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클랜드 전쟁, 선을 긋다 영국 군인들이 전한 포클랜드 전쟁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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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믹 오헤어
에디터 백승민
발행일 2023.07.19
리딩타임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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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3,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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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깊이 읽어야 하는 이유
남태평양 위 작은 섬에서의 전쟁이 지금의 영국과 아르헨티나를 만들었다. 전쟁은 외교로 얼굴을 바꾸어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아르헨티나 남단에서 동쪽으로 64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 남대서양에 작은 섬 하나가 있다. 국적에 따라 이곳을 부르는 이름은 달라진다. 영국인이라면 포클랜드 제도, 아르헨티나인이라면 말비나스 제도라고 이곳을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상 포클랜드 제도라고 불리는 이곳에 대해 영국과 아르헨티나는 오랜 기간 영유권 분쟁을 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1816년 스페인에서 독립하며 이곳을 넘겨 받았다고 주장하고, 영국은 1833년 이후 실효적 지배권을 내세운다.

1982년 일어난 포클랜드 전쟁의 결과로 포클랜드 제도는 현재 영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다. 그 시간 동안 주변에서는 유전이 개발되었다. 작은 섬 하나가 누구 손에 들어가는지에 따라 두 나라가 가지는 바다도, 자원도, 상상력의 한계도 달라진다. 전쟁은 끝나지 않은 채 외교로 얼굴을 바꾸었다. 아르헨티나는 올해 3월, 다시 포클랜드 제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전쟁은 선을 긋는다. 지도에도, 국가와 개인의 운명에도 진하고 깊은 선을 긋는다. 포클랜드 전쟁 이후의 영광과 상처는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지금을 만들었다. 개인들은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저자는 40년 전 포클랜드 전쟁을 치른 영국 해병대원들의 입을 통해 그 기억들을 모았다. 포클랜드 전쟁은 대영제국의 마지막 흔적인가, 아르헨티나의 몽니인가. 적어도 군인들에게 전쟁은 주어진 ‘역할’이었다. 무의미하다고 평해지는 이 전쟁이 단지 무의미하지만은 않은 이유다.

* 16분이면 끝까지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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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완결
저자 소개
믹 오헤어(Mick O’Hare)는 영국의 작가 겸 편집인으로, 과학 주간지인 《뉴 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의 편집인으로 일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시시콜콜 사이언스북(Why Don't Penguins' Feet Freeze?)》, 《스파게티 사이언스(How to Fossilise Your Hamster)》 등이 있다

역자 전리오는 서울대학교에서 원자핵공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총연극회 활동을 하며 글쓰기를 시작해 장편 소설과 단행본을 출간했다. 음악, 환경, 국제 이슈에 많은 관심이 있으며 현재 소설을 쓰면서 번역을 한다.
키노트
이렇게 구성했습니다

1. 사우스조지아에 당도한 두 나라, 영국과 아르헨티나
2. 40년 전, 포클랜드 전쟁의 시작
3.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침공 개시, 그리고 전쟁
4. 제국의 반격과 국제 사회의 반응
5. 사우스조지아 전투가 영국 대원들에게 남긴 유산

에디터의 밑줄

“갈티에리는 낙담한 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 독재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확실한 기법에 의지하기로 했다. 이는 오늘날에도 우리가 여전히 목격할 수 있는 방식이며, 2022년에는 유럽의 동쪽 변방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

“영국 해병대원들은 끈질기게 저항했고, 아르헨티나 측의 추가 병력을 실은 또 다른 헬리콥터가 섀클턴하우스의 반대편에 도착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총리는 포클랜드 제도의 주민들이 아르헨티나의 ‘군홧발’ 아래에 살게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확실한 것은 영국 해군의 특수부대에 의한 포클랜드 제도와 사우스조지아의 성공적인 탈환이 마거릿 대처의 총리직을 구원까지는 아니더라도 더욱 강화시켜 주었으며, 갈티에리의 몰락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22명의 영국 해병대원들이 거의 이겨낼 수 없는 역경을 버텨내기 위해서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으리라는 것은 그저 애국주의적인 주장이 아니다. 만약 아르헨티나 선박에 타고 있던 부대원들을 모두 고려한다면 정주민이 전혀 살지 않는 바위 덩어리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무려 50대 1의 싸움을 벌여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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