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날씨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던 콘크리트는 기후를 더 악화시키기도 한다. 생산의 전 과정을 합하면 콘크리트는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4~8퍼센트를 차지한다. 콘크리트보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원료는 석탄, 석유와 가스뿐이다. 콘크리트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절반은 클링커(clinker·시멘트의 원료가 되는 혼합재)라는 상태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다. 시멘트 제조 공정에서 에너지가 가장 집중되는 단계다.
콘크리트가 환경에 미치는 다른 영향은 훨씬 덜 알려져 있다. 콘크리트는 갈증을 느끼는 거대한 짐승처럼 세계 공업용수의 거의 10분의 1을 빨아들인다. 이 때문에 종종 식수와 관개용수 공급에 차질이 생기기도 한다. 콘크리트가 소비하는 물의 75퍼센트가 가뭄 지역이나 물 부족 지역에서 공급되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태양의 열기를 흡수하고 자동차의 배기가스와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가스를 가두면서 열섬 현상(heat-island effect)을 부추긴다. 콘크리트가 어두운 아스팔트보다는 낫지만 말이다.
콘크리트는 규폐증(silicosis)을 비롯한 호흡기 질환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인도 델리에서는 아무렇게나 쌓아 놓은 시멘트와 혼합물에서 나오는 먼지가 도시를 질식시키는 미세 먼지의 10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 2015년 연구자들은 이 도시의 대규모 건설 현장 19곳의 대기 오염 지수가 안전 기준치의 최소 세 배 이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석회석 채석장과 시멘트 공장은 물론, 여기에서 건설 현장으로 재료들을 실어 나르는 트럭도 오염원이 된다. 이 정도 규모에서는 콘크리트의 재료인 모래를 채취하는 것조차 자연에 치명적일 수 있다. 전 세계의 해변과 강줄기를 파괴하는 모래 채굴 사업은 최근 범죄 조직에 의해 운영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모래 채굴을 둘러싸고 살인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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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실은 콘크리트의 가장 심각하지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악영향을 보여 준다. 콘크리트는 자연 기반을 파괴하고 있다. 새 생명을 잉태하는 수정(授精)과 수분(受粉), 홍수 조절, 산소 생산, 수질 정화 등 인류가 의존하고 있는 자연의 생태적 기능을 되돌려 놓지 않은 채로 말이다.
콘크리트는 우리의 문명을 하늘을 향해 나아가게 해줄 수 있다. 두바이에 있는 163층 높이의 부르즈 칼리파(Burj Khalifa)가 공중에서 생활 공간을 창출해 낸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는 인간의 생태 발자국을 더 밀어내서 비옥한 표토와 동물의 서식지를 가로질러 멀리까지 나아가게 만든다. 많은 과학자들이 기후 혼란만큼이나 위협적이라고 여기는 생물 다양성 위기는 주로 야생 지역을 농업 및 산업 용지나 주거 지구로 전환하면서 발생한다.
수백 년 동안 인류는 콘크리트가 주는 확실한 혜택의 대가로 콘크리트가 환경에 미치는 이러한 부작용을 기꺼이 감내해 왔다. 하지만 이제 그 균형추가 반대 방향으로 기울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기를 부양하는 시멘트 축제
로마에 있는 판테온 신전과 콜로세움은 콘크리트의 내구성을 보여 주는 증거다. 여기에 쓰인 콘크리트는 모래와 골재(일반적으로 자갈이나 돌), 물에 석회 반죽을 섞어 굳힌 것이었다. 현대의 산업화된 접합재인 포틀랜드 시멘트
[4]는 1824년에 영국 리즈 출신의 조지프 애스프딘(Joseph Aspdin)이 ‘인조석’의 형태로 특허를 받으면서 탄생했다. 포틀랜드 시멘트는 이후에 철골 또는 철망과 결합한 강화 콘크리트로 재탄생하면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같은 아르데코(art deco)식 고층 건물의 기반이 되었다.
콘크리트의 물결은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밀려들기 시작했다. 폭격으로 파괴된 도시를 재건하는 저렴하고 간편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가 바로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 같은 건축가가 주도한 브루탈리즘(Brutalism) 건축의 시대였다. 오스카 니마이어(Oscar Niemeyer)의 자유롭게 흐르는 초현대적인 곡선과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의 우아한 선들이 그 뒤를 이었다. 수많은 댐, 교량, 항만, 시청, 대학 캠퍼스, 쇼핑센터, 한결같이 암울한 주차장들이 계속해서 늘어난 것은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1950년대의 시멘트 생산량은 철강 생산량과 비슷했다. 그 이후로 2019년 현재까지 시멘트 생산량은 25배 증가했다. 이는 건축 파트너인 금속 재료보다 세 배나 빠른 속도였다.
콘크리트의 미학에 대한 논쟁은 전통주의적인 입장과 현대주의적인 입장으로 양분된다. 전통주의를 옹호하는 영국의 찰스 왕세자는 오웬 루더(Owen Luder)가 설계한 브루탈리즘 양식의 트라이콘 센터(Tricorn Centre)를 두고 ‘흰 곰팡이가 핀 코끼리 똥 덩어리’라고 비난했다. 반면 현대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콘크리트를 질량을 견디면서도 스타일, 규모, 견고함을 만들어 주는 수단으로 보았다.
콘크리트의 정치학은 미학만큼 분열되지는 않았지만, 점점 부식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관성이다. 이 물질이 정치인과 관료, 건축 기업을 한번 연결하게 되면, 이들의 굳건한 결합을 깨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정당 지도자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건설 회사의 후원금과 뒷돈이 필요하고, 정책 입안자는 경제 성장을 위해 더 많은 건설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건설 회사 간부는 돈을 굴리고 직원을 고용하고 정치적인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더 많은 계약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환경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효과가 미심쩍은 사회 기반 시설 프로젝트, 올림픽, 월드컵, 국제 전시 같은 시멘트의 축제가 계속되고 있다.
일본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20세기 후반에 콘크리트를 열성적으로 포용했다. 이 나라의 지배 구조와 관련해 ‘토건 국가’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다.