하고 있다. 주력 뉴스 프로그램들의 경쟁은 대체로 동부 시간으로 오후 5시부터 시작한다. 미국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은 저녁 뉴스는 오후 6시 30분에 방송되는 ABC 〈월드 뉴스 투나잇(World News Tonight)〉이다. 언론인 데이비드 뮤어(David Muir)가 진행하는 이 뉴스 프로그램은 하루 평균 700만 명 이상이 시청한다. 이어서 레스터 홀트(Lester Holt)가 진행하는 NBC 〈나이틀리 뉴스(Nightly News)〉가 600만 명 이상, 노라 오도넬(Norah O’Donnell)이 진행하는 CBS 〈이브닝 뉴스(Evening News)〉가 400만 명 이상의 일일 평균 시청자를 보유하고 있다.
3대 지상파 저녁 뉴스들은 앵커의 리드 멘트에 이은 기자 리포트나 현장 라이브 연결을 통해 주요 뉴스를 약 20분간 보도한다. 우리나라 지상파 저녁 메인 뉴스가 1시간 이상씩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미국 지상파들은 뉴스 시간이 짧다 보니 앵커와 기자들이 팩트 중심으로 간결하게 미국 안팎의 뉴스를 전달한다. 기자 리포트는 정제돼 있고, 앵커들은 무게감 있고 신뢰를 주는 모습으로 뉴스를 진행한다. 뉴스 형식을 놓고 보면 한국에서 오후 7~9시 사이에 하는 지상파 저녁 메인 뉴스와 비슷하다.

지상파 종합 뉴스가 전통적으로 많은 시청자를 보유하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케이블 TV 뉴스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미국 케이블 TV 뉴스는 동부 시간으로 오후 4시부터 11시 사이에 라이브 뉴스 쇼 여러 개를 편성하고 있다. 프로그램당 40분에서 60분 정도 방송하는데, 인기 프로그램들은 일일 평균 200~300만 명 정도가 시청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편성 시간을 살펴보면, 지상파 종합 뉴스가 방송되는 오후 6~7시를 피해서 주력 뉴스 프로그램들을 배치하고 있다.
케이블 TV 뉴스들은 앵커가 자신의 관점으로 뉴스를 설명하거나 출연자와 토크를 통해 뉴스를 전하고 분석한다. 지상파의 종합 뉴스가 팩트 중심의 뉴스라면 케이블 TV 뉴스들은 의견 중심(opinion centered)의 뉴스라고 할 수 있다. 지상파 종합 뉴스가 단일 프로그램으로는 시청자 수가 많지만, 뉴스 길이가 20분에 불과하다. 반면에 케이블 뉴스 채널들은 프라임타임 시간대에 앵커를 바꿔 가면서 쉴 새 없이 뉴스를 떠들고 있다. 정치 토론과 의견이 담긴 뉴스들은 팩트 중심 뉴스보다 더 흥미를 유발한다.

폭스뉴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20년 6월에 대통령 단독 인터뷰에 힘입어 사상 처음으로 지상파를 넘어서 프라임타임 시간대에 시청률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1] 우리나라에서도 그렇지만 대중의 관심이 높은 정치 뉴스 이벤트는 종종 예능 프로그램보다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다. 케이블 TV 뉴스는 의견 중심으로 뉴스를 전달하기 때문에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적 성향이 뚜렷하다. 이를테면, 폭스뉴스는 공화당 성향이고, CNN이나 MSNBC는 민주당 성향의 보도 성향을 보인다.

케이블 TV 가운데는 폭스뉴스가 가장 시청자가 많다. 폭스뉴스의 대표적인 뉴스 쇼들은 〈더 파이브(The Five)〉, 〈해니티(Hannity)〉, 〈터커 칼슨 투나잇(Tucker Carlson Tonignt)〉 등이다. MSNBC에서는 〈헤이즈(Hayes)〉, 〈와그너(Wagner)〉 등이 시청률이 높으며, MSNBC의 간판 뉴스 쇼인 〈레이철 매도 쇼(The Rachel Maddow Show)〉는 동부시간 월요일 오후 9시에 방송되고 있다. 앤더슨 쿠퍼나 크리스티안 아만포 등 스타 기자들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CNN에서는 〈AC 360〉, 〈투나잇(Tonight)〉 등이 인기다.

닐슨 집계에 따르면, 2021년 미국 3대 케이블 TV 뉴스인 폭스뉴스, MSNBC, CNN에서 방송된 정치 뉴스와 의견 프로그램은 케이블 TV 프로그램 전체 시청률 상위 5000개 프로그램 가운데 83퍼센트나 됐다.[2] 2016년에는 이러한 프로그램들의 비중이 57퍼센트에 불과했는데, 5년 사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앵커의 개성과 인기를 바탕으로 정치 뉴스에 관점을 담아 토크로 전달하는 뉴스 프로그램들이 핵심적인 뉴스 포맷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 시청자들은 지상파 종합 뉴스로 그날의 핵심 스트레이트 뉴스를 본 뒤, 자신들이 선호하는 앵커나 정치적 성향에 맞는 뉴스 쇼를 찾아 지상파나 케이블 TV 채널을 돌리고 있다.

앵커 중심의 뉴스 쇼

지상파와 케이블 TV 가릴 것 없이 시사 프로그램이나 토크 쇼에서 앵커는 매우 중요하다. 인기 앵커는 뉴스의 신뢰를 상징하기도 하고,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뉴스에 대한 관점과 토크의 재미를 보장해 준다. 특히, 케이블 TV 뉴스 쇼들은 철저하게 앵커가 중심이다. 누가 진행하느냐에 따라 시청률이 오르고 내리며, 10년 이상 장수하는 프로그램들이 상당히 많다. 몇몇 인기 프로그램들의 앵커와 프로그램 형식을 살펴보면 케이블 TV 뉴스들이 추구하는 목표와 성격을 잘 알 수 있다.

폭스뉴스의 인기 프로그램 가운데 〈해니티〉는 오후 9시에 방송된다. 진행자 숀 해니티(Sean Hannity)는 작가이자 정치 평론가 출신이다. 앵커가 그날의 정치 뉴스를 자신의 관점으로 분석해 소개하거나, 출연자를 불러 대화를 한다. 해니티는 올해로 25년째 〈해니티〉를 진행하고 있는데, 프라임타임 케이블뉴스 진행자로서는 최장수를 기록 중이다.[3] 종전의 최장수 앵커는 CNN의 〈래리 킹 라이브(Larry King Live)〉를 진행했던 래리 킹(Larry King)이었다. 해니티는 보수주의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앵커지만, 지나치게 트럼프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발언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해니티는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는 “트럼프가 차기 대통령이 되길 원한다”고 말하기도 했다.[4] 해니티는 자신의 방송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반대로 조 바이든 대통령이나 민주당 정책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비판한다.
〈해니티〉에 출연한 도널드 트럼프의 모습 ⓒ해니티Hannity
〈더 파이브〉 출연진의 모습 ⓒFNC
미국에서도 이러한 해니티의 당파적인 방송 태도는 논란을 일으킨다. 저명한 원로 앵커인 테드 코펠(Ted Koppel)은 2017년 3월 CBS 〈새터데이 모닝(Saturday Morning)〉에서 해니티와 대화를 나누던 중 “당신은 미국에 해(bad for America)가 된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유명한 전·현직 앵커가 저널리즘을 놓고 일대일로 인터뷰하는 것도 흥미롭지만,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날카로움 또한 흥미롭다.

폭스뉴스가 올해 새롭게 개편한 〈더 파이브〉는 오후 5시에 방송되는 정치 토크 쇼다. 2011년 첫 방송을 시작했다. 현재는 그렉 거트펠드(Greg Gutfeld)와 제시 워터스(Jesse Watters) 같은 폭스뉴스 간판 앵커들과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다나 페리노(Dana Perino) 같은 정치 해설가 등 다섯 명이 동시에 진행자로 출연해 뉴스 속보와 정치 이슈 등을 놓고 자유롭게 떠든다. 공동 진행자 다섯 명은 원탁 테이블에 앉아 각자가 준비한 뉴스들을 하나씩 소개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진행자들이 보수 성향으로 구성된 만큼, 이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뉴스들도 공화당이나 보수주의자들 관점에서 해석된다. 정치 뉴스와 자유로운 토크 쇼를 결합해 놓은 이 프로그램은 광고주들이 좋아하는 25~54세 시청자들이 많다. 매일 평균 시청자가 330만 명으로 케이블 TV 뉴스 쇼 가운데 1위다.[5] 그러나 진행자 워터스는 2021년 12월 방송에서 코로나19 대응과 관련, 앤서니 파우치(Anthony Fauci)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을 향해 “매복해서 킬샷(Kill Shot)을 날려야 한다”고 비난했는데, 파우치 소장이 자신에 대한 폭력을 부추겼다고 반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6]

미국의 진보 성향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MSNBC의 〈레이철 매도 쇼〉가 단연 인기다. 여성이자 진보적 시사 평론가인 매도는 2008년 9월부터 〈레이철 매도 쇼〉를 진행하고 있다. 보수적 폭스뉴스 앵커들과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그는 2016년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종말적인 시나리오(apocalyptic scenarios)”라고 비판하며, 트럼프가 대선에 승리할 경우를 대비해 나치 독일의 히틀러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7] 〈레이철 매도 쇼〉는 약 50분간 방송되는데, 진행자가 주요 뉴스들을 골라 직접 논평하고 소개한다. 시청자들은 매도가 전해 주는 관점과 함께 뉴스를 소비한다. 또 정치인 등 뉴스메이커와 토론을 하거나 인터뷰를 하면서 뉴스를 전한다. 출연자는 한 명일 때도 있고 여럿일 때도 있다. 매도에 대한 비중이 워낙 크다 보니, 올해 초 매도가 휴가를 떠나자 MSNBC 프라임타임 시청률이 30퍼센트 급감하기도 했다.[8]
레이철 매도가 진행하는 모습 ⓒMSNBC
CNN은 최근 몇 년 동안 철저하게 앵커를 중심으로 한 뉴스 프로그램들로 성공 가도를 달렸다. 제프 저커(Jeff Zucker) 전 사장의 경영 전략이었다. 그는 라이브와 속보 뉴스 등 스트레이트 중심의 CNN을 앵커와 출연자들이 정치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입장을 밝히고 토론하는 ‘의견 중심 뉴스’ 채널로 바꿨다.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공화당인 트럼프 행정부와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를 비판하는 뉴스들로 시청률을 끌어올렸다. 대표적인 사례가 브라이언 스텔터(Brian Stelter)가 진행하던 〈릴라이어블 소스(Reliable Source)〉였다.
브라이언 스텔터가 진행하는 모습 ⓒCNN
〈릴라이어블 소스〉는 3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으로, 뉴스메이커들을 출연시키거나 논란이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양측의 주장을 전하며 인기를 끌었다. 〈릴라이어블 소스〉는 트럼프 행정부 비판에 앞장서면서 CNN의 진보적 색채를 강조하는 역할을 했는데, 진행자인 스텔터는 폭스뉴스의 앵커인 숀 해니티나 터커 카슨과 상호 비판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러나 2021년 트럼프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비판할 대상이 사라지자, CNN의 프라임타임 뉴스 시청률이 크게 떨어지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CNN의 새 경영진은 〈릴라이어블 소스〉를 폐지하는 등 과도한 의견 중심의 뉴스 프로그램들을 줄이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정치 풍자 토크 쇼


또한 한국과 달리, 미국은 정치 풍자 토크 쇼를 통해 정치 뉴스를 소비한다. 뉴스 프로그램이 아니면서도 정치 뉴스나 정치인을 소재로 신랄하게 풍자를 하고, 정치인을 초대하는 토크 쇼들이 많다. 모두 20~30년 이상 된 장수 프로그램들이고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지상파 TV에서 연예인 관련 정보를 다루면서 정치 풍자를 곁들이는 데일리 심야 토크 쇼가 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NBC 〈투나잇 쇼(The Tonight Show)〉, CBS 〈레이트 쇼(The Late Show)〉이다. 둘 다 진행자가 코미디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투나잇 쇼〉는 제이 레노(Jay Leno)가 진행해 오다가 최근에는 지미 펠런(Jimmy Fallon)이 이어받았다. 〈레이트 쇼〉는 데이비드 레터맨(David Letterman)이 진행하다가 최근에는 스티븐 콜베어(Stephen Colbert)가 진행하고 있는데, BTS가 출연해 국내에서도 유명해졌다.

또 두 프로그램은 최신 뉴스를 가지고 대통령 등 정치인이나 사회 저명인사들에 대한 풍자로 토크 쇼를 시작한다. 예를 들어 러시아군의 무기가 바닥났다고 푸틴 대통령이 순순히 인정하는 가짜 뉴스를 내보내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뉴스를 풍자해 전하는 식이다. 바이든 대통령이나 트럼프 전 대통령도 자주 풍자 소재가 된다. 〈투나잇 쇼〉와 〈레이트 쇼〉는 배우와 가수 등 대중 스타가 주로 출연하지만, 가끔 현직 대통령이나 유력 정치인들이 직접 출연해 화제를 일으킨다. 미국 정치인들 역시 코미디를 곁들인 토크 쇼에 출연해 대중들에게 좀 더 친숙한 이미지를 만들고 자연스럽게 정치적 비전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CBS 〈레이트 쇼The Late Show〉에 출연한 부통령 시절의 조 바이든의 모습 ⓒCBS
NBC 〈투나잇 쇼The Tonight Show〉에 출연한 버락 오바마의 모습 ⓒNBC
〈투나잇 쇼〉와 〈레이트 쇼〉 같은 지상파 심야 토크 쇼와는 결이 조금 다른 프로그램은 케이블 TV인 코미디 센트럴(Comedy Central)에서 방송하는 〈더 데일리 쇼(The Daily Show)〉와 〈콜베어 르포(The Colbert Report)〉가 있다. 데일리 정치 코미디 쇼들이다.

〈더 데일리 쇼〉는 20년 넘도록 매일 방송 중인데, 정치 뉴스를 전문으로 풍자한다. 트레버 노아(Trevor Noah)라는 코미디언이 뉴스 앵커를 흉내 내면서 최신 뉴스들을 전한다. 원래는 존 스튜어트(John Stewart)가 오랫동안 진행하면서 유명해졌다. 〈콜베어 르포〉는 2005년부터 2014년까지 방송됐고, 앞서 소개한 CBS 〈레이트 쇼〉의 스티븐 콜베어가 진행했던 뉴스 패러디 프로그램이다.

〈더 데일리 쇼〉와 〈콜베어 르포〉에 주목할 부분은 이 프로그램들이 단순히 가짜 뉴스를 소개하면서 시청자를 웃기는 코미디 쇼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더 데일리 쇼〉나 〈콜베어 르포〉는 정식 뉴스가 아닌 풍자 형식이긴 하지만 20년 이상 매일 정치 정보를 전달해 왔기 때문에 시청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큰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때문에 특히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 층이 정치 코미디 쇼를 통해 정치 뉴스를 쉽게 접하면서 복잡한 정치 뉴스를 이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해준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9] 자신감에 그치지 않고 이러한 쇼를 통해 정치 뉴스를 얻는 사람들도 많다. 2014년은 〈콜베어 르포〉가 한창 인기이던 시절이었는데, 이때 실시된 퓨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콜베어 르포〉를 통해 뉴스를 얻었다는 사람의 비율은 《월스트리트저널(WSJ)》, 《USA투데이(USA TODAY)》 같은 메이저 신문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10]

특히 젊은 층으로 갈수록 〈콜베어 르포〉에서 정치 뉴스 정보를 얻는 비율이 높고, 내용을 신뢰하는 비율도 높았다. 미국도 젊은 층에서 정치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데, 재미있는 토크 쇼나 코미디 쇼가 신문이나 방송 못지않게 정치 뉴스를 제공해 주고, 정치나 선거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진행자들도 코미디언 이상이다. 시청자들은 진행자를 유력 방송사 앵커들 이상으로 신뢰한다. 전·현직 대통령, 고위 행정부 관리, 유력 대선 주자, 전 세계 지도자들이 기꺼이 이 쇼에 출연했다. 〈더 데일리 쇼〉를 16년간 진행했던 존 스튜어트는 2007년 퓨리서치 여론 조사에서는 가장 신뢰할 만한 언론인 4위에 올랐다. 이어 2009년에는 미국의 주간지 《타임(TIME)》 여론 조사에서 44퍼센트의 지지를 얻어 가장 신뢰할 만한 언론인 1위에 뽑혔고, 2위는 NBC 〈나이틀리 뉴스〉의 명앵커였던 브라이언 윌리엄스(Brian Williams)였다.[11] 《뉴욕타임스》는 당시 기사에서 〈더 데일리 쇼〉가 공공 이슈에 대한 미국인들의 대화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12]
2009년 타임지가 선정한 미국 1위 언론인에 올랐던 존 스튜어트의 방송 모습 ⓒ코미디센트럴COMEDY CENTRAL
〈콜베어 르포〉의 스티븐 콜베어는 2006년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에 포함됐다. ‘진실스러움(truthiness)’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사전에 등재시키는가 하면, 정치인들에 대한 성역 없는 풍자로 유명하다. 콜베어는 2006년 백악관 기자단 만찬회에 초대받아 연설을 했는데,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면전에서 이라크 전쟁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 그리고 폭스뉴스 등 보수 진영을 싸잡아 풍자했다. 미국 기자들 사이에서는 현재까지도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았던 백악관 기자단 만찬 연설로 회자되고 있다.[13]

이처럼 미국의 심야 토크 쇼나 정치 코미디 쇼들은 단순히 재미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정보의 양이 많고, 신랄하게 현실 정치를 비판하면서 뉴스 프로그램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정치 풍자 개그 프로그램이 있지만, 미국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매일 방송된 경우는 없다. 오히려 정치 풍자가 너무 인기를 끌다가 정치권의 눈 밖에 나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정치권이 정치 풍자를 풍자로 넘기지 않거니와 편 가르기에 대한 사회적 민감도가 크기 때문이다.[14] 그러나 정치와 풍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우리나라에는 정치 뉴스를 재미있게 다루는 TV 코미디 쇼나 풍자 토크 쇼가 10여 년씩 장수한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팟캐스트나 유튜브의 정치 콘텐츠 프로그램들이 상대적으로 더 인기를 끌었다고도 볼 수 있다.

 

토크 뉴스의 문제점


토크 뉴스에는 명확한 단점과 부작용이 있다. 첫째는 정치적 편향성과 사회적 갈등을 강화할 수 있다. 토크 뉴스에 등장하는 정치인이나 평론가 등은 대부분 정파성이 강하고, 지지층이 좋아하는 말을 한다. 둘째는 뉴스가 시청률 만능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를 풍자하는 미국 코미디 쇼의 경우, 시청자들이 재미있고 쉽게 정치 정보를 접하는 반면에, 정치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갖게 한다. 이런 문제점들은 우리나라와 미국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고민거리다.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뉴스의 근본적인 책임감이나 공익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 다만 이 부분에 있어 한국과 미국의 구체적인 모습은 조금 다르다.

미국에서는 2022년 5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첫 번째 대변인이었던 젠 사키(Zen Psaki)가 MSNBC로 이직해 정치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15], 2023년에는 OTT 스트리밍 뉴스 앵커를 맡을 예정이다. 정치적 편향성의 문제에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현직 기자들이 청와대에 ‘직행’하는 게 종종 문제가 된다. 방송사 혹은 신문사 간부가 청와대 대변인이나 비서관으로 가면서 정치적 독립성이나 언론 윤리를 해친다는 지적을 받는다.[16] 어느 쪽이 더 정치적 공정성을 해치는지는 몰라도, 국내에서 청와대 대변인이 유력 방송사의 뉴스 프로그램 진행자로 간 경우는 아직 없다.

규제의 차이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지상파 TV와 라디오, 종합 편성 채널, 뉴스 전문 채널 등 모두가 방송통신위원회의 재허가·재승인 심사를 받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내용 심의를 한다. 방송사들은 공적 책무, 공익성, 공정성 등을 요구받고 있으며, 규제 기관들은 쌍심지를 켜고 있다. 방송사들도 뉴스 내용에 조심할 수밖에 없고, 때때로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벌어지지만 큰 틀에서 보면 수위 조절이 된다. 미국은 연방통신위원회(FCC·Federal Communications Commision)가 뉴스 프로그램 내용에 대해 심사를 하지 않는다. 방송사와 앵커들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나 정치적 이해관계, 그리고 시청률 등에 따라서 진보 혹은 보수 어느 한쪽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한국에 비해 강하다.

특히, 유튜브 정치 토크 채널들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와 미국 모두 TV 방송사 프로그램처럼 별도의 심사를 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어떤 채널들은 내용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것을 넘어 ‘가짜 뉴스’가 자주 논란이 된다. 유튜브 가짜 뉴스에 대해 현실적으로 추가적인 규제가 어렵다면, 기성 뉴스 매체들이 스트리밍 뉴스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양화가 악화를 구축하도록’ 노력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유력 방송사들이 토크 뉴스 형식의 OTT 전용 스트리밍 뉴스들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1]
Axios, 〈Fox News surges over broadcast networks in prime time〉, Axios, 2020. 7. 1.
[2]
Julia Stoll, 〈Distribution of watching cable TV programming in the United States in 2016 and 2021, by genre〉, statista, 2021. 12. 21.
[3]
Mark Joyella, 〈Fox News Channel’s Sean Hannity Becomes Longest-Running Host In Cable News History〉, 《Forbes》, 2022. 4. 21.
[4]
Jim Rutenberg, 〈Sean Hannity Turns Adviser in the Service of Donald Trump〉, 《The New York Times》, 2016. 8. 2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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