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팅힐〉로 유명한 로저 미첼 감독의 유작 〈웰링턴 공작의 초상(2021년)〉은 1961년 영국에서 일어난 실화에 바탕을 둔다. 승객에게 너무 많은 말을 건넨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 전직 택시 운전사이자, 언젠가 당선되리라는 믿음으로 오늘도 희곡을 써 내려가는 희곡 작가인 60대 켐프턴 번턴. 그는 자신의 집을 급습해 수신료 납부를 독촉하는 단속반원들에게 ‘No BBC, No license’를 외치고, TV가 유일한 삶의 즐거움인 저소득층 노인들에게까지 수신료를 징수하는 게 얼마나 부당한지를 세상에 알리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영국 정부가 웰링턴 공작의 초상화를 한 미국 수집가로부터 14만 파운드에 사들여 내셔널 갤러리에 전시할 거라는 뉴스를 접하게 된다. 예술품에는 큰돈을 쓰면서 저소득층 노인 복지에는 무관심한 정부에 화가 난 번턴은 내셔널 갤러리로 몰래 들어가 초상화를 훔쳐 낸다.
“정부가 이 그림에 큰돈을 지불한다기에 제가 계산해 봤죠. 그 돈을 10퍼센트 이자를 받는 은행 계좌에 넣으면 1년에 3500가구의 TV 수신료를 지불할 수 있고, 그 모든 사람을 다시 연결할 수 있어요.”
번턴은 법정에서 평소 벌였던 수신료 거부 운동의 일환으로 초상화를 잠시 빌렸고, 목표한 시간이 되어 제자리에 다시 가져다 놓았다고 변론을 한다. 평생 희곡을 쓰며 꿈과 유머를 잃지 않고, 세상과 돈키호테처럼 부딪치며 정의로운 삶을 놓치지 않았던 번턴의 이야기에 매료된 배심원단은 초상화를 훔친 죄목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다. 그리고 ‘No BBC, No license’를 외치던 시골 마을의 번턴 할아버지는 본의 아니게 전국구 스타가 된다.
이와 비슷한 일이 1980년대 대한민국에서도 있었다.
“KBS를 시청하지 않으니 시청료도 내지 않겠다. TV 시청료는 민정당과 정부만 내라.” 시작은 1984년, 전라북도 완주군 가톨릭 농민회였다. 전두환 정권 시절, 땡전 뉴스(9시 시보가 ‘땡’ 치면 ‘전’두환 대통령으로 시작하는 홍보 방송이 나오는 KBS 뉴스를 조롱하던 의미로 붙인 이름)로 불리던 TV 왜곡 보도에 대한 저항 차원에서 시청료 거부 운동을 선언한 것이다. 전라도의 작은 시골 마을 가난한 농부들이 시작한 KBS 시청료 거부 운동은 재야 운동 단체, 종교 단체들이 호응하면서 전국적인 민주화 운동으로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1986년 1월 KBS TV 시청료 거부 기독교 범국민운동본부가 발족했고, 같은 해 2월에는 범국민운동본부가, 같은 해 9월에는 시청료 거부 및 언론자유 공동대책위원회가 결성됐다. 그 결과 1984년 1256억 원까지 늘어났던 KBS 시청료 수입은 1987년 1012억 원, 1989년 790억 원으로 급감한다.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한국 공영 방송에 대한 시청자들의 심판은 강력했다. 당시 TV 시청료 거부 운동은 한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공영 방송의 권력이 공영 방송의 주인인 시청자에게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그리고 4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2023년, 대한민국에 또 하나의 시청료 거부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수신료로 이름이 바뀐 2023년 판 시청료 거부 운동에 불을 지핀 것은 시청자가 아니라 정부였다.
2023년 3월 대통령실은 KBS TV 수신료를 전기 요금과 분리 납부하는 방안을 대통령실의 대국민 소통 창구 ‘국민제안 홈페이지’에 올리며 사실상 수신료 거부 행동을 시작했다. 이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댓글을 근거로 방송의 공정성, 방만 경영 등의 문제가 제기됐다며 방송법 시행령 개정에 착수한 것이 같은 해 6월, 그리고 수신료 분리 징수를 골자로 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한 것이 7월이었다. 빨라도 너무 빠르고, 거칠어도 너무 거친 속전속결의 과정이었다.
수신료 징수 방식을 변경하려면 우선 시청자에게 그 의견을 묻는 게 당연한 순서다. 시청자의 의견을 묻는 과정은 대통령실의 ‘국민제안 홈페이지’에 한정되어 버렸고, 그 흔한 공청회 한 번 열리지 않았다. 공론 조사와 같은 창구는 고려 대상이 되지도 않았다. 통상 40일 이상인 입법 예고 기간도 10일로 단축했고, 그 입법 예고 기간에 접수된 의견도 무시됐다. 입법 예고 기간에 접수된 총 4746건의 의견 중 반대 의견은 4334건으로 89.2퍼센트에 달했는데, 방송통신위원회는 이 의견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의지일 뿐이었다.
공영 방송의 주인은 누구일까? 시청자일까, 정부일까? 40년 전 전두환 정부도, 현 정부도 공영 방송의 주인은 시청자가 아니라 정치권력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야당인 민주당, 언론 노조, 진보적 시민단체들은 이런 정부의 행보를 정권의 방송 장악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사실 민주당 등 진보 진영이 정치권력을 잡고, 이 권력과 조응하는 노조가 공영 방송의 경영진에 자리 잡았을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청자가 주인이라는 생각은 실체 없는 관념, 수사적인 단어에 불과했다. 해고당한 전직 택시 운전사, 작가가 되겠다며 오늘도 희곡을 써 내려가는 희곡 작가, 자식을 잃은 부모, TV가 유일한 삶의 즐거움인 저소득층 노인, 그러니까 〈웰링턴 공작의 초상〉의 주인공 번턴 같은 시청자가 공영 방송의 주인이라는 생각은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굉장히 낯선 상황이다.
모든 정치권력은 공영 방송 길들이기를 욕망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길들여진 공영 방송에게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매우 진부한 표현이 되겠지만 공영 방송의 미래는 시청자에게 있다. 공영 방송이 왜 필요하고, 어떤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고, 어떤 재원을 토대로 해야 하는지는 시청자들이 결정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번턴 같은 시청자들을 찾아내고 그들을 무대 중심에 올리는 것이, 낯설지만,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 가는 첫걸음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웰링턴 공작의 초상〉의 켐프턴 번턴은 법정 진술 중에 자신이 14살 때 바다에 빠졌을 때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해변에서 1.5킬로미터 떨어진 바다에 표류하면서도 누군가는 해변에 벗어둔 자신의 옷을 보고 나를 구하러 올 줄 확신했다고.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이 없으면 나도 없어요(I am not me without you.)”
서로 필요하다는 의미냐는 변호사의 질문에 “그게 아니라 당신이 그냥 나예요. 내가 나인 건 당신 덕분이고, 당신이 당신인 건 내 덕이죠”라고 덧붙인다.
시청자가 그냥 공영 방송이다. 이 단순한 명제로부터 한국 공영 방송의 새로운 챕터가 한 장 한 장 두껍게 써져야 한다. 대한민국 공영 방송의 모든 이야기와 권력은 시청자로부터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