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류 시간을 늘려라
96분. 10세 이상의 우리나라 국민이 하루 중 이동에 쓰는 시간이다.[1] 매일 96분 동안 사람들은 다양한 MaaS 서비스들을 이용한다. 출근 버스를 기다리면서 언제 버스가 도착하는지 대중교통 알림 서비스를 확인하고, 환승이 필요할 땐 최적 환승 경로를 찾는다. 자가 운전으로 출근하는 경우라면 내비게이션으로 교통 상황을 확인한다.
업계 불문 다수 서비스들이 주목하는 건 바로 고객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예컨대 나이키는 주 고객층인 청소년들의 스포츠 활동을 장려하며 세계 스포츠 용품 업체의 1위 자리를 지켜 왔다. 스포츠 활동의 밝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노출하며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고, 1994년에서 1998년까지 연간 실적이 세 배 이상 급등하는 성장세를 보였다.[2] 그러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나이키의 성장률은 둔화하기 시작했다. 그 원인으로는 다른 스포츠 용품 업체가 아닌 소니나 애플과 같은 IT 업체가 꼽혔다. 나이키의 주 고객인 청소년층은 통상 지출의 60퍼센트를 신발 및 스포츠 용품에 써왔으나 이들이 닌텐도를 비롯한 게임을 접하며 스포츠에 할애하는 시간이 감소했고, 그에 따라 지출 또한 자연스럽게 30퍼센트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즉, 산업 간의 경계가 무너지며 기업들은 특정 아이템이나 서비스가 아닌 소비자의 시간을 두고 경쟁하기 시작했다. 이동 서비스에서도 역시 소비자 체류 시간에 주목하고 있다.
MaaS는 상술했듯 ‘사람’을 중심으로 이동의 전 과정에 관여하며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나뉜다. 고객에게 이동 수단만 제공하는 사업, 고객에게 이동 수단에 운전 기사까지 직접 제공하는 사업, 그리고 이동 수단과 기사를 고객과 연결해 주는 사업이다. 이제부터 다룰 MaaS 산업들 모두 이 세 영역으로 분류할 수 있다.
산업의 분수령
현 단계에서 국내 모빌리티 산업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규정이다. 법과 규제가 사업의 연속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택시 플랫폼 타다(TADA)의 사례를 통해 드러났다. 2019년 타다의 출범과 동시에 기존 택시 산업은 타다 서비스를 ‘위법 콜택시’로 주장하며 해당 논란은 커졌다. 타다 측에선 자사를 신종 초단기 렌터카 서비스로 주장한 반면, 택시 업계 측에선 타다 서비스와 기존 택시의 유사점을 비판하며 첨예하게 대립했다. 2020년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타다는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타다 서비스가 기반하고 있던 자동차대여법의 ‘운전자 알선 허용 범위’가 구체화되며 더 이상 관련 사업을 이어가지 못하게 됐다. 제도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모빌리티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금, MaaS에 관심이 있다면 관련 사업이 각각 어떤 분야에 속하고 어떤 법과 규제의 영향을 받는지 파악하는 것은 필수다.
여객자동차운송사업
말 그대로 자동차로 사람을 이동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수요에 응하여 자동차를 사용해 유상(有償)으로 여객을 운송하는 사업을 뜻하며, 우리나라에선 법적으로 차를 이용해 사람을 이동할 때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크게 세 가지, 노선·구역·수요응답형 사업으로 구분된다.[3]
노선 여객자동차운송사업은 정해진 노선을 따라 정기로 운행하는 사업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버스가 여기 해당한다. 시내버스와 농어촌버스 모두 단일 행정 구역에서 운행하는 것이 특징인데, 시내버스의 행정 구역은 주로 특별시, 광역시와 같이 지정되고 농어촌버스는 군(郡)을 기준으로 구분된다. 한편 마을버스는 단일 행정 구역에서 사업한다는 점은 같지만 기점이나 종점의 특수성, 그리고 사용하는 자동차의 특수성 등을 고려해 다른 사업자가 운행하기 어려운 구간을 오가는 것이 특이점이다. 시외버스는 국토교통부령에 따라 고속형, 직행형 및 일반형 등으로 구분된다.
구역 여객자동차운송사업은 노선이 아닌 특정 사업 구역을 지정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택시가 해당되며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장에서 다룬다. 이외에도 전세 버스나, 특수한 자동차를 사용하는 특수 여객이 포함되는데 이들은 전국을 사업 구역으로 정한다.
수요응답형 여객자동차운송사업은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운행 계통과 시간, 횟수를 탄력적으로 조정한다. 노선을 미리 정하지 않고 그때그때의 수요에 따라 운행 구간과 정류장을 유동적으로 운행한다. 통상 대중교통이 부족한 지역에서 볼 수 있다. 교통 과소화 및 공동화가 심한 지역의 이동권을 보장하고 고령층의 의료·문화·복지 접근성을 개선하는 것은 물론 교통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됐다. 다만 해당 서비스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일부 지역에서 시행 중이다. 대표적으로 현대자동차에서 운영하는 셔클과 씨엘에서 운영하는 MOD(Mobility On Demand)가 있다. 셔클은 세종시와 파주시 일부 지역, MOD는 인천시 영종국제도시에서 운행 중이다.
수요응답형 서비스는 미래 이동 서비스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노선버스와 택시를 결합해 서로의 단점을 보완했기 때문이다. 노선버스의 경우 고정된 노선, 고정된 정류장만 오가 수요와 무관하게 시간대별로 운행된다. 택시의 경우 소수 인원만 이동 가능하다. 하지만 수요응답형 서비스는 운행 범위 내에선 승객의 실시간 요청에 따라 정하차 지점과 경로를 유동적으로 변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자동차대여사업
보통 ‘렌터카 회사’로 불린다. 롯데렌탈, SK렌터카와 같은 주요 렌터카 사업자, 쏘카나 그린카와 같은 카셰어링 업체들이 여기 해당한다. 특이한 점은 주요 업체 20여 곳에 의해 대부분의 시장이 형성돼 있다는 점이며, 그 외엔 1000여 개의 작은 중소 사업자가 렌터카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만약 전국을 대상으로 영업할 경우 차량을 최소 50대 보유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참고로 단기 렌터카 시장은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분류돼 대기업의 진출이 막혀 있다.
자동차 대여사업은 대여 기간에 따라 초단기, 단기 및 월장기, 장기로 구분한다. 대다수 렌터카 회사의 주요 서비스는 장기 렌트로, 보통 1년 이상 차량을 대여하는 것을 말한다. 단기 및 월장기 렌트는 하루 혹은 월 단위로 차량을 대여하며, 주로 차량 보유 수 1000대 이하의 중소 렌터카 회사들이 이 서비스를 제공한다. 대표적인 상품은 특이하게도 일반 렌트가 아닌 보험 대차 서비스다. 자동차 사고 시 자동차를 대여해 주는 것이다. 단기 렌터카 업체들의 주요 매출 상품은 보험 대차(38퍼센트), 단기 렌트(34퍼센트), 장기 렌트(28퍼센트)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보험 대차 시장의 정확한 규모는 파악되지 않으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약 6000억 원으로 추정된다.[4] 일명 카셰어링으로 불리는 초단기 렌트는 30분 혹은 시간 단위로 차량을 대여한다. 쏘카, 그린카, 피플카 같은 카셰어링 업체들은 최근 IT 기술을 활용해 무인 차량 대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여객자동차운송플랫폼사업
플랫폼과 자동차를 확보해, 고객 수요에 응해 운송 서비스나 그에 부가되는 서비스를 유상으로 제공하는 사업이다. 2019년 말 타다 서비스의 출범 이후 2020년 4월 제정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흔히 ‘타다법’에 의해 규정된다. 이 법이 나오기 전까지 플랫폼을 이용한 다양한 이동 방식은 규제받지 않았다. 타다로 촉발된 택시 사업자들과의 분쟁에 따라 사업에 대한 별도 규정도 추가됐다.
해당 제도가 생긴 후 플랫폼사업은 크게 운송, 가맹, 중개 세 가지로 나뉘었다. 운송사업에선 요금 규제나 사업 구역 제한, 외관 규제 등에서 규제가 대폭 완화됐다. 예컨대 차량을 확보하는 방식에서 렌터카가 가능하도록 바뀌었다. 또 신규 사업자의 허가 기준은 ‘차량 30대 이상’으로 지정됐고 시설 및 보험 가입 허가 대수를 관리하며 매출액의 5퍼센트를 기여금으로 납입하도록 했다. 이 기여금은 300대 이상의 차량을 운행하는 기업에 적용되는데 수익성에 큰 압박이 된다. 중소사업자의 경우 이걸 25~50퍼센트 수준으로 감면받는 이점 때문에 이 사업 모델로 운행되는 회사는 코액터스, 레인포컴퍼니, 파파모빌리티 등 대부분 스타트업으로 이뤄져 있다.
두 번째로 가맹사업은 이전의 택시 사업자 관련 규제를 합리화한 것이다. 이전에는 법인 기준으로 가맹사업자와 계약해야 했으므로 차량 100대를 보유한 법인 택시는 한 가맹사업자와만 계약이 가능했다. 완화된 규제에선 법인 택시의 차량 단위 가맹 계약 체결을 허용해, 한 법인 택시 회사가 여러 가맹사업자와 계약할 수 있게 됐다. 또 다른 변화로 예약형 가맹택시제와 요금 자율 신고제를 도입했으며, 사업 구역을 광역화함으로써 규제를 완화했다. 대표적인 가맹브랜드로 카카오 T 블루, 타다, 마카롱 M 등이 해당하며 주요 플랫폼사업자들이 많이 택하는 사업 방식이다.
마지막은 중개사업이다. 이전에는 관련 규정이 없었으나, 타다 논란과 함께 중개사업은 제도권으로 편입했다. 규정에 따라 택시 사업자는 사업자를 등록하고 중개 요금을 신고할 경우 별도의 콜비를 받을 수 있으며, 우리가 흔히 아는 카카오 T 택시, 티맵 택시 등이 여기 해당한다.
세 가지 사업 중 가장 유망한 것은 가맹사업이다. 다양한 부가 서비스 개발이 가능해 신규 수익 모델을 만들 수 있고, 요금제가 자율 신고로 완화되면서 신규 수익원 확보가 시급한 플랫폼 회사로선 가맹택시를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향후 가맹택시를 중심으로 서비스 및 수익 확대가 전체 택시 시장의 흐름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시설대여업
시설대여업은 크게 두 개 법에 의해 관리·감독된다. 하나는 여신전문금융업법이고, 다른 하나는 시설대여업법이다. 두 법이 각각 정의한 시설대여업의 기준은 대동소이하다.
우선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르면 시설 대여란 특정 물건을 거래자가 일정 기간 사용하도록 하고, 그 기간 동안의 대가를 정기적으로 나눠 지급받으며, 대여 기간이 끝난 후 물건의 처분에 관해선 당사자 간의 약정으로 정하는 방식의 금융이다. 반면 시설대여업에서 정의하는 시설 대여란, 이용자가 선정한 특정 물건을 시설 대여 회사가 새로 취득하거나 대여받아 이용자에게 일정 기간 이상 사용하게 하고 그 기간에 걸쳐 일정 대가를 정기적으로 지급받으며, 그 기간이 끝난 뒤 물건의 처분에 관하여는 당사자 간 약정으로 정하는 물적 금융이다. 두 정의에서 차이는 결국 금융업법 여부에 따라 ‘금융’ 혹은 ‘물적 금융’으로 표현된다는 점이다.
즉 두 법 모두 시설대여업을 특정 물건을 대여하는 것으로 정의하는데, 이 ‘특정 물건’에 자동차가 포함된다. 어느 법에 따라 사업자를 등록했는지에 따라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차이가 난다. 첫 번째는 표기의 차이다.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르는 사업자만이 상호에 리스, 시설 대여, 여신, 할부 금융과 같거나 비슷한 표시가 가능하다. 즉 금융사로 보여지는 것을 허용한다. 두 번째는 부가 가치세 면제다.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르는 사업자만이 부가 가치세가 면제되는 반면, 기타 사업자는 면제받지 못한다.[5] 부가가치세 면세 여부에 따라 실제 고객이 내야 하는 대여료 혹은 리스료가 달라진다. 월 납부해야 할 금액이 60만 원이라고 한다면, 리스료는 60만 원이지만 실제 대여료는 부가세 10퍼센트를 포함한 66만 원이 되는 구조다. 또한 두 법에 사업자로 등록하는 기업도 상이한데, 여신전문금융업법을 따르는 사업자는 대표적으로 현대캐피탈, KB캐피탈과 같은 여신사인 반면 시설대여업법에 의한 사업자는 더트라이브(the trive)와 같은 중고 자동차 구독 서비스 업체가 해당한다.
동물운송업
과거에만 해도 동물은 운송사업에서 물건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1991년 동물보호법이 제정된 이후 해당 법안은 발전해 왔다. 동물운송업은 동물을 이동하는 사업으로, 운행 요금을 신고하고 설비 요건을 갖춘 차량을 이용해야 한다. 주요 서비스로는 카카오모빌리티가 운영하는 카카오 T 펫 서비스가 있으며 2021년 7월 기준 총 등록 사업자는 700여 곳에 달한다.
임대업
MaaS 중에서도 국내 자동차운송사업 규제에서 조금 벗어난 사업이 바로 마이크로 모빌리티 영역이다. 마이크로 모빌리티는 킥보드나 전기 자전거 등을 대여해 주는 사업으로 최근 5년간 급속도로 성장 중이다. 스포츠 및 레크레이션 용품 임대업으로 분류되며, 지자체 허가나 등록이 필요하지 않다.
다만 2021년 5월부터 도로교통법 개정에 따라 시행된 안전 규제 강화로 사업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개정된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킥보드가 원동기로 분류됐고, 원동기 면허 이상 소지자에 한해 개인형 이동 장치 운행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소비자 풀은 대폭 줄었을뿐더러 헬맷 착용과 같은 안정 규정으로 소비자 불편이 크게 증가해 서비스 이용률은 급감했다. 대표적인 마이크로 모빌리티 사업자로 지쿠터 운영사인 지바이크, 카카오 T 바이크를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 킥고잉을 운영하는 올룰로(olulo), 스윙을 운영하는 더스윙(The Swing) 등이 있다.
모빌리티 산업의 발목을 잡는 대다수는 규제다. 여러 디바이스 중에서도 특히 자동차로 서비스할 경우 규제는 더욱 엄격해진다. 앞서 말한 여섯 가지 분류에 해당하지 않는 운송 서비스는 불법이거나, 법률로 규정되지 않은 서비스다. 이들은 언제든 불법이 될 수 있고, 이로 인해 사업이 중단될 리스크가 크다.
유상 자동차운송업을 법으로 규제하게 된 이유엔 민법의 불완전함이 크다. 서비스 제공자에게 책임을 부여하지 않고 유상 운송 서비스가 이뤄질 경우, 기존 민법에서 이를 따로 다루는 규정이 없어 불필요한 분쟁의 소지가 생길 수 있었다. 이에, 보다 적극적으로 유상 운송과 관련된 일반 규칙과 상세 규정을 만들며 규제가 강화됐다. 그러나 일명 ‘면허권’으로 불리는 운송사업권이 기득권을 형성하며, 새로운 서비스의 기회를 막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타다를 생각할 수 있다.
타다는 차량을 대여하는 고객에게 렌터카와 운전자를 알선한다. 개정 전 규정에 따르면, 운전자를 임차인에게 알선할 수는 없지만 예외 사항으로 ‘승차 정원 11인승 이상 15인승 이하인 승합자동차를 임차하는 사람’에게는 알선할 수 있었다. 타다는 이 조항을 근거로 서비스를 제공했고, 택시 단체들은 면허 없이 ‘불법 콜택시’를 영업한 이유로 소송을 진행했으나 결론적으로 해당 건은 재판부가 2심까지 무죄로 판결했다. 다만 해당 예외 조항을 포함하던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이 개정되며 기존 시행령에 ‘관광 목적 및 대여 시간 6시간 이상, 대여·반납 장소가 공항, 항만인 경우로 한정함’이라는 조건이 추가됐다. 결국 타다는 서비스를 중단했다.
즉, 모빌리티 서비스 규제는 이 생태계에 규칙과 체계를 만들어 사업자와 소비자 간 분쟁을 줄이는 것에 기여했지만 규제로 인해 생겨난 기존 사업자의 특권으로 새로운 서비스가 출현할 기회와 고객 편의를 저해하는 부작용도 생겨났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일부 서비스가 성장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긴 했지만 다양한 부처 협의, 승인까지 걸리는 시간 등은 지금도 풀어야 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