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망치는 기적의 과일
아주 먼 옛날에, 어느 머나먼 마을에서 마법의 과일이 열렸다. 이 과일을 짜내면 아주 특별한 오일이 나왔다. 이 오일을 넣으면 건강에 더 좋은 쿠키, 거품이 더 많이 나는 비누, 더 바삭한 과자를 만들 수 있었다. 립스틱을 더 부드럽게, 아이스크림을 녹지 않게 할 수도 있었다. 이런 놀라운 능력 덕분에 전 세계 사람들이 이 과일과 오일을 구입하게 되었다.
이 과일을 재배하던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더 많이 심기 위해서 숲을 불태웠고, 고약한 연기로 뒤덮인 숲에서는 많은 생명체들이 허둥지둥 도망쳐야 했다. 나무들은 불에 타면서 뜨거운 가스를 대기 중으로 방출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들은 숲의 생명체들을 사랑했고, 이미 지구의 온도가 너무 뜨겁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몇몇 사람들은 이 오일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로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숲은 계속해서 불태워졌다.
이건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마법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열대 기후에서 자라는 기름야자나무(Elaeis guineensis)의 열매를 이용해 만드는 이 오일은 바로, 세계에서 가장 유용하게 사용되는 팜오일
[1]이다. 이 오일은 튀김을 예쁘게 튀길 수 있게 해주고, 다른 오일들과도 잘 섞인다. 다른 종류의 지방과도 잘 혼합되며 정제된 이후에도 보존성이 좋아서, 포장용 제과·제빵 상품에 즐겨 사용되는 성분이다. 제조 비용도 저렴해서 면실유(목화씨에서 짜낸 반건성유)나 해바라기씨유 같은 튀김용 기름보다 싸다. 그리고 거품을 내는 물질이어서 사실상 거의 모든 샴푸와 액상 비누, 세정제 같은 제품에 들어가 있다. 화장품 제조업체들은 바르기 쉬우면서도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동물성 수지보다 팜오일을 선호한다. 특히 유럽 연합(EU) 지역에서는 바이오 연료를 만들기 위한 저렴한 원재료로 더욱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가공식품에 첨가되면 천연 보존제 역할을 하고, 아이스크림의 녹는점을 높여서 잘 녹지 않게 만든다. 팜오일은 건축 자재인 섬유판 안에 든 입자들을 서로 결합시키는 접착제로 사용될 수도 있다. 팜오일 야자나무의 줄기와 잎사귀들은 합판부터 말레이시아 국영 자동차 회사의 복잡한 차체를 만드는 데까지 사용될 수 있다.
지난 50년 동안 전 세계의 팜오일 생산량은 꾸준히 증가해 왔다. 1995년부터 2015년까지 연간 생산량은 1520만 톤에서 6260만 톤으로 네 배가 늘어났다. 2050년이 되면 다시 네 배가 더 늘어 2억 4000만 톤에 달할 전망이다. 팜오일 생산에 이용되는 대지 면적은 경악할 만한 수준이다. 팜오일 재배 면적은 지구 전체 농경지의 1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150개국에서 30억 명의 사람들이 팜오일이 함유된 제품을 사용한다. 세계적으로 1인당 매년 8킬로그램의 팜오일이 소비되고 있다.
전 세계 팜오일 생산량의 85퍼센트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나오는데, 세계적인 팜오일 수요는 농촌 지역의 소득 증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엄청난 환경 파괴와 노동 인권 탄압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숲을 개간하고 야자수를 더 많이 심기 위해서 불을 놓는 일은 2억 6100만 명이 거주하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더 많은 팜오일을 생산해서 더 높은 수익을 얻고자 하는 동기로 인해서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이 지역에서만 서식하는 수마트라 호랑이, 코뿔소, 오랑우탄은 보금자리를 잃고 멸종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정작 소비자들은 이 물질을 사용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를 ‘팜오일 감시견’이라 칭하는 단체인 팜오일 조사단(Palm Oil Investigations)에서 작성한 목록에 따르면, 식품이나 가정용품, 퍼스널 케어 용품 등 흔히 접할 수 있는 제품들 중에서 팜오일을 함유하고 있는 것이 200개가 넘지만, 실제로 성분 표시를 한 경우는 겨우 10퍼센트에 불과했다.
팜오일은 어떻게 해서 우리 생활 구석구석까지 침투하게 되었을까? 하나의 결정적인 계기로 인해서 이런 소비 촉진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여러 산업에서 이런저런 더 나은 성분들을 바꿔 가며 사용하다 보니 마침 완벽한 물질을 발견한 것이었고,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동시에 팜오일 생산국들은 이를 빈곤 퇴치의 전략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국제적인 금융 기구들 역시 팜오일을 개발 도상국의 성장 동력으로 바라보고 있다. 일례로 국제 통화 기금(IMF)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팜오일 생산량 증대를 촉구해 왔다.
팜오일 산업이 성장하면서 그린피스와 같은 환경 보호 단체는 탄소 배출과 야생 서식지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들에 대해 경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팜오일을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지속 가능 생산자 인증을 해주는 기관들도 있다. 팜오일 산업의 성장세에 반격을 개시한 곳도 있다. 2018년 4월, 영국의 슈퍼마켓 체인 아이슬란드(Iceland)는 2018년 말까지 모든 자체 식품 브랜드에서 팜오일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2018년 12월에는 노르웨이가 바이오 연료 생산 용도의 팜오일 수입을 금지했다.
하지만 팜오일의 영향에 대한 경각심이 퍼져 나가기 시작한 시기가 너무 늦었던 건지도 모른다. 팜오일은 이미 소비자 경제에 너무나도 깊게 자리하고 있어서, 이제 그것을 없앤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아이슬란드 슈퍼마켓도 2018년까지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자체 식품 브랜드에서 팜오일을 빼는 대신에, 팜오일이 포함된 식품에서 자사의 상표를 지워 버리기로 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지속 가능한 성분들로 제조되었는지는 고사하고 어떤 제품에 팜오일이 함유되었는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일조차도 초능력 수준의 의식이 필요할 정도다. 사실 서구 소비자들이 경각심을 갖는다고 해서 상황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 팜오일 수요에서 유럽과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4퍼센트 미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 수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곳은 아시아다.
브라질의 삼림 파괴에 대한 경보가 처음 울린 이후로 파괴 행위를 — 멈추게 한 것이 아니라 — 둔화시키기까지 족히 20년이 걸렸다. “서구의 팜오일 소비는 많지 않으며, 그 외 지역에서는 이 문제에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내추럴 해비타트(Natural Habitats)의 상무인 닐 블롬퀴스트(Neil Blomquist)는 말한다. 미국 콜로라도에 위치한 이 회사는 에콰도르와 시에라리온에서 팜오일을 생산하고 있는데, 그들은 생산 과정에 있어서 지속 가능한 방식을 아주 엄격하게 고수하고 있다. “그러니까 (기존 업계에서는) 굳이 생산 방식을 바꿀 필요가 없는 것이죠.”
트랜스 지방을 대체하다
팜오일이 전 세계를 휩쓴 요인으로는 다섯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우선 첫째로, 서구에서 건강에 좋지 않은 지방을 팜오일이 대체해 왔다. 둘째, 생산자들이 저가로 공급을 지속해 왔다. 셋째, 가정용품과 개인 위생용품에 사용되던 비싼 오일들을 대체해 왔다. 넷째, 거듭 말하지만, 가격이 싸기 때문에 아시아 국가들에서 요리유로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아시아 국가들이 점점 더 부유해지면서 지방 소비가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상당 부분을 팜오일이 차지했다.
팜오일이 폭넓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가공식품에서부터였다. 1960년대에, 버터에 많이 들어 있는 포화 지방이 심장병 발병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과학계의 경고가 나왔다. 그러자 영국-네덜란드계의 거대 기업인 유니레버(Unilever) 같은 식료품 제조업체들이 버터 대신 포화 지방 함량이 낮은 식물성 오일로 만든 마가린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에 이르자 마가린에 들어가는 오일의 제조 방식인 부분 수소 첨가 과정에서 트랜스 지방이라는 다른 종류의 지방이 생성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트랜스 지방은 포화 지방보다도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이었다. 유니레버 이사회는 트랜스 지방이 좋지 않다는 과학적인 견해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빼버리기로 결정했다. “유니레버는 자사 제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건강 관련 의식에 대해서 아주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니레버 이사회 임원이었던 제임스 W. 키니어(James W. Kinnear)의 말이다.
결정이 이루어지자 체제 전환은 전격적으로 진행되었다. 1994년 유니레버의 정제 공장을 관리하던 게리트 반 두이즌(Gerrit van Duijn)은 로테르담 본사의 사장단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15개국에 걸쳐 있는 20곳의 유니레버 공장에서 생산되는 600여 개의 지방 제품에서 부분 수소 첨가 방식으로 만들어진 오일을 제거하고 트랜스 지방이 없는 성분들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